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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45화 (45/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5화 - >

테라 방벽을 떠나 수도로 향하는 길은, 그리고 수도에서 마탑까지 향하는 길은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수도에 도착하기 전부터 마탑주가 보낸 이들이 나를 엄중히 호위해 마탑에 데려다 주었으니. 같은 이야기로 마탑주를 만나는 것도 어려울 것이 없었다. 수도에 도착해서 만난 사람 중 첫 번째가 마탑주였으니까.

“마탑주님을 뵙습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지크 후작도 그렇고 마탑주도 그렇고 일정 경지 이상에 다다르게 되면 성격이 급해지는 것일까, 아니면 성격 급한 이들이 경지에 오르게 되는 것일까. 의자에 앉기도 전에 본론부터 꺼내드는 마탑주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려던 것도 잠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물론 그 때 하신 제안이 아직까지 유효하다는 전제 하에 이야기입니다만, 제가 이 곳까지 오게 된 것을 보면 아직 기회가 떠나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너는 내게 네 고유 마법을, 나는 네게 고위 마법사로서의 가르침을. 그 때와 달라진 것이 있나?”

“없습니다.”

“좋다. 이제부터 너는 나, 가델의 첫 번째 제자이며 나는 너의 스승으로서 최선을 다해 너를 가르칠 것을 내 마력에 대고 맹세한다. 그러고 그 대가로 너는 내게 네 고유 마법에 대해 일말의 가감 없이 알려줘야 한다.”

“예. 제 마력에 맹세코 일말의 가감도 없을 것입니다.”

마력의 맹세.

이름은 거창하지만 어긴다고 하여 직접적인 효력을 발휘하는 종류의 맹세는 아니었다. 물론 사실이 밝혀진다면 명예를 잃는 것 정도는 각오해야겠지만. 마법에 관해서만큼은 믿을 만한 이들이 마법사이기도 했기에 지금의 말들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나는 네게 하루에 여섯 시간동안 가르침을 내릴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내게 한 시간 동안 네 마법에 대해 설명하도록 하고. 그 외에 시간은 잠을 자든 개인적인 수련을 하든 알아서 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스승님.”

짧지만 스승님과의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제국 제일의, 아니 세계 제일의 마법사인 그조차도 이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각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파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도대체 정체가 뭐냐 넌.

“제자야.”

스승이라는 칭호를 듣고 제자라는 칭호로 나를 불렀다. 이것으로 나와 탑주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라는 새로운 관계가 맺어진 것이었다.

“너는 나와의 첫 만남에서 내 제안을 거절했었다.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 이유가 무엇이냐.”

“······말씀드려야만 합니까?”

“말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스승 된 입장에서 네가 어째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지 알고 있다면 가르침에 있어 조금 더 특화를 시킬 수는 있겠지.”

“복수할 대상이 있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두 발 뻗고 자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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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델이 복수라는 말을 입에 담은 레닐을 바라봤다. 그리고 꽤나 놀랐다. 그와 레닐의 첫 만남에서 레닐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애송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다르지 않았다. 제법 강단이 있기는 했으나 눈에는 어설픈 희망을 담고 있었고 잡힐지 안 잡힐지 모를 목표를 향해 즐겁다는 듯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허물을 벗었군.’

두 눈에는 목표를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한 독기가 서려 있었고 그 밑에는 독기에 짓눌려진 절망과 슬픔이 보였다. 적어도 애송이라고 불리기에는 경험도, 각오도 한층 성장했다. 사람으로서 어느 것이 좋다고 우열을 가릴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빠르게 성장하고자 한다면 후자가 더 어울렸다. 사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조건에 빠르게 성장해야만 하는 이유가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동기란 모든 것의 시작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길게 끌 이유는 없겠군. 수업은 오늘부터 시작한다.”

“바라던 바입니다.”

“그 전에 네 실력부터 보자. 네 수준에 따라 내가 가르칠 내용도 달라질 테니. 너는 지금 어디에 손을 닿고 있지?”

그리고 가델의 눈이 살짝 커지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닐이 자신의 수준을 보여주기 위한 마법의 준비 과정만으로도 무슨 마법을 보여줄지 알아차리는 것은 그의 수준에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그 마법은 그의 예상을 살짝 벗어난 마법이었기에.

레닐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져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단순히 그것뿐이라면 놀랄 이유는 없었다. 단순히 몸을 떠오르게 하는 것뿐이라면 세 개의 서클이 필요한 플라이로도 충분했으니까. 대외적으로 4서클로 알려진 레닐이 플라이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델의 눈이 살짝 커진 이유는 레닐의 몸이 단순히 떠오르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곧 레닐이 시전 중인 마법이 플라이가 아니라는 뜻이었고.

약간 몸을 띄운 상태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레닐. 느리게 그리고 빠르게 몸을 이동하더니 한 바퀴 몸을 회전하기까지 한다. 이내 허공에 거꾸로 매달린 그의 발에서 작고 희미하지만 돌풍이 보였다. 에테르 윙. 5서클의 마법사가 펼칠 수 있는 비행 마법이었다.

‘5서클이라······.’

그의 시선에서 봤을 때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5서클은 단순한 통과지점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기준을 7서클 마법사, 가델로 두었기 때문이지 수준이 낮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장 그조차도 5서클을 스물 중반이 가까워져서야 도달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스물? 스물하나?”

“서클을 새롭게 만든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스물하나에 5서클이라, 내가 누군가와 비교해 재능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를 만날 때마다 놀랄 거리를 하나씩 만들어 오는군.”

가델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눈앞의 마법사는 주변의 그저 그런 마법사가 아니었으니. 어쩌면 그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자질을 가진 마법사. 제자의 자질이 뛰어나다면 스승으로서 가르치는 방법도 평범과는 달라져야 하는 법이었다.

“좋아. 너 또한 천재라는 부류일 테니 괜히 쉽게 설명하려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겠군. 그러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가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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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탑주가 제자를 들였다.

이 소식은 수도를 빠르게 휩쓸었다. 정확히는 수도의 귀족들을. 백성들이야 이런 소식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물론 빠르게 퍼질만한 내용의 소문이었지만 훨씬 더 빠르게 소문이 퍼졌는데 그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우선 첫 번째로 수도의 귀족들은 늘 심심했고 항상 새로운 소식에 목말라 있었다. 각자의 영지를 떠나 수도에 정착한 이들 중 소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수련에 열중했지만 그 외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매일같이 파티를 열고 티타임을 갖는 등,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뿐이었다. 그러니 새로운 소식을 기다릴 수밖에.

두 번째로는 소문의 내용 그 자체인 마탑주가 제자를 들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보통 제자가 아닌 첫 번째 제자라는 점이었다. 가델이 전대 마탑주의 뒤를 이어 마탑주의 자리에 오른 것이 십 년을 약간 넘었으니 그 사이 본인을 혹은 그의 일가친척 중 한 명이라도 그의 제자로 넣으려던 이들의 숫자는 이루 셀 수조차 없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의 제자조차 만들지 않았던 마탑주가 제자를 들였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탑을, 수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대체 누구야?”

“레닐 드라그닐? 어디에 있는 가문이지?”

“아아, 그 때 그 청년!”

그리고 그 제자의 정체가 레닐이라는 것을, 약 이 년 전 그들과 황제의 앞에서 시연회를 진행했던 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마탑주의 연구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그 마탑주와 제자, 둘이 유이했으니까.

‘신흥 귀족 가문의 탄생인가?’

‘별 볼일 없는 귀족이 아들 복이 터졌군.’

‘어떡하지? 미리 연을 만들어둬야 하나?’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했다. 지금껏 제자를 들이지 않던 마탑주가 첫 제자를 들였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드디어 후계자를 키울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실제로 그 둘은 서로 간에 필요한 것들을 거래했을 뿐이지만 내부 속사정이 어떠했든 외부에서 보는 시선은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그런 반응은 세가 약한 귀족들일수록 더 두드러졌는데, 귀족들이 영지를 떠나 수도에 올라와 있는 이유가 권력의 이동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더 가문을 번창시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해서는 더 많은 권력을 쥔 이와 쥘 이에게 줄을 대는 것이 기본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한순간에 유력한 차기 마탑주 후보이자 별다른 연줄이 없고 결혼까지 하지 않은 레닐은 그들에게 있어 탐나는 보석이 아닐 수 없었다. 서로 침을 질질 흘려가며 누가 먼저 손을 뻗나 눈치만을 보고 있는. 그러나 손을 뻗는 것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수도로 올라온 레닐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마탑 내부에서 가델과 함께 수업을 혹은 홀로 수련을 하는 데 쏟았으니까. 가델과 만난 첫 날, 동료들의 편지를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본인의 고향에 편지를 보내는 것을 제외하면 마탑 외부로 나간 일이 없었으니까. 결국 외부 인물들만 애가 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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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간 마탑주와의 수업을 진행하며 느낀 점은 마탑주는 결코 좋은 스승은 못 된다는 점이었다. 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못 된다는 말처럼 알고 있는 것이 많다하여 잘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델은 스스로가 천재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난해한 가르침을 내렸고 설령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세하게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는 감각으로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했다.

아마 시연회 당시에 내가 마탑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지금보다도 성장이 더 정체되었으리라. 지금이야 마력에 대한 감각이 늘어남에 따라 그가 말하는 감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머리가 아닌 몸으로나마 깨달을 수 있었지만 그 때의 나였다면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성과는 성과대로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하여 내가 좋은 선생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 또한 가델에게 감각 그 이상을 말해줄 수는 없었으니까.

“연구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없다고?”

우여곡절 끝에 가델의 첫 수업이 끝나고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나는 난감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말처럼 연구 자료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으니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활용법에 관한 것들이지 사용 방법에 관한 연구가 아니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지. 아무리 네가 연구를 먼저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물을 가지고 내가 연구했음에도 아무런 진척이 없을 리가 없는데, 내가 그렇게 노력했는데 간격을 좁힐 수 없을 리가 없지.”

“저도 왜 제가 이런 마법을 쓸 수 있는지는 모릅니다. 다만 꿈에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유자재로 쓰게 되었을 뿐, 남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못합니다.”

“그거면 되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으니, 다양한 방면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행히 이걸 빌미로 계약을 파기하지는 않았다. 나로서는 다행인 일이었고 마탑주에게도 지지부진하던 연구에 더 많은 자료를 얻게 된 격이었으니 큰 상관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거래로 이루어진 사제 관계가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게 수련에 열중하는 동안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고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다.”

“오라버니!”

아버지, 어머니, 형, 여동생까지. 가족 전원이 나를 보기 위해 수도로 올라왔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5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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