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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0화 (10/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화 - >

바실리스크. 겉모습은 거대한 도마뱀과도 같다. 물론 도마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지간한 창칼로는 흠집조차 나지 않는 단단한 가죽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바실리스크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육체적인 능력에 있지 않았다.

이빨과 숨을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치명적인 독과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몸을 굳게 만드는 석화의 마안. 이 두 가지 요소야말로 육체적인 능력 이상으로 바실리스크의 위험성을 몇 배로 올리는 요인들이었다.

“바실리스크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테라 방벽의 기사들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책들이 있다는 건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고사다. 그 고사는 없을지언정 뜻마저 다른 것은 아니라서 병사들은 몰라도 기사들은 의외로 공부에 열심이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상대해야만 하는 몬스터의 특징은 무엇이며 강점과 약점은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대응을 해야 하며 공격 방식은 무엇인지. 그런 걸 몰라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면 상관이 없겠으나 적어도 내가 볼 때 그런 여유로운 짓이 가능한 건 테라 방벽에선 지크 후작을 제외하곤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다시 한 번 말해주지. 주의해야할 점은 총 세 가지네. 첫 째, 석화의 마안. 둘 째, 독. 셋 째, 맞으면 타박상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꼬리와 사람 하나 정도는 가볍게 절단 내는 턱까지. 다들 공략법은 숙지하고 있겠지?”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제 목숨 귀한 줄은 압니다. 어제 밤에 말씀하셨잖습니까. 이길 수 있는 싸움만을 하자고. 충분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든든하군. 나와 레닐도 최선을 다해 보조할 테니 자네들도 최선을 다해주게.”

선배들의 유산은 마법사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법사가 보다 다양한 상황에서 보다 나은 상황을 만드는데 신경을 썼다면 기사들은 단 하나에 집중했다. 그것은 바로 몬스터를 죽이는 것.

그들의 검은 보다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발전했고 수많은 이들의 경험이 쌓여 각각의 몬스터에 대한 최적의 사냥법이 만들어졌다. 그 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합격술을 연마하며 방벽을 방어하는 틈틈이 실전에서 갈고 닦으니 아무리 바실리스크가 수많은 몬스터를 아래로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더라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주변에 몬스터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바실리스크의 사냥을 피해 멀찌감치 도망친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다행인 일이군.”

쫘악- 쫘악-

위협요소 중 하나인 거대한 턱이 사냥감을 그대로 물어뜯었다. 턱을 움직일 때마다 잘게 찢어지며 분쇄되는 시체. 너무 심하게 손상되어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크기로 보았을 때, 어지간한 창칼은 들어가지도 않았으리라. 그러나 바실리스크의 턱과 이빨 앞에서는 질긴 가죽도 종잇장에 불과할 뿐이었다. 저 턱에 내가 물렸다고 생각하니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저 녀석의 시선은 나와 위습이 끈다. 눈은 절대 마주치지 말고 독은 직접 물리는 것만 아니라면 버틸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신체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되면 동료를 믿고 후퇴해라. 일드 씨께서 해독을 해주실 테니, 마지막으로 공격에 정신이 팔려 꼬리의 움직임을 놓치는 병신은 없을 거라고 믿는다. 다들 알아들었나?”

“예!”

바실리스크의 독은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며 석화의 마안은 가까이서 마주할 시 그대로 몸이 돌로 변해 죽을 만큼의 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멀리서 마주한다면 몸이 굳는 정도로 멈추겠지만 바실리스크를 상대하며 움직일 수 없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치명적인 리스크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범인에게 해당하는 이야기. 범인들보다 수십 배, 수백 배의 마력을 가져 범인의 한계를 뛰어넘은 우리들에게까지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독샘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은 위협적이되 직접 물려 주입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으며 석화의 마안 또한 직접 마주하는 것만 아니라면 몸의 움직임이 약간 느려지는 정도로 그칠 뿐이었다.

물론 직접 마주한다면 즉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시 동안 몸이 굳을 것이고 그 사이 바실리스크의 강력한 턱이 사냥감을 물어뜯으려 할 테니 방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모리토 경, 위습 경.”

“무슨 일이냐?”

“지금부터 마법을 걸어드리겠습니다. 움직임이 조금 빨리질 수 있으니 감안해서 움직여주십시오.”

“헤이스트라면 일드 씨에게 이미 받았다. 마음은 고맙지만 마력을 아껴라.”

“괜찮습니다. 제 고유 마법이기에 일드님의 마법과 겹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바실리스크의 시선을 끄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하다. 채찍처럼 휘둘러질 꼬리만 조심한다면 충분한 측면과 다르게 독과 마안을 제외하고나면 가장 큰 무기나 다름없는 입을 마주해야 한다는 뜻. 아무리 그들이 실력이 뛰어난 기사라고 하더라도 한 번 물리는 순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확률은 0에 수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둘의 갑옷에 보(保-지킬 보)를, 신체에도 마저 각인을 하려할 때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새기지?’

속(速), 민(敏).

둘 모두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각인이었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최대 속도와 순간 속도의 차이랄까. 결국 내가 손을 들어준 각인은 민(敏)이었다. 시선을 끌면서도 공격을 피하기 위해선 순간순간의 반응속도가 더 중요할 테니까.

“고맙다.”

얼마나 효과가 있을 지는 나도 확신할 수 없다. 모든 마력을 쏟아 부은 것도 아니며 나 이외의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각인을 새겨본 것도 처음이었으니까. 위습 경에게까지 각인을 새겨주자 기사들이 동시에 검을 뽑아들었다.

“가자!”

#

모리토와 기사들은 거센 황소를 상대하는 투우사처럼 바실리스크를 상대했다. 모리토와 위습이 바실리스크의 시선을 빼앗는 사이 나머지 기사들은 틈이 생길 때마다 검을 찔러 넣었다. 짧은 다리로는 기사들의 날랜 움직임을 견제할 수 없었고 꼬리가 휘둘러질 때마다 반대쪽의 기사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 동료들이 벌어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오러로 덮인 검으로도 근육을 간신히 벨 정도로 바실리스크의 몸은 단단했다. 그러나 실혈사라는 사인이 괜히 생긴 것은 아니다. 제 아무리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상처가 쌓이다보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콱-

‘긴장을 늦출 수가 없군.’

이게 가능한 이유는 모리토와 위습이 바실리스크의 시선을 잡아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만큼 두 기사는 다른 기사들에 비해 훨씬 더 집중하고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작은 실수가 되돌릴 수 없는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지도 몰랐으니까.

“위습! 물러서라!”

시선을 붙잡아두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실리스크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것. 그러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 하나 있었다.

바실리스크의 가장 큰 무기임과 동시에 유일한 약점인 눈을 노리는 것. 문제는 녀석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기회를 주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을 미끼삼아 적들을 낚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방금도 그가 황급히 말을 내뱉지 않았다면 위험했으리라.

‘좋아. 아직까진 순조로워. 무엇보다 위습의 움직임이 괜찮아. 충분히 사상자 없이 잡을 수 있겠어!’

최소 일 년, 최대 오 년씩 손을 맞춰온 이들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위습의 움직임은 위습에 대한 평가를 한 단계 높이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레닐이 걸어준 마법의 효과일지도 모르겠군.’

처음에는 일드가 걸어준 헤이스트의 영향인줄 알았다. 그러나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순히 움직임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동체시력, 반응속도, 순발력 등등 단시간 안에 향상될 수 없는 것이 향상되었으니까. 그 때, 이리저리 난동을 부리던 바실리스크가 돌연간 몸을 움츠렸다.

“모두 물러나! 분독이다!”

#

꽈악-

바실리스크와 기사들의 전투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치열했다.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무술 영화를 보는 듯한 움직임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먹을 만큼 집중을 하고 있다가 아차 하는 생각에 일드를 바라봤다. 동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데 지켜만 보고 있다니, 그러나 일드도 가만히 전투를 지켜보고만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두 눈을 깜빡였다.

“일드님.”

“왜 그러느냐?”

“돕지 않아도 되는 겁니까?”

“돕지 않아도 되냐니, 너는 내가 지금 단순히 구경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느냐?”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눈치를 챘다. 일드의 손으로부터 끊임없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마력이 바실리스크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바람!”

“눈치 챘으면 한 손 거들거라. 곧 분독이 시작될 테니.”

바실리스크의 숨과 함께 뿜어져 나온 독은 그 자리에 남는다. 아무리 기사들에게 기본적인 내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격한 움직임 탓에 평소보다 많은 숨을 쉬어야 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공기 중에 떠도는 독의 양이 많아진다면 중독이 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그렇기에 공기 중에 독기가 쌓이지 않도록 바람을 일게 하는 중이었다.

“모두 물러나! 분독이다!”

일드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모리토 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바실리스크의 온 몸에서 독연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부의 모습을 볼 수조차 없을 만큼 짙은 독연이었으니 그 기운이 얼마나 독할지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바실리스크가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하면 독연을 내뿜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모리토는 사전의 움직임만으로 분독을 예상했고 다행히 독연에 휩싸인 일행은 한 명도 없었다.

부왁-

그 뒤는 나와 일드의 몫이었다. 강한 바람이 바실리스크를 휩쓸었다. 이빨을 통해 흘러나오는 독이 아닌, 피부를 통해 나오는 독연이다. 아무리 짙어도, 아무리 독해도 강한 바람에는 휩쓸릴 수밖에 없는 법. 바실리스크의 거대한 몸은 설령 회오리가 불어오더라도 굳건히 땅을 짚고 있겠지만 독연은 이야기가 달랐다.

그러나 독연이 걷히기가 무섭게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바실리스크. 한껏 긴장하고 있었던 만큼 어렵지 않게 피해냈지만 그 때부터 바실리스크는 지금까지는 얌전히 놀아준 것에 불과하다는 듯 주변을 휩쓸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선을 끄는 사이 나머지 기사들이 공격한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일행들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거리를 벌린 채, 바실리스크의 체력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도주만은 막는 것. 그 때, 나도 허리춤에 메여있던 권총을 꺼내들었다. 지금까지는 기사들과 바실리스크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격한 움직임이 계속되었기에 아군을 맞힐까 공격 마법을 쏠 수가 없었지만 거리를 벌린 채, 바실리스크를 말려 죽이려하는 지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럴 필요 없다. 이대로만 가도 모리토 경과 기사들은 충분히 바실리스크를 죽일 수 있다. 괜한 행동으로 변수를 만들지 마라.”

“예. 알겠습니······!”

그러나 나는 집어넣으려던 권총을 다급히 꺼내들어 발사했다. 내 시야에는 꼬리를 피하기 위해 몸을 던졌던 위습 경을 향해 바실리스크가 있는 힘껏 턱을 벌린 채 달려들고 있었고 온 몸을 던졌기에 아직 몸을 제대로 일으키지도 못한 위습 경의 모습이 보였으니까.

마력의 힘을 받아 일직선으로 빠르게 날아간 총알은 바실리스크의 입천장에 적중했다. 총알에 써져있던 각인은 고(固-굳을 고). 총알을 둘러싼 바실리스크의 입이 놈이 자랑하는 석화의 마안에 맞은 것처럼 굳기 시작했다.

“흐압!”

그러나 단단한 가죽만큼이나 견고한 항마력을 가진 바실리스크에게는 고작해야 아주 잠깐의 시간을 허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찰나의 시간을 번 것만으로 총알은 역할을 다했다. 찰나의 틈을 활용해 위습 경은 무사히 몸을 빼냈고 아무런 방비 없이 등을 드러낸 바실리스크의 위로 검에 마력을 있는 힘껏 불어넣은 기사들이 올라타고 있었으니까.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10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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