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0화 - 마지막 무료 연재입니다. >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작은 산, 그 산의 중턱 정도에 특이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도(地圖)에만 표시가 되던 것처럼 마력 반응의 바로 위에 도착했음에도 나무 외에 어떠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상공에도 그 흔한 와이번 한 마리도 날아다니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하에 있는 것 같습니다.”
“지하라, 파고들어가야 하나?”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움직일 때까지 마력 반응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로랑이 발견했던 것처럼 마력 반응을 나타내는 파랑색이 썩 짙지는 않지만 이게 정말로 드래곤의 존재를 나타내는 마력 반응이라면 이대로 지하로 파고들어갔다가는 드래곤의 머리위로 떨어지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었다.
“드래곤은 상당히 컸죠?”
“어어. 너무 멀어서 정확한 크기는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상위종 두셋보다도 거대한 크기였지.”
“그렇다면 이 밑에 그런 크기의 생명체가 돌아다닐 만큼의 공간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 입구도 이 산 어딘가에 있을 테고요. 입구를 찾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산은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20m가 육박할 거체가 들락날락할 수 있는 크기의 공간 또한 흔치 않았다. 즉 입구를 찾는 일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는 이야기였다. 특이점을 중심으로 수색에 돌입한 우리들은 예상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입구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생각할 때 최선은 몇 사람은 도망칠 준비를 하여 밖에서 대기, 몇은 돌입하여 마력 반응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설령 내부로 들어간 이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더라도 밖에 나와 있는 이들은 도망칠 수 있을 지도 모르니까.
“두오.”
“제가 남을까요?”
“그래. 뮤트와 함께 입구에서 대기해. 거리상으로는 아무리 천천히 간다지만 오래 걸리지 않을 테지. 반나절이 지나도록 우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혹은 무슨 소란이 생기면 그 즉시 테라 방벽으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할 수 있도록.”
“보토, 자네도 같이 남게. 유사시에는 같이 돌아가도록 하고. 지도는 사용할 줄 알겠지?”
“당연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나저나 긴가민가해도 드래곤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기사 두 명과 마법사 한 명이 바깥에 남았다. 남은 아홉 명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로 했고, 동굴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햇빛이 끊기고 어둠이 우리를 반겼지만 빛을 만들어내는 마법 정도는 여기 있는 마법사들에게 너무나 간단한 마법이었다.
“드래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거대한 생명체가 이 안에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바위를 부수고 다닐 정도로 힘도 센 것 같고.”
“덩치에 맞게 무게도 엄청난 듯합니다. 보십시오. 발자국입니다.”
바깥에는 발자국이 보이지 않았는데 동굴 안으로 들어오자 깊게 파인 발자국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하네요. 바깥에서는 이런 발자국은 보지 못했는데.”
“그렇군. 이 정도 크기라면 필시 바깥에도 발자국이 남아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겨울잠이라도 자고 있는 걸까요?”
“여름이 찾아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도 겨울잠이라니, 사실이라면 잠꾸러기도 그런 잠꾸러기가 없군.”
내 예상대로 겨울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적어도 그 존재를 자극해 깨우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되돌아갈 확률이 있으니까. 그러나 멀쩡히 깨어나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호랑이굴 안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 벌어질 터였다.
“더 안으로 들어가실 겁니까?”
“실물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돌아갈 수 없다. 앞으로 간다.”
그리고 발자국의 정체를 확인하기까지 결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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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게······뭐야.”
“확실해. 저 녀석이야. 내가 봤던 놈이 저 녀석이라고.”
“조용히 해요. 깨겠어요.”
머리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뿔이 양 쪽으로 솟아있었으며 검붉은 색의 비늘은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날개는 몸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했으며 꼬리 또한 몸길이만큼이나 기다랬으니 영락없이 우리가 상상하던 드래곤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드래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겨울잠이라도 자는 것인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움직임이 없었지만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감이 드는 모습이었다. 동시에 두려움이 드는 모습이기도 했고.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여유롭게 감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드르릉-
쿠구구구궁-
“자, 잠꼬대?”
“모두 조용히. 조용히 동굴을 빠져나간다. 혹시라도 드래곤을 자극할 행동은 피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조금이라도 소리가 날까, 조심스럽게 동굴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두가 조심히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 오직 한 사람, 로랑만은 두 눈을 시뻘겋게 뜬 채, 드래곤으로부터 시선을 옮길 줄을 몰랐다.
“로랑 씨.”
“······복수해야 해. 복수하라고 말하고 있어. 저 녀석만 죽이면······.”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끊임없이 복수를 외며 눈빛만으로는 이미 드래곤을 수백 번도 더 죽여 버릴 듯한 로랑의 표정을 보며 나는 황급히 로랑의 시선에서 드래곤을 가렸다.
“저 녀석을 죽여야 내가 용서를 받을 수 있어. 저 녀석을 죽여야······.”
“로랑 씨! 정신 차려요!”
금방이라도 드래곤을 향해 마법이라도 날릴 것 같았기에 시선을 마주하고 어깨를 흔들었다. 여기서 괜한 돌발행동은 로랑뿐만 아니라 이 곳에 있는 모두를 죽음으로 몰아갈 수도 있었으니까. 아니, 몰 것이 확정적이었으니까.
“······레닐?”
“정신 차려요. 복수? 해야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으로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녀석을 못 죽여요.”
벽 하나만 넘으면 마스터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기사 두 명과 그 아랫단계의 기사 여섯 명. 5서클 마법사 두 명과 4서클 한 명, 3서클 한 명으로 이루어진 일행의 전력은 지금까지 알려진 어떤 몬스터를 상대로도 승리로 향하는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전력이었으나 눈앞의 드래곤을 상대로는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기 위한 파티라면 지크 후작과 같은 마스터와 7서클 마법사 정도는 속해 있어야 전설에 어울리지 않겠는가.
“게다가 로랑 씨만의 복수가 아니에요. 거기서 죽은 사람과 인연이 있던 건 로랑 씨만이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지금은 일보 후퇴가 필요한 때에요.”
눈앞의 드래곤의 힘의 내 생각보다 약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흔적으로 보건데 이 넓은 동굴이 녀석의 보금자리라는 것쯤은 확실했다. 지금은 될지 안 될지 모르는 희망에 목숨을 걸 때가 아니라 희망이 물거품이 되더라도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기 위해 물러날 때라는 것에는 이견의 의지가 없었다.
내 말이 효과가 있었는지 로랑의 눈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손톱이 파고들어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었고 얼마나 입술을 세게 물었는지 붉은 피가 보였지만 최소한 이성은 되찾은 모습이었다.
“지금 당장은, 당장은 무리겠지.”
“기회는 반드시 올 겁니다.”
절그럭- 절그럭-
조심히 움직인다고 하지만 각자 몸에 걸친 방어구가 방어구이다보니 소리가 안날 수가 없었다. 당장 일행 중 가벼운 무장에 속하는 나조차도 체인메일로 몸을 감싸고 그 위에 로브를 걸쳤으니까. 마법이 없었다면 동굴이라는 장소적 특성과 합쳐 곤히 자고 있는 드래곤을 깨워도 한참 전에 깨웠을 것이 분명했다.
“돌아오셨습니까? 안에 정말로 드래곤이 있었습니까?”
“그래. 있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러나 재빠르게 동굴을 빠져나온 우리를 입구에서 기다리던 일행들이 반겨줬다. 실제로 드래곤을 봤다는 말에 직접 보지 못한 이들이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지만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자고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는 일. 서둘러 테라 방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동굴 내부, 아주 늦게까지 겨울잠을 자고 있던 드래곤 또한 맡아지는 냄새에 눈을 떴다. 사실 겨울잠을 자든 안자든 상관없었지만 한 번 자봤으며 일찌감치 눈을 떠도 상관없었지만 기왕 잠든 김에 깨어나기가 싫어 조금 오랫동안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보니 평소보다 배가 고팠고 그 때마침 등장한 레닐 일행은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먹잇감이나 다름이 없었다.
개개인이 품고 있는 마력이 주변의 몬스터들보다 월등했으니 마력의 잔향 또한 짙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원래대로였다면 조금 더 뭉그적거리고 있을 예정이었으나 위에 말했던 요소들이 합쳐져, 레닐 일행에게는 불행하게도 억지로 감고 있던 눈을 떠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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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빠르게 산을 벗어난 우리 일행은 일단 남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테라 방벽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기보다는 쓸데없는 충돌을 피해 드래곤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드래곤이라니, 드래곤이 정말로 실존하는 생물이었다니!”
“전 세계가 난리가 날 소식입니다.”
“과연 잡을 수 있을까요?”
“퐁크 후작 각하와 지크 후작 각하, 마탑주께서도 함께하신다면 아무리 드래곤이라 하더라도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화제는 단연 드래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로랑의 말처럼 단순한 아종들과는 크기부터 시작해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달랐다. 어찌해서 상위 몬스터라고 평가받는 드레이크, 와이번 등이 고작해야 아종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어? 갑자기 웬 그늘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남쪽을 향해 달려가던 일행의 위로 그늘이 졌다. 아직 해가 넘어가려면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고 주변에 그늘을 만들 무언가도 없었던 만큼 비행 몬스터가 위에 있나 싶어 고개를 위로 올렸을 때, 우리가 생각했던 단순한 비행 몬스터가 아님에 한 번 놀랐으며 그 모습이 우리가 동굴 속에서 보았던 모습임에 두 번 놀랐다.
펄럭펄럭- 쿵-
땅에 착지하는 것과 동시에 세찬 모래먼지를 일으키는 한 쌍의 날개까지. 그만한 덩치가 갑작스럽게 땅에 안착했음을 알리는 것처럼 땅이 흔들린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리고 치솟았던 모래먼지가 모두 내려앉았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서 얼핏 보았던 드래곤의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눈앞에 두자 손발이 덜덜 떨려왔고 곧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잠에 빠져있을 때 느꼈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마치 토끼가 사자를 눈앞에 뒀을 때의 느낌이 이럴까. 도저히 머릿속으로도 내가 살아 돌아간다는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영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내 잠까지 깨우다니!]
로랑이 했던 말 중 하나, 사람의 말을 했다는 것이 무슨 말이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궁금했었다. 상당히 먼 거리에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목소리를 똑바로 들었는지 혹은 전혀 다른 구조에서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드래곤은 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의지를 우리에게 전달했을 뿐.
[죽음만이 있으리라!]
거대한 앞발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40화 - 마지막 무료 연재입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