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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1화 (1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1화 - >

얼마나 깊숙이 검이 파고들었는지 바실리스크의 등 위로는 칼자루밖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실리스크가 제 아무리 거대하다한들 등에 1m에 가까운 길이의 검이 박혔으니 지금까지처럼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었다.

등이 가려운 데 등에 손이 닿지 않아 몸을 비트는 것처럼 바실리스크도 등에 달라붙은 기사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사들은 갈대는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처럼 칼자루를 붙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한이 있더라도 등으로부터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자 처음의 목적과는 다르게 등의 상처만 더욱 커지고 있었다.

부욱-

결국 다시 한 번 독연을 뿜어내는 바실리스크.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물러났던 지난번과는 다르게 그들은 숨을 참으며 등 뒤에서 버텨냈다. 한 번 발을 뒤로 빼면 지금과 같은 기회를 붙잡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덕분에 나와 일드가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독연도 날려 보내야 했고 도주하려는 바실리스크의 발도 붙잡아야 했다.

추욱-

시간이 지나자 제 풀에 나가떨어지는 바실리스크. 한 눈에 봐도 격한 움직임이 줄어들고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이었다. 투우사를 쫓다가 지친 소처럼 점점 죽어가는 바실리스크. 그 최후가 어떨지는 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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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드님이 아니셨다면 분명 큰 일이 났을 겁니다.”

“나는 한 일도 없는데 이 사람 얼굴에 금칠을 해주는군.”

“한 일이 없으시다니, 그 잠깐의 틈을 벌어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고맙군. 하지만 그 말은 내가 아니라 레닐에게 하는 것이 어떤가.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니까. 사실 나는 그 때 반응조차 못했어. 자네의 목숨을 살린 건 내가 아니라는 말이지.”

바실리스크의 죽음을 확인한 뒤, 위습은 일드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했다. 위습만이 허리를 숙인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일행들 또한 감사를 표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던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어진 일드의 말에 그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나를 쳐다봤다.

바실리스크는 어지간한 위력의 마법 가지고는 눈도 깜빡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항마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위습이 위기에 빠진 것은 눈 깜짝할 사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순식간이었으니 준비 시간이 있을 리도 없었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잠시나마 시간을 벌었으니 ‘역시 일드님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내가 한 일이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만도 하겠다.

그러나 일드가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고 일부로 나를 띄어줄 이유도 없었다. 멋쩍은 웃음을 짓고 있자 위습이 내게로 다가와 감사를 표했다.

“정말 고맙다. 네가 잠깐이나마 시간을 벌어주지 않았다면 나는 죽었거나 살았어도 산 게 아니었을 거다.”

“별 말씀을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요.”

“그래도 네가 내 목숨을 구해준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야.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으마. 어려움이 있거든 꼭 나를 찾아와라.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면 최선을 다해 너를 돕겠다.”

위기는 있었으나 성공적으로 사냥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부상자는 있었으나 거동이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으니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부상자는 상처 치료하고, 나머지는 체력을 회복한 뒤에 주변을 경계해. 혹시나 겁 없는 몬스터가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전투로 인한 소음은 꽤나 컸다. 바실리스크 정도 되는 대형 몬스터가 있는대로 괴성을 지르며 난동을 부렸으니 오죽할까.

그러나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주변에 몬스터가 있을 확률은 낮았다. 바실리스크라면 상위종 중에서도 상위종에 꼽히는 몬스터다.

그런 녀석이 온갖 난리를 피웠으니 어지간한 몬스터는 주변에 얼씬 조차 하지 않았으리라. 그렇게 일행들이 휴식을 취함과 동시에 주변을 경계하는 동안 나와 일드는 바실리스크의 시체에 다가갔다.

“조심해라. 죽은 이후에도 독은 계속해서 이빨을 타고 흘러내리니까. 자칫 잘못해 상처를 입게 되면 그대로 중독 될 거다.”

“조심하겠습니다.”

바실리스크의 시체에서는 건질 것이 많았다. 극독을 뿜어내는 독샘도, 강철조차 잘근잘근 씹어 먹는 이빨과 어지간한 검으로는 상처도 내기 힘든 가죽까지.

독의 영향으로 고기는 먹을 수 없다지만 다른 것들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아쉬워할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지만. 당장 이 곳 저 곳을 이동해야 하는 입장에선 건질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만큼은, 나와 일드가 노리고 있던 것은 지금도 충분히 얻을 수 있었다.

“무슨 눈알 크기가······.”

“시선을 마주치지 마라. 죽은 이상 살아있을 때의 마력은 대부분 사라졌으니 죽진 않겠지만 직접 봐서 좋을 건 없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눈알도 주먹 하나는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만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러다보니 눈알만을 빼내는 것도 일이라, 나와 일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빼낼 수가 없어 기사들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시체로부터 눈알을 빼낼 수가 있었다.

일드가 자기 소유의 마법 주머니에 눈알을 넣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기분 좋은 상상에 빠졌다. 하나씩 나눠 갖기로 했으니 한 개의 눈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 할 수 있는 것이야 많았다.

마력을 품고 있는 재료이니만큼 각종 실험에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고 구하기 어려운 만큼 비싼 가격에 판 뒤, 내게 필요한 재료를 구매해도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득이었다.

“슬슬 이동하는 것이 좋겠군. 하루 동안 한 마리 잡고 만족할 생각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하지요. 우선 임시거주지에 이것들을 놓고 오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사들이 검에 마력을 불어넣고서야 근육과 떼어놓을 수 있었던 상당한 두께의 가죽까지 임시거주지에 보관하고 난 뒤에야 우리들은 다시 몬스터를 찾아 떠났다. 겨울이 다가오기 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고, 잡아야할 몬스터의 숫자는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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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열흘이 흘렀을 때까지도 우리 일행은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천운이 따른 결과라는 것을 확인하기까지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몬스터들의 대지를 돌아다니며 동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남긴 표식을 보고서 동료들이 우리들의 임시거주지로 합류했으니까.

“일드님!”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네들이 전부인가?”

“크흑.”

사냥을 끝마치고 임시거주지로 돌아왔을 때, 분명 열네 명으로 출발했을 한 조는 고작해야 일곱 명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

기사 여섯 명과 마법사 한 명. 그 일곱 명이라고 해서 모두가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한 명은 팔 한 쪽을 어디에 놓고 왔는지 왼쪽 팔밖에 보이지 않았으며 다른 한 명은 오른쪽 다리가.

두 명은 정신을 잃고 쓰러져 의식조차 없었으며 한 명뿐인 마법사는 붕대로 얼굴 반절을 가리고 있었다. 나머지는 겉은 멀쩡했지만 속까지 멀쩡할 지는 미지수였고.

“대체 어떻게 된 일······. 미안하군. 내가 괜한 것을 물었어.”

일드는 그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다가 황급히 입을 다물었다. 이 곳은 몬스터들의 땅이다. 그리고 우리들은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이 곳에 왔고, 굳이 어떻게 된 일인지 묻지 않더라도 이유를 알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어떻게 된 일인지 상세히 듣는다면 또 다시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겠지만 지금 당장 트라우마를 건들면서까지 들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광경은 내게 경각심을 새겨주기 충분했다.

‘운이 좋았다.’

각 무리의 실력 편차는 그리 크지 않다. 애초에 조를 만들 때, 실력을 고려하여 인원을 분배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는 것. 물론 이 무리만 유독 많이 다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소한 우리처럼 모든 이가 무사할 확률보다는 훨씬 높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모두의 눈에서 첫 날, 바실리스크를 잡을 때보다 더욱 긴장한 눈빛들이 흘러나왔다. 아직도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까지는 보름 넘게 남았다. 아직도 이 곳에서 보낸 시간보다 배에 가까운 시간을 더 보내야 했으며 우리도 똑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기는, 돌려보내야지.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다른 조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온갖 곳에 표식을 남겨둔 것이었으니, 다행히 우리 조는 거동이 불편할 정도까지 다친 이들은 없으니 다른 조를 기다릴 필요는 없겠군.”

사지가 잘려나갔어도 더 이상 싸우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저런 상황에서도 마법사들이 최선을 다했는지 상처는 양호하게 아물어있었으며 마탑에서 개발한 의수가 있으니 노력한다면 다시 검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전성기의 무용을 보여주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더불어 그들을 살려 보내야만 하는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거듭 말했지만 테라 방벽은 제국에 존재하는 위험지역 중에서도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사지 중의 사지다.

제국 북쪽에 몬스터들의 땅만 없었더라도 몇 십 년도 전에 대륙 통일 전쟁을 일으켰을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당연히 이 곳에 오고 싶어서 오는 사람은 없다. 기사들이 되었든 마법사가 되었든 병사가 되었든.

그럼에도 묵묵히 테라 방벽으로 향하는 이유는 기사들에게는 명예를, 병사들에게는 가족들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 전선에서 싸우기 힘들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팽한다면 그 누가 최선을 다해 방벽을 지키려 할까.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니콜라이.”

“예, 예! 일드님.”

“그 상태로도 기척차단은 유지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기사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데리고 테라 방벽까지 돌아가게.”

이 곳은 테라 방벽으로부터 먼 곳은 아니다. 존재감을 죽인 채, 전투를 회피하며 간다면 며칠내로 충분히 테라 방벽에 닿을 수 있으리라. 설령 전투가 벌어진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이 전력으로 도주에만 목적을 둔다면 어지간히 빠른 몬스터가 아니라면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터였다.

“말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무운을 비네. 돌아가서 테라 방벽에서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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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습 경을 포함한 기사 셋이 부상자들과 함께 테라 방벽으로 돌아갔다. 그들을 안전하게 테라 방벽까지 호송한 뒤 다시금 우리 쪽으로 합류할 터였다. 그들 중 그나마 멀쩡했던 기사들은 방벽으로 돌아가지 않고 우리와 합류한 덕분에 숫자의 차이는 없었지만 그 각오는 어제와는 분명 달랐다.

“다들 조심하게. 우리 또한 언제 저런 모습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네. 우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야. 더 이상의 불필요한 희생자는 내지 말도록 하세나.”

“명심하겠습니다.”

그 뒤로도 가을 원정은 계속 되었다. 오거를 잡았으며 바실리스크를 또 다시 만나기도 했고, 드래곤의 아종이라 불리던 드레이크와 힘겨운 싸움을 하기도 했다. 와이번 무리와 조우하여 깊숙이 땅으로 파고들어가 사라질 때까지 숨어있을 때고 있었으며 땅으로 내려오지 않고 허공에서 불덩이만 날려대는 그리핀 때문에 난감했던 적도 있다.

그 와중에 죽은 사람도 있었고 거동이 힘들 정도로 부상당한 사람도 있었다. 우리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과 만나 또 다시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멀쩡한 이들끼리 힘을 합치는 과정이 반복되던 중, 완연한 겨울이 다가왔다.

“그동안 모두 수고했다. 많은 동료들이 죽고 다쳤지만 모두들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고 모두 무사히 귀환할 수 있도록 하자.”

“예!”

원정 도중 만난 제 3 기사단의 단장, 트레스의 선언을 시작으로 우리들은 그리웠던 테라 방벽으로 귀환을 시작했다. 분명 한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언제 죽을까 무서워했던,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테라 방벽이었지만 지금만큼은 테라 방벽이 고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으니까.

“귀환을 축하한다.”

그러나 테라 방벽은 여전히 안전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사투를 벌이던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었으니까. 테라 방벽에 무사히 귀환하여 지크 후작으로부터 고생했다는 말을 들은 뒤 방으로 돌아와 그 동안의 피로를 풀려던 그 때, 나는 동료들로부터 가이우스가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1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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