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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84화 (84/102)

〈 84화 〉 잠 설치는 밤에

* * *

지금으로부터 몇 개월 전, 유리 프리지아가 령사 단장 직위 수여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벌써 잠들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그녀는 안절부절못하며 기숙사 복도를 맴돌고 있었다.

'별 일이네. 10시만 되면 죽은 듯이 잠들던 애가.'

그녀가 서성거리는 소리가 신경 쓰여 잠이 깬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괜찮아?"

"어?"

이런 시간에 자신에게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는 것에 잠깐 놀라는 것처럼 보였던 유리는, 이내 그 정체가 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했다.

"···아, 너였구나."

"자야 하는 거 아니야? 내일 직위 수여식이잖아."

"···신경쓰지마. 알아서 할 테니까."

매사에 똑 부러지는 유리니까, 좀 문제가 생기더라도 대부분은 스스로 해결하곤 한다.

"아, 그러셔. 그럼 다시 자러 간다."

나는 하품을 하며 그녀에게서 등을 돌렸다.

"···잠깐."

그 상태로 다시 침대로 향하려는데, 유리에게 옷자락을 뒤에서 강하게 잡히고 말았다.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내가 놀라며 물었다.

"왜 그래?"

내 질문에 유리는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우물쭈물하더니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이 바뀌었어. 잠깐만 더 있다 가."

유리는 처음 보는 연약한 표정으로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녀가 쥐고 있는 내 옷자락에서 미약한 떨림이 전해져 왔다. 당황한 나는 최대한 다정한 톤으로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알았어. 어디 안 갈게."

내 대답을 확인한 유리는 그제야 내 옷자락을 놓아주었다.

***

"···사야. 내가 지금 무서워 하고 있다고 말하면 믿겠어?"

복도에 같이 기대어 앉은 유리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었다.

"뭐···?"

그 말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유리 너도 무서워 하는 게 있다고···?"

내가 진심으로 신기해하자 유리가 짜증 난다는 듯 노려보며 말했다.

"그 반응은 좀 실례네."

"···미안."

내가 웃으며 가볍게 사과했다. 작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자신의 무릎을 끌어안고 말했다.

"···요즘 들어 자꾸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어떤 기분?"

"···사람들이 나한테서 뭘 기대하는지 알고 있고, 스스로도 뭐가 옳은지 잘 알고 있는데, 자꾸만 잘못된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듯한···. 그런 이상한 기분."

유리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안 그런 사람도 있대? 사람이면 누구나 그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가치를 저울질하다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 자연스레 불안함을 지니게 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있지,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결정에 의문을 품거나 한 적 없었어."

"···그건 다른 의미로 대단하네."

"그러니까 이런 불안함 자체가 싫어. 이건 마치 내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 같잖아."

이제껏 위만 보며 달려왔던 유리는, 처음으로 멈춰 서서 자신이 밟았던 길을 되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불안과 의문만이 있었다.

직위 수여식을 마치고 나면 유리는 이제 아르모니아 제국령사들을 전부 통솔하는 지위에 서게 된다.

자신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가 막대한 영향을 주게 될 테니 그 부담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었다.

"솔직히,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리 네가 그런 고민을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데. "

"···의외야?"

언제나 본인의 믿음대로 쭉쭉 정진하는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너도 역시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이런 모습 보이는 거."

"아니. 평소보다 인간미 있어서 좋은데?"

오히려 지금까지의 그녀가 너무 완벽 철인 그 자체였다. 그러자, 유리가 꽤 격한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다.

"···그럼 평소엔 어땠다는 거야?"

"···평소에도 나쁘진 않은데, 약간 건조하다 못해 바짝 마르는 그런 느낌이 아주 사알짝···."

"···됐어. 또 놀리는 거라면 이제 가."

"알았어. 드디어 자는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어나는 나를, 그녀가 또다시 붙잡았다.

"뭐야, 아까는 가라면서."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가란다고 진짜 가냐···?"

유리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유치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같이 있어 주세요~ 하고 부탁하면 여기 있을게."

"뭐라고?"

평소라면 곧장 주먹이 한 대 날아와도 이상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그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가, 같이···."

"···?"

"있···. 있어···. ㅈ···."

그녀가 필사적으로 나를 보내지려고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다시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냥 장난이야. 진짜로 안 해도 돼···."

"···."

"사실 네가 뭐라고 하든, 옆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나쁜 년."

내가 다시 옆에 앉자마자 떠는 것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1년 반이라는 공백 동안 유리에게서 떨어져 지냈던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오늘 같은 반응을 보이는 그녀는 정말로 희귀한 것이기에 많이 놀려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떨림이 좀 진정되자 내가 물었다.

"무서웠던 건 좀 괜찮아졌어?"

"···.그래. 내일 쓸 연설문을 3,000자를 외우고 나니까, 훨씬 괜찮아졌어."

"연설문···.?"

혹시 유리가 종이를 가져왔나 싶어 그녀의 주변을 살폈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건 안 보이는데?"

"무슨 소리야. 전부 머릿속에 있는 게 당연하잖아."

"당연한 거구나. 그게···."

좀 진정되자 금세 평소의 유리로 돌아와 버린 느낌이다.

"···."

할 말이 떨어져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며 옆에 앉아있자니, 유리 쪽에서 화제를 꺼내왔다.

"맞다. 궁금했던 게 있는데, 사야."

"어떤 거?"

그녀가 평소에 나에 대해 질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니, 그냥 없었다.

"···.너랑 루나 양 말이야. 그···.."

그녀가 질문 중 뜸을 들이기에 답답해진 내가 다시 캐물었다.

"나랑 루나가 뭐?"

"···.이상하게 듣진 마. 그냥, 순수하게 호기심에 묻는 것뿐이니까."

"알았어. 뭔데?"

유리는 살짝 얼굴을 옆으로 돌리고 작게 물었다.

"···.너희는 가끔 침대에서 같이 뒹굴거나 허그···. 비슷한 행동을 할 때가 있던데."

"아···. 난 또 뭐라고."

"그러한 행동들을 해서... 얻는 게 뭐야?"

나는 그녀의 질문에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그렇게 놀았어. 루나가 워낙에 달라붙는 걸 좋아해서. 걔는 친해지면 누구한테나 그렇잖아?"

"···그건 그래."

성향이 극과 극으로 나뉘는 루나와 유리였던지라, 가끔 루나 쪽에서 그녀에게 과도한 스킨쉽을 해 오면 당황하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허그야 늘 하는 장난 같은 거니까. 근데 네가 신경 쓰고 있었을 줄은 몰랐네."

"···.신경 썼던 것까진 아니고, 단지 궁금했을 뿐이야."

"궁금했다고?"

"한 번도 없었으니까. 나한테 그런 걸 시도하는 사람은.'

그녀의 말에 내가 의아한 듯 물었다.

"부모님이라던가, 어릴 때 한 번씩 안아주는 게 보통 아니었어?"

"···.한번도 그런 적 없는데."

"···.단 한 번도?"

"응."

'···.그런 가족도 있구나. 와···.'

유리가 평소 가족들과의 관계가 소원하다고 말하긴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 후로 말 수가 부쩍 줄어든 그녀에게 내가 불쑥 물었다.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해볼래?"

내 질문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뭐…!?"

"···.뭘 그렇게까지 놀라? 궁금하다며. 직접 해보면 되지."

"아니, 그러니까, 아직 그런 걸 받아들일 준비가…"

나는 횡성수설하는 유리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보면 뽀뽀라도 하자고 한 줄 알겠네. 부담되면 됐어. 딱히 강요는 안 할게."

"···."

이제 무슨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지 생각하던 차에, 유리가 이쪽으로 아까부터 계속해서 시선을 보내는 것을 느꼈다.

'···역시 신경쓰였네, 저거.'

하도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이제 얼굴만 봐도 척하면 척이다. 결국 보다못한 내가 말했다.

"···팔 벌려. 나도 어색하니까 후딱 하고 끝내게."

그녀는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얼만큼 벌리란 거야? 잘 모르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쪽에서 파고들어 유리를 끌어안았다. 손에서 옷의 고급스런 감촉이 느껴졌다.

"..."

알고 지낸지 벌써 1년은 됬는데도 이 정도로 가까이 붙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저기, 아무 말이나 좀 해봐. 싫으면 싫다, 어색하면 어색하다. 나도 슬슬 쪽팔리니까···.."

"···.으음."

"으음!?"

어색해 뒤지겠는 걸 참고 해줬더니, 돌아온 대답이 겨우 '으음' 이었다.

"방금걸로 잘 알았어. 껴안는 행위 그 자체가 좋다기 보다는, 서로의 체취같은 유전 정보를 교환하는 데에 더 목적을 둔 느낌이네."

"···.와, 진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섭도록 건조하냐. 근데, 체취라고···.?"

유리의 말을 되짚던 나는 화들짝 놀라며 뒤로 빠졌다.

"체취!? 나 냄새나? 그럴 리 없는데…!"

"안심해. 그냥 살 냄새랑 비누 냄새였어."

"휴···."

"아. 그리고, 약간 희미하게…"

"희미하게 뭐···?"

"···나 이제 졸려. 그만 자자, 사야."

유리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내가 계속해서 추궁했다.

"아니, 희미하게 뭐였냐고!?"

"하아암···."

내 질문에도 유리는 태연히 하품하며 무시로 일관했다.

결국,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거기에 대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아니, 그건 대체 뭐였냐고. 진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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