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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47화 (47/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7화 - >

프리드 가문.

현 마탑주를 배출한 가문이자 제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 수많은 마법사의 이름을 남긴 명문가 중의 명문가다. 단순히 직계뿐만 아니라 방계와 그들이 키워낸 제자들까지 합한다면 단순히 숫자로서 그들을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그 역사와 함께한, 직계에게만 내려오는 마력연공법은 과연 대단했다.

이 방식이 내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은 아니었다. 이미 내 몸에는 나만의 방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었으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그 방식이 더 효율적이고 옳다고 하더라도 내게 있어서 수정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스승님의 말처럼 내게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더하고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스승님과 프리드 가문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연공법의 수정.

말로는 단순히 마력이 지나가는 경로를 수정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과정에 있어서 조금의 실수만 있더라도 유망한 마법사를 한순간에 폐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연공이었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이라는 건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 나에게 프리드 가문의 마력연공법은 딱 들어맞는 최고의 옷이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어떤 상황, 어떤 시기에 입더라도 옷 잘 입는다고 칭찬받을 최선의 옷은 되겠지. 단순히 뛰어난 마법사가 목표라면 프리드 가문의 마력연공법을 그대로 내 몸에 이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

그러나 내 목표는 단순히 뛰어난 마법사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최선의 선택이 아닌 최고의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있겠지만, 어떤 선택에 항상 장점만 있겠는가. 단점도 있는 법이지.

그렇게 나는 고지를 향해 아주 조심스럽게, 아주 천천히 한 걸음씩을 내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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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 내부에서 레닐의 존재는 무척이나 붕 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에 레닐은 마탑에 상주하는 마법사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마법사였기 때문이었다.

마탑. 제국의 마법사들의 총본산이나 다름없는 곳이며 대륙에 미치는 제국의 영향력을 생각해보았을 때, 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마법사들에게 있어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 제국의 마탑이었다. 그렇기에 마탑의 넓이는 무척이나 넓었다. 그러나 동시에 좁기도 했다.

그런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마탑에 몸을 담고자 하는 이들도 많았으니까. 단순히 재능이 뛰어난 것만으로는 힘들었다. 마법사들의 성지라고는 하나 결국 마법사들도 사람. 사람 사는 곳에 줄이라는 것이 없을 수는 없었으니까. 재능도 있고 배경도 있는 이들이야말로 마탑이라는 기관에 몸을 담고 그들끼리 경쟁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엘리트라고 불렀다.

그런 면에서 레닐은 이질적이었다. 재능은 있었다. 하지만 재능만으로 모두를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테라 방벽으로 가지도 않았을 터, 배경이 뛰어난 편이라 보기도 어려웠다. 그런 고로 마탑 내부를 걷다보면 레닐은 본인을 향해 수군거리는 말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쳇. 낙오자가 운 좋게 탑주님의 눈에 뜨였다고 우쭐거리기는.”

“설마 진짜 후계자를 키우실 생각인가?”

파이가 한정되어 있다면, 아니 한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박힌 돌은 굴러온 돌을 싫어하는 법이다. 특히나 굴러온 돌이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레닐은 박힌 돌들 속 굴러온 돌이 된 기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고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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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군수군- 수군수군-

시간이 지나면 저 수군거리는 소리도 줄어들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수군거리는 이들의 숫자는 늘어날 뿐, 자연스레 내게 들리는 말들도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의혹을 갖는 말부터 의심, 질투, 비난까지. 확실한 것 하나는 좋은 의미의 수군거림은 없다는 것이다. 있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마탑에 머물며 나에게 좋은 의도를 가지고 다가온 이는 없다시피 했다.

물론 그들이 내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과정이 어찌되었건 내 이름 뒤에는 가델의 이름이 있었고 마법이라는 공통된 길을 걷고 있는 이상 그 이름이 주는 무게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없다시피 했다. 그저 옆에서 자기들끼리 떠들 뿐.

만약 그것이 나를 괴롭히기 위한 그들의 작전이었다면 꽤나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들의 의도대로 나는 꽤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니까.

‘외롭다.’

외로움. 내가 외로움을 이렇게 많이 타는 사람인 줄은 처음 알았다. 사실 그 동안은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환생 초기에야 지금의 가족들에게 어색함을 느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족이 되었고 가족들의 품을 떠난 테라 방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이들과 함께 전투를 치르다보면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으며 초기에는 신입에 대한 배척이 있었지만 나는 꽤나 빠르게 그 거리를 줄여나갔다.

······일드의 도움이 있기도 했고, 오히려 그 다음부터는 배척이 심했던 만큼 훨씬 더 끈끈함을 자랑했다. 최소한 거리감을 느낄 때조차 동기라는 이름의 대화가 가능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곳은 아니었다. 모두가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며 잡다한 대화 한 마디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거기에 나를 두고 질투, 비난, 의혹과 같은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으니 외로움을 떠나 짜증이 나는 수준이었다. 이 곳에서 난 철저히 외톨이였다.

툭-

“이런이런. 눈 좀 뜨고 다니지. 아니면 대제자님께서는 우리 같은 것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건가?”

하아. 노골적인 시비조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식으로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도 흔치는 않았지만 있긴 있었다. 열 중 아홉은 제 나름대로 대단한 위세를 가진 가문의 자식들이었고 동시에 가문의 위상이 제 위상인 줄 아는 얼간이들이기도 했다.

“뭐라고 말 좀 하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떠나 들리지도 않는 건가?”

이런 부류는 둘 중 하나였다. 나라는 본인들보다 급이 낮은 존재가 그들보다 더한 것을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못하는 이들 혹은 제 재능에 자신이 있거나 내가 마탑주의 제자가 된 것에 질투를 느끼는 이들. 지금까지의 시비로만 보자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잘 보여. 잘 들리고. 눈을 뜨고 다녀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당신 같은데.”

“뭐?!”

평소의 나였다면 이런 사사로운 시비에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눈앞의 마법사가 뭐라 지껄이든 대충 넘기고 잊었겠지.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 신경 쓰기에는 내가 가야할 길이 너무 멀고 험했으니까. 어차피 이런 되도 안 되는 시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기분이 나빴고 평소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갔을 그의 행동이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 단지 그 뿐이었다.

“입만 나불댈 거면 내 곁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너한테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주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거든.”

#

윌랜드는 자신 스스로를 훌륭한 마법사의 재목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본인이 아닌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물이 되기 전 3서클에 닿았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뛰어난 재료가 매번 맛있는 음식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기에 그는 그 동안 자신의 재능이 부족하다 여긴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또래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물론 그보다 뛰어난 마법사는 셀 수 없이 많았다. 마탑주와 장로들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탑에서 상주하는 것만으로도 제국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였으니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들만큼, 그들보다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윌랜드는 확신했다. 그러나 레닐이라는 새로운 마법사의 등장으로 그 확신은 흔들렸다.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최고라 생각했던 자신의 재능이 실제로는 흔하디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

‘드라그닐 자작가? 이건 어디 있는 영지야?’

‘스물이 되기 전에 3서클에 올랐다고? ······제법 봐줄 만은 하다만 고작?’

‘테라 방벽이라니, 낙오자들끼리 서로 상처를 위로라도 해줬나?’

마탑주의 제자라는 자리. 윌랜드도 진심으로 원하던 자리였다. 그럴 만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실제로 그의 아버지께 부탁해 마탑주와의 연을 만들어보려고 했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잃는 것은 없으니 그의 아버지 또한 그 부탁을 들어줬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실패였지만. 그렇기에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차지한 레닐에게 질투와 시기 같은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물 하나에 4서클이라고? 낙오자 중 한 명 치고는 박수 받을 일이지만 나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조금만 더 운이 따르면 충분히 다다를 수 있어. 그런데 나는 안 되고 저 녀석은 된다고?’

레닐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며 그가 4서클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도 그 마음은 여전했다. 그가 생각할 때, 4서클이라는 경지는 조금만 더 손을 뻗으면 나을 수 있는 경지였고 그에게 필요한 건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현실은 어떨지는 둘째 치더라도.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약간의 차이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자리의 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건 잘못됐어!’

그는 자신의 재능뿐만 아니라 가문의 힘을 빌려서도 실패했다. 그런데 레닐은 순전히 본인의 힘만으로 그 자리를 얻어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곧 자신이 레닐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 동안은 일방적인 시비였다. 레닐은 윌랜드를 무시했고 그 탓에 윌랜드 또한 그 이상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과정이 어찌되었건 레닐은 보잘 것 없는 가문의 재능이 뛰어난 마법사가 아닌 마탑 내에서만큼은 황제나 다름없는 마탑주의 제자였으니까.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입만 나불댈 거면 내 곁에서 얼쩡거리지 말고 꺼져. 너한테까지 일일이 신경을 써주기에는 내가 너무 바쁘거든.”

‘지금 이 자가 뭐라고 한 거지?’

레닐의 말은 윌랜드로서는 처음 듣는 폭언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지체 높은 귀족의 아들로서 태어났고 그의 재능은 그를 가르치는 이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냈다. 그를 만난 이들 모두가 평했다. 가문의 명예를 드높일 거라고. 근데 지금 뭐라고? 꺼지라고 했나? 고작해야 운이 좋아 남들이 원하는 자리에 앉은 주제에?

“아, 바쁘시겠지. 우리 대제자께서 안 바쁘면 누가 바쁘겠나. 뭐가 그리 바빠 서로 물고 빨던 낙오자 동료들까지 버리고 혼자 살아남아 이 곳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윌랜드는 그런 모욕을 받고 가만히 있을 만큼 자존심이 낮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높은 편이었지. 게다가 이 흐름은 그가 원하던 흐름이기도 했다. 그의 일방적인 시비라면 그의 말처럼 임만 나불대는 것이 한계겠지만 상대방이 맞장구를 쳐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으니까.

“아니면 동료들을 몬스터들의 밥으로 준 게 마탑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인가? 이야, 그런 과정이 필요하다면 꽤나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데. 잘도 그런 길을 선택했어.”

그리고 그 말은 레닐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7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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