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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37화 (37/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7화 - >

“몬스터가 복종을 했다니, 아니 그 전에 사람의 말을 하는 몬스터라고?!”

로랑의 말에 모두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유례가 없었던, 단지 테라 방벽 내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계 전체를 둘러봐도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종족이라면 이해를 하겠으나 사람의 말을 하는 몬스터라니, 지금껏 몬스터를 기껏해야 동물 수준의 지능을 가진, 본능에만 충실한 존재로만 보고 있었던 만큼 그의 말이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 모두가 그 말을 들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이제 저 밖에 없지만······분명합니다. 분명히 저희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자세히,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게!”

“그러니까······. 저희도 슬슬 테라 방벽을 향해 복귀를 하려던 때였습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로랑의 회상이 시작되었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로랑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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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가을 원정은 지금껏 내가 경험한 가을 원정이 맞나 싶을 정도야.”

“그러게 말입니다. 이걸 자네 동기가 만들었다고?”

“그렇습니다.”

“아직 스물도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정말 대단한 일을 했어.”

“이 정도만 되면 가을 원정이라도 할 만 하지.”

로랑 일행에서도 지도는 단연 화젯거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의 원정과 이번의 원정에서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지도’의 존재 유무였으니까. 사실 원정 중에 할 만한 대화는 많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좋은 화젯거리가 생겼으니 그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수밖에.

‘대단한 녀석이야.’

본인이 아닌 동기에 대한 칭찬이 이어졌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다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애초에 성격이 낙천적인 덕도 있었고 그가 보기에도 이 지도는 이런 평가를 받기에 충분한 물건이었던 덕이다.

덕분에 위기를 피한 적이 몇 번이었는지, 자신보다 뛰어난 이를 보면 질투하고 시기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도움을 받고서도 그런 생각이 이어진다는 건 애초에 인성이 잘못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우리도 그만 슬슬 돌아가자고. 이 정도면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 남아 몇 마리 더 잡는 것보다 전력을 온존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몬스터들의 대지를 순회하며 안전한 상황에서만 전투를 벌이던 것도 이제는 끝. 안전하다는 것에 고무된 나머지 평소보다 오래 머무른 것이 사실이었다. 지금까지는 각 무리들이 이 곳 저 곳에 퍼져 시선을 분산시켰다면 대부분이 철수한 이 때, 더 머무르는 것은 자충수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퇴각 경로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 하게.”

단순히 전투 전 주변을 살펴보는 것 이외에도 이동 경로를 짜거나 휴식처를 찾는 일 등등 지도의 유용성은 열 손가락을 세도 부족했다.

그렇게 수많은 유용성을 활용하기 위해 로랑은 다시 한 번 그의 마력을 지도에 쏟아 부었다. 거의 한계까지 몰아붙였지만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더 이상의 전투는 없을 것이며 정 위급한 상황이라면 기사들 중 한 명이 그를 업고 달리면 충분할 것이기에. 그렇게 수 km가 넘는 범위를 탐색했을 때, 로랑은 두 눈을 비볐다.

“이, 이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잠시 이것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래 전, 레닐이 마정석 광산을 발견했을 때처럼 막대한 마력 반응이 지도에 나타나고 있었다. 거리상으로 평야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꽤나 먼 거리에 있었지만 지금껏 지도가 오작동을 일으킨 적이 없는 만큼 서북쪽 방향에 무언가 있으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뭐야, 왜 이렇게 짙어?”

로랑의 말을 따라 지도를 살펴본 기사들이 당혹감 섞인 의문을 내뱉을 정도로 지도에 표시된 마력 반응은 짙고 넓었다. 정확히는 미세한 한 점만 검은색에 가까울 정도로 짙었고 나머지는 옅게 넓은 편이었지만, 그것도 짙은 점에 비해 옅을 뿐 충분히 짙다고 볼 수 있었다.

“지난번처럼 땅속에 뭐라도 묻혀있는 거 아니야?”

과거 레닐과 함께 정찰을 나갔다가 마정석 광산을 발견했던 한 기사가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에 로랑은 잠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이번에 들고 온 지도는 그 때와는 다르게 마력 소모를 줄이는 대신 생명체의 마력 반응만을 탐지하도록 개량이 되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이게 다 몬스터라고?!”

서북쪽을 메우고 있는 푸른 점들, 아니 점들이 모여 하나의 면을 만들어내고 있었으며 지도에 표시가 되지 않았다 뿐이지 그 뒤로도 마력 반응이 있을 확률이 너무나 높았다. 그 결론에 모두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결단을 내릴 시기가 왔다. 애당초 목적대로 퇴각한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마력 반응이 발견된 곳은 그들을 기준으로 서북쪽에 있었고 그들의 목적지인 테라 방벽은 남쪽에 있었으니, 예정대로 퇴각한 뒤 보고를 올리면 다시 조사대를 파견하든 뭘 하든 할 것이다. 그러나 섣불리 퇴각하자고 하는 이는 없었다.

“마력 반응의 정체를 확인한 뒤, 테라 방벽으로 돌아간다. 이의 있는 사람 있나?”

하지만 그 때가 되면 늦는다. 아무리 빠르게 조사대를 파견한다고 하더라도 제 자리에 머물러 있을 확률은 턱없이 낮았다. 게다가 만약 저 마력반응의 목적지가 테라 방벽이라면?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가을 원정이었으니 결코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가시죠. 만약에 경우에는 쌔빠지게 도망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그 때가서 후퇴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아니면 땅 파고 며칠 죽은 듯이 숨어있으면 알아서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퇴각을 결정하긴 했지만 테라 방벽에 도착할 때까지 임무는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걸 잊지 않은 모습에 다들 작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저희들은 막대한 마력 반응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적어도 정체라도 파악해야 대책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정론이다. 가을 원정의 목적은 단순히 상위종의 숫자를 줄여놓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몬스터의 대지에서 일어나는 변수를 파악하는 것 또한 원정대의 임무 중 하나. 물론 그 결과가 이럴 줄 알았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테지만 그 누구도 미래를 알 수는 없는 법이었다.

“거기서 저희는 마주했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몬스터들을, 그리고 그 몬스터들이 한 존재에게 복종하는 모습을요. 거리가 멀어 제대로 된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존재감만으로도 모두가 얼어붙기에는 충분했습니다. 큰 뿔과 거대한 날개, 날카로운 비늘 등등······.”

로랑의 증언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모두의 표정이 점점 굳어만 갔다. 로랑이 무엇을 보고 묘사를 하고 있는지 대충 감이 잡혔기에.

“마치 전설상의 드래곤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아직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럽나보군. 며칠 푹 쉰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세.”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정신 착란이 온 것도 아니고,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합니다!”

고개를 저으며 로랑이 큰 부상을 입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 이들이 로랑의 이야기를 끊으려하자 로랑이 발끈한 듯 외쳤다. 저런 반응을 보면 딱히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지금까지 한 말이 믿기지 않는 수준의 말이었으니 어느 쪽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광경을 확인하자마자 저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발걸음을 뒤로 옮겼습니다. 한 눈에 봐도 수천마리가 넘는 숫자였으니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그 때, 저희는 끝까지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드래곤이 말을 걸어왔으니까요.”

이대로라면 자신이 말을 할 기회조차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로랑의 말이 갑자기 빨라졌다.

“아니, 말을 걸어온 것이 아닌 일방적인 포고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래곤은 저희들에게 자신의 영역을 침범했다며 분노했고 곧바로 몬스터들이 저희를 죽이기 위해 몰려들었으니까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옮기며 도망치던 저희들은 결정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이대로라면 모두 몬스터의 밥이 되고 말 테니까요.

누군가는 지금 본 광경을 테라 방벽에 전해야 한다. 그 누군가로 선택된 건 저였습니다. 땅을 파고 숨어들든 몸을 투명하게 만들든 몬스터의 눈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제 팔 한 쪽을 떠나보내야 했지만, 간신히 도주에 성공한 겁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마지막에 이르러 로랑의 말은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고난을 함께 했고 한 달의 시간동안 생사를 같이했다. 그런 동료를 제물로 바쳐 간신히 살아나 전한 정보가 단순히 자신의 헛소리로 취급된다는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

“알겠네. 자네가 무슨 심정으로 그리 말하는지 잘 알겠어. 하지만 진정부터 하는 것이 좋겠군.”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다. 환자의 덕목은 절대안정. 이렇게 흥분했다가는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터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드가 로랑을 잠재우고 나서야 환자답게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다들 이야기 좀 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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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이라니······. 애들도 아니고.”

“아무래도 팔이 잘린 것에 충격을 먹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테라 방벽의 주요인물이 모인 회의장. 그 곳은 로랑의 발언의 진실 유무를 두고 온갖 말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드래곤이라니, 어린 아이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동화에서부터 등장하는 유서 깊은 존재가 아닌가.

문제는 지금껏 실제로 그 존재가 발견된 적이 없다는 것. 드레이크와 와이번, 서펜트 등등이 드래곤의 아종이라고 취급받고 있지만 그 누구도 드래곤의 존재를 확인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인원들이 로랑의 말을 헛소리로 취급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동료들을 버리고 자기만 살아 돌아온 것이 부끄러워 거짓말을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니.

“딱히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네. 그 동안의 행적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하기도 했고, 만약 그가 동료들을 버린 것이라면 로랑의 품에서 다른 이들의 유품이 나올 리가 없지 않는가.”

“그러면 일드님께서는 드래곤이 있다고 믿으시는 겁니까?”

“적어도 자네의 말처럼 그가 일방적으로 동료들을 버린 것은 아니라는 말일세.”

지크 후작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그가 없었다면 꽤나 험한 말들이 오갔을 것이다. 사실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말임에는 분명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은 없나? 지도의 제작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도 좋다.”

나 또한 이 회의에 참석했다. 로랑이 막대한 마력 반응을 지도를 통해 확인했다고 증언했으니까.

“제가 확인했을 때, 지도는 이미 여러 가지로 틀어져 망가진 상태였습니다. 복구 작업에 힘쓰고는 있지만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흐음······.”

계속해서 이어지던 회의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다들 어렴풋이 깨달았기 때문에, 아무리 회의를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유의미한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터무니없는 말이지만 거짓말을 한다고 보기에도 어렵군.”

“각하.”

“그 자의 말이 단순히 거짓말이라면 상관없겠지만 진실이라면?”

지크 후작의 말이 맞았다. 거짓말이라면 큰 상관은 없었다. 애석한 말이지만 피해자들은 이미 죽었고 로랑이 개새끼가 될 뿐, 테라 방벽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로랑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몬스터들을 이끌고 있다면?

“만일의 경우라도 그냥 넘겨서는 안 되는 곳이 이 곳, 테라 방벽이다. 또 그러기 위한 가을 원정이 아니었나.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조사대를 보내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의 있나?”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7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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