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77화 (77/102)

〈 77화 〉 최종장

* * *

비올레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제 그의 얼굴은, 아주 조금의 인간적인 면모마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다.

"재밌군."

얼굴을 일그러뜨린 비올레가, 병사들에게 우리를 공격할 것을 명했다.

"뭣들 하느냐..! 빨리 덤벼들지 않고..!"

그의 명령에도, 전장에 있던 자들은 섣불리 우리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내가, 비올레에게 말한다.

"네 모습을 좀 보고 말하지. 비올레."

"...!"

검은색으로 흉측하게 썩어문드러진 한쪽 팔과 이미 검게 침식된 그의 양쪽 눈은 누가 보아도 그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했다.

누구보다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령사조차도, 흉측하게 일그러진 그의 외관을 보며 칼을 내려놓았다.

"저런 건, 비올레 님이 아니야.."

그는 이미 자신들이 따르던 비올레 령사단장이 아니었다. 신체의 일부가 끔찍하게 문드러가는 검은 눈동자의 정체 모를 생명체일 뿐이다.

"..가자."

이미 그가 정체를 숨기기를 포기한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나를 필두로, 팀원들이 모두 그를 향해 무기를 빼 들고 달려들었다. 루나와 내가 전방에서 그를 견제하면, 유리와 카르네가 후방에서 달려와 추가타를 꽂아 넣었다. 필사적인 우리와 달리, 그의 표정은 여유롭기만 하다.

"...고작 이 정도인가?"

한때 령사 중 최강이라 불렸던 비올레 답게 단순히 신체 능력만으로도 우리를 훌쩍 압도했다.

그의 장검을 받아내는 것은 뼈가 울릴 정도의 힘이 느껴졌다. 근력만이라면 그에게도 밀리지 않을 루나 또한 비올레의 공격에 크게 밀려나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비올레는 자신의 썩어 문드러진 팔 하나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한 팔로만 싸움에 임하는 중이었다. 기대했던 자신이 우습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우릴 향해 말한다.

"전력으로 해도 모자랄 판에, 이건 뭐 소꿉장난 수준이군."

지금까지 수비적인 태세로 임했던 비올레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 점을 눈치챘는지, 인비디아가 사념을 걸어온다.

[ 조심해라..! ]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속도로 움직인 비올레는, 어느새 카르네의 등 뒤에서 등장했다.

"피가 이어지지 않았다곤 하지만, 네 아비를 베려는 것이냐. 카르네..?'

그는 카르네를 잡고, 멀리 떨어진 벽에 충격파가 일 정도로 강하게 집어 던졌다.

"커헉..!"

벽에 박히듯이 부딪힌 카르네가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었다.

단순히 집어던졌을 뿐인데도, 그녀의 몸이 멀쩡해 보이지 않았다. 벽에 부딪힌 카르네의 머리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림이 그걸 말해준다.

"너희는 1년 반 동안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군..! 그동안 뭘 한거지…!?"

분노에 찬 나와 유리가 달려들지만, 그는 유리를 멀리 쳐낸 후 내 목을 잡고 높이 들어 올렸다. 인간의 악력을 넘어서는 그의 손에, 내 숨이 고통스러운 듯 쥐여 짜였다.

"사야… 사야 바르나바 였던가?"

비올레의 얼굴이 더욱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나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그는 내 귀걸이를 혀로 핥으며 중얼거렸다.

"얼굴도 모르는 창녀의 성씨를 따르는 꼴 하고는.."

그의 도발에, 내가 표정을 구기며 말한다.

"더럽지…. 않아…"

내가 기를 쓰고 벗어나려고 할수록, 목을 옥죄는 그의 힘은 더욱 강해져 왔다.

"왜 평생 그 얼굴을 볼 수 없는지 아느냐, 사야?"

그의 입꼬리 양쪽이, 더할 나위 없이 치켜 올라갔다.

제국 령사들의 첫 사르카 일족 학살 이후, 남은 일족들은 전국으로 갈가리 흩어져 그 삶을 연명했다. 당시 부모로부터 민가에 버려지듯 맡겨졌던 나를 제외하고는, 각지로 흩어진 남아있는 일족들까지도 전부 대대적인 학살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네 어미는 내 손에 죽었을 테니까..!"

나처럼 살아남았던 크리스와 다른 동료들조차도, 결국 그의 칼에 의해 생을 마감했다.

"직계 혈통은 전부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꼬맹이를 루덴 어딘가에 감춰두고 있었을 줄이야.."

나는 그를 더욱 강하게 노려보며 말한다.

"개..자...식…."

"대답해주게. 대체 그 저주받은 땅에서 어떻게 살아나온 거지? 참으로 경이로운 생명력이구나..!"

사브르를 쥔 루나가, 이쪽을 향해 뛰어왔다.

"사야, 그 말 듣지 마…!"

검을 뽑아 들고 돌진하던 그녀였으나, 비올레가 나를 방패로 내세우자 움직임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친구를 베려는 게냐?"

"비열한 놈...!"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루나처럼 보이는 흐릿한 모습이 보였다.

의식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며 인비디아를 불렀다.

'...아직이야, 인비디아?'

[ 거의 다 수복해간다. ]

유리와의 싸움에서 대부분의 힘을 사용했던 탓에, 지금껏 사르카의 힘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 완료했다, 사야! ]

인비디아가 확신에 차 외쳤고, 나는 그대로 팔에 힘을 실었다.

'일체화…!'

내 손으로부터 뻗어 나간 칼날이 순식간에 비올레의 눈을 꿰뚫었고, 눈을 잃은 고통에 반사적으로 그가 내 목을 잡은 손을 거칠게 놓는다.

"이 년이, 또 눈을…….!"

이걸로, 비올레의 눈을 찌른 것은 두 번째였다.

"커헉…….!"

그와 동시에, 뒤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비올레를 강하게 날려 보낸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두 번이나 당한 비올레가 볼품 사납게 바닥에서 굴렀다.

"잘했어, 기간타스..!"

어느새 비슷한 타이밍에 힘을 되찾은 유리의 기간타스가, 그 육중한 위엄을 드러냈다.

비올레가 말려 돌아간 자신의 관절을 원래대로 되돌리며 말했다.

"이상하다 했더니, 힘을 감추고 있었나…."

유리도 나도, 서로의 싸움에서의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 않았기에 힘을 회복하기 위해서 최대한 육탄전 위주의 싸움만을 벌였다. 바로 그 점이, 비올레의 방심을 불러일으켰다.

"암흑탄…!"

내가 손에서 암흑의 구체를 만들어 내, 그의 얼굴을 향해 발사한다. 서서히 힘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싸움이라 할만한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클레드가 교육을 잘못했나 보군. 상관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라고 가르치던가..?"

"아주 모범생들이지..!"

팔 하나만으로 우리의 공격을 여유롭게 막아내던 이전과는 달리, 네 방향에서 쉴 새 없이 날아드는 공격에 결국 비올레는 검을 양손으로 쥐고 공격을 쳐냈다.

"...타나토ㅅ.."

그가 손으로 주문을 발사하려고 할 때마다, 카르네의 주문이 그의 손을 속박하여 그것을 방해했다.

"카르네..! 어찌 이리 아비의 위대한 뜻을 몰라주느냐..!"

그의 궁상맞은 대사에, 카르네가 얼굴을 구기며 시원하게 외친다.

"지랄 마, 변태 새끼야..!"

슬슬 기회가 찾아왔음을 느낀 나는, 모두에게 외친다.

"다들 자기 위치로!"

비올레가 완전히 여유를 잃어버리자, 네 명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1년 반 만에 맞춰보는 합이지만, 네 명 모두가 전투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기억하고 있었다. 유리와 카르네가 주문을 이용한 속박을 담당하고, 루나와 내가 접근전을 맡는 방식이었다.

"..대지의 오스테온이여..!"

카르네가 중급 마법을 사용해, 거대한 덩굴로 비올레의 움직임을 제압한다. 그가 자신이 움직임을 제한하는 덩굴을 잘라내려고 하자, 유리의 기간타스가 비올레의 팔을 강하게 움켜쥔다.

"절대 놓지 마, 기간타스!"

비올레의 양쪽에서, 루나와 내가 마주 보고 달린다. 속력을 최대로 받은 후, 우리는 각자가 노리는 급소를 향해 칼날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컥...!"

루나와 나에 의해 등과 복부를 관통당한 비올레가,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이 년들….!"

그가 크게 발버둥 치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루나와 나는 몸에 꽂아 넣은 칼을 단단히 고정한 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루나…!!!"

각자가 가진 전력을 끌어내서, 칼끝에 힘을 주어 강하게 밀어냈다. 한 치도 밀리지 않을 것만 같던 칼날이 가속을 받으며 교차했다.

칼날이 교차하며 시원스레 그의 몸을 찢어발겼고, 그의 몸이 삼등분이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나를 비롯해 모두가 비올레의 동태에 주목했다. 몸이 삼등분이 되어버렸지만, 그는 여전히 각기 다른 신체 부위를 꿈틀대고 있었다.

[ 해치웠나..!? ]

'...아.'

인비디아가 부활의 주문을 외워버린 것 같았다.

꿈틀거리기 시작한 신체들이, 서로 옮겨붙어 다시 원래의 위치를 찾아갔다.

'더럽게 질기네…!'

주문탄이라도 쏴서 회복을 방해하려고 했을 때, 인비디아가 외친다.

[ 효과가 있다, 사야. 저걸 봐라! ]

원래의 모습을 갖추려던 비올레의 조각들이 서로 맞물리지 못하고 질퍽거리며 밀어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붙어있는 조각이, 입을 뻐끔거리며 말한다.

"신체가…! 그동안 지켜온 인간의 신체가…! 고작 저런 년들 때문에…!"

'인간의 몸에 집착하고 있었던 건가..?'

어떻게든 자신의 신체를 이어붙이려고 했지만, 이미 완벽하게 봉합해버린 조각들은 서로 이어 붙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유리를 향해 외친다.

"유리, 충분히 회복했지!?"

내 물음에, 그녀는 대답 대신 행동으로 답한다.

"기간타스, 일체화!"

기간타스의 몸이 빛나며 유리의 검에 빨려 들어갔고, 거대한 얼음 대검을 형성했다. 비올레의 잔해를 사이에 두고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명확했다.

""전력 개방!""

유리와 나. 양쪽의 칼날이 몸집을 엄청나게 키우며 전장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스치기만 해도 위험할 것 같은 세 개의 칼날이, 비올레를 가리켰다.

"끝이다, 비올레­­­!"

유리와 나의 칼날이, 그의 잔해를 덮치려는 순간이었다.

"!?"

그의 신체 조각들로부터 엄청난 기세의 검은 조직들이 뿜어져 나오며, 주변을 온통 자신의 생체조직으로 덮었다.

"칼을 거둬, 사야..!"

유리의 말에 따라 황급히 칼날을 거두어들였다.

".....!"

그리고는, 눈앞의 광경에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비올레의 몸뚱아리로부터 뻗어 나온 거대한 생체 조직들이, 수십 갈래로 분열하며 전장에 있던 병사들을 자신의 체내 속으로 빨아들였다.

"말도 안 돼…"

그 포식의 과정에서, 루나와 카르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한데 뭉쳐 저항하던 그녀들이었지만, 결국 온갖 방향에서 덮쳐오는 촉수들에 의해 빨려 들어가고 만다.

"루나랑 카르네까지…..!"

내 쪽을 향해 덮쳐오는 촉수들을, 유리가 검을 휘둘러 베어냈다.

"...저건 대체..?"

유리와 내가 먹히기를 계속해서 거부하자, 그것은 촉수를 거두어들이고 몸을 키우기 시작했다. 전장의 거의 모든 생명체를 흡수한 그것은, 거대한 몸뚱아리로 이쪽을 향해 포효했다.

[ 굴라다…! ]

한때 식탐의 굴라라고 불렸던 고대종 사르카가, 비올레의 몸을 뚫고 그 모습을 세상에 드러냈다.

[ 저게 비올레 내부에 있던 사르카의 정체다, 사야..! ]

아직 빨아들인 인간들을 채 소화시키지 못한 모양인지 불투명한 몸 안에 인간들의 실루엣을 잔뜩 머금은 굴라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이쪽을 향해 괴성을 질렀다.

< 일평생을 쭉 인간의 모습으로 있을 수 있었단 말이다…! 그게 고작 네 년들 때문에…..! >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며 평생을 살아 가려 했던 그의 야망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그 사실에 격분한 굴라가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향해 덮쳐왔다. 가까스로 그의 몸체를 피해냈으나, 공격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몸에 구멍들이…!?'

그의 거대한 몸으로부터 수십 개의 구멍이 생겨나더니, 모든 구멍으로부터 수십 개의 주문을 방출해냈다. 유리도, 나도 온갖 방향에서 날아든 주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주문에 피격당한 내가 신음을 토해냈다.

"윽…!"

온갖 속성의 마법들이 한데 섞여 덮쳐왔다. 일체화시킨 칼날로 그것을 열심히 쳐내 보지만, 모든 방향에서 날아오는 주문들을 전부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대체 어디서 저런 힘이…?'

그의 동태를 가만히 주시하던 인비디아는, 내게 말한다.

[ 흡수시킨 령사들로부터 힘을 뽑아 쓰고 있다..! ]

대상을 분석해서 힘을 모방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비디아와는 달리, 굴라는 대상을 삼키고 그 힘이 사라질 때까지 소모했다.

이를테면, 방금 삼킨 령사들을 자신의 탄환으로 삼는 것이었다.

[ 시간을 지체하면 방금 삼킨 인간들을 전부 소화시킬거다. ]

이대로 그가 날뛰게 두면, 잡혀있는 루나와 카르네까지도 그의 주문 탄환으로써 소모될 것이었다.

한차례 주문 폭격이 끝나 몸이 너덜너덜해질 때쯤, 그의 거대한 입이 한 번 더 나를 덮쳤다.

'저건 피할 수 없어…!'

그때, 내 몸을 무언가 강하게 밀어냈다.

'유리….?'

나를 손으로 강하게 밀어낸 그녀는, 나를 대신해 굴라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유리….!"

[ 또 온다, 사야..! ]

사라진 그녀를 뒤로하고, 다시 날아드는 주문들을 피해 굴렀다.

'...상식을 벗어났잖아, 저런 건.'

지금 가진 힘만으로는 굴라를 당해낼 수 없었다. 그에게 접근하기는커녕, 공격을 피해내는 것조차 버겁다.

[ ..사야, 이라의 핵을 해방하려면 지금뿐이다. ]

'..이라의 핵..'

과거 인비디아와 나는 또 하나의 고대종, 분노의 이라를 사냥했었다.

이라로부터 얻어냈던 그 핵은, 인비디아의 몸 안에 고스란히 보관한 채 한 번도 작동시키지 않았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힘을 얻어놓고도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은 까닭은 인간의 몸 안에 사르카의 핵이 두 개나 돌게 된다면 삽시간에 신체가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거라는 인비디아의 충고 때문이었다.

[ 정신이 날아가 버리면 모두 끝이다. 버티는 데에만 집중해! ]

잠깐 고민하던 인비디아는, 자신의 몸속에 저장해두었던 이라의 핵을 작동시켰다.

7대종 중 분노를 담당하고 있는 고대종인 이라의 핵인 만큼, 사용자에게 엄청난 힘을 부여하는 몸에는 말도 안 되는 부하가 걸릴 것임은 틀림없었다.

"아아아악…..!"

부하를 견뎌내기 위해 양팔을 땅에 박아넣고 고정한 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몸에 있는 모든 장기가 산채로 타들어 가는 고통이 나를 덮쳐왔다. 정신이 날아갈 듯한 고통이 한 차례 지나간 후, 신체에 변화가 시작됐다.

몸의 절반이 사르카의 조직으로 대체되고, 등허리로부터 날개를 연상시키는 조직이 혈관처럼 뻗어 나온다.

[ 명심해라, 사야. 시간이 지체되면 몸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릴 거다. ]

'...알고있어.'

엄청난 힘을 가져다주지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극도로 짧았다. 지체할 틈이 없기에 굴라를 빠르게 죽여야만 했다.

< 재밌는 걸 지니고 있군….! >

또 한 번 굴라의 구멍들로부터 수십 개의 주문이 날아들었고, 나는 날개를 펼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날아올랐다.

날아오는 주문탄들에는 유도라도 걸려있는지, 수많은 주문탄들이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나만을 곧게 쫓아왔다.

'속도를 올려, 인비디아….!'

[ 가속하겠다..! ]

몸에 한순간 전류가 일면서, 금빛 궤적을 남기며 발사되듯 주문탄 사이를 뚫고 날았다. 모든 사물을 아득히 뛰어넘는 추진력에, 나를 따라오던 주문들이 모두 갈 길을 잃고 방황하다 서로 부딪혀 공중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 그게 이라의 힘인가..! 군침 도는군! >

나를 지켜보던 굴라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굴라에게는, 이조차도 식사 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소름 끼치는 자식…'

속도를 잔뜩 받은 내가, 칼날을 세워 그에게 돌진했다.

"잘도 유리를 삼켰겠다, 굴라….!"

전류가 온몸을 가득 메웠고, 어느새 한 줄기 빛이 되어 굴라의 몸을 관통했다. 몸통 부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뚫고나간 나는 공중에서 한 바퀴를 돌고서야 멈춰낸다.

".....!?"

그러나, 굴라의 몸은 놀라울 정도로 멀쩡했다. 오히려 내가 스쳐 지나간 것이 아쉽다는 것 마냥, 침을 흘려대며 이쪽을 바라본다.

'공격이 전혀 안 먹잖아..?'

영겁의 세월 동안 수없이 많은 종류의 생명체들을 포식한 굴라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질의 공격에 대해 내성이 생겨있었다.

이라의 번개가 아무리 강력하다고 한들, 굴라에게는 한낱 별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내가 먹음직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애타는 음성으로 이쪽을 향해 외쳤다.

< 프리지아의 뒤를 따라 얌전히 내 먹이가 되거라, 사야..!>

능숙히 내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보아, 굴라의 정신에는 비올레의 비율도 어느 정도 섞여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굴라의 음성 이후,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네…. 먹이냐....!!!"

인비디아의 입에 벌려진 틈새 사이로,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 저건….? ]

'설마…..'

굴라의 잇몸에 자신의 대검을 깊숙이 박아넣은 채, 팔 힘만으로 버티고 있는 유리가 그곳에 있었다.

'유리….!?'

그녀는 닫히기 직전의 입을 억지로 벌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놀라운 광경에, 인비디아 조차도 혀를 내둘렀다.

[ 저 여자의 정신력은 경이로울 정도군..! 저런 정신력을 가진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이냐…..? ]

사실 내가 원작 소설을 집필할 때, 정신력에 모든 능력치를 때려 박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저 정도는 돼야 주인공 하는 거지..'

<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이다…! >

굴라의 온몸에서 나온 구멍이 또 한 번 빛을 뿜어냈다.

날아오는 주문들을 피해 굴라의 입가에 접근한 나는, 유리를 번쩍 집어 올렸다. 굴라에게서 구출 당한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묻는다.

"..사야, 상황은?"

"더할 나위 없이 최악이야."

몸이 무너지는 위험을 감수하고 이라의 힘을 해방했는데도 불구하고, 굴라에게는 일말의 타격조차 입힐 수 없다.

상황을 물어온 그녀에게, 인비디아가 직관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

[ 굴라에게는 아르모니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질에 대해 내성이 존재한다. 이대로는 공격할 방법이 전무해. ]

그것을 듣고 한차례 인상을 구긴 유리는, 우릴 향해 물었다.

"복합 물질은 어때? 둘 다 시험해봤어?"

[ 소용없다. 서로 섞인 어떤 물질이든 녀석의 뱃속에서 한데 뒤섞이며 전부 만들었을 테니. ]

유리는 내 모습을 잠시 관찰하더니, 이렇게 말한다.

"...모든 물질이라고 했지. 그럼 사르카와 오스테온은?"

그녀의 물음에, 인비디아는 허탈한 듯 답했다.

[ 세상엔 절대 섞이지 않는 물질도 있는 법이다. 그 두 개체는 절대로… ]

거기까지 말하던 인비디아는, 자신의 말에 느껴지는 위화감을 눈치채고 말을 멈추었다. 나 역시 그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끼고는 이렇게 말한다.

"그럼, 우리 모습은 뭔데, 인비디아?"

"...!"

지금의 내 모습은 댕댕이와 인비디아가 완벽하게 섞여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유리의 이론은, 인비디아에 의해 부정당한다.

[ 설령 우리가 섞여 있다고 하더라도, 방금까지의 공격은 굴라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입히지 못했다. ]

'두 개체가 섞여 있지만,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지 못한 건가..?'

그것을 생각하던 내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비율....!"

[ 비율? ]

"새로운 성분을 만들어낼 때는 적절한 비율이 필요해. 우린 그 비율이 맞지 않았던 거야…!"

지금까지는 사르카쪽인 인비디아가 댕댕이에 비해 너무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두 개체가 섞여 있다고 한들 제대로 된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르카인 너에 비해서, 오스테온쪽의 힘이 너무 약했으니까!"

[ …일리가 있군. ]

움직임을 담당하던 인비디아가 공중에서 급격하게 정지하고, 그대로 돌아 굴라를 바라보았다. 갑작스런 정지에, 유리가 당황하여 이쪽을 바라보았다.

"뭘 할 셈이야, 너희들..?"

인비디아는 유리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 사야에게 힘을 보태라. 네가 지닌 오스테온의 힘이 다량 필요해. ]

그가 자세한 지시는 이러했다. 유리와 내가 함께 일체화를 진행해서, 각각 오스테온과 사르카의 힘을 섞은 일격을 날려 보내는 것.

"...해보자."

유리가 검을 하늘로 곧게 들어 올렸고, 나는 그것의 손잡이에 손을 포개 쥐었다.

[ 비율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실패하고 말 거다. ]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데?"

내 물음에, 유리가 대신 대답한다.

"다 같이 사이좋게 뱃속으로 직진이지."

유리와 함께 마주 잡은 칼에 힘을 실어 보내고, 함께 외쳤다.

""일체화!""

유리의 검에, 섞일 리 없는 두 힘이 격한 저항을 일으키며 쌓여 올라갔다. 검은빛을 띄는 얼음이 칼날을 뒤덮으며 차근차근 섞여가는 듯싶었으나, 내 손에 강한 반발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반발력이….!"

[ 이런, 오스테온쪽의 힘이 너무 강하다..! ]

인비디아가 힘을 꽤 상실한 탓에, 유리가 지닌 오스테온의 힘이 그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럼 어쩌자고..!?"

[ 아니. 차라리 잘됐군, 이대로 이라의 핵까지 전부 실어 보내자! ]

그가 내게서 돌고 있던 이라의 핵을 칼에 실어 보내자, 변형되었던 신체 또한 원래의 모습을 갖추었다. 사르카의 힘이 적절하게 더해진 칼날은, 더이상 나를 밀어내지 않고 온건하게 그 힘을 쌓아 올린다.

우리를 바라보던 굴라가, 입을 벌리고 환호하며 뛰어들었다.

< 호화로운 식사로구나­­­­­­! >

칼에 온전히 힘을 담았음을 느낀 우리는, 같은 방향을 향해 힘을 주며 칼날을 끌어내렸다.

'전력 해방…….!'

세말 전체를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빛이 칼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며, 굴라의 몸뚱아리를 파고들며 내려간다. 자신이 삼킬 수 없는 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에 경악한 굴라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 이 몸에 내성이 없는 물질이라고…..!? 무슨 짓을 한 거냐..!?>

기합을 내는 우리를 대신해, 인비디아가 그에게 답했다.

[ 그야, 세상에 없던 새로운 물질의 탄생이지, 굴라. ]

서서히 빛에 의해 잠식되어가던 굴라가, 우릴 향해 소리쳤다.

< 정말이지 너희를 이해할 수 없군…! 나는 너희 인류의 영원한 평화를 약속했을 터인데…! 어리석은 생물들아……!!! >

'...평화?'

굴라의 연설을 들어놓은 우리는, 그에게 커다랗게 외친다.

""그딴 거 필요 없어………!!!""

평화 따위보다, 눈앞의 동료를 살리는 쪽이 몇천 배는 가치 있다.

"존재를 지워주마, 굴라…!"

지금까지의 설움을 칼 한 자루에 담아서, 굴라를 향해 가득 터뜨린다.

눈 부신 빛이 다시 한 점으로 압축되며, 굴라의 거대한 핵을 반으로 베어 갈랐다. 장장 수천 년에 걸쳐 그가 포식했던 에너지들이, 한 점에서 폭발하며 강렬하게 흩어져나갔다.

< 젠장… 젠장…!!! >

칼로부터 형성된 거대한 에너지 또한 흩어지며, 유리와 나를 유지하던 힘이 사라져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멸하려고 하는 굴라가, 인비디아를 향해 증오를 담은 외침을 날린다.

< 인비디아..! 너도 그저 인간을 이용해 영생을 누리고 싶었을 뿐이지 않느냐..! >

[ 영생이라고? 그딴 지루한 것에는 관심을 끈지 오래다. ]

댕댕이의 모습으로 변화한 인비디아가, 추락하는 유리와 나를 붙잡았다.

[ 죽음이 있으니까, 삶이 가치 있는 거다. 굴라…! ]

'인비디아..?'

순간 인비디아의 사념에서, 지금껏 느낄 수 없던 무언가가 느껴졌다.

굴라의 핵이 완전히 반쪽으로 나뉘며, 장렬하게 소멸했다. 굴라가 삼키고 채 소화되지 않은 령사들이 밖으로 빠져나왔고, 인비디아는 우릴 감싼 채 바닥에 강하게 추락했다.

'...아, 알았다.'

인비디아에게서 느껴졌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제야 깨달았다.

감정이었다.

늘 무채색이었던 그에게서, 처음으로 색깔이란 것을 느꼈던 거다.

장장 18년 하고도 반년에 걸친, 살아남기 위한 나의 일대기가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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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져내린 지반의 틈에서, 나와 유리가 부축받아 깨어났다.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는 나를 향해, 루나의 격한 포옹이 느껴졌다.

"다 끝났어, 사야…..!"

사실 뼈가 수십 군데는 부러진 기분이지만, 아니, 실제로 그러했지만, 지금만큼은 그녀의 포옹을 그저 웃으며 즐겼다.

몸이 엉망이 된 것은 유리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옆에서 고꾸라지며 지면에 얼굴을 박고 쓰러진다.

"유리..? 괜찮아…!?"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창백해진 카르네가 유리를 흔들어 깨웠지만, 그녀에게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려오자 동작을 멈추었다.

"...잠들어?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누가 뭐라든 간에, 세상에서 제일 미친 여자임이 틀림없었다.

"부상자는 이쪽으로 옮겨..!"

무너진 지반들 사이에서, 구조를 나온 령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던 루나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한다.

"..근데, 뭐 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아..?"

"...."

셋이서 마주 보던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클레드 교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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