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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78화 (78/102)

〈 78화 〉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 ­ ( 完 )

* * *

아르모니아 제국의 황제 앞에 무릎 꿇은 유리와 내가, 나란히 훈장을 수여받았다. 비올레의 몸에 깃든 굴라로부터 세말의 안위를 지켜내고, 남아있는 고대종들까지 전부 찾아내서 제거한 성과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몇 번이나 나와 술잔을 나란히 했던 황제가, 나에게 친히 악수를 권했다.

"사야 바르나바, 그대의 업적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네."

"..영광입니다, 폐하."

그가 나와의 악수를 끝낸 후, 귓속말로 이렇게 말해온다.

"...사야. 자네가 사형당할 뻔했을 때 실은 내가 응원하고 있었던 것 알고 있지? 그때는 체면이랄까.. 분위기상…."

땀을 삐질삐질 흘려대는 황제에게, 뒤에서 이사벨 황녀로부터의 날카로운 일침이 날아든다.

"추해요. 아바마마."

"...."

황제는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황급히 식을 마무리했다. 그가 사건의 내막을 자세히 알게 된 데에는, 남몰래 제국의 뒷사정을 파악하던 이사벨 황녀의 공로가 상당 부분 존재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그녀는, 내게 작게 말한다.

"잠깐 시간 좀 내주겠어요, 사야?"

"네, 물론이죠."

황녀로부터 잠깐 시간을 내줄 것을 요청받은 나는, 단상을 같이 내려온 유리에게 손짓을 주고는 황녀를 따라 뒤뜰로 나왔다.

"당신이 이곳에 나타난 뒤로, 많은 게 바뀌었어요. 저도, 폐하께서도. 그리고 국민들까지요."

"...그런가요?"

내 기준으로 과거와 바뀐 것이라곤, 굴라와 싸울 당시의 피해가 워낙 커서 상가 건물들의 배치가 확 바뀌었다는 것 정도였다.

"당신이 수인들을 정식 시민으로 받아들일 것을 건의한 이래로,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죠. 또 알아요? 사르카를 연상시킨다며 꺼림 받던 검은 머리색이, 이제는 행운의 상징이라며 따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요."

"내가.. 행운의 상징..?"

확실히 불행을 몰고 온다며 술집 출입도 제한되던 때에 비교하면, 정말 많이 달라졌다.

"..사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유리 님의 공로만을 인정 하시는 분들도 상당하지만요."

"데려와요, 그 자식들. 얼굴 좀 보게."

"그건 절 봐서 참아주세요, 사야."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내 손을 잡아 쥐었다.

"..."

나는 그녀에게서, 어딘가 달라진 점을 발견한다.

"이제 호위를 안 두네요, 이사벨?"

"...크리스만큼 완벽한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녀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이사벨, 크리스는…"

"알아요. 그가 어떤 야망을 품고 있었는지는."

"알고 계셨어요..?"

크리스 바르나바는 그녀의 호위이기 이전에, 황제 암살이라는 목적을 품고 있었던 저항군이었다.

"이제 와서 크리스가 어떤 목적으로 저에게 접근했는지는 중요치 않은걸요. 그저 따듯하고, 재밌는 사람이었어요."

"...동감이에요."

그저 남들 앞에서 웃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따듯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크리스 바르나바라는 남자는.

"뭣하면, 사야 님이 호위해 주실래요?"

나는 그녀의 장난스러운 요구를 손을 절레절레 저어가며 거절한다.

"무리에요. 이미 꽉 막힌 여자 밑에서 일하고 있는걸요."

"어머, 유리 님이 들으시면 섭하시겠는데요."

이사벨과 걷고 있던 내 등 뒤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꽉 막혔다고?"

[ 살기가 느껴진다, 사야..! ]

인비디아도 느꼈을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운이 여기까지 전해져온다.

이사벨 황녀를 보며 무서웠던 표정을 살갑게 바꾼 유리는, 그녀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말한다.

"저희 수행원이 많이 바빠서요, 황녀님. 이만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그녀와 내 표정을 번갈아 보던 이사벨은, 키득키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마음껏 데려가세요. 령사 단장 프리지아."

황급히 이사벨과의 인사를 마친 후, 나는 유리에게 끌려나가듯 성 밖으로 나왔다. 얼굴에 그림자를 잔뜩 머금은 그녀가, 나를 향해 말한다.

"이번 주 업무만 얼마나 밀렸는지 알아..? 밤새서 처리해도 모자랄 판에 공주님이랑 밀회할 시간은 있으신가 보네..?"

"...혹시 질투야, 유리?"

"....다시 한번 말해 봐."

살짝 쳐본 장난에 그녀의 표정의 장난 아니게 무서워져서 집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입을 꾹 다물었다.

...

연속으로 네 시간 째, 서류 더미만 쳐다보고 있다.

'아니, 수행원이 무슨 이런 것까지 해야 해..?'

과거 령사단장의 비서까지 도맡아 했었다는 아이리스 교관이 다시금 존경스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슬쩍 탈출할까도 했지만, 유리의 책상에는 내 분량의 배나 되는 서류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

그때, 문밖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려오며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시원스레 열어 제꼈다.

"자유다­­­­!"

핏자국이 덕지덕지 묻은 무거운 갑옷을 벗어 던진 금발의 여성이, 하나뿐인 소파 위로 날아들었다.

그녀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던 유리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한다.

"집무실은 직원 휴게실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합니까, 그레이스 교관."

그러나 이미 집무실 한가득 살림을 차려놓은 루나 그레이스에게, 그녀의 위협 같은 것은 통하지 않았다.

"여기가 제일 시원하단 말이야..! 하루종일 목검 휘두르는 사람의 더위를 몰라주다니!"

클레드가 교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그의 추천에 따라 이례적으로 기사 신분의 루나가 아카데미의 전투 교관직을 맡게 되었다. 소파에 누워 만족스러운 얼굴로 잠에 빠져든 그녀를 바라보던 유리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하아."

'..말로는 안된다고 하면서 결국 다 봐준단 말이지. 유리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루나가 령사들을 가르치는 실력만큼은 전에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에, 그녀가 전투 교관을 맡고 있는 것에 일말의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학생들을 하도 진심으로 패대서, 가끔 실려 가는 인원이 나오는 것 빼고는.

슬슬 서류작업도 어느 정도 진척이 보일 무렵, 유리가 내 뒤로 와서 말한다.

"거기까지 하고 일어나도 돼. 사야."

"...?"

내가 정말 의외라는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보자, 그녀가 내 자리에 대신 앉으며 말했다.

"수요일마다 보육원 들리잖아. 내가 이어서 할 테니까 다녀와."

"..사랑해, 프리지아."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하면 혀 잘릴 줄 알아."

그녀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을 뿐인데, 생명의 위협을 받아버린다.

휘파람을 부르며 나가려던 내가, 멈춰서서 유리에게 묻는다.

"맞다. 승부는 어쩌게?"

"당연히 이번 주도해야지. 아직 21승 22패야."

그녀와의 승부는 어느새 관례처럼 되어버려서, 주말마다 목검을 들고 하는 결투의 승패를 계산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내가 진 걸로 하면 안 될까?"

"절대 안 돼."

아마 이번 주도, 신나게 그녀의 목검에 얻어터질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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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말 시내에 위치한 검은 개 보육원.

과거 더러운 음식점이 있던 곳을 허물고 구조를 모두 뜯어고쳐서 아카데미의 지원을 받는 보육원으로 재공사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내게로, 수인 아이들과 인간 아이들이 잔뜩 달라붙었다,

"와아..! 원숭이 수인 누나 왔다…!"

"원숭이 누나..!"

"원숭이 아니라고….!"

수인 아이들은 그렇다 쳐도, 인간 아이들까지 나를 부르는 이상한 별명이 입에 붙어버렸다. 향긋한 과자 냄새와 함께, 주방장갑을 쓴 누군가가 절뚝대며 나왔다.

"어서 와, 사야."

"잘 지냈냐, 길리언?"

과거 루덴에서의 여정을 함께했던 그는, 나의 권유를 받고 수인 아이들을 세말로 데려와 살고 있었다.

그가 내 차림새를 훑더니, 눈썹을 끔뻑거리며 말한다.

"어라, 머리 다시 잘랐네?"

"아…. 덥더라고. 여름이니까..?"

몇 년 동안 계속 긴 머리를 유지하던 나였지만, 얼마 전부터 덥다고 느껴져서 다시 잘라버렸다.

"그래? 어울렸는데."

길리언이 중얼거리는 동안, 그가 들고 온 쿠키를 몽땅 입에 털어 넣었다.

"어? 야아..! 애들 줄 것까지 먹어버리냐..!"

"뭐 어때. 따지고 보면 다 내 돈이거든?"

"그게 왜 네 돈이야..!?"

"거 과자부스러기 좀 먹었다고 겁나 뭐라고 하네, 쫌생아..!"

"쫌생이…!?"

그는 나에게 있어서, 루나와 함께 거의 유일한 어릴 적 친구였다. 그들 옆에 있다 보면, 어느새 유치해져 버리고 만다.

한바탕 아이들과 어울려 논 후, 길리언을 도와 보육원의 청소를 돕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리언이 나를 배웅하며 말한다.

"그럼, 다음 주에 봐. 사야."

"무슨 소리야. 오늘 저녁에 모임 잊었어?"

"모임…?"

"술 약속, 멍청아!"

잠깐 뇌에 과부하가 온 듯한 길리언은, 이내 떠올랐다는 듯 외친다.

"맞다, 그랬었지..!"

"항상 오던 곳으로 와. 그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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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에 돌아 입은 나를,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루나와 유리가 반겨주었다. 잔뜩 피곤에 쩔은 유리가 하품을 하며 말한다.

"슬슬 가자. 오늘은 진탕 마셔야지.."

"적당히 마셔. 저번처럼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울지 말고."

"내가 언제…!"

버럭 화내려던 유리는, 금세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새빨개진 채 입을 다물었다. 아카데미 부지 밖으로 나와 걷던 중, 루나가 내게 묻는다.

"어디 가, 사야? 그 방향 아니지 않아?"

"무슨 소리야. 한 명 더 데려가야지."

잠깐 내 말뜻이 뭔지 생각하던 루나는, 금세 이해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밤이 되어 굳게 닫힌 아르모니아 대성당의 문에 서서, 내가 미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여기 계신 카르네 에커만 자매님께 볼 일 있어 왔는데요~"

반응이 없자, 또다시 문을 두드린다.

"실례합니다, 여기 계신…"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쿵 하고 문이 열리며 누군가 튀어나온다.

"이것들아…! 나 쪽팔리게 해서 죽일 셈이지, 그치…!?"

수녀복을 차려입은 카르네가, 얼굴을 붉히며 문을 열고 나왔다.

"술 약속 데리러 왔는데요, 카르네 자매님."

"누가 네 자매님이야..!? 그리고 나 이제 엄연히 수녀거든..? 술은 안된다고 몇 번을 말해…!"

"그래? 그럼 그냥 우리끼리 갈게."

"..어?"

카르네를 뒤로 하고, 우리는 그대로 돌아서서 대성당을 나와버렸다.

'....'

일부러 느린 걸음으로 걷고 있자니, 잠시 후 타박타박하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우릴 뒤따른 카르네를 보고, 내가 말한다.

"..어라, 자매님은 안 오신다고 들었는데요."

얼굴에 그림자를 가득 드리운 그녀가 나를 보고 답한다.

"...마음속 깊이 널 저주해. 사야."

세말 골목 가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에 들어선 우리는, 그곳에서 미리 기다리고 있던 길리언과 합류했다. 그와 마주친 루나가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오랜만이야, 길레안!"

너무 당당하게 이름을 틀리는 그녀를 향해, 내가 작게 소곤거렸다.

"..길리언이야, 루나."

"...아, 길리언!"

가만히 듣고 있던 길리언이, 쓴웃음을 지었다.

"넌 여전하구나, 루나."

만담을 지켜보던 카르네가, 한마디 거든다.

"한 곳에서 같이 태어났다는 애들이 서로 이름도 몰라..?"

우리 중에 루나만 그렇지만.

자릴 잡고 앉아있는 우릴 향해서, 후줄근한 차림의 바텐더가 이쪽을 노려보며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한다.

"다른데도 많은데 왜 자꾸만 여길 찾아오는 거냐…"

잔뜩 피곤해 보이는 그를 향해 내가 답한다.

"다른 데는 클레드가 없잖아요."

"내가 너희한테 무료봉사나 하려고 퇴직금으로 여길 산 줄 아냐…? 돈 없으면 다 나가..!"

클레드가 나가라며 고래고래 소릴 질러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고 수다를 떠는 데에만 집중했다.

"..."

어느새 다들 진탕 취해서 인사불성이 됐을 무렵, 잠시 바깥 공기가 쐬고 싶어져 밖으로 나왔다.

"...야, 인비디아."

가게 앞 벤치에 걸터앉아 달을 보며 중얼거렸다.

[ 무슨 용무지, 사야? ]

너무 평화로워진 세계 탓에, 이제는 내 말동무를 하는 것 외에는 잘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는 인비디아였다.

"....진짜로 다 끝났네. 솔직히 안 믿겨."

[ 끝났다니? 네 수명은 아직 25년 하고도 37일.. ]

그가 말을 전부 꺼내기 전에, 내가 가로막는다.

"아…. 씨, 무슨 말을 못 해요.."

[ 물론 농담이다. 실제 수명은 그보다 더 적지. ]

"...이제 사람 다 됐네, 인비디아."

이제는 인간처럼 농담도 던질 줄 알게 된 인비디아였다.

'...그러고보니, 퀘스트는 어떻게 됐을까?'

과거에 아카데미를 한번 벗어난 이후로 단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었다. 단순히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도 있었지만, 자연스레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완전히 의미가 사라져버린 혼돈 수치 따위 같은 것과 함께, 결말을 바꾸라는 심플한 메인 퀘스트가 있었던 것을 떠올렸다.

무서움 반, 궁금한 반으로 눈앞에 그것을 띄워 올렸다.

'퀘스트 창…!'

그러자, 당시에 보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퀘스트 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거의 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해진 채로 깜빡거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용 자체는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그것을 읽어내리던 중, 퀘스트의 진척도에 시선이 고정됐다.

< 99% >

결말을 바꾸라는 퀘스트의 진행도는, 단 1%만을 남긴 99%를 띄우고 있었다.

'...1%가 남았어. 대체 왜..?'

원작 소설에서의 결말은, 고대종에 의한 세계의 붕괴였다. 고대종들의 존재 여부가 종말과 관련이 있음을 눈치챈 나는, 비올레의 몸에 들어있던 굴라를 소멸시키고도 팀원들과 함께 아르모니아 일대를 돌며 남아있던 고대종들을 전부 지워냈다.

그런데도, 1%가 남아있던 것이다.

[ 사야, 아무래도 그건.. ]

"....?"

잠자코 그것을 지켜보던 인비디아가, 사념을 보내왔다.

"왜 그래, 인비디아?"

그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용한 분위기로 읊조렸다.

[ 그건 아마, 내 존재 때문일 거다. ]

잠시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다시 한번 되묻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네 존재 때문이라니."

잠깐 생각에 빠진 나는,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설마, 너.."

[ 그래. 내가 멀쩡히 살아있기 때문에, 그 1%가 남아있다. ]

인비디아가 이런 형태로 살아남았기에, 종말 가능성의 1%가 여전히 존재했다.

"....."

한참 말없이 그 숫자를 바라보던 나는, 인비디아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인비디아?"

[ ..나는 지금껏 무고한 인간을 수없이 죽여왔다. 사야. 그것이 너를 알게 되기 전일지라도,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지금은 그 행동이 떳떳하지 않은 것임을 알아. ]

자그마한 영혼의 형태로 내 몸 밖으로부터 삐져나온 그는, 자그마한 외눈으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 분석에 분석을 거듭하면서, 댕댕이의 정신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 또한 찾아냈다. 그건.. ]

그가 말을 끝맺기 전, 내가 말을 가로챈다.

"그 방법이, 네가 사라지는 거고. 인비디아?"

[ ….. ]

말이 없는 그의 태도로부터, 그것이 정답임을 알 수 있었다.

[ 본래 나는, 수 천년 전에 이 세계에서 도태되었어야 할 존재다. 사야. ]

고대종이라는 이름부터가, 현대에서 살아있음이 모순된 존재를 의미했다. 자손을 남기는 식으로 진화하는 방법 대신 존재를 연명하는 방식을 택한 그들은, 기형적인 방법을 통해 지금까지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이만하면, 생명체로 태어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란 전부 누렸다. ]

점점 투명해지는 색채를 띄우던 인비디아는, 나를 보며 여느 때보다 강하게 사념을 보내왔다.

[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거라, 사야. ]

".................................."

인비디아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짐을 통해,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별을 준비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이만한 기구한 운명도 없었다.

세계의 종말 그 자체를 의미하는 생물체가 누구보다 종말을 막으려는 자를 도와 세계를 지켜낸다.

이 세계가 소설이고, 누군가 읽는다면 필시 쓰레기 소설이라며 덮을 것이 분명했다.

"...아무래도, 이번 결말도 망한 것 같네."

[ …너에게 감사하지. 사야. ]

그의 모습이 가루처럼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여름에 내리는 눈처럼, 인비디아의 몸은 이질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나간다.

"...인비디아."

그의 이름을 부른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랄 마!"

[ ……..!? ]

가루처럼 흩어지려는 인비디아를, 주먹으로 꽉 부여잡아 강제로 끌고 온다.

"누구 마음대로 사라져? 속죄? 네가 사라진다고 죽었던 사람들이 돌아오기라도 할까 봐?"

[ ... ]

이제는 나보다 인간적으로 보이는 그를 향해, 귀가 터지도록 크게 소리 지른다.

"100% 보장되는 인생은 없어, 얼간아….!"

너무 크게 소리쳤나 싶어 잠시 주변을 살핀 나는, 인비디아에게 말한다.

"완벽한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겠어? 1%라는 변수가 있으니까 사는 게 재밌는 거라고."

[ ……….. ]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인비디아는, 다시 조용히 내 몸 안으로 들어간다.

[ ...그렇군. 새겨듣겠다, 사야. ]

'..하여간 쓸데없이 감성적이에요.'

하지만 그렇기에, 이 생물에게 더욱 애착을 버릴 수 없게 되는 걸지도.

내가 서 있던 술집 문 안쪽에서, 잔뜩 흥분한 유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야…! 우리 두고 도망갔냐…! 어디 갔어….!"

목소리로 보아, 유리의 술주정이 시작된 것이 틀림없었다.

'...오늘 밤도 피곤하겠네.'

어느새 개운해진 마음을 가지고,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 ­ (完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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