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81화 (81/102)

〈 81화 〉 못다 한 이야기 (2)

* * *

분위기가 살벌했다.

가운데에 앉은 나를 중심으로, 유리와 그의 오빠인 빈센트가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았다. 시간이 한참 흘렀음에도 좀처럼 깨지지 않는 정적 때문에 괴롭다.

그렇게 한참을 대치할 무렵, 드디어 유리 프리지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무슨 낯짝으로 여길 찾아왔어?"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는 유리의 눈에 살기 비슷한 것이 느껴졌다. 어마무시한 기운에 눌려 제대로 그녀를 바라보지 못하던 사내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동생아. 그게, 그동안 돌아오려고 했었는데 말이야.."

그도 처음부터 거의 10년에 걸친 기간을 외도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한다. 적당히 2년 정도 있다 오면 부모님의 생각이 바뀔까 하여 가출을 감행했던 그였으나, 도중에 문제가 하나 생기고 말았다.

"..사르카 서적을 반입하다가 들켰다고?"

"그래.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했었지."

숲의 버려진 오두막에서 삶을 연명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연구심을 억누르지 못한 그는, 다른 나라에서까지 사르카 관련 서적을 밀반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경비병에 의해 발각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진짜 죽기 살기로 가진 것도 다 버리고 옆 나라로 도망쳤었어. 그랬었는데, 이번에 법이 바뀌었다는 소문이 돌지 뭐야.."

유리가 단장직에 오른 이후, 아르모니아 제국에 존재하던 썩어빠진 법들은 대부분 개정되었다. 물론 황제와 나의 개인적인 친분으로 인한 입김이 더 크게 작용했지만.

개정된 법 중에서는, 사르카에 대한 서적을 금지하는 법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차분히 그의 일대기를 듣던 유리가, 날카로운 음성으로 그에게 취조하듯 물었다.

"..빈센트. 설마 그동안 모은 책들을 버리는 게 싫어서 못 돌아왔던 건 아니지?"

".....그럴리가!"

"..흠."

대답 앞에 약간 뜸이 있긴 했지만, 유리는 그 부분에 대해서 깊게 추궁할 생각은 없던 모양인지 더 묻진 않았다.

"좋아."

이제 됐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의자를 집어넣고 말한다.

"이제 이 집에서 나가 줘."

"...어?"

그녀의 선언을 들은 빈센트가, 난처한 듯 말한다.

"나가라니, 우리 집을..?"

"여긴 내 명의로 물려받은 내 저택이야. 그러니까 나가라고. 네 물건들이랑 같이."

"...윽.."

유리에게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빈센트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대문으로 향했다. 그걸 잠자코 보고 있던 내가 그녀에게 묻는다.

"유리, 그래도 네 오빠잖아. 이건 조금 너무한 게 아닌가…."

"너도 나가."

"...?"

그녀에게서 돌아온 건, 나 또한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였다.

"아니, 나는 왜..?"

"그냥!"

결국, 빈센트와 나는 나란히 대문 밖으로 쫓겨났다. 그의 낡아빠진 책이며 물건들과 함께.

산더미같이 쌓인 책더미 속에서 빠져나온 빈센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한다.

"이걸 어쩌나, 내 동생이 화가 꽤 난 모양이야."

"..그걸 말이라고요."

"그러고 보니 자네는.."

유리의 기에 눌려 서로 인사조차도 못 나눴던 나와 빈센트는 그제서야 서로의 존재를 인지했다. 나는 그를 향해 이름을 댔다.

"사야에요. 유리의 직장 동료. 사르카에 대해 연구일지 써두신 것 잘 봤어요."

"이야, 그건 좀 부끄러운데…하도 예전에 적어둔 것들이라..."

자신이 남겨둔 글귀를 떠올리며 머리를 긁적이던 그는 갑자기 나를 붙잡고 묻는다.

"잠깐. 사야? 그 사야 바르나바?"

"..네. 그런데요..?"

정신없이 그가 어깨를 흔드는 탓에 얼떨떨해진 내가 되물었다.

"맙소사. 몸에 사르카를 품고 있다던 령사가 바로 자네였구나!"

"..저를 알고 있었어요?"

"알다마다! 이쪽 업계 사람들끼리는 알아주는 유명인일세, 자네는!"

하긴, 대놓고 사르카의 힘을 쓰는 인간의 소문이 안 퍼지려야 안 퍼질 수 없긴 했다. 그게 옆 나라까지 퍼졌을 줄 몰랐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자네의 몸을 한번 검사해볼 수 있겠어? 그리고, 될 수 있으면 그 몸 안에 있다는 인비디아라는 고대종에 관해서도…"

진성 사르카 매니아인 빈센트였기에, 자신의 눈앞에 놓인 흥미로운 실험체를 보고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지금 그런걸 요청할 때가 아니잖아요. 쫓겨났다고요, 우리."

"아, 그랬었지. 참.."

어차피 상황이 이러지 않았어도 안 해줄 거였지만.

"어떻게 하면 유리의 화가 풀릴 것 같아요?"

"..화를 푼다고? 그런 건 무리야. 어렸을 적부터 유리는 보통 고집이 아니었거든."

과연, 나 다음가는 유리 전문가다운 판단이다. 문득, 유리의 어린 시절에 대해 궁금해졌다.

"어릴 때의 유리는 어땠어요? 그래도 지금보단 귀여웠겠죠?"

"..고집이 좀 셌던 거 말고는 귀여웠어. 단지.."

빈센트의 표정에 약간 그림자가 드리웠다.

"자기 나이치고는 현실을 너무 빨리 알아버렸지."

그녀가 또래들과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했던 그에게는, 어른스러운 그녀의 행보가 대견하면서도 눈에 밟혔던 모양이다. 나는 벽에 쭈그려 앉아 그를 바라보다가,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 이 남자랑 있으면, 느낌이 이상하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빈센트 프리지아는 전생의 나를 쏙 빼닮은, 그야말로 내 인생을 옮겨둔 것 같은 인물이었으니까.

전생에서의 나는 누가 봐도 실패한 인생이었다. 유일하게 쥐고 있던 글쓰기 취미 가지고는 당장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하나 빌어먹기 어려웠고, 가족들이 그런 나를 보는 눈은 더욱 참담했으니까.

남들이 다 진학한다는 대학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서 글자나 쓰고 있으면 무언가 될 것 같아서, 현실을 외면하고 하루하루 소설에 달리는 냉담한 댓글들을 읽으며 맥주나 진탕 마셔댔을 뿐.

어느 날은 노트북 화면을 켜놓고 집을 나갔다가, 그걸 발견한 아버지로부터 언제까지 이런 거나 잡고 있을 거냐 질타를 들었던 기억도 있었다. 결국 집에 있는 게 너무 괴로워 밖으로 나왔지만, 그날이 이런 식으로 소설 속에 전생하게 될 날이 됐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빈센트의 일대기는 어찌 보면 내 일대기였다. 성공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며 주변으로부터의 냉담한 반응을 두려워하다 결국 일탈을 시도했던 그였다. 이 시대에 트럭 같은 게 있었다면, 그도 진작에 치여서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사르카로 전생했거나 하지 않았을까.

'..내가 계속 거기 살았다면, 이런 느낌으로 늙었으려나.'

어쨌든, 여기에 계속 이러고 있는다고 해결될 것은 없어 보였다.

"빈센트. 유리에게 사과라도 하는 게 어때요? 당신 때문에 괜히 나까지 쫓겨났으니까 뭐라도 해 봐요."

일주일간 그녀의 저택에서 호캉스 못지않은 호화를 누리려고 했던 내 계획이 이 남자 때문에 전부 틀어졌다.

"..알았어. 한번 해볼게."

"솔직하게 해요."

"...그러지."

대문을 두드리고 목을 가다듬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안해, 유리. 나한텐 가족보다 꿈이 더 중요했었거든."

대문의 건너편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사과를 이어나갔다.

"너한테 가족 일은 전부 팽개치고 도망간 것도 사과할게."

"......"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녀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역시, 잘 안 되려나 봐."

그가 포기하고 돌아서려고 할때, 건너편에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놈의 연구는 어떻게 할 생각인데. 그만둘 생각은 있어?"

"...!"

유리의 질문에 빈센트가 나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듯 보였다.

"..빈센트, 솔직하게 말해요."

"..."

나의 대답을 들은 빈센트는,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한다.

"..미안. 연구를 그만둘 생각은 없어.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야. 하지만, 이제 가족으로써의 내 역할까지 팽개치진 않을게."

그제야 문이 열리고, 뚱한 표정의 유리가 나타났다.

"그 정도면 됐어. 들어와."

역시 유리라는 여자에게는, 백 개의 사과보다 한 개의 진실이 더 잘 먹혔다.

"..고맙네, 사야."

그런데, 나와 함께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빈센트를 유리가 막아섰다.

"잠깐. 오빠는 안돼."

"...?"

유리는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 일주일만 더 있다가 들어와. 같이 지내면 사야가 불편해할 수도 있잖아."

"어....?"

그의 애처로운 눈이 나에게 향했다. 그것이 나를 향한 구조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이미 10년 정도는 밖에서 잘만 지냈잖아? 일주일 정돈 별거 아니지?"

매정하게 문이 닫히고, 빈센트의 애처로운 표정만이 기억에 남았다.

'..미안, 빈센트.'

그녀를 따라 들어가는데, 유리가 내게 묻는다.

"사야. 왜 빈센트를 감싸지 않았어?"

유리의 물음에, 내가 답한다.

"그랬으면 또 같이 내보낼 거잖아."

"..의외로 똑똑하네."

그녀가 나를 향해 개운한 듯 웃었다.

­­­­­­­­­­­­­­­­­­­­­­­­

'와, 여긴 기숙사랑 침대 재질부터가 다르네.'

거리낄 것 없이 유리네 저택에서 일주일간 먹고 자고 놀 생각에 벌써부터 행복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누워있자니, 유리가 찾아와 내게 뭔가를 건넸다.

"사야, 이거 받아."

"뭐야? 홍차? 과일?"

그것을 받아든 나는, 불안감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유리가 내게 건넨 것은 몇십장 정도 되는 서류로, 예산 같은 목록이 적나라하게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불안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묻는다.

"..유리, 이게 웬 서류일까?"

"여행 계획 짤 겸 예산 분배서. 둘이서 오늘까지 끝낼 거야."

"..잠깐, 우리 일주일간 여기서 지내는 거 아니었어..?"

내 말에, 유리가 하품을 하며 말한다.

"무슨 착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예산 신청도 넣어뒀어. 마차 4명분 교통비랑 식비랑 이것저것."

"4명..?"

지도를 꺼내든 유리는, 노랗게 표시된 해안가를 가리키며 말한다.

"팀원들 데리고 해변에 갈 거야."

7일간 저택에서 먹고 마시려던 내 계획은 이로써 허무하게 끝이 났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