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1화 (1/123)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01화 - >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 나는 죽었다. 사인은 교통사고. 씹어 죽여도 시원찮을 음주운전자 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나만 독박을 써버렸지만 죽은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을 죽여 놓고서 정작 자기는 골절 정도로 끝난 개새끼를 욕하는 것밖에는. 그러는 사이, 나는 다시 태어났다. 지구가 아닌 새로운 세계에서.

처음 태어났을 때, 무척이나 당황했다.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아기로 환생을 했으니. 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했던 순간은 이 세계가 지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사람의 손에서 화염이 나가고 검 한 자루로 강철을 두부처럼 썰어대는 광경을 보며 나는 이세계가 지구가 아닌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보았던 판타지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나는 이세계에 적응했다.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었지만 이세계에서는 이세계 나름대로 즐길 거리가 있었고 부모님은 작은 영지나마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던 데다가 형이 있었으나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한 후계자 다툼 따위 없이 뜨거운 우애를 자랑했다. 그렇게 18년. 형은 작으나마 영지를 이어받을 것이고 미래에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뒹굴 거리며 고민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말을 듣게 되었다.

“레닐.”

“예. 아버지.”

“네가 북부에 한 십 년 정도만 다녀와야겠다.”

“······예?”

북부가 어떤 곳인가, 척박하기로는 제국 제일을 자랑하며 끊임없이 몰려오는 몬스터와의 사투로 대표되는 사지가 아니었던가. 난데없는 통보에 당황해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나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넸다. 그리고 종이의 글을 끝까지 읽었을 때, 나는 내 손으로부터 종이가 구겨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두 눈을 꽉 감고 말았다.

[입영통지서]

종이에는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용이 담겨있었다.

< 남작 가문 차남 이야기 - 01화 -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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