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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9화 (9/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09화 - >

원정대는 백이십여 명의 기사들과 스무 명의 마법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테라 방벽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열 갈래로 나뉘어 뿔뿔이 흩어진 그들은 한 무리 당 열두 명의 기사와 두 명의 마법사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었다. 이번 원정의 핵심은 은밀함, 각개격파, 무사생환이었으니까.

몰려다니면 얼핏 보면 안전해보일 수 있겠지만 한치 앞도 모르는 소리다. 몬스터는 인간 이상으로 소리와 기세에 민감하다. 백사십 명이나 되는 인간들이 몰려다니면 눈치를 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은밀함도, 전력의 과도한 집중에 의해 죽일 수 있는 몬스터의 양도, 무사생환도 힘들어지리라.

어지간한 중형 몬스터라면 기사 홀로, 오거 쯤 되면 두셋은 달라붙어야 상대가 가능했다. 그렇기에 12-2다. 대형 몬스터라고 홀로 다닌다는 보장도 없었으며 자칫 잘못하여 주변의 몬스터가 몰려들 수도 있었으니까.

“긴장되나?”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죠.”

긴장이 안 될 리가. 사실 어제 밤부터 과도한 긴장 때문에 뜬 눈으로 밤을 보낼 뻔 했다. 방과 침대에 각인을 새기지 않았다면 퀭하고 시뻘건 눈으로 소집에 응했겠지.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험이 없는 건 나뿐만이 아니었으니까.

몬스터들의 대지는 넓고 그 이상으로 몬스터의 숫자도 많다. 우리가 대형 몬스터를 사냥을 하든 말든 테라 방벽에 주어지는 부하는 그리 큰 차이는 없으리라.

그렇기에 모든 인원이 나서는 것이 아닌 1/3의 인원만이 차출을 하였고 2년차, 3년차임에도 불구하고 원정은 처음인 이들도 많았다. 그런 이들은 오히려 나와 큰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더 긴장한 것 같기도 했고.

이 곳에 오래 있었던 만큼, 경험이 쌓인 만큼 몬스터가 얼마나 위협적인지, 그런 놈들에게 테라 방벽이라는 방패 없이 다가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더 잘 알기 때문이리라.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일드님도 긴장하고 계시잖습니까.”

6년차.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원정인 일드도 평온한 듯 보이지만 언제라도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 느껴질 정도인데 다른 이들은 말해서 무엇 할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들 한껏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자자, 다들 긴장 풀게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서야 정작 필요할 때 풀려버린다는 걸 자네들도 잘 알지 않나.”

우리 일행의 리더는 일드였다. 나이로나 경험으로나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으니까. 사실 기사와 마법사의 사이는 좋은 편이 아니라서 심한 경우에는 서로를 무식한 칼쟁이, 골방에 틀어박힌 괴짜라며 욕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사이가 좋았다. 아니,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다 죽었으니까.

생각해보라. 어떤 실력자도 실수가 없을 수는 없다. 관건은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느냐는 것. 이 곳에서의 실수는 대부분 만회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 때 필요한 것이 동료들의 도움이다. 그런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이들을 향해 칼쟁이니, 괴짜니 비난한다면 누가 선뜻 도움을 줄까.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부딪치는 사람보다는 격전이 끝난 뒤 서로 수고했다며 악수도 나누고, 가끔 술도 마시는 쪽이 비교적 덜 위기이더라도 선뜻 손이 가지 않을까?

“맞는 말이야. 긴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그렇게 긴장하지 않아도 적의 존재를 눈치 채기는 어렵지 않아. 여유를 가지라고. 적당한 긴장은 집중력을 올려주고 반응을 빠르게 해주지만 과도한 긴장은 안하니만 못하니까.”

“후하. 후하.”

눈을 감고 심호흡에 집중하니 조금 덜 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눈을 뜨자마자 다시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눈에 보이던 방벽이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보다 긴장했다는 것이 체감이 된다.

“방벽 안에서는 잘도 싸우더니, 생각보다 새가슴이었군?”

“일드님이 이상하신 겁니다. 아무리 세 번째라고 하시지만 너무 평온하신 거 아닙니까?”

“그야 물론 선배들의 유산을 믿기 때문이지.”

일드라고 해서 왜 긴장이 되지 않겠는가. 2년차에 한 번, 5년차에 또 한 번의 원정을 경험했다. 죽을 뻔한 위기를 몇 차례나 넘겼고 동료의 시체조차 건지지 못해 각종 장신구를 유품으로 삼아 돌아와야만 했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선 더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살아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는 이들과 다르게 최선을 다하더라도 이 곳의 누군가는 살아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애써 평온을 유지했다. 그가 이 일행의 리더이기 때문에. 가장 경험이 많은 연장자이기 때문에. 그마저 불안에 떨며 긴장하는 모습을 보여서야 다른 이들이 더 불안에 떨지 않겠는가. 또한 그 간의 경험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불안함만을 안겨준 것은 아니었다.

가을 원정이 시작된 이래,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 기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효율적인 움직임을 찾았으며 마법사들은 머리를 맞댔다. 보다 획기적인 성과가 나온 건 마법사들 쪽이었다. 직접적인 전투가 아니라면 마법사가 더 많은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었으니까.

마법을 연구하고 개량했다. 필요한 마법이 없다면 관련 자료들을 긁어모아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불필요한 전투 외 손실을 점점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보다 편안한 상황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보다 먼저 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전투의 소음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직접적인 전투로 인한 사상자는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의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성과 중 하나가 현재 일드가 펼치고 있는 마법이었다.

인비져빌리티를 개량했다. 원래의 인비져빌리티는 상대방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마법이었지만 고 서클의 마법이었기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는 드물었다. 그렇기에 효과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많은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더불어 마법의 대상을 사람이 아닌 공간으로 함으로서 동료들 또한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개량했다.

거기에 하이드 마나 포스를 접목시켰다. 마력이란 곧 생명력과도 같다. 그렇기에 상위종 몬스터 중에서는 마력의 냄새를 맡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런 녀석들에게 보통 사람들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기사와 마법사들은 별미 중의 별미였으니 은밀함을 위해서는 마력 또한 숨길 필요가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연구였지만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이 머리를 모으자 온갖 신박한 방법들이 쏟아져 나왔고 제국에서도 이를 지원했다. 결과적으로 연구는 성공적이었다.

“몇 년의 시간과 몇 명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셀 수도 없을 테지.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라. 선배들의 희생은 결코 무의미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건 경험에 의한 확신이었다. 동시에 일행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한 말이었고. 효과는 있었다. 일드의 실력은 원더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났으며 벌써 두 번이나 살아 돌아온 베테랑이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은 다른 이들도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었으니까.

“자자, 조금 더 속도를 높이지. 해가 기울기 전에 머물 곳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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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움직임을 한 번에 알 수 있을 만큼 지대가 높은 곳. 주변에 물이 있어 식수를 구하기 쉬운 곳. 혹은 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쉬운 곳 등등 진지를 구축하기 전 생각해야 할 요소들은 많았다. 그러나 마법사가 일행에 속해있다면 대부분의 요소들은 커버가 가능했다.

“여기가 좋겠군.”

적당히 구석진 곳을 발견한 우리들은 땅을 파고 지하로 내려갔다. 깊숙한 곳에 공간을 만들고 설령 몬스터가 밟고 지나가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흙을 두텁게 쌓고 곳곳에 숨구멍을 만드니 순식간에 적당한 진지가 완성되었다. 오래 머물 거라면 조금 더 본격적으로 만들겠지만 주변을 청소한 뒤에는 장소를 옮길 작정이니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자, 다들 먹지.”

마법이 필요한 곳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장작 없이도 불을 피우며 그 위에 작은 크기의 에어 실드를 올렸다.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냄비가 되었으며 그 안에 마력으로 만든 물을 집어넣고 가져온 식량을 집어넣자 순식간에 스튜가 완성되었다.

물론 신분이 신분이다 보니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없었기에 맛이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지만 싸늘한 날씨에 따뜻한 음식이 몸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사기를 돋우기에는 충분했다.

“알다시피 앞으로의 계획은 간단하네. 약 한 달 동안 우리들은 몬스터들의 대지를 돌아다니며 상위종 몬스터를 사냥할 것이네. 명심해야 할 것은 단 하나. 승리할 수 있는 싸움만을 할 것. 상위종을 죽이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자네들 목숨에 비할 바는 아니야. 다들 알겠나?”

“예!”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돌아갈 수 있기를······우리 모두 기도하지.”

불침번을 세울 필요는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몬스터가 침입할 수 없는 지하이기도 했으며 반경 20m 내로 인간 이상의 크기의 생명체가 들어오면 경보음이 울리도록 알람 마법을 설치해두었으니까. 그러나 모두들 내일부터 있을 고난의 행군이 상상되었는지 쉽사리 잠에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면(眠)

크기가 크기이다보니 오랫동안 지속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편안히 잠에 들 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리라. 각인의 영향인지 하나둘씩 잠에 빠져드는 일행들. 나 또한 점점 다가오는 졸음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맡겼다. 내일부터는 꽤나 고단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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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날이 밝고 난 뒤 지하로부터 빠져나온 우리들은 적극적으로 상위종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오크, 리자드맨, 아울베어와 같은 잡몹은 번식력이 뛰어나 죽여도 별 소용이 나지 않았으며 다수가 몰려다니는 만큼 주변의 몬스터를 끌어들일 수 있어 최대한 회피했다. 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는 건 아니니까.

“첫 날부터 대박인데요?”

“괜찮겠나? 자네들도 익히 알고 있겠지만 쉬운 상대가 아니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작 한 마리 아닙니까. 이 정도에 겁을 먹고 물러나서야 여기까지 나온 이유가 없습니다.”

거대한 몸. 그리고 몸만큼이나 기다란 꼬리와 짧달 막한 네 쌍의 다리. 거대한 턱은 무엇이든 박살낼 수 있어 보였으며 코에서는 끊임없이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오거나 사이클롭스와 같은 대형 몬스터조차 어른 앞의 아이에 불과한 몬스터 중의 몬스터. 적극적으로 사냥감을 찾던 우리들의 앞에 바실리스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09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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