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82화 (82/102)

〈 82화 〉 여름의 해변에서

* * *

나와 팀원들은 세말에서 마차로 꽤나 먼 거리에 위치한 모브 해변으로 출발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루나는 이미 해변으로 여름 휴가를 갈 거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었던 모양이다. 해변에서 입을 옷들도 모두 루나가 공수해오기도 했고.

그나마 하루 전에라도 전달받았던 나와 달리, 카르네는 아직 수녀복을 입은 그대로인 채 다짜고짜 마차에 태워졌다. 덕분에 모브 해변으로 향하는 마차 내부는 그녀가 따지는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나저나, 중세에 있는 해변가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전생에 방문했던 해변은 빌리는 것만으로도 7만 원씩 내야 하는 평상들과 바닥에 밟히는 유리 조각들과 쓰레기 때문에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으니까.

"바다는 물이 짜다는 데 정말일까..?"

루나가 들뜬 목소리로 마차 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루나한테는 처음이겠네.'

부둣가를 끼고 사는 마을에 살거나,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은 평생 바다를 볼 일이 없는 사람들이 이곳에선 허다했다. 내가 원래 살던 세계처럼 TV 같은 매체가 발달하지도 않았고, 전해 들을 수 있는 정보라곤 사람들 입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이나 책이 전부였으니까.

"..흠."

조용히 책을 들여다보던 유리가 입을 열었다.

"순전히 놀 작정으로 가는 건 아니야. 모브 해변은 사람의 손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곳이니까 생태조사의 일환도 포함돼있거든."

그녀의 말을 듣고 문득, 원초적 의문이 떠올라 묻는다.

"유리, 바닷물에 서식하는 사르카도 있을까?"

"있을 거라 생각해. 예전부터 항해하는 배를 습격했다는 괴물에 대한 괴담 같은 게 자주 있었고."

어부들은 그것이 크라켄 같은 신화 속 괴물이라고 말했지만, 노골적으로 사람을 노렸다는 점이나 대부분 검은색으로 묘사되었다는 걸 봤을 때 그것들 또한 사르카였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하아."

생각지도 못한 납치 휴가에 화를 내다가 겨우 진정된 카르네가, 한숨을 쉬며 묻는다.

"근데, 해변에서 갈아입을 옷은 있어? 이런 걸 입고 들어갈 순 없잖아."

마차 시간에 맞추기 위해 카르네를 수도원에서 거의 들쳐메듯이 데려왔기 때문에, 그녀의 복장은 그곳에서 입고 있던 그대로였다. 그녀의 루나가 답한다.

"그거라면 내가 챙겼어. 무려 외국 상인한테서 얻어왔단 말씀!"

루나가 자신이 챙겨온 짐 보따리를 신난다는 듯 흔들었다.

"어떻게 생겼는지 좀 볼 수 있을까? 궁금한데."

"안돼! 해변에 도착해서 공개할 거야."

이 시대의 수영복이니까, 천의 면적이 조금 작은 옷 같은 형식일 거라고 생각한다.

마차로 조금 더 가자, 반짝이는 해변이 펼쳐졌다.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와아.."

노골적인 현수막과 파라솔로 뒤덮인 익숙한 한국의 해변과는 달리, 오로지 하얀 백사장과 파도만으로 덮인 해변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도착지에 가장 먼저 내린 유리가 짐을 내리며 말한다.

"여기서부터는 마차가 못 들어가서 짐은 직접 옮겨야 해. 내려가면 각자 루나가 가져온 옷으로 갈아입고 모이자."

빈둥빈둥 유리의 저택에서 일주일을 보낼 계획이 깨진 건 아쉽지만, 이것 또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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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생각은 5분 만에 깨졌다.

"루나, 이거 진짜 옷 맞아…?"

가슴을 겨우 가리는 천 조각을 위에 보라색 망토를 걸친 내가,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그럼! 외국에서는 다들 해변에서 이렇게 입는대!"

루나가 가져왔다던 옷은, 누가 봐도 비키니 그 자체였다. 삼각형 모양의 천 두 개를 끈 몇 개로 겨우 지탱하는 상의와 가릴 곳만 간신히 가리는 팬티 형태의 하의가 그랬다.

'이런 걸 어떻게 입으라는 거야..'

도저히 이걸 드러낼 자신이 없어서, 망토를 둘러 그것을 감추어버렸다.

"아깝게 왜 감춰, 사야? 난 옷에서 해방된 것 같아서 너무 편한데."

내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커다란 무기를 흔들며 뛰어다니는 루나였지만, 어딜 봐도 살색 뿐이라 눈을 어디에다 둘지 모르겠다.

그리고 내 옆으로, 어느새 정체 모를 열매에 빨대를 꽂아 마시고 있는 유리가 다가온다.

"...이래서 그레이스한테 뭘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유리는 자신의 수영복 끈을 잡아당기거나 한 뒤, 평가를 내린다.

"천박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편의성은 있네."

유리의 수영복은 앞서 본 루나의 것과는 달리 조금 얌전한 편이지만, 엉덩이를 훤히 드러낸다는 점은 같았다.

"..."

내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유리가 가슴을 가리며 묻는다.

"어디 이상해?"

"아니. 귀여워서."

"귀엽다고..?"

매일 그녀가 말끔하게 차려입은 옷을 입은 모습만 보다가, 격식 없는 복장을 입은 것을 보는 건 처음이다.

"..이런 시대를 100년은 앞서간 복장을 대체 어디서 구해온 건지."

유리의 지적은 정확했다. 내가 살던 세계에서조차도 유교에 심취하신 분들이 가끔 발작을 일으킬만한 복장이니까.

그런데 모이기로 한 후 10분은 지났을 텐데, 나머지 한 명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카르네는?"

"아까 갈아입는다고 수풀 뒤로 갔었는데, 아직 안 왔어."

"..희한하네."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어 카르네에게 찾아가 보기로 했다.

"카르네, 여기 있어?"

수풀 사이를 거닐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누군가의 손이 나를 꽉 끌어당긴다.

"쉿, 조용히 해봐!"

수풀 뒤에서 그녀가 나와 깊게 밀착하자, 드러난 살결이 서로 부담스럽게 인사한다.

"...미안하지만, 나 여자랑 이러는 취향은 없는데.."

"뭐라는 거야, 멍청아!"

그렇게 말하는 카르네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목 부근을 비추었다.

"...갈아입긴 했는데, 여기가…"

"목..?"

거기에는, 훤히 드러난 낙인이 있었다.

'그랬었지..'

그녀가 워낙 내색을 안 해서 그랬는지, 그녀의 목에 노예의 낙인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평소에는 목이 가려지는 옷만 입기 때문에 드러날 걱정이 없지만, 비키니는 목을 드러내야만 했다.

"..애초에 너밖에 모르니까. 내 몸에 이런 게 있는 건."

아무리 팀원들이 서로 거리감이 없는 사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감추고 싶은 사실 하나쯤은 있는 법이다.

"..잠깐만."

나는 걸치고 있던 망토의 끝단을 찢어, 카르네의 목에 둘러 스카프처럼 묶었다.

"어?"

자신의 목에 천을 감긴 그녀는, 의아한 눈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이래도 돼..? 그 망토, 자주 입는 건데.."

카르네의 말처럼, 도적단 시절부터 꾸준히 걸치고 다니던 망토였다. 주로 전투에 나갈 때 둘렀지만, 그렇기에 평화로운 지금은 잘 입을 일이 없어 보통 가방 안에 넣어두고 있었다.

"이제 쓸 일도 거의 없는데 뭐. 이렇게라도 써먹어야지."

"...."

찢고 보니, 망토의 양쪽 길이가 안 맞아서 영 어색해 보였다. 결국, 몸을 가리기 위해 덮고 있던 망토를 벗어버렸다.

"이리 줘."

그 모습을 본 카르네가 자연스레 내 망토를 뺏어 들었다.

"...?"

"돌아가면 수선해줄게."

함께 해변 쪽으로 걸으며, 카르네가 작게 말한다.

"..고마워."

그 뒤로 돌아가는 내내,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쭉 침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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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녀와 나는, 다시 유리 쪽으로 합류했다.

"카르네, 놀자!"

"뭐? 잠깐만..!"

카르네가 그녀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가볍게 끌려가 버린다.

"얘는 대체 뭐 이리 힘이 세..!?"

루나가 카르네의 손을 잡고 강제로 바다로 끌고 갔고, 모래사장에는 나와 유리만이 남았다.

"..하암."

해변가에 임시로 깐 돗자리에 누운 유리가 엎드린 채 하품을 하며 책장을 넘겼다. 그 모습에, 내가 묻는다.

"바닷가까지 와서도 독서?"

"오빠가 가지고 있던 건데, 나름 읽을 만 하더라고."

빈센트에게서 사르카에 관한 여러 가지 서적을 빌렸는데, 생각보다 취향에 맞았던 듯하다. 책을 덮은 유리가 나를 올려보며 물었다.

"극한 상황에 몰린 사르카가 에너지를 어떤 식으로 비축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에 대한 내용이야. 흥미 있어?"

"아니, 나는 책은 좀.."

요새 업무 때문에 하도 종이랑 글자만 쳐다봤더니, 관련된 것만 보아도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사야. 할 일없으면 나 좀 도와주겠어? 해보려던 실험이 있거든."

"실험?"

나에게 도움을 제안한 유리는 가져온 백에서 투명한 병을 꺼내 들었다.

"뭐야, 그건?"

거의 투명하지만, 묘하게 햇빛을 투과시키지 않는 신기한 액체가 든 병이었다.

"내열 포션이랑 수속성 저항 용액을 섞은 거야. 일반 포션은 물에 닿으면 씻겨버리니까, 두 가지를 혼합하면 어떨까 했거든."

'지독하다, 지독해..'

굳이 바닷가까지 와서 이런 실험을 감행하는지는 모르지만, 순순히 참여해주기로 했다.

"뭘 어떻게 하면 될까?"

"간단해. 용액을 내 피부 위에 발라줘."

"내 도움이 굳이 필요한 거야..?"

"혼자서는 손이 안닿는 부위가 많으니까."

"..알았어."

그녀가 준용액의 뚜껑을 열어 손바닥에 부어보았다. 묘하게 위험한 냄새를 띄는, 점성이 조금 있는 액체였다. 열에 내성이 있는 건지, 뜨거운 햇빛에 노출되었는데도 차가운 상태 그대로였다.

"..바른다?"

"놓치는 데 없이 꼼꼼히 해줘. 어느 부위에서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르니까."

유리가 자신의 등에 묶인 수영복의 매듭을 풀자, 새하얀 등이 그래도 드러났다. 안 그대로 하얀 피부가, 햇빛을 통 보지 않는 그녀의 성향 때문인지 더욱더 하얗게 느껴졌다.

나는 병을 기울여 용액을 그녀의 등에 조심히 떨어뜨렸다.

"...흣..!"

그러자 유리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 화들짝 손을 거두었다.

"왜 그래, 아파..?"

"..아니, 계속해. 사야."

그녀가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자 뿌려진 용액을 손바닥으로 눌러 등에 넓게 퍼 발랐다.

"...읏…."

처음엔 차가움을 느끼던 유리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몸을 움찔하는 것이 눈에 띄게 줄었다.

어느 정도 등 전체에 액체가 발리자 내가 손을 떼고 물었다.

"..이 정도면 됐어?"

"아래도 부탁해."

"아, 맞네."

이번에는 그녀의 하반신에도 액체를 퍼 발랐다. 허리 부근부터 시작해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까지 차근차근 내려갔다. 그리고, 발가락을 만졌을 때였다.

"...푸훕.."

"...?"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그녀의 발가락을 깍지 끼듯 쥐어보았다.

"푸하하하..!!"

'여기가 간지럽나?'

문득, 그동안 집무실에서 그녀 밑에서 묵묵히 당해오던 수모가 떠오른다. 끊이지 않는 서류와 칭찬 한번 없는 유리라는 상사의 태도가 알게 모르게 서운했었지.

괜히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녀의 발을 격렬하게 간지럽혔다.

"푸하하..! 사야, 거긴 그만…!"

내 발 마사지는 그녀가 애원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고, 유리가 몸을 비틀며 괴로워 할 때 쯤 겨우 멈추었다.

"자, 끝났습니다."

"..일부러 그랬지. 너.."

"누가 꼼꼼하게 해달라고해서."

"누가 봐도 고의로.."

유리가 뚱한 표정으로 수영복을 다시 주워입는데, 우리 쪽으로 거대한 물세례가 퍼부어졌다.

"...!"

범인은 안 봐도 루나 그레이스였다.

"둘이 뭐 하고 있어, 같이 놀자..!"

물세례에 흠뻑 젖은 유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 어차피 슬슬 들어가려고 했고."

그녀들을 따라 바다에 몸을 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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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지치네..'

한참 물장구를 치며 놀다가, 지쳐서 슬그머니 외딴곳으로 헤엄 쳐 갔다.

원래 물놀이를 그렇게 좋아하던 편은 아니지만,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다에서 하는 수영은 느낌이 색달랐다. 가만히 누워있는 거로도 힐링이 되는 게 느껴질 정도다.

'신기해. 당장 목숨 부지할 걱정 하고 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문득, 아픈 이름들이 스쳐 지나간다.

백묘, 흑견, 크리스, 소라, 더스틴.

멀쩡히 살아있었다면, 아마 같이 이곳에서 같이 뛰어놀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다.

'...'

잠시 명상에 잠길 때면 어김없이 그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내가 이런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을까?

내 손에 죽고, 나로 인해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는 것은 언제나 괴로운 일이었다.

[ 아직 죄책감을 느끼는군. ]

바다에 가만히 누워있자니, 인비디아의 사념이 들려왔다.

'당연하지. 나 혼자 이렇게 여유롭게 놀고 있는데.'

[ 그자들이 네가 불행하기를 빌기라도 한다는 거냐? ]

그건 어떨까.

백묘 대장이라면 솔직히 이후로 내가 어떻게 살든 신경 안 쓸 것 같고, 흑견 씨라면 지금도 걱정하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저항군의 모두는…

서서히 그런 생각에 빠져들 때쯤, 인비디아가 말한다.

[ 사야. 네가 원한다면 그들에 관한 기억을 지워 줄 수도 있다. ]

'.....뭐?'

[ 기억을 지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네가 그로 인해 힘들다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지. ]

'기억을 지워..?'

확실히, 그들에 관한 기억을 지우면 매일 죄책감 속에 살지 않아도 될 거다. 밤마다 악몽에 잠을 지새우는 일도 없을 것이고, 칼을 쥘 때마다 손이 떨리지도 않을 테니까.

'..인비디아.'

나는,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호의는 고맙지만, 절대 잊으면 안 될 것들도 있거든. 거절할게.'

[ ..네 의사를 존중하마, 사야. ]

그들을 잊는다는 것은, 사야 바르나바의 인생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들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사야!"

물에 둥둥 떠 있는 내 위로, 루나의 얼굴이 드리웠다.

"뭐해?"

"..시체놀이."

"저쪽에서 가자. 너 없으니까 경기가 성립이 안 돼."

"인원수 때문에?"

공놀이라도 하는 모양인데, 내가 없어서 곤란한 모양이었다.

"아니, 유리가 너무 잘해서 2대 1로 부족해. 너까지 붙어야 유리랑 해볼 만할 것 같거든."

'..못하는 게 있긴 한가, 걔는..?'

그녀의 터무니없는 재능에 놀라는 것도 이제 지친다.

"잡아줄게, 일어나. 사야."

그녀가 뻗은 손을 잡으려다가, 문득 루나가 많이 달라 보임을 느낀다.

"...엄청 많이 컸네. 루나."

"응?"

5살 때 보였던 미소와는 전혀 다르지 않았지만, 이제는 키조차도 나를 훌쩍 넘어서고, 여러모로 성숙해졌다. 그녀는 정신적으로는 나보다 짧은 생을 살았을진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훨씬 성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빨리 와. 유리가 보채겠다."

내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는데, 무게 때문에 루나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버린다.

"꺅..!"

"루나..!?"

잠시 물에 빠졌던 루나는 곧바로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물이 별로 깊지 않았기에 다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아야야.."

"...잠깐만, 너 가슴에.."

"응?"

그런데, 물 밖으로 나온 루나의 몸에 무언가가 착 달라붙어 있었다. 빨갛고 다리가 다섯 개는 달린, 불가사리 같은 해양 생물체가 루나의 수영복 안쪽에 슬그머니 자리 잡아버렸다. 당연히, 이질적인 감각을 느낀 루나는 기겁을 하며 달려들었다.

"꺄악..! 떼 줘, 떼 줘…!"

'얘도 무서워하는게 있구나.'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벌레를 맨손으로 때려잡는 루나지만, 해산물에는 내성이 없었던 모양이다.

"잠깐, 가만히 있어 봐..!"

안 그래도 빨판 때문에 잘 떨어지지 않는데, 루나가 몸을 움직여 대서 더욱 애를 먹었다. 그녀의 가슴을 잡고 놓아주지 않으려는 생물체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 떼어냈다.

"뗐다!"

루나의 가슴에 찰싹 붙어있던 불가사리 비슷한 생명체를 떼어내자, 루나가 울먹거리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기분 나빠…"

"안 다쳐서 다행이네."

그나마 유해한 생명체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루나를 달래며 다른 이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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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놀다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밤의 해변은 다른 매력이 있었다. 유리가 준비한 풍등들을 우리가 손에 쥐고 날려 보내자 빛이 물가에 반사되며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다.

"..예쁘네."

비록 아르모니아의 풍습은 아니지만, 풍등을 위로 날릴 때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는 루나의 말에 따라 모두 각자의 소원을 담아 날려 보냈다.

"잠깐, 내 것은 안 날아가는데? 왜 너희 것만 날아가..!?"

카르네가 좀처럼 뜨지 않는 풍등을 흔들며 호소하자, 내가 말했다.

"이미 소원을 이뤘나보네."

"그런 게 어딨어..?"

카르네는 계속 풍등을 멀리 던져댔지만, 그때마다 다시 가라앉았다.

'딱 봐도 루나가 장난쳐 놨겠지.'

그 모습을 보며 키득키득 웃던 루나가, 나에게 묻는다.

"무슨 소원 빌었어, 사야?"

"나는.."

다른 세 명의 앞길이 평탄하기를 빌었다. 팀원들이 저주니 사르카니 하는 것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무사히 생을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묵묵히 하늘을 바라보는 유리를 향해 내가 묻는다.

"유리, 너는?"

"..."

내가 물었지만, 그녀는 말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유리, 무슨 소원 빌었어?"

"어!?"

내 말에 유리가 화들짝 놀라며 대답한다.

"..알아서 뭐 하려고."

"...뭐야, 궁금하게."

"..흐음."

나와 함께 그것을 바라보던 루나가 말한다.

"프리지아는 이상한 데서 부끄럼타더라?"

"아니거든?"

"그럼 왜 말을 못 해?"

"내 맘이야."

다들 시끌벅적 해져선, 어느새 풍등에는 관심도 없어져 있었다.

하늘이 몰라보게 어둑어둑해지자, 내가 말한다.

"그만 돌아갈까? 너무 어두워지면 마차가 못 다닐 거 같은데."

모두들 그것에 동의하는 눈치였는지, 피곤한 몸을 움직여 짐을 챙겨 들고 마차에 올라탔다.

오랜 물놀이가 피곤했던 모양이라 대부분 마차에 오르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나 또한, 몸이 노곤해서 금세 잠들어버릴 것 같았다.

"..사야."

막 잠들려던 나를, 깨어있던 유리가 불렀다.

"응?"

"너에겐, 항상 감사하게 생각해."

눈치가 빠른 유리니까, 내가 그녀를 살리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노력했음을 초반부터 눈치챘을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었지만.

"..뭘. 새삼스레."

유리와 대화를 할 때에는 무언의 규칙이 하나 있다. 바로 서로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묻지 않는 것.

서로에게 무슨 행위를 했건 간에, 그 이유만은 굳이 묻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 터치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고,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어딘가 다른 듯하면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공유하는 듯했다. 내가 만든 인물이어서 그랬을까.

'너무 졸린 데..'

그녀와 좀 더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잠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중이었다.

"사야, 아직 그 제안 유효해?"

"..?"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내가,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택에 왔었을 때의.."

….

­­­­­­­­­­­­­­­­­­­­­­­­­­­­­­­­­­­­

"사야. 사야?"

유리가 그렇게 말하며 사야를 보았을 때는, 그녀는 이미 잠에 빠져든 후의 모습이었다.

'잔다고? 아직 말하는 도중인데…?'

깨울까도 했지만, 잠에 빠져든 사야의 표정이 너무나도 편안해 보였기에 유리는 굳이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또 나만 진심이지."

작게 한숨을 쉰 그녀는, 피곤한 몸을 기대고 뒤따라 잠을 청했다.

(외전) 여름의 해변에서 ­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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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아포포 작가님께서 완결 기념 팬아트들을 보내주셨습니다..!

무려 칼라 삽화까지.. 따흐흑...

온천 사야 눈동자가 엄청 매력적이네요.

계신 방향으로 머리박고 백만번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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