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2화 - >
“광산 채굴에 대해 저희가 구상한 방식은 이렇습니다.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수립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막연히 이 방법이 가장 최선이라고 모두가 판단했을 뿐. 그런 내 말에 에반이 대답했다.
“평범한 채굴 방식으로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평범한 채굴 방식, 광산 개발지 주변에 성벽을 세워 방어하며 내부에서는 땅을 파고드는 것이 이 곳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전자가 문제입니까? 후자가 문제입니까?”
“단연 전자입니다.”
만약 마정석 광산의 위치가 몬스터들의 대지가 아니었다면 혹은 테라 방벽의 남쪽이었다면, 최소한 테라 방벽을 옆으로 둘러싼 산맥에 위치해있었다면 평범한 방식으로도 개발이 가능했으리라. 그러나 광산은 몬스터들의 대지에 있었으니 만약이라는 가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계속된 보고로 알고 계시겠지만 광산의 주변은 작은 언덕조차 없는 평야입니다. 이 곳 테라 방벽처럼 지형의 이점을 살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앞만 막아내면 되는 것이 아닌 사방에서 밀려드는 몬스터를 막아야 합니다. 초입이라 할 수 있는 테라 방벽조차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고작인 상황에서 그보다 더 내부에 위치한 광산을 지켜내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내 말에도 에반을 비롯한 마법사들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테라 방벽의 현실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 체험해보지 못했다면 내가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것을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한 번쯤 체험하신다면 이해가 가실 겁니다. 지금 이야기해봤자 공감하실 수 없을 테니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뒤에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마침 몬스터의 침입을 알리는 종이 세차게 울리기 시작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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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내가 테라 방벽에 도착했을 때,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까지는 약간의 여유가 있었다. 적색경보가 울렸었던 만큼 인근의 몬스터가 모조리 몰려들었었기에 새로운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약간의 간격이 생긴 덕이었다.
덕분에 아주 약간이나마 테라 방벽의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었으나 이번 년도는 달랐다. 근래에 큰 전투라고 불릴만한 규모의 전투가 없는 대신 꽤나 잦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 말을 곧 신병들이 적응할 시간도 없이 전투에 투입되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았다.
“빨리빨리 움직여! 첫 경험이라고 몬스터가 봐줄 것 같아!”
“은근슬쩍 뒤로 빠지려고 하는 새끼들은 내 손에 먼저 죽을 줄 알아라!”
“야! 제대로 안 해!”
솔직히 말해 지원군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편해졌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개인당 맡아야 할 구역은 좁아졌지만 동시에 넓어졌다. 첫 전투인 신입들이 최소한 세 자리, 많게는 네 자리를 가볍게 뛰어넘는 숫자의 전투를 치러낸 기존의 마법사들만큼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곳곳에서 실수가 속출했고 그것을 커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마법사들이 한 발자국 더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구역이 넓다 하더라도 온전히 정신을 집중할 수 있다면, 주변의 동료가 믿음직스러웠다면 덜 힘들었을 텐데, 언제 어디서 실수가 나올지 모르는 만큼 정신적으로는 이전보다 더욱 힘들었다.
펑-
“끄아악! 부, 불!”
“누가 아군을 공격해!”
“아, 아냐! 나는 몬스터한테······.”
“대가리는 장식으로 달고 있어! 이렇게 사람이 빽빽한 곳에서 폭발을 일으키다니, 그러고도 마법사라고 불리고 싶어!”
가관이다. 가관이야. 아무리 시간이 없었다지만 우리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았을 터, 그것이 단 하나도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온 적들과는 양도, 질도, 행동방식도 다를 테니까.
우리들이 고작 일 년 만에 백 번이 넘는 전투를 살아남은 베테랑이 된 것처럼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해결해주지 못하는 이들은? 쓰러져간 수많은 이들처럼 몬스터들의 한 끼 식사거리가 되고 말겠지.
“괜찮으십니까?”
“지금까지 제가 본 몬스터들을 통틀어도 오늘 본 몬스터의 숫자보다는 적을 것 같군요.”
“하하. 평생 보실 몬스터는 이 곳에 계시는 동안 전부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이 정도 규모는 평균 수준의 공격밖에는 안 됩니다.”
“평균이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에반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마탑주의 부관 역할을 맡고 있는 그가 공격 규모를 모르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단순히 서류상의 숫자와 실제로 마주하는 것에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예. 이르면 삼일에 한 번, 늦으면 오 일에 한 번 꼴로 이런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보다 작은 규모는 더 자주 발생하고요. 그래도 지원군의 첫 전투라고 적색경보를 울릴 정도로 몰려오지 않은 것이 다행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시작조차 불가능하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 같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단 한 번의 전투만으로도 그들을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몇 번의 전투가 더 벌어진다면 납득을 넘어 순응을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끝난 것 같습니다. 미뤄두었던 설명을 계속해도 되겠습니까?”
전투가 모두 끝난 뒤 이어진 나의 말에 에반이 할 수 있는 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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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번 전투에서 스콜피온은 그 위력을 뽐내지 못했다. 생각보다 위력이 부족하여 뽐낼 수 없었던 것이 아닌 뽐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면 완성이 되겠나?”
“쇠사슬이 언제 완성되느냐에 딸린 문제라 확답을 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발리스타의 크기는 거대하다. 가로로는 사람 세 명은 넉넉히 들어가며 세로는 그 몇 배는 된다. 테라 방벽이 넓다고 하나 발리스타를 방벽 위에 배치했다가는 수월한 병력 배치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방벽 위로 올리지 않는다면 효과적인 공격이 불가능했다. 그에 대한 대책은 간단했다.
공간이 없으면 공간을 만들면 될 일. 방벽 뒤쪽으로 도르래를 이용해 발리스타를 필요할 때, 오르고 내릴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
미리 만들어놓을 수도 있었으나 지금까지도 제작중인 이유는 결론부터 말해 물자 부족이었다. 일반적인 밧줄로는 발리스타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으니 쇠사슬이 필요했는데 철은 주요 자원으로서 요구하는 곳이 너무 많았기에, 대규모 지원이 오는 이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다.
“최대한 서두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 편, 나는 에반 일행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마저 설명하고 있었다.
“개발 예정지인 광산은 이 곳, 테라 방벽으로부터 대략 10km 정도 떨어진 평야에 위치해있습니다.”
10km. 말을 타고도 삼십 분은 걸리는 만큼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그러나 이 곳에서의 10km는 다른 지역에서의 10km와는 물리적인 거리는 똑같을지 몰라도 전혀 다른 거리라고 해도 무방했다.
“어림잡아 지름을 1km로만 잡아도 세 배가 넘는 길이의 성벽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광산으로부터 테라 방벽으로 향하는 길의 안전도 확보해야 하니 지켜야할 길이는 더욱 늘어나겠지요. 그렇지 않고서야 안정적인 채굴도, 채굴한 마정석을 손실 없이 이동시키는 것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상되는 길이만 10km를 넘어선다. 당장 테라 방벽의 방어만으로도 골골거리는 지금, 그 두 배에 달하는 길이를 지킬 방법은 단언컨대 없었다.
“다들 경험하셨다시피 몬스터의 대지는 끊임없이 몬스터를 뿜어내고 있습니다. 하루에 수천 마리,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죽여도 다음 날에 그 이상의 몬스터들이 몰려오죠. 아직까지 몬스터들의 대지는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 미지의 땅. 그 자체입니다.”
“서론은 그만하면 충분하니, 본론부터 이야기하지.”
“지상에선 답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했던 방법으로는 앞으로 최소 백 년 동안은 마정석의 털끝하나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지상에선?”
“테라 방벽부터 시작해 광산 예정지까지 도착하는 땅굴을, 동시에 예정지 근처에 지하 거점을 건설하는 것을 제안 드립니다.”
지상이 안 된다면 지하로 눈을 돌릴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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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명령을 받은 지크 후작은 말머리를 동쪽으로 돌렸다. 황제가 신하인 그를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를 했는데 명령을 불이행하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필시 그 아이가 한 일이겠지.’
얼마 전, 수도로 보냈던 전령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그와 동시에 언제나처럼 그의 딸이 보낸 편지 또한 가지고 돌아왔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몇 년 째 반복된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읽지 않고 서랍에 보관하려 했다. 전령으로 보낸 레닐의 말이 아니었다면.
[어머님께서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뵙고 싶어 한다.]
그 동안 의도적으로 편지를 읽지 않았다. 결심이 약해질까 봐.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했지만 수만 명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이기도 했으니까.
그의 부하들은 가족들의 품이 그리워도, 가족들이 안위가 걱정되어도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최고 책임자인 그가 가족이 걱정된다 하여 자리를 이탈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일은 그의 사고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이라······.”
천천히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편지의 내용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답장 한 번 없는 그에 대한 원망으로 시작해 영지의 상황과 가족들의 안부,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위독하니 편지를 읽게 된다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영지로 돌아와 달라는 말로 마무리를 지었다.
“후우.”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맡겼다. 이래서 편지를 읽기 싫었다. 고향이 생각나니까, 가족들이 걱정되니까. 그라고 왜 고향이 그립지 않고 가족들이 걱정되지 않겠는가.
다만 사적인 일보다 공적인 일을 우선순위에 놓았을 뿐이었다. 그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마 백 번을 회귀해도 백 번 모두 똑같은 결정을 했을 것이다. 다만 이런 남편을, 이런 아버지를 둔 가족들에게 미안할 뿐, 그렇다고 설마 황제와 이야기하여 그를 불러올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각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눈을 뜨고 과거로부터 빠져나오자 부하의 말처럼 낯익은 동시에 낯선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근 십 년 만의 귀환이었으니 수십 년을 보내온 고향이더라도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은 것은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높게 걸려있는 깃발. 한 자루의 검이 아름답게 수놓아져진 깃발만큼은 십 년 전 이 곳을 떠날 때나, 지금 돌아왔을 때나 똑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돌아왔구나.”
누구의 의도에 의한 귀환이었건 간에 십 년 만에 가장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32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