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95화 (95/102)

〈 95화 〉 (루나 외전) 어리광쟁이 (2)

* * *

두 개의 이마가 충돌하면서, 사야는 자연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앗!"

눈을 뜨자마자 내가 보인 것에 놀란 사야가 반사적으로 일어나는 바람에, 서로의 이마가 충돌해버렸다.

"아야···"

나 또한 아픈 이마를 두 손으로 감쌌다. 영문도 모르고 괴팍한 방식으로 깨워져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야를 향해서 미소지었다.

"···잘 잤어?"

오늘의 깨우는 방식이 불만이었는지, 그녀는 귀엽게 이마를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루나, 평범하게 깨워줘···."

정말 다행이었다. 이걸로 선을 넘는 일은 없이, 평상시대로의 그녀와의 일상을 보낼 수 있었다.

다행··· 이었다.

***

요리를 하기 전, 불을 붙이고 팬을 달군다. 말린 화염초 가루를 사용하면 마법이 없이도 손쉽게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계란 두어 개를 꺼내 서로 가볍게 부딪힌 뒤 능숙한 손놀림으로 달구어진 팬에 날계란을 올렸다. 계란이 익어가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소금을 넣어 간을 맞추는데, 오늘 아침에 저지른 짓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미쳤지. 대체 왜 그런 짓을···'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고있는 사야에게 몹쓸 짓을 할 뻔했다. 아침 공기에 정신이 잠시 어떻게 되었던 걸까.

상상만으로 부끄러워지는 행동을 애써 머릿속에 다시 집어넣었다. 어리광을 부려도 좋을 나이는 이제 지났다. 유년 시절의 충동적인 성향은 문제를 일으킬 뿐이었다.

"루나?"

깊게 생각에 빠져있자니, 뒤에서 사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나, 연기···!"

"···어?"

잠깐 못 본 사이에 달걀 프라이가 새까맣게 탔다. 나는 황급히 불을 끄고 요리를 팬에서 꺼냈다.

결국 아침의 달걀 요리는 화려하게 실패란 탓에, 아무것도 없이 구운 식빵 하나씩만 덜렁 식탁에 낼 수밖에 없었다.

식빵을 입에 문 사야가 걱정스런 말투로 물어왔다.

"괜찮아? 다른 때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잖아."

"···괜찮아. 오늘따라 좀 잡생각이 많았나 봐."

참 희한한 일이 다 있었다. 내가 불 앞에서 정신을 놓고 있었다니.

조촐한 식사를 마친 사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간만에 뭐라도 마시자. 커피? 홍차? 어느 걸로 할래?"

"아, 그거라면 내가···."

"아니."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를 사야가 다시 앉혔다.

"오늘 정도는 내가 하게 해 줘. 항상 루나만 고생시켰잖아."

"···알았어. 그럼 홍차로 부탁할게."

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사야가 홍차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는 모습부터, 찻잎을 우리는 것 하나까지. 혹여 뜨거운 물에 손을 데이진 않을까 차를 타는 내내 노심초사하며 지켜보았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다행히도 그녀는 성공적으로 홍차 두 잔을 내왔다.

"한잔 드시지요."

"뭐야, 그 말투. 집사 흉내야?"

"이상해?"

사야가 하는 행동이 너무나도 귀엽게 느껴져서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이 해놓고도 좀 부끄러웠는지, 그녀는 나더러 그만 웃으라며 얼굴이 새빨개져선 자리에 앉았다.

사야가 타온 홍차를 후룩­ 하며 들이켰다. 그러자 맞은 편에 있던 그녀도 조심스레 컵을 입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자신이 타온 홍차에 대해 평가를 내렸다.

"···어째 맛이 좀 심심하네. 루나 네가 타준 건 이거보다 달았는데."

"그야, 네 홍차에는 항상 설탕을 두 스푼씩 넣었으니까."

단 것을 좋아하는 사야의 홍차에는 항상 설탕을 많이 집어넣었다. 그녀가 직접 타온 홍차는 설탕이 아예 들어가지 않았으니 그렇게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써주고 있었어? 몰랐지. 난 홍차가 원래 그렇게 단 건 줄 알았는데···."

"그럴 리가 없잖니, 바보."

내가 웃음을 띠며 그녀를 놀리듯 웃었다.

부끄럽다는 표정을 지은 사야가 화제를 바꾸기 위해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고 보니, 유리는 사흘은 더 있어야 온다고 했었지?"

"응. 파견지가 거리가 꽤 된다는 모양이라서."

집주인은 없는데 우리끼리만 이렇게 편하게 시간을 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파견하니까 생각난 건데 말야, 얼마 전에 유리가 그 요청서를 받고서 엄청나게 질색하는 거 있지. 또 며칠이나 지겨운 마차를 타게 생겼다면서···."

"···."

사야는 그녀의 이야기를 할 때면 무척 즐거워 보였다. 사랑스런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서,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듯이 이야기 했다.

유리 양이 사야에게 있어 단순히 특별함을 넘어선 어떤 존재라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녀에게 일어난 일이 마치 자신에게 일어난 것 마냥 울고 웃었으니까.

때때로, 그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끔찍하게 챙기는 모습이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을 보면, 마치 둘만의 모형 정원 안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진짜 웃겨서 죽는 줄 알았더라니까."

"···그렇구나."

사야의 말을 들은 내가 가볍게 홍차를 홀짝였다.

무엇보다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유리와 있을 때의 사야의 표정이었다. 설레는 모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두근대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기는 그 표정.

내 앞에서는 한 번도 보이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그 얼굴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고 미웠다.

나로서는 그녀에게서, 그런 표정을 짓게 만들 수 없을 테니까.

사야의 이야기를 듣는 사이 서로의 찻잔을 모두 비워냈다. 습관처럼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치우려고 하는데, 사야에게 그것을 제지당하고 말았다.

"어허, 넌 앉아 있어."

"···?"

"오늘은 내가 다 해줄게. 가끔은 이런 날도 좋잖아?"

사야는 그간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휴식이 필요할 것이라며 나를 어떻게든 자리에 앉혀두었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컵이라도 깨뜨리지 않을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잠시 그녀를 기다리고 있자니, 언제 정리를 끝냈는지 모를 사야가 한 손에 빗을 들고 돌아왔다. 내가 그것을 보고 의아한 듯 물었다.

"사야, 빗은 왜···?"

"오랜만에 빗겨주려고. 넌 맨날 혼자서 했잖아."

사야와 달리 곱슬머리를 지닌 나는 매일 빗겨주지 않으면 긴 머리카락이 서로 엉키기 쉽상이었다. 그러니 자라면서 혼자서 빗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지만, 무슨 영문인지 그녀가 빗겨주겠다며 나선 것이었다.

"···그럼 오랜만에 실력 좀 볼까."

"맡겨 둬."

내가 머리를 풀어 늘어뜨리자 사야가 의자를 끌고 와 내 머리채를 빗질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긴 머리가 익숙하지 않은지 고전을 면치 못하던 사야였지만 이내 적응이 되어 능숙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풀어나갔다.

"맞다. 그거 기억 나? 루나 네가 빗질 받기 싫어서 팬티차림으로 하루종일 도망 다녔던 거."

"뭐? 내가 그랬다고···?"

"그래. 그때 그 꼬맹이에 비하면 진짜 많이 컸네."

그리운 듯 이야기하던 사야가, 갑작스레 빗을 내려두고 말했다.

"많이 컸어. 특히나··· 여기가!"

"꺅···!?"

사야가 돌연 내 가슴을 움켜쥐자, 내가 깜짝 놀라 소리 질렀다.

"사, 사야···!?"

"그 껌딱지 같던 꼬맹이가 언제 이렇게나···"

그녀는 장난스런 손짓을 멈추지 않았다. 내 가슴을 쥔 채로 마구 주무르고, 간지럽혔다.

"잠깐, 간지러···! 간지러워···!"

내가 깔깔 웃으면서 항복의 의사를 보내자 그제야 그녀가 손을 떼주었다.

"아, 재밌었다."

"···사야, 너···."

분한 표정으로 잔뜩 수그리고 있던 나는 곧바로 역공을 준비했다. 슬며시 그녀의 뒤로 기어가 똑같이 사야의 가슴을 한가득 움켜쥐었다.

"만졌겠다···!"

"힉···!?"

자신이 바로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는지 가슴을 기습당한 사야가 귀여운 비명을 내질렀다. 나는 내가 당했던 것처럼 그녀의 가슴을 장난스럽게 주물렀다. 한 손에 딱 들어차는 부드러운 형태의 가슴을 잔뜩 괴롭혔다.

"잠깐, 우리 말로 하자···! 말로···!"

간지럼을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를 집요하게 따라간 나는, 사야와 함께 소파에 몸을 기울였다.

내가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은 자세로, 우리는 몸을 푹신한 소파에 뉘었다.

그녀의 가슴을 간지럽히던 손은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가서, 얇은 허리를 가득 감쌌다.

"···항복. 내가 졌어, 루나."

"수련이 부족하네. 사야는."

스스로가 말해놓고도 뭘 수련한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지럼 전쟁에서는 내가 이겼다.

우리는 격하게 움직이느라 지친 몸을 쉴 겸 그 자세로 가만히 누워있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작게 들려왔다.

사야를 끌어안은 채로 있자니 그녀의 새하얀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새카만 머리카락 뒤에 숨겨진 하얀 피부가 시선을 당겼다.

'···예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그녀의 목덜미 가까이 가져갔다.

"···루나, 이제 슬슬 일어···."

그리고, 새하얀 목덜미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녀가 하던 말을 멈추고 살짝 몸을 움츠리는 것이 느껴졌다.

"···."

가볍게 입술을 붙였다 뗀 나는, 무의식적으로 한 번 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흣···."

입술을 댈 때마다 나오는 그녀의 반응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러한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작게 탄식하며 몸을 부르르 떨어오는 것이, 귀를 새빨갛게 하고 가만히 있어 주는 것이 너무나 어여뻤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끌어안은 채로, 한참을 소파에서 누워있었다.

비뚤어진 마음이 보답받지 못해도 좋았다. 사야의 곁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좀 더 살결을 맞대고, 체온을 느끼고 싶었다. 어딜 가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아, 나만의 것으로 남기고 싶었다.

나만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내게서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