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6화 - >
이걸 내가 혼자 전부 소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나 혼자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크고 맛있는 음식임과 동시에 사람 한 명? 크게는 나라 하나 정도는 죽일 수 있는 극독이 숨겨져 있었으니까. 나에게 황제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지 않는 한 혼자 먹어치우기에는 무리였으리라.
그래서 한 치의 미련도 없이 다른 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 입도 못 먹을 바에야 모두에게 알려 전부는 아니더라도 두 입, 세 입이라도 먹기 위해서.
‘가만, 그런데 이거 계산이 꽤 복잡해지겠는데?’
제국의 모든 것들은 황제의 소유이다. 현대에서나 정착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 왕이 존재하는 군주제이기 때문이었다.
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귀족들에게는 헐건 그물과도 같았다. 해당 영지에서만큼은 영주들에게 사법권, 군사권, 경제권을 주다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황제에게 모두가 복종하는 것은 세 자루 검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군사력이 있기 때문이었고. 아무튼 마정석 광산의 계산이 복잡해지는 이유는 하나였다.
이 곳은 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것.
공식적으로 몬스터들의 대지는 주인이 없는 공백지다. 맞닿아 있는 나라가 제국밖에는 없었으며 더 북쪽으로는 바다가 있을 뿐이니 실질적으로 제국의 영토라 보아도 무방하겠지만 ‘공식적’으로 제국의 영토가 아니라는 점이 중요했다.
제국의 영토가 아니니 황제의 직할령도, 영주의 영지도 아니다. 발견자와 함께 지분을 주장할 수 있는 황제와 영주가 나가리 된 것이다. 어차피 황제야 무서운 것이 없으니 끼어들 것이고, 끼어줄 수밖에 없겠지만. 게다가 황제의 도움 없이 몬스터들의 대지 한복판에 있는 지하 광산을 어떻게 개발한단 말인가?
거기에 마탑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끼어들려고 할 것이다. 더불어 돈 좀 만져보고 싶은 수많은 단체, 인간들이 몰려올 것이고. 어떻게든 한 몫 챙기기 위해서. 그나마 다행인 점은 테라 방벽은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의외로 간단해질 지도 모르고. 쯧. 이런 쪽으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고.’
불과 일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흔하디흔한 3서클의 마법사에 불과했다. 미래에 형을 도우며 대대로 조상들이 경영해온 영지에서 일생을 살 생각이던 평범한 귀족A였고. 일단 폭탄을 터트렸으니 수습을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수습이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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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이 복귀한 뒤, 마정석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한 지크 후작에게서 함구령이 떨어졌다. 황제의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마정석 광산의 존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 그래봤자 원더는 마탑에 알릴 생각이 가득한 것 같았지만. 광산의 발견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공으로 만들고 싶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해보였다.
“모두들 내 말을 명심하도록. 새어나간 사실이 내 귀에 들려온다면 반드시 발설한 이를 찾아내 항명의 죄를 물을 것이다.”
그러면서 원더를 쳐다보는데 마치 기회만 되면 단번에 잡아먹을 듯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원더도 한 발자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 물러가 제 할 일 하도록 하고, 레닐. 자네는 잠시 남도록.”
끼익- 쿵-
“앉게. 짧은 이야기는 아닐 것 같으니.”
자리에 앉아 지크 후작이 건네준 차를 마셨다. 과연 제국의 후작이 마시는 차라서 그런지, 내가 마시는 차와는 향부터가 틀렸다.
“우선 고생했네. 자네가 아니었다면 이 마정석들은 수 년, 혹은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 넘도록 땅에만 묻혀있었겠지. 자네 덕분에 제국은 또 한 차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어.”
“과찬이십니다.”
설마 칭찬 몇 마디하고 넘어갈 생각은 아니겠지?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정석 광산을 폭파시켜버리리라. 마력의 양이 양이니만큼 테라 방벽까지 폭발 범위가 닿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나도 죽음을 각오해야······? 그런 위험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 지크 후작의 말이 이어졌다.
“그 말을 들었던 날로부터 몇 개월이 흘렀지. 그 사이 조용하기에 의기는 좋지만 역시 아직 능력은 부족한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건을 터트리다니,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자네 뜻처럼 되겠군. 저걸 개발하기 위해서라도 지원이 늘어날 테니까. 아니, 오히려 피해가 커지려나? 안정적으로 개발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광산 주변으로 몬스터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하고 그 말은 곧 테라 방벽을 벗어나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니까 말이야.”
“이번 기회에 몬스터의 대지를 깡그리 청소하는 것도 미래안적인 시선으로는 피해를 줄이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손해일 수 있다. 단기간 내에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받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이득일 것이다.
영토도 늘어날 것이며 이번 마정석 광산과 같이 예상치 못한 선물이 있을 수 있다. 산더미처럼 커지던 스노우볼도 멈출 것이다.
테라 방벽의 방어를 위해 들어가는 물자와 인력을 일시불로 결제한다고 생각한다면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제국에게는 그 정도의 여력이 있었다.
“허황된 소리로군. 정말로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보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가능한 일도 아니지.”
지크 후작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어쩌면 그는 화를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처럼 자칫 잘못하면 더 큰 피해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그가 가장 혐오하는 돈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일이 될 테니까.
“황제 폐하께서 모든 힘을 쥐고 계신다면 네 말처럼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그조차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제국은 대륙의 패권을 쥐고 있으나 동시에 패권을 노리는 적들로부터 노려지고 있다.
서쪽, 동쪽, 남쪽 모든 방면에서. 북쪽을 정리하고자 한다면 한동안 제국의 모든 힘을 쏟아 부어야 할 텐데, 그 때 등을 보인 제국이 얼마나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일지 생각해봤느냐?”
인간의 적은 몬스터만이 아니었다. 국적이 다른 인간들끼리는 언제든지 적이 될 수 있으니까. 게다가 황제라고는 하나 홀로 제국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는 귀족들도 따라줘야 한다는 뜻. 과연 막대한 손해가 뻔할 북부 원정에 귀족들이 얼마나 지원을 보낼 것인가.
이번에 마정석 광산이 발견되었으니 또 어딘가에 잠들어있을 자원에 모두들 침을 흘리긴 하겠지만 섣불리 병력을 투자하기에는 머뭇거려질 것이다.
불확실한 투자보다는 투자비용을 대느라 약해진 적을 합병하는 쪽이 이득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 땅이 넓은 만큼 사람도 많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뜻을 하나로 합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입니다. 광산을 개발 여부에서부터 몬스터들의 대지를 정리하는 것까지. 한낱 신하에 불과한 제가 떠든다하여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네 말이 맞다. 모든 건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실 일. 주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그러니 후작 각하께서 황제 폐하를 설득해주십시오.”
“설득?”
나는 떠들어봤자지만 지크 후작은 이야기가 다르다. 그는 제국의 세 자루 검이니까. 황제라 하더라도 지크 후작의 말을 섣불리 무시할 수는 없을 터.
“확실히 각하의 말씀대로 광산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광산으로부터 채굴되는 마정석 중 일부를 테라 방벽의 방어를 위한 용도로 돌릴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는 피해를 줄이는 길이 될 것입니다.”
“흐음.”
지크 후작은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는지 턱을 매만졌다.
“하지만 무엇으로? 네가 말한 방법은 결국 아랫돌을 빼 윗돌에 괴는 꼴이지 않느냐. 그보다는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텐데?”
“그 때는 제 이름을 파십시오.”
“······뭐라고?”
내 말에 지크 후작이 잘못 들었다는 듯 되물었다. 그리고 지크 후작의 반응은 당연했다. 열이면 열, 백이면 백. 내 대답에 대한 반응은 저럴 수밖에 없었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는 제국의 황제를 상대로 고작해야 4서클의 마법사의 이름을 팔라니, 제정신이 아니라는 정도로 끝난다면 다행이고 더 나아가서는 역심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도 들을 수 있으리라.
“네 놈, 지금 네 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내뱉는 것이냐?”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천재라고 떠받들어주니 네 놈이 뭐라도 된 것 같으냐? 그 동안의 공을 봐서 지금까지 한 말은 못 들은 것으로 해주겠다. 썩 나가거라.”
지크 후작으로부터 쏘아지는 기세가 살벌하다. 정신이 약한 이들이었다면 기세만으로 기절을 했을 만큼. 여기서 조금만 입을 잘못 놀려도 지크 후작의 허리춤에 메여있는 검이 내 목을 잘라 내리라는 두려움이 치솟았다. 그러나 지금 두려움에 빠져 물러난다면 손해를 감수하고 한 발자국 내딛은 보람은 영원히 찾을 수 없었다.
냉정(冷靜)해야 한다. 침착(沈着)해야 한다. 진정(鎭靜)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하얗게 물들었던 머릿속으로 미리 그려놓았던 대본이 다시금 떠오르기 시작했다.
“후작 각하. 마정석 광산을 찾아낸 것은 접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 녀석이 제 발로 이 곳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광산을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마정석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아무도 찾지 못했던 광산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겁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지크 후작이 검을 뽑아들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지도. 그가 주먹을 뻗기만 해도 내 머리는 수박마냥 터져나갈 테니까. 하지만 어쨌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즉 저는 또 다른 광산을 찾아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마정석이 될 수도, 미스릴이 될 수도, 금이, 은이, 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황제 폐하께서 테라 방벽으로부터 단물만 빼 드신다면 저는 영원히 다음 광산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빛과도 같았다. 순간적으로 내 목이 공중을 유영하는 상상까지 들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고 다리가 풀려버리려는 것을 간신히 다잡자 검을 타고 흘러내리는 핏방울과 어느새 검을 뽑아들어 내 목에 대고 있는 지크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네 놈, 감히 황제 폐하를 상대로 거래를 하겠다는 뜻이냐! 불충한 자 같으니라고. 너 같은 녀석은 능력이 있더라도 제국에는 필요가 없다!”
방금 전은 장난이었다는 듯 기세가 장난이 아니다. 지진이라도 난 것 마냥 방이 흔들리는 것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리라. 몸에서는 끊임없이 경종을 울렸다. 목숨이 위험하니 빨리 도망치라고. 몸의 경고가 옳다. 이제부터는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죽는다.
“충성은 결코 한쪽으로만 흘러서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신하가 공을 세웠으면 그에 합당한 상을 내리는 것이 군주의 도리. 또한 그 상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득이 아닌 제국의 이익이 될 테니 어찌 불충이라 하십니까.”
“혓바닥에 기름칠이라도 한 것 마냥 잘도 굴러가는구나.”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해 광산을 개발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황제 폐하께 감언이설을 할 것이나 황제 폐하께서는 결코 그리하셔서는 안 됩니다. 그깟 재물이 아니라 제국의 백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누군가는 간언해야 합니다. 후작 각하께서 황제 폐하의 참된 신하라면 제 말이 아니더라도 응당 그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 말을 끝으로 방에는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내 말에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에 달려있을 뿐. 내 목에 닿아있는 검이 언제든지 내 목을 날려버릴 준비를 한 채,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
“제국을 위한 일입니다. 또한 제가 제국을 위해 땀을 흘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6화 -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