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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92화 (92/102)

〈 92화 〉 IF. 그래도 클레드는 살아간다 (1)

* * *

클레드 에스테반은 아카데미 은퇴 후 운영하던 술집이 쫄딱 망하는 바람에 다시 교관으로 복직했다. 인생은 좆됐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엄청난 수의 술병 컬렉션이 남았다.

은퇴 후 돈이란 돈은 전부 끌어모아 열심히 수집한 결과, 이제 이 나라에 입을 대보지 않은 술은 남아있지 않았다. 그것들을 섞어서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데에도 한계를 느낀 그는 결국 불법적인 영역에까지 발을 들이게 되었다.

그날도 대충 아카데미에서 시간을 때우다가 퇴근한 클레드는 세말 구석에 위치한 암시장으로 향했다. 암시장에는 합법적으로 접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술이 있었다. 온갖 해괴한 동물로 담근 술이나 그 안에 든 재료조차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허다했다.

하지만 이날 클레드의 시선이 꽂힌 것은 바로 마법주였다.

“···이건 뭐요?”

그가 돗자리를 펴고 앉은 노인에게 질문하자, 그가 하나밖에 없는 눈을 열심히 굴리며 대답했다.

“···마법주라고 하는 물건입니다. 술에 주문을 섞어 만든 희귀한 물건이지요···.”

“마법주라고···?”

말이 술이지, 사실 알코올이 든 엘릭서나 포션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을 유심히 살피던 클레드가 물었다.

“이걸 마시면 어떻게 되는 거요?”

“···안에 무슨 주문이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 것이, 마법이 오랫동안 알코올과 함께 숙성되어서 보통 감기처럼 지나가는 정도의 가벼운 효과를 띈다고 하지요. 맹세컨데, 먹고 죽거나 한 사람은 없습니다요.”

보통은 원한이 있는 사람을 골탕 먹이거나 할 때 쓰이는 용도로 팔리는 물건이었다. 정상인이라면 노인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넘어갔겠지만, 이 남자 클레드의 생각은 달랐다.

‘미지의 맛···!’

지금껏 벌레주나 독주 같은 몸에 해로울 수 있는 술도 다 먹어본 그였지만, 마법의 맛이란 미지의 영역이었다. 클레드는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집어 들었다.

“당장 주시오.”

***

자신의 집에 그것을 가져온 클레드는 입맛을 다시며 뚜껑을 개봉했다.

‘···냄새는 일반 술과 크게 다르지 않군.’

노인의 말로는 10분의 1로 희석해서 먹으면 마법의 효과에 아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내일 당장 출근해야 하는 클레드로서는 당연히 부작용을 겪기는 싫었다.

그는 술을 마시기 전, 먼저 마법 저항 포션 한 병을 비워냈다. 혹시라도 있을 가능성에 확실히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적셔볼까···.’

오랜만에 새로운 술을 접한다는 느낌에 잔뜩 흥분한 클레드는, 희석한 마법주를 컵에 따라 단숨에 들이켰다.

‘오오···!’

잔을 비운 그가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먹어 본 술과는 뭔가 달라도 확실히 달랐다. 향도 아니고 맛도 아닌 애매모호한 무언가가 신체를 자극하는 색다른 감각이었다.

‘이런 거라면, 하루에 다섯 병도 먹겠어···!’

희석한 한 잔을 더 들이부은 클레드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잠깐, 희석한 게 이 정도라면 원액은 대체 얼마나 맛있다는 거지?’

노인이 꼭 희석시켜서 마시라고 경고했지만, 클레드는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마법 저항 포션을 미리 마셔두었으니 희석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믿으면서 조금씩 원액에 가깝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5분의 1의 비율로 희석한 마법주를 들이킨 클레드가 감동의 박수를 쳤다.

‘아까랑은 아예 다른 술이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비슷한 비유를 굳이 찾자면 자신이 과거에 잠깐 손대본 마약류 환각제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몽롱하지도 않고, 오히려 정신이 바짝 드는 신기한 느낌이었다.

자제력을 잃은 클레드는, 술병에 남아있는 원액을 그대로 자신의 몸속에 때려 부었다.

***

다음 날 아침, 그는 상쾌한 기분 속에서 잠을 깼다. 피부도 무언가 뽀송뽀송하고 머리도 전혀 가렵지 않은 것이 여느 때보다 기분 좋았다.

‘맛까지 있는 데다가 숙취도 없다니, 그야말로 궁극의 술이로군···.’

도수도 만만치 않아 보였는데 두통 하나 없었다. 그 효능에 감탄하며 자리에서 일어난 클레드는 묘하게 시야가 낮아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지···?’

주변을 둘러보니 확실히 조금 시야가 낮았다. 혹시 이게 노인이 말했던 부작용인가 하며 거울을 바라본 클레드는 얼어붙었다.

‘···어어?’

거울에는 처음 보는 여자, 아니···. 여자가 된 자신이 있었다. 개털처럼 삐죽거리던 머리칼은 윤기가 넘쳐흘렀고 남성스럽게 발달된 턱에 자라난 수염, 넓게 벌어진 어깨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자신이 보아도 풍만한 가슴을 달고 있는 묘령의 매력적인 여성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다.

‘꿈인가···?’

아직 꿈을 꾸는 건가 싶어 볼을 꼬집어 봤지만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몸 곳곳을 면밀히 관찰하던 클레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았다.

‘···설마.’

침을 꿀꺽 삼키고 바지를 내린 클레드는 입을 떡 벌렸다.

소중이가 없었다.

거의 30년 가까이 자신과 동고동락하던 소중이는 그곳에 없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머리로 차분히 생각했다.

‘···시발, 출근은 어쩌지?’

이 꼴로 아카데미에 출근한다고 한들 자신이 클레드라고 믿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마법이 얼마나 지속될 지 모르기에, 오랫동안 무단으로 출근하지 않으면 자신이 실종됐다고 믿은 아카데미 측에서 사람을 보내 조사할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클레드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여러 증거품들을 챙긴 후 종이를 하나 작성하기 시작했다.

***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고 있는 유리 프리지아와 그녀의 수행원으로 일하던 사야 바르나바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이 클레드 교관의 친누나라는 말씀이신가요?”

“···응!”

사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클레드에게 형제자매가 있었다는 말은 한 번도 못 들었는데···.”

그러자 클레드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우리가 그렇게 사이 좋은 남매는 아니라서, 굳이 언급할 정도는 아니었을 거야···.”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으로 상황을 바라보던 유리가 차분하게 자신이 들은 말들을 정리하여 늘어놓았다.

“그럼 당신은 클레드의 누나고, 그가 급한 사정으로 어딜 다녀올 일이 생겨서 잠시 교관 일을 부탁받았다?”

“응, 바로 그거란다.”

“···증거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말로만 들어서는 당신이 진짜 그의 누나인지, 아니면 누나를 가장한 침입자인지 확신이 안 서네요.”

정체를 추궁당한 클레드였지만 의외로 그녀는 침착했다.

‘이럴 줄 알고 미리 대비해뒀지.’

클레드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이 아카데미에 관계자만 드나들 수 있는 부식 창고가 있다지?”

“···네, 하나 있긴 하죠.”

“거기에 있는 서랍 두 번째, 세 번째, 다섯 번째 칸에 동생이 몰래 보관해 둔 술병들이 있을 거야. 종류는 순서대로 드로시아, 페일 에일, 위스키.”

“···사야, 가서 확인해 봐.”

유리의 말에 잠시 창고에 다녀온 사야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분이 말한 그대로야. 종류까지 똑같아.”

거기까지 들은 유리는 경계하던 표정을 풀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무례를 저질러 죄송합니다. 애초에 가져오신 칼도 클레드의 것이고, 더 이상 추궁할 필요는 없겠네요.”

“···괜찮아. 수상할 만 했지.”

“그럼 혹시, 존함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클레드의 숨이 턱 막혔다.

‘이름? 이름을 뭐라고 대지···?’

다른 건 전부 대비해 둔 그녀였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이름을 생각해오지 않았다.

“클ㄹ···.”

“클?”

“클라라야!”

“···그렇군요. 멋진 이름이네요.”

겨우 위기를 모면한 클레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인적 사항이 적힌 서류를 살피던 유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클레드 교관으로부터 추천했을 정도니, 실력에 있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네요. 혹시 임시로 교관을 맡는 데에 있어서 도움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을까요?”

“아냐, 동생이 대략적인 건 전부 설명해 줬거든···!”

“···알겠습니다. 그럼 아무쪼록 그가 돌아올 때 까지라도 잘 부탁드릴게요.”

“응! 영광이야···!”

오해를 풀어낸 클레드가 유리의 집무실을 나갔고, 그녀는 남아있던 사야에게 말했다.

“···사야, 오늘 네가 좀 할 일이 생겼어.”

“무슨 할 일?”

턱을 궤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유리가 말했다.

“···저 여자,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한 부분이 너무 많아.”

“왜? 클레드의 누나라고 말씀 하셨잖아.”

“···그건 확신할 수 없지. 클레드 본인이 오질 않았으니까.”

유리는 계속해서 그녀에 대한 의심을 놓을 수 없었다.

“사야, 오늘 하루 동안 클라라를 쫓아다니면서 주시해 줘. 그녀가 혹시 조금이라도 수상한 낌새를 보인다면 내게 즉시 전달하고.”

“···알았어.”

그녀의 의뢰를 받은 사야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행동을 개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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