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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8화 (18/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8화 - >

“······그 공을 높이 사, 드라그닐 남작을 자작으로 승작하며 향후 이십 년 간 채굴량의 일 할을 하사한다. 더불어 레닐 드라그닐에게는 세 달 간의 휴가를 내릴 테니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

황제의 명령서가 테라 방벽에 당도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명령의 내용을 지크 후작을 통해 알게 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화를 곱씹었다.

‘호방한 척은 다 하면서 이런 짓거리를······!’

속 좁은 황제였다면 당장 손발이 꽁꽁 묶여 수도로 압송당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에게 떨어진 처벌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는 자작으로 승작되었으며 초기의 목표였던 마정석을 테라 방벽으로 끌어오는 것까지,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세 달 간의 휴가까지. 집에 다녀오려면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버리는 시간은 있겠지만 집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문제는 향후 이십 년 간 채굴량의 일 할을 하사한다는 내용이었다.

표면적으로만 보자면 광산을 발견한 공에 대해 큰 상을 내렸다고 볼 수도 있었다. 광산이 발견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몬스터들의 대지였으며 그 곳을 개발하는 과정에 있어 초기에는 이득보다는 손해가 더 크리라. 그런 상황에서 개발에 참여하지도 않는 드라그닐 남작가, 아니 이제는 자작가에 일 할이나 되는 마정석을 준다는 것은 통 큰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 가문에 힘이 있었다면 말이다. 지킬 수 없는 보물은 보물이 아닌 독이 되는 법. 드라그닐 가문에게 있어 일 할의 마정석은 가문을 높은 곳으로 보내줄 보물보다는 가문을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독에 가까웠다.

“황제 폐하의 은혜가 하늘과 같습니다.”

채굴량의 일 할. 내가 파악한 광산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제대로 궤도에만 오른다면 매년 일 할의 양만으로도 어지간한 영지의 일 년 세금은 가볍게 내려다볼 수 있을 만큼. 그걸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면야 영지의 사정을 한 차원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만 제국의 중심지도 아닌 지방. 특별한 특징조차 없이 평균보다도 못한 남작가의 영지에 그런 보물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을 리가 없잖은가.

물론 황제의 하사품이니만큼 대놓고 빼앗지는 못하겠지만 눈 가리고 아웅 할 수 있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다만 조금 귀찮을 뿐, 그 말은 곧 귀찮음을 감수하고서라도 얻을만한 가치가 있다면 얼마든지 눈을 가릴 수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결국 그런 상황에서 우리 가문이, 내가 붙잡을 수밖에 없는 줄은 황제 밖에는 없었다.

황제가 눈을 부라리고 있으면 아무리 탐이 나더라도 제대로 된 명분 없이는 영지를 건들 생각을 하지 못 할 테니까. 결국 일 할의 마정석은 목줄이었다. 허튼 생각하지 말고 황제 본인에게 충성하라는, 그렇지 않으면 이리저리 휘둘리며 엉망이 되어가는 가문을 보게 될 거라는 경고가 적혀있는 목줄.

‘어차피 제국을 배신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가족들이 걱정될 뿐. 부디 잘 대처하셨으면 좋겠는데.’

이런 말을 하기에는 조금 그렇지만 부모님은 딱히 경영에 재능이 있으신 분들은 아니었다. 그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대로 살아가시는 분들이었지. 이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분명히 난리를 피울 텐데 잘 대처하실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그나마 형은 기사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이런 사태에 경험이 없는 것은 피차 매한가지였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여 제국에 충성할 수 있도록. 이상.”

“충성을 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걸 표현할 수는 없었다. 내 앞에는 황제의 충실한 신하인 지크 후작이 있으니까. 만약 내가 마음속으로 하고 있는 생각을 지크 후작이 알아차린다면 이번에야 말로 머리와 몸이 분리되지 않을까.

“황제 폐하께서 바다보다도 넓은 마음을 가진 것에 감사해라. 네 말이 조금이라도 황제 폐하의 심기에 거슬렸다면 상은커녕 큰 벌을 받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

“제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황제의 명령서에는 나에 대한 포상뿐만이 아니라 광산으로부터 채굴한 마정석을 테라 방벽의 방위를 위해 일정량을 분배하겠다는 내용 또한 적혀있었다. 그 말은 곧 지크 후작이 마정석의 처분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는 소리였다. 광산의 개발이 시작되지도 않은 지금, 느닷없이 황제가 마정석의 용도부터 결정할 리는 없었으니까.

“네 녀석의 부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아니었더라도 황제 폐하께서는 분명히 테라 방벽을 위하여 무슨 조취를 취하셨을 테지. 아무튼 지금 떠날 생각이냐?”

그러나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마정석이 아니었다. 황제에게서 광산을 개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하나 이전처럼 게릴라식으로 하나씩 캐는 수준이 아닌 광산 개발이 일정 궤도에 오르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터. 그보다는 예상하지 못했던 삼 개월 간의 장기 휴가가 더욱 중요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나중으로 미뤄두겠습니다.”

그러나 미뤄두었다. 아직은 내가 이 곳에서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더불어 지금 당장 집에 가봤자 할 일도 없었다.

가봤자 온갖 사람들에게 시달릴 뿐이겠지. 사지에서 돌아온 아들을 보는 부모님은 무척이나 기뻐하시겠지만, 향후 집에 돌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휴가를 지금 쓰지 않고 미뤄두더라도 하늘로 날려 보내는 일은 없을 거라는 강한 예감 또한 이 같은 결정에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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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석 광산의 발견, 그리고 개발 소식은 테라 방벽 내의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마정석 채굴에 필요한 인원들은 내륙에서 데려온다고 하더라도 광산을 지킬 병력은 결국 테라 방벽에서 차출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에 따른 지원이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추가적인 지원일 뿐이니까.

그에 따른 반응은 두 가지였다. 먼저 대다수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병사들에게는 이보다 좋지 않은 소식이 없었다.

위로부터 떨어진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불평불만을 가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마정석이 수급된다면 몬스터를 막아내는 일이 쉬어질 것이라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당장 테라 방벽을 벗어나 몬스터를 막아내야 한다는 현실이었으니까.

그러나 테라 방벽의 사람들 중 극소수인 마법사들은 두 팔을 벌리고 환영했다. 일단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었으니까. 앞으로 할 일이 더욱 많아질 것이고, 목숨의 위협도 높아지겠지만 어차피 목숨이야 테라 방벽으로 온 이상 내놓은 것이나 다름없었으며 테라 방벽의 방위를 위해 마정석을 사용해도 좋다는 황제의 말이 떨어진 만큼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방벽에 그리스 마법을 둘러치는 건 어떨까? 평소에는 마정석을 빼놓고 있다가 몬스터들이 쳐들어올 때만 마정석을 끼워서 마법을 활성화시키면 괜찮을 것 같은데.”

“괜찮기는! 방벽이 얼마나 긴데 전부 그리스를 둘러쳐?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되면 수요를 맞출 수는 있겠지만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지. 여유가 있을 때일수록 아껴 사용해야 하는 법! 그런 짓거리는 낭비라고. 낭비!”

“그럼 네 생각은 뭔데?”

“마법하면 역시 화력이지. 대형 공격 마법진을 구축해서 몬스터가 쳐들어올 때마다 일거에 소거시켜버리면······!”

“에라이!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그럴 역량은 되고? 아무리 마정석을 보조로 돌려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만약 그러다가 실수라도 해서 피드백이 발생하면?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한순간의 실수로 죄다 죽어나가는 꼴을 보고 싶어?”

덕분에 마법사들간의 교류는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각자 한 번쯤은 생각해봤었던, 그러나 현실성의 부재로 금방 잊었던 상상들을 일단 꺼내고 보았으니까.

나 또한 한순간의 불편함을 뒤로 한 채, 이 토론에 빠져들었다. 이 사태의 주범으로서 당분간 더 많은 희생이 따를 수밖에 없는 병사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발견한 광산이 사라지지도 않았고 사람들의 기억이 변하지도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마정석을 효율적으로 쓸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그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이리라.

“병사들을 대신할 소형 골렘을 방벽 위로 올리는 건 어떨까요?”

“골렘을? 안 돼. 골렘은 간단한 동작밖에는 하지 못해. 방벽 위에 올리기에는 몬스터들이 만들어내는 변수가 너무 많아.”

“그런 식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아직 광산 개발은 첫 발도 떼지 못했지만 마법사들간의 토론은 날이 갈수록 열을 더해갔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주변에서는 안 좋은 시선을 쏘아 보냈고 그 벌이었을까.

이어진 황색경보에서는 근래에 유례없는 숫자의 마법사들이 죽거나 다쳤다. 머릿속에 딴 생각이 가득해 전투에 집중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다시 한 번 본인들의 코에 동료의 피냄새가 흘러들어오자 그제야 희희낙락했던 이들도 광산을 찾았건, 개발이 예정되었건 현재로서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제대로 전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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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그래서 지금 두 눈 뜨고 지켜보고만 있자는 건가! 그렇게 사사건건 반대만 할 거라면 대안을 내놓으라고. 대안!”

“누가 두 눈 뜨고 지켜보자고 했소?! 그런 저급한 방법으로는 황제의 눈 하나 깜짝하게 만들 수 없다고 했지. 도대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 따위 저급한 방법을 아직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있나?”

“저, 저급한? 오냐. 그럼 네 고급스러운 방법은 뭔지 들어나 보자. 설마 대안도 없이 그 따위 망발을 지껄이는 건 아니겠지?”

“그걸 생각하기 위해 이 자리가 만들어진 것 아닌가! 자기 의견이 틀렸다고 남을 윽박지르는 꼴이라니, 나이는 먹을대로 먹어서는 고집만 늘었군!”

제국의 수도에는 황궁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정한 이들에게는 황궁보다도 더 유명한 건물이 하나 있었으니 마법사들의 성지라고도 할 수 있는 마탑이 그랬다. 그 마탑의 최상층부, 마탑의 머리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여 격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모두 예의를 지켜주십시오. 탑주님께서 듣고 계십니다.”

“크흠!”

“으음.”

그나마 이들 중에서 젊은 마법사가 탑주의 존재를 꺼내들며 중재에 나서고 나서야 서로를 향한 비난이 일단은 잦아들었다. 이들이 이렇게 격한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번에 새롭게 발견된 마정석 광산. 마탑으로서는 반드시 끼어들어야 할 문제에 정작 끼어들기가 애매하다는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핵심이 뭐야.”

“저희가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없기는 왜 없나! 광산을 발견한 자가 마탑 소속의 마법사인데, 당연히 마탑의 성과지!”

“테라 방벽에서 복무 중인 마법사입니다. 게다가 작전 도중에 발견한 탓에 황제가 쉽사리 양보하지 않을 겁니다.”

“도대체 원더, 그 작자는 뭘 하고 있었기에 이런 중요한 사실을 우리보다 황제가 먼저 알도록 내버려뒀냐는 말이야!”

끄덕끄덕-

한 장로의 외침에 회의실의 대다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더로서도 억울한 면은 없잖아 있었으나 - 미리 알리려 했지만 지크 후작의 감시로 실패했다 - 아쉽게도 그를 대변해 줄 사람은 이 곳에 없었다.

“대책은.”

“광산을 개발하는데 있어 저희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대한 지분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또한 광산을 발견한 마법사, 레닐의 가문에 채굴량의 일 할을 하사한다는 황제의 명이 있었습니다.”

“일 할!”

“반드시 우리가 가져와야겠군.”

“전량을 가져올 수 있도록 협상을 해보겠습니다.”

“내가 가지. 기껏 해봐야 한미한 영지. 마탑의 이름을 내세우면 제까짓 게 버틸 수 있겠나!”

“쯧쯧. 무식하기는.”

“무, 무식?!”

“말 못 들었나? 황제의 하사품이야. 하사품! 그걸 마탑의 이름을 내세워 강제로 빼앗으려 하면 그 황제가 잘도 보고만 있겠군! 나중이라면 모를까. 황제의 관심이 쏟아지는 이 때, 그런 짓거리를 하려 하다니, 자네 제정신인가?”

쿵-

“에반.”

“예. 탑주님.”

“자네가 다녀와. 다른 이들은 보내봤자 괜한 충돌이나 일으킬 것 같아 믿고 맡길 수가 없군.”

마탑주의 노골적인 언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 큰소리치던 장로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들이 언제 이런 말을 들어봤겠는가. 그러나 마탑의 장로들이라 하더라도 탑주 앞에서는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사이 탑주로부터 명을 받은, 방금 전까지 회의를 진행하고 장로들의 싸움을 중재하던 마법사, 에반이 탑주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좋아. 중요한 건 결과니까. 노력이야 어쨌든 결과를 가져와. 알았나?”

“······예. 믿고 맡겨 주신만큼 결과를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8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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