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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41화 (4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1화 - 첫 유료 연재입니다. >

앞발이 눈앞에 다가오자 조금 더 자세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등과 달리 비늘이 없는 대신 두꺼운 가죽으로 둘러쌓진 발바닥과 발바닥으로부터 솟아나있는 네 개의 발톱. 발톱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사람의 몸통만 했으니 크기만으로도 위력을 짐작케 했다.

문제라고 한다면 그 발톱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나는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고. 머릿속으로는 피해야 한다고, 뛰든 몸을 던지든 기어서든 저 발로부터 떨어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경고를 내리고 있었지만 두 다리는 땅에 뿌리라도 박은 것 마냥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때의 나는 한 마디로 쫄아있었다.

쿵-

그러나 드래곤의 앞발이 땅에 닿고 발톱이 땅에 박혔으며 다시 한 번 모래가, 진흙이 치솟았을 때 나는 그 밑에 있지 않았다.

“정신 차려!”

누군가가 네 뒷덜미를 붙잡고 재빠르게 범위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그러나 생명의 은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재차 드래곤의 공격이 이어졌고 계속해서 팔에 매달려 대롱대롱 허공을 날아다녔으니까.

“이제부터는 재주껏 살아남아! 뒤처리 해줄 만큼 여유롭지 않으니까!”

“예, 예!”

문득 과거가 생각이 났다. 테라 방벽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전투에 참전했었던 그 때가. 그 때도 지금처럼 참 많은 실수가 있었다. 죽느냐 사느냐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만 했던 전투는 전생과 현생을 합쳐 몇 년을 살아왔든 피 튀기는 전투 경험이 없는 이상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마치 지금처럼.

“어떻게 합니까!”

“······맞서 싸워! 틈을 봐서 도망친다!”

분명 산을 벗어난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순식간에 우리를 따라잡은 속도, 우리가 있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추적 능력으로 보건데 이대로 뿔뿔이 흩어져봤자 결국에는 모두 저 녀석의 뱃속으로 사라질 것이 훤히 눈에 보이는 상황. 우노스의 말은 그나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인생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격언 하나는 최선의 선택이 항상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격언을 지금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챙-

“챙?”

기사들의 전유물 오러. 지금까지 오러가 베어내지 못했던 것은 없었다. 지금까지 테라 방벽을 공격했던 무수한 몬스터들 중에서도 오러 앞에서 당당했던 몬스터의 숫자는 한 손에 꼽았다.

그 조차도 아직 완숙하지 못한 오러에 한정된 이야기였으며 우노스와 두오 급의 기사에게 베지 못하는 몬스터란 없었다. 그러나 녀석의 검붉은 비늘 앞에서는 오러 조차 바위 앞의 나뭇가지에 불과할 뿐이었다.

“말도 안······.”

콰직-

그들로서도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아무리 전설 속의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최소한 상처는 낼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하며 내지른 일격이 조금의 데미지도 주지 못했을 때 느낄 허무함, 놀라움 등등의 감정들. 그리고 그런 감정에 휩쓸려 잠시나마 멈칫한 대가는 너무나 뼈아팠다.

“위습!”

그대로 앞발에 깔려 죽음을 맞이한 위습의 모습에 모두가 경악을 금하지 못했다. 제정신인 상태에서 힘을 주어 버텼다면 잠시나마 버틸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무언가 변수가 만들 수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들은 순식간에 한 명의 동료를 잃었다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큭.”

우리들은 최선을 다했다. 끊임없이 녀석의 공격을 회피하며 공격을 날렸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본인의 단단하고 거대한 몸을 이용한 공격을 해올 뿐, 예상했었던 마법 혹은 브레스를 통한 공격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기사들이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나 또한 몇 발의 마탄 - 조사를 떠나기 전 이틀에 걸쳐 한 발을 만들었던 용살(龍殺) 각인 - 을 쏘아냈지만 강철과도 같은 광택을 자랑하는 비늘에 약간의 흠집을 냈을 뿐, 유의미한 상처를 줬다고 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일행의 숫자는 한 명씩, 그러나 꾸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솔직히 말하자. 살아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 나만이 느끼는 감정도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는 와중에도 얼굴에 드리우는 검은 그림자를 숨길 수 없었으니. 그러나 역으로 자포자기해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 또한 없었다.

그러니 나 또한 이대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최소한 녀석에게 한 방 정도는 먹여줘야 녀석의 뱃속에 들어가면서도 웃으면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불행 중 다행인 말이지만 잇단 동료들의 죽음이 결코 개죽음은 아니었다. 몇 번의 공격과 회피를 통해 어떤 식으로 녀석이 공격을 해 올지, 정해진 패턴을 파악했다고 해야 할까.

제 아무리 검을 잘 다루더라도 결국 베기, 찌르기 둘 중 하나인 것처럼.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육체만을 이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로랑의 말처럼 우리 따위에게 마법까지 사용하기는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한 결과일지도 몰랐고.

어찌되었건 내가 노려야 할 곳은 단 한 곳, 녀석의 눈이었다. 단단한 비늘로도, 두꺼운 가죽으로도 보호받지 못하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약점. 비슷하게 입 안쪽이라는 더 커다란 부위도 존재했지만 나에게 주어진 무기라고는 마탄 두 발이 고작. 저 거대한 입에 손가락 한 마디만한 마탄이 적중해봤자 얼마나 타격이 있을까.

그렇기에 더더욱 녀석의 행동을 이끌어내야 했다. 사족보행임에도 눈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수 미터에 다다르는 높이의 눈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녀석이 얼굴을 내리까는 정도는 해줘야 했으니까.

“뭔가 방법이 있지?”

“로랑 씨.”

“표정을 봤어. 아직 포기한 표정이 아니었고. 있지? 있다고 말해!”

“저 녀석을 죽일 방법은 없어요. 그래도 한 방 먹일 수는 있겠죠.”

“그거면 됐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로랑에게 내가 노리고 있는 점을 설명했다. 더불어 누군가가 녀석의 행동을 유도하면 더 좋다는 말과 미끼가 된 사람은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까지도. 그러나 로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끼 역할을 자처했다.

“어차피 살아남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어. 그럴 바에야 저 녀석에게 한 방이라도 먹여야 먼저 죽은 동료들에게 볼 낯이 있을 것 같거든.”

내가 원하는 패턴인 녀석이 입으로 대상을 물어뜯으려하는 공격 패턴은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그 공격으로 두오 경이 물어 뜯겨 목숨을 잃었고 한 번은 허공을 갈랐으나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또 한 명의 동료가 명을 달리할 뻔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두 번 모두 앞발보다 입에 더 가까이 있을 때, 머리를 쭉 내뻗으며 대상을 물어뜯었다는 점이었다.

“도마뱀 새끼야아아아아!”

큰 소리를 외치며 로랑이 달려 나갔다. 그리고 나 또한 적절한 거리를 두고 로랑을 따라나섰다. 미끼라는 말처럼 로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 뿐, 로랑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정작 로랑은 성공했는데 나는 실패해버리는 최악의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한 방 먹일 수 있다는 내 말만을 믿고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려 하는 로랑을 위해서라도 실패라는 단어를 염두에 둬서는 아니 되었다.

“끄아아악!”

물론 그 외침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그러나 거대한 이빨에 잘근잘근 씹혀가며 죽어가면서도 로랑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네가 말했던 것처럼 녀석의 행동을 이끌어냈다고, 그러니까 너도 내게 약속했던 대로 녀석에게 한 방 먹여달라고. 물론 그가 목숨을 바쳐 만들어낸 기회를 그냥 날려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행인 점 두 가지는 거대한 덩치에 걸맞게 눈도 거대해서 사람 머리만하다는 것. 그리고 로랑을 물고 뜯고 맛보느라 나를 신경쓰지 않은 채 눈을 내보이고 있다는 것.

지금까지 내 동료를 몇 명이나 집어삼킨 저 녀석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먹잇감이라 생각하던 하등생물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는 굴욕을 맛보여주기를 바라며 사격(射擊)의 각인이 새겨진 권총으로부터 용살(龍殺)의 각인이 새겨진 총알이 쏘아졌다. 목표는 호박색으로 날카롭게 빛나는 녀석의 왼쪽 눈알.

푸슉-

지금까지 쏘아낸 마탄만 하더라도 수백 발은 될 것이다. 물론 모든 총알을 원하는 지점에 맞출 만큼 명사수는 아니었으나 적어도 이 한 발을 쏘아낼 때만큼은 세상에 둘도 없는 명사수였다.

야수의 심정으로 녀석의 눈만을 바라보았으니까. 정확히 녀석의 눈알에 명중한 총알은 말 그대로 녀석의 눈을 터트려버렸고 막힌 수도꼭지에서 물이 튀어나오듯 피가 터져 내 몸을 적셨다. 다행히 피를 타고 독이 흐르지는 않는지 찝찝함 이상을 내게 안겨주지는 못했지만.

크아아아악-

아무리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눈을 공격당했음에도 멀쩡할 수는 없었는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고통 속에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조금만 멀뚱히 서 있었어도 휩쓸려 죽었을 정도로. 그 때, 아직까지 살아있던 우노스의 외침이 들려왔다.

“뿔뿔이 흩어져! 어떻게든 살아서 테라 방벽으로 가라! 단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동시에 나도 최대한 시간을 끌기 위해 다른 이들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방금 전 일격으로 드래곤의 시선은 내게로 집중되었을 터, 단순한 먹잇감이 아닌 상처를 입힌 ‘적’이 된 순간 생존 확률은 0에 수렴했다. 남은 이들이라도 살아남기를 바라며 최후의 발악을 할 수밖에. 그 때, 순식간에 드래곤과의 거리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50m, 100m, 150m.

짧은 시간에 거리가 멀어진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 있어 거리가 휙휙 벌어지며 공기저항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 짧게나마 이런 짓이 가능한 사람은 우리 일행 중에서도 단 두 명 뿐, 아니 이제는 한 명 뿐이었다.

“일드님!”

“아주 잘했다. 네 덕분에 잠시나마 시간을 벌었다.”

“그래봤자 잠시입니다. 일드님도 빨리 이 곳을 벗어나십시오. 저 녀석도 저를 노리고 있을 터, 최대한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일드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내 안색도 별로 좋지는 못할 테지만 일드에 비하면 양반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격한 사투를 벌인 것도 모자라 단거리 이동 마법인 블랭크를 몇 번이나 연속해서 사용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아라.”

“예. 힘들겠지만 살아서 테라 방벽으로 가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나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순식간에 온 몸이 빳빳해지며 입을 여닫고 혀를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되었으니까. 눈만 부릅뜨고 있을 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피에 마비독이 있었나?’

그럴 리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멀쩡했던 것은 무엇인가. 이렇게 한 순간에 온 몸을 마비시킬 독성이라면 이미 진즉에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 맞았다. 그 때,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러가는 나의 시선과 일드의 시선이 마주했다. 그리고 나는 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

“한 숨 자고 일어나라. 일어나면 모든 것이 끝나 있을 테니.”

그 말과 함께 이윽고 내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1화 - 첫 유료 연재입니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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