<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9화 - >
마법사들이 가장 처음에 배우는 마법, 마력을 다루는 기본적인 흐름을 배우기 위한 마법이 바로 매직 미사일이었다.
위에 덧붙인 설명처럼 대단할 것은 없는 마법이었다. 위력도 성인 남성이 휘두르는 주먹 정도일 뿐이었고 범위도 딱 그런 수준이었다. 장점이 있다면 가장 초보적인 마법답게 구사하기가 쉬우며 마력 소모가 적다는 것. 그로 인해 숫자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점이 있었다.
물론 적당한 수준의 방어력만 갖추더라도 영향을 줄 수 없었고 서클이 높아질수록 더 강력한 마법을 쉽게 구사할 수 있기에 쓸 필요가 없는 마법으로 전락하지만 테라 방벽에서는 그리스 다음으로 꽤나 유용한 마법으로 평가를 받았다.
간단하게 구사할 수 있으며 적당한 물리력을 가진 마법이었기에, 방벽을 오르느라 몸의 균형을 잡기 쉽지 않은 몬스터를 격추시키기에 알맞은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파삭- 파삭- 파삭-
레닐이 쏘아 보낸 매직 미사일. 그에 반응한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윌랜드도 매직 미사일을 쏘아 보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똑같은 마법을 구사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일방적이었다.
“?!”
“어째서?”
같은 마법끼리 부딪쳤다면 양패구상을 해야 옳다. 그러나 한 쪽이 살아남고 한 쪽이 죽었다면, 어느 한 곳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면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였다. 둘은 같은 마법이 아니라는 것. 실제로도 그러했다.
‘누가 매직 미사일을 개량할 생각을 할까.’
누군가는 했을 지도 모른다. 아무리 마법사가 희귀한 존재라고는 하나 설마 한 명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조금만 실력이 쌓여도 잘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라지만 단 한 명도 쓸모 있게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한 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 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변의 이들은 지금의 광경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놀라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사라는 이름은 개개인을 고립시키는 이름이기에, 그들의 연구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고 성과 또한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본인의 노력의 결과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나 테라 방벽의 마법사들은 달랐다. 주변을 둘러싼 벽을 과감히 허물었고 서로 손을 잡았다. 그들은 매직 미사일의 개량할 필요성을 느꼈고 모두가 머리를 모았다. 당연히 혼자서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바르게 문제점을 찾았고 해결책을 찾았다. 결과를 모두가 공유하며 미진한 부분에 대한 개량 또한 그 즉시 이루어졌다.
퍽퍽퍽퍽-
레닐을 제외한 모두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윌랜드라고 하여 이 결과를 예상했을 리가 없었다. 요격을 시도했음에도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그를 향해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에 급히 실드를 전개했지만 사정없이 흔들거리며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했다.
‘어째서?!’
가장 당황한 것은 누가 뭐래도 윌랜드였다. 그의 생각대로였다면 매직 미사일이 서로 맞부딪치며 사라졌어야 옳다. 그것이 지금까지 그가 배워온 이론이었으며 상식이자 실전이었다. 지금의 결과는 윌랜드에게 그 어떠한 물리적 상처도 주지 못했지만 정작 그가 노력하여 쌓아온 토대를 흔들어버렸다.
절래절래-
‘기껏해야 잡기일 뿐이야. 날 흔들려는 것뿐이다. 강해져봤자 매직 미사일일 뿐이야.’
실제로도 결국 실드를 뚫지 못했지 않는가. 그러나 그 순간 한 줄기 불안한 생각이 윌랜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만약 다른 마법들도 이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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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도 공격을 이어갔지만 실드 뒤에 틀어박힌 윌랜드에게 타격을 줄 수는 없었다. 마법 술식을 뜯어고치는 개량을 거쳐 마력의 소모라는 반대급부 대신 위력, 내구성, 속도 등등을 얻었다지만 결국 매직 미사일일 뿐이었고 본연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는 과정에서 흔들림을 다잡았는지 윌랜드가 반격을 시도했다.
날아오는 투사체들. 불화살도 있었고 얼음구체도 있었으며 반투명한 매직 미사일도 있었다.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막거나 피하거나.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해결책은 막는 것이었다. 윌랜드가 실드로 내 공격을 막은 것처럼 나 또한 실드를 전개하여 바법을 막아낸다면 윌랜드가 막아냈던 것보다 더 확실하게 막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렇게 이겨봤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할 뿐이지.’
윌랜드에 비해 내가 더 서클이 높다. 그렇다는 건 평균적으로 마력의 양에서부터 위력 등 전체적인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서로 공격하고 막는 흐름으로 결투가 진행된다면 내가 이겨봤자 주변에서는 당연한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할 뿐, 그건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니었다.
“사전 연습이라고 생각해둘까.”
어차피 녀석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마법의 위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힘들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바가 아닌가. 그 녀석의 발톱과 이빨에 비하면 날아오는 투사체는 모래 먼지만도 못했다.
삭- 삭- 스삭-
몸에 강화마법을 건 채, 발을 놀렸다. 애초에 피할 수 없는 마법은 없었다. 속도도 느렸고 탄막을 만들어낼 만큼 숫자도 많지 않았다. 급격하게 좁아지는 나와 윌랜드 사이의 거리. 설마 내가 실드 한 장 없이 그를 향해 달려들 것이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는지 당황해하며 마법의 양을 늘리는 윌랜드의 표정이 두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일반적인 마법사들 간의 싸움에 대해 깊게 공부하진 않았지만 방금 전처럼 서로 마법을 주고받지 주먹을 주고받는 일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건 마법사는 마법만 사용하여 전투를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멍청한!”
자신 있는 분야에 집중했을 뿐, 일리 있는 선택이었다. 마법사의 허약한 신체로는 다가가기는커녕 그 사이 쏟아지는 마법을 피하지 못하고 패배할 테니까. 거리가 좁혀짐에도 윌랜드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어를 굳힐 뿐.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내가 신체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지만 결국 마법사. 맨손으로 실드를 부술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뻔히 보이는 수다. 그리고 뻔히 보인다는 이야기는 대처하기 쉽다는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했다.
퐈삭-
간단한 손짓과 함께 결투장 바닥을 뚫고 식물줄기가 치솟았다. 인탱글. 원래대로라면 발을 걸 수 있는 작은 올가미를 만들거나 상대 발목을 붙잡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의 인탱글은 거의 2m 넘게 치솟아있었다. 그렇게 치솟은 식물줄기는 윌랜드의 팔을 칭칭 감더니 그대로 들어 올려 내게로 던졌다.
내가 의도한대로 적당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윌랜드. 이런 흐름은 생각하지도 못했는지 당황해하는 표정을 그대로 늘어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봐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퍽-
지금까지 들려온 소리와는 달리 깔끔한 그리고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결투장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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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주먹으로 맞은 흔적을 이 곳 저 곳에 남긴 채, 쓰러져 있는 윌랜드. 얼굴이 저럴 정도이니 옷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합한다면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일 것이다. 그에 비해 나는 흩날리는 로브에조차 별 다른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나는 여러 방식으로 윌랜드를 짓밟았다. 실드를 손으로 짚고 넘어가 뒤를 공격하기도 했고 단순히 신체 능력으로 이겼다는 말을 듣지 않도록 여러 마법들을 활용해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그의 바람대로 마법 대 마법으로 부딪혀주기도 했고. 그러나 어떤 식으로 대응해도 지금 보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든 일방적인 결과가 나올 뿐이었다.
“끝난 것 같습니다만, 말리지 않으실 거라면······.”
“내가, 내가······.”
멍하니 나와 윌랜드를 지켜보는 관중들과 중재자를 맡은 마법사. 단순히 한 마법에 대해 ‘이건 이렇게 활용해야 해.’ 라고 배우던 이들에게는 꽤나 신선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있던 공식. 공식대로만 문제를 풀던 그들에게 응용이란 걸 보여준 결투였으니.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내가 중재자를 보며 끝을 알리려고 할 때, 처참하게 쓰러져 있던 윌랜드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아주 천천히 내게만 들릴 정도로 말했다.
“내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결과는 달랐을 거다. 내가 4서클만 되었어도······.”
“글쎄. 승부에 만약이란 단어를 붙일 수 있다면 패배를 경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게다가 네가 4서클이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졌을까? 공격은 조금 더 많아지고 빨라졌겠지. 위력도 높아졌을 테고, 실드도 더 단단해지겠지. 시전 또한 빨랐을 테고. 그런데 고작 그것만으로 결과가 달라질 만큼 우리 사이의 간격이 좁았나?”
나는 아니라고 봤다. 설령 내가 3서클에 불과했더라도 결과가 뒤바뀌지는 않았을 테니까. 차이가 있다면 승부가 났을 때,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지쳐있을 거라는 점. 단지 그것뿐이었을 것이다.
“떼는 그쯤까지만 써라. 그 이상은 아무리 애송이라고 하더라도 추해질 뿐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결투는 끝이 났다. 중재자를 맡았던 심판은 내 이름을 크게 외쳤지만 호응은 없었다. 굴러온 돌인 내가 박힌 돌인 윌랜드를 압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혹은 결투의 내용을 보고 받은 충격이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 맞다.”
마지막으로 윌랜드에게 해줄 말이 있었다. 아니,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해줄 말이기도 했다. 원래는 밝힐 생각은 없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때마침 적당한 무대가 갖추어졌기에.
“만약에, 아주 만약에 네가 4서클에 내가 너와 똑같은 방식으로 싸웠어도 백 번 싸워 백 번을 이겼을 거다. 왠지 알아?”
여전히 윌랜드는 두 눈을 감은 채 결투장에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곧 심상치 않은 마력의 움직임, 그리고 주변 관중들의 웅성거림은 그가 두 눈을 떠 나를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두 눈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듯 거세게 흔들렸다.
“나는 항상 너보다 최소한 두 발은 앞서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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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의 제자인 레닐이 5서클에 올랐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언제 벽을 뛰어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비교적 최근이라고 하더라도 제국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야기였다.
현 마탑주인 가델 조차도 스물 중반에 다다른 경지를 고작해야 스물하나에 다다랐으니 그 미래가 얼마나 찬란하겠는가.
지금까지 눈치만 보고 있던 이들이 더 이상 눈치를 보고 있을 수 없도록 만드는 소식이기도 했다. 이제까지의 레닐이 손익을 계산해볼 법한 물건이었다면 지금의 레닐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얻어야만 하는 물건이었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이 소식을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쨍그랑-
누군가가 던진 찻잔과 윌랜드의 머리가 부딪혔다. 찻잔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으로 땅에 떨어졌고 윌랜드의 머리에서는 한줄기 핏물이 흘러내렸다.
“멍청한 자식! 어쩌자고 일을 그 따위로 만들었어!”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9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