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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39화 (39/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9화 - >

테라 방벽의 겨울은 길다. 일 년 중 반절 정도는 언제 눈이 내려도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즉 조사대가 출발하기 전까지 적어도 삼 개월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뜻이었으며 그 긴 시간 동안 단순히 조사대의 인선을 꾸리고만 있었다고 한다면 관련자들의 양쪽 뺨에 무능이라는 글자를 새겨도 불평할 수 없으리라.

“젠장. 이런 것들도 정보라고.”

“별 수 있나요. 애초에 전설 속의 존재인걸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근거 자료가 동화책이라니, 참나······.”

“그래도 마탑의 논문 자료도 몇 개는 있어요.”

“그 논문의 출처도 결국 떠돌아다니는 전설에 불과하잖아! 뭐가 달라!”

드래곤. 그 전설 속의 존재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행인 점이라면 최전선인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적들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마법사들 개개인이 테라 방벽으로 발령받았을 때 가져왔지만 주인이 죽음으로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한 책들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들 뭐라도 좀 건졌나?”

“모두 비슷한 자료들뿐인데 뭐 건진 게 있겠습니까.”

사실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마법사들에게 꽤나 익숙한 존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마법의 창시자가 드래곤이라는 가설이 있었으니까.

물론 그 외에도 수많은 가설이 존재하기는 했으나 상당한 숫자의 가설들 중 드래곤이 빠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만큼 전설 속의 존재라는 반증이었으며 마법사가 되어 드래곤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 하여 종합한 드래곤에 대한 정보는 다음과 같았다.

- 대단히 긴 수명을 가지고 있다.

- 마법의 종주로서 인간과는 격을 달리하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 온 몸이 단단한 비늘로 뒤덮여 있으며 세상 그 어떤 광물보다 뛰어난 방어력을 가지고 있다.

- 드래곤의 심장은 엄청난 양의 마력을 품고 있으며 흡수할 수 있다면 엄청난 마력을 얻을 수 있다.

- 입을 통해 내뿜는 브레스는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파괴력을 가지도 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정보들이 있었지만 대표적인 것들만 나열하자면 이러했다.

“이 짓에 의미가 있는 거 맞아?”

물론 그에 대한 근거는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 어디서 누군가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전설 속의 이야기와 드래곤의 아종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들의 특징을 진화시킨 것뿐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것보다는 낫겠죠.”

“글쎄,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 같은 건 몇 명이 가든 반항 한 번 못해보고 죽을 텐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는 한 편 나 또한 한 마법사의 말처럼 드래곤을 마주했을 때, 반항이라도 해보기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준비라고 해봤자 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았지만. 가장 공을 들인 건 역시 무기였다. 반항이라는 건 최소한 상대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때 성립하는 단어였으니까.

용살(龍殺).

최근 숙련도가 늘어난 덕분인지 한 단어를 한 번에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으로 끊어서 각인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기존의 각인보다 두 배 많은 마력을 쏟아 부을 수 있었고 더 강한 파괴력을 뿜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경지가 4서클에 불과하기에 6서클을 뛰어 넘었다고 말할 수는 어려웠지만 후하게 쳐서 반 단계 높아졌다고는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정도로 전설상에서 나오는 드래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단어가 내포한 뜻이 뜻이니만큼 시너지의 힘으로 최소한 상처를 입힐 수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끝에 마탄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사실 내가 조사대에 합류하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뭣하지만 스콜피온, 지도 등등에 있어 나는 빠질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물론 한 번 새겨둔 각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나 각인이 사라지지 않는다 뿐이지 그 바탕이 되는 발리스타는 원재료가 나무인 만큼 언제 부셔져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내가 비명횡사라도 한다면 생산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그럼에도 내가 조사대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역으로 지도의 제작자이기 때문이었다. 로랑의 경우와 같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리고 유일한 원본의 사용자로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명심하게. 자네들의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다는 것을. 조사를 진행하는데 있어 결코 무리하지 말도록. 알겠나?”

“꼭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사대는 소수 정예로 꾸려졌다. 많은 숫자가 가봤자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 뿐이며 빠른 이동에 있어 발목만 잡을 뿐이었다. 은밀하게, 재빠르게, 안전하게가 이번 조사의 핵심인 만큼 조사대의 인원이 많을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제 1,2 기사단장인 우노스와 두오 외에도 여섯 명의 베테랑 기사들이 포함되었으며 일드와 보토, 나와 로랑까지 총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조사대는 테라 방벽을 떠나 몬스터의 대지로 향했다. 전설 속의 그리고 로랑의 눈앞에 나타났다는 드래곤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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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하네요.”

“아직 겨울이 채 가시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이미 제국 중부만 하더라도 봄이 지나고 있어. 더 이상 조사를 미룰 수는 없는 일이지.”

당연한 말이었지만 몬스터의 대지에는 아직도 봄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행히 눈이 녹을 만큼의 날씨는 되었으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먼, 위습의 말처럼 봄이라고 하기에는 2% 부족한 날씨였다.

질척질척-

그런 탓에 땅 상태도 결코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물론 이 정도에 영향을 받을 만한 사람은 이 중 없었으나 기분 상의 문제라는 건 결코 무시할만한 요소는 아니었으니까.

“그나저나 정말로 드래곤이 실존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질문일지도 몰랐다. 물론 조사대를 파견하는 이유가 로랑의 말의 진위여부, 즉 드래곤의 실존여부를 파악하는 일이긴 했지만 모두들 그 과정에서 일어날 일을 생각할 뿐, 그 뒤를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까.

“어떻게 하냐니, 우리들에게 그런 것을 판단할 자격은 없다. 사실을 보고한 뒤, 위에서 내려올 명령에 따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지.”

우노스로서는 말할 수 있는 정론이었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전의 이야기이다. 드래곤을 발견은 했으나 아직 테라 방벽으로 귀환하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 로랑의 말에 따르면 그 드래곤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이를 용서하지 않았다. 스스로 움직이지 않아 로랑이 살아 돌아올 수 있었으나 그 의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맞서 싸우실 겁니까?”

“최선은 모두 무사히 퇴각하는 것이지만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면 싸워야겠지. 물론 드래곤에 대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반절정도만 사실이라도 우리들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겠지만······. 누군가가 도망쳐 테라 방벽에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지도 모르지.”

만약 드래곤이 실존한다면 과연 그 강함은 전설에 버금갈 것인가, 아니면 아종이라 알려진 몬스터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일 것인가.

만약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로도 드래곤의 강함을 나타내는 것이 부족하다면 혹은 그에 버금간다면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로랑 일행에게 말을 걸어왔다면 인간 이상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인데 대화가 가능할 것인가 등등 이번 조사에서 알아가야 할 점들이 너무나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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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는 쉽지 않았다. 일단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었으니까. 유일한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로랑의 지도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손상이 심해 결국 복구 불가 판정을 받아 파기되었다.

그런 탓에 의지할 수 있는 정보는 로랑의 기억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점이 몸은 다 회복되었다지만 한 팔을 잃은 탓에 제대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로랑이 조사대에 이름을 올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억에 의존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몬스터의 대지 특성상 이정표로 삼을만한 지형이 없다시피 했고 겨울의 혹독함이 지나가고 난 탓에 로랑이 있었던 당시와는 모든 것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들은 대략적인 방향과 평균적인 이동 속도와 이 곳에서 보낸 시간 등을 계산하며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뭐 좀 보이나?”

“······아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평범한 몬스터들의 마력 반응 외에 특별한 반응은 없습니다.”

“조금 더 이동해야겠군.”

이동 후 지도 확인, 이동 후 지도 확인이라는 지루한 반복 작업이 계속되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탐색해야 할 곳은 많고 조사할 수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것에 비례해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로랑을 향한 눈초리도 점점 변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것에 비례해 로랑이 느끼는 초조함도 늘어날 뿐이었고. 결국 짧은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와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우리들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조사할 만큼은 충분히 했다. 앞으로 삼일, 삼일 뒤까지 아무런 특이 사항이 없다면 테라 방벽으로 돌아가겠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부탁드립니다!”

“거절한다. 이미 네 기억을 따라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네 욕심에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우노스와 두오, 일드와 보토는 회의를 거쳐 조사의 종결을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까지 이 곳에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대표적으로 우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에반의 경우도 있었고 소수 정예로 꾸린 만큼 중요 인물이 많이 속해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 점 때문에 로랑도 차마 조사를 더 하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우노스의 말처럼 로랑이 드래곤을 만났다는 지역 주변을 샅샅이 수색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충분히 많은 시간을 조사에 쏟아 부었음으로.

“조금 더 힘 내 볼게요.”

“······부탁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로서도 로랑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원론적인 위로의 말밖에는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위로가 위로로 끝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다. 이대로 돌아간다면 그가 어떠한 시선을 받게 될지 예상이 되었으니까.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로랑의 표정이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안쓰러워질 정도로 변했을 때, 지도에 특이점이 발생했다.

“뭐지?”

나에게는 두 가지 종류의 지도가 있었다. 오직 각인만을 이용해 제작한 지도(地圖)와 각인과 마법을 적절히 혼합한 지도2.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지도(地圖)는 지상, 지하에 상관없이 생명체, 비생명체의 마력 반응을 모두 표시하지만 마력 소모가 심하며 탐색 범위가 좁았고 지도2의 경우에는 마력 소모를 줄이고 범위를 넓힌 대신 오직 지상의 생명체 반응 밖에는 포착이 불가능했다. 간단히 2차원과 3차원의 차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의문을 표한 이유 또한 지도(地圖)에는 표시가 되는데 지도2에는 표시가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광물은 지도(地圖)에도 표시가 되지 않았다.

지도에 표시가 될 만큼의 마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즉 지금의 반응은 지하에 또 다른 마정석 광산이 있거나 마력을 품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마정석 광산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마력 반응이 점에 가까울 정도로 좁았으니.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대략 3km 정도니까······저기 보이는 작은 산에 있을 겁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잠시 회의를 거쳤다. 오늘이 조사를 끝마치고 테라 방벽으로 돌아가는 날이었기 때문에. 무사귀환이냐 아니면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특이점을 조사하느냐의 문제였다.

“후작 각하께서는 우리들에게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하셨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미 깊숙이 들어왔다. 이제 와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 봤자 무리라고 볼 수는 없겠지. 레닐, 앞장서라. 네가 발견한 특이점을 조사한 뒤, 테라 방벽으로 돌아간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9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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