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 구출 작전 (3)
* * *
인비디아의 손아귀가 눈앞을 집어삼켰고, 눈을 떴을 때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하얀 공간이었다. 댕댕이의 정신세계가 온통 검었던 것과는 반대로 인비디아의 내면은 흰 공간인 것이 대비적이다.
"...인비디아, 루나?"
그들을 부르며 주변을 살펴보나 돌아오는 것은 메아리치는 자신의 목소리뿐이다.
[ 칼을 뽑아라. 사야. ]
"...!"
들려오는 인비디아의 목소리에 놀라는 것도 잠시, 어느새 스스로의 복장에 위화감을 느꼈다. 길었을 터인 머리는 어깨까지 오는 단발로 돌아왔으며 복장 또한 검은 개 도적단 시절의 복장이다.
영문 모를 상황에 당황하고 있자니, 멀리서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갑옷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걸어오는 형체는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다.
"....루나? 루나야?"
갑옷으로 중무장한 그녀는 익숙했던 방패를 버리고 양손에 하나씩 사브르를 든 채로 이쪽으로 걸어오는 중이었다. 내가 루나임을 확인하고 얼굴에 화색을 띠던 찰나,
"....?"
눈앞이 핏빛으로 물들더니, 시야가 회전하며 조금씩 낮아졌다.
눈앞의 그녀가 벤 것은,
나의 머리였다.
"...컥…!"
[ ..이런, 칼을 뽑으랬잖느냐. ]
잘려진 머리가 땅에 부딪히는 순간, 시야가 다시 까맣게 변하며 눈을 떴다.
또다시 백색의 공간에서 눈을 뜬 나는 미친 듯이 목 부근을 더듬어 자신의 머리가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머리는 잘 붙어있다.
'저건 뭔가 이상하잖아, 루나가..!'
아무리 싸움을 목적으로 들어왔다고는 하나, 방금 전의 루나의 모습은 마치 감정하나 없는 인형 같았다.
[ 저 여자가 스스로 부탁했다. 감정이 들어가면 싸움에 집중할 수 없을 거라면서, 자신의 감정을 잠시 없애 달라고 하더군. ]
'뭐…?'
[ 덧붙여서, 지금 네 몸 상태를 과거로 되돌려두었다. 내 힘은 사용할 수 없을 뿐더러, 마법 능력을 익히기도 전이지. ]
'...쓸데없이 철저하게...'
뜬금없이 자신의 신체가 과거로 돌아온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루나와 인비디아는, 내가 스스로의 힘만을 사용하도록 상황을 제한하고 있었다.
[ 또 그녀가 온다. 준비해. ]
뚜벅. 뚜벅.
루나가 걸어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잠깐, 단검만으로 뭘 어쩌라는 거야..?'
지금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과거 윈드가르트의 장검을 녹여 만든 단검 두 자루가 다였다. 반면 루나는 전신을 갑옷으로 덮은 중무장 상태에 단검과는 비교도 안 되는 길이의 무기를 양손에 하나씩 착용 중이다. 누가 봐도 이쪽이 불리함은 당연해 보였다.
[ 나를 찾지 마. 이 공간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그럼.. ]
'야, 인비디아..!'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쭉 침묵으로 일관했다.
'..무시무시한 기척이야.'
루나를 동료로 두고 있었을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이렇게 칼을 마주하고 보니 루나라는 기사가 얼마나 무서운 상대였는지 실감했다. 루나가 코앞까지 다가왔고, 이번에는 목이 베이지 않기 위해 그녀의 동작을 자세히 관찰했다.
'오른쪽..!'
오른쪽에서 날아온 칼을 피해 몸을 기울이고 다른 손에 들린 칼에 주목했다. 틀림없이 반대편의 칼로 추가 공격을 해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날아온 것은 칼이 아닌 루나의 손이었다.
'손..!?'
예상을 져버리고 칼을 집어 던진 루나의 반대편 손이 내 머리채를 강하게 움켜쥐고 그대로 몸을 들어 올렸다. 얼마나 단련을 거듭한 건지, 자신과 비슷한 신장의 여성을 한 손만으로 거뜬히 들어 올린다.
팔에서 풀려나기 위해 단검을 그녀의 손목에 찔렀지만 당연하게도 루나의 손을 지키는 단단한 금속 건틀릿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내 무의미한 저항 직후 날아든 것은 내 복부를 관통하는 그녀의 칼날이었다.
"...커헉…!"
이번에도 눈을 뜨자 백색 공간이 펼쳐졌다.
'장난이 아니야…'
무의미한 싸움이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단검을 원거리에서 던져도 보고 뒤를 노려보기도 했으나 언제나 이곳에서 다시 눈을 뜨고 만다.
'..사르카 팔이나, 하다못해 기초 마법이라도 있었다면…'
루나와의 싸움을 지속하면서 그동안 자신이 인비디아와 오스테온의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상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여 알려주는 인비디아의 사념을 당연한 것이라 여기고 있었고, 갑옷 따위는 마법에 의해 쉽게 뚫리는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댕댕이와 인비디아의 힘이었을 뿐 내 자신, 즉 사야 바르나바의 능력이 아니었다.
뚜벅. 뚜벅.
몇 번을 봐도 무시무시한 인상의 루나 그레이스가 양손에 칼을 든 채 똑같은 자세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녀의 근력은 곧 힘이고, 속도다. 극한까지 단련된 신체에서 오는 압도적인 근력 차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게다가 단검과 사브르라는 무기 길이의 차이는 그리 쉽게 메꿀 수 없는 것이었다.
'단검은 전면전을 하라고 만든 무기가 아니란 말이야..'
단검은 휴대의 용이함과 매복, 기습 시의 민첩함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형태의 무기였을 뿐, 멀쩡한 한손검을 든 숙련된 기사와의 전면전을 상정하고 만든 무기가 아니였다. 그렇기에 사야 자신도 사르카 팔을 사용하게 된 후부터는 점점 자신의 단검을 사용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온다..!'
죽고 나면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다고는 해도, 베일 때의 고통만큼은 진짜다. 그런 것을 계속해서 겪는다면 정신이 어딘가 망가져 버릴 지도 몰랐다. 루나가 이쪽을 향해 다가왔고, 또 한 번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
검은개 도적단원 시절의 일이었다.
"하고많은 무기 중에 왜 하필 단검이에요?"
령사 루아레스와의전투 이후 얻은 전리품 중 백묘 대장으로부터 단검을 받은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가 루아레스의 유해로부터 장검을 거두어들인 뒤, 손수 가공해 만든 단검이었다.
"아, 그거? 날을 갈다가 두 동강 내버려서."
"........"
내가 불만스런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호탕하게 웃었다.
"..라는 건 농담이고. 우린 수인이잖냐. 본래 무기 같은 걸 잘 쓰지도 않고."
수인들에게는 무엇보다 간편하고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발톱'이라는 천연의 무기가 있었다.
"그게 네 발톱이다. 사야."
"..네?"
무슨 이상한 소리냐고 묻자, 그녀는 호쾌히 웃으며 말했다.
"단순히 무기가 아니라, 너한테 발톱을 준거다. 몸에 달려있지 않아도 엄연히 네 발톱이야."
"발톱…"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후에 흑견 씨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발톱을 줬다는 것은 그녀가 나를 수인의 일원으로써 제대로 인정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자신과 동등하게 싸울 자격이 있는 자로서의 인정이라며.
'무기가 아니라, 내 발톱..'
검은빛의 단검이 내 얼굴을 비추었다. 지금껏 이 단검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베었고, 심지어 이걸 만들어 낸 백묘까지도 베었었다.
양손에 든 단검을 반대로 쥐고 자세를 낮췄다. 평소와 달라진 기척을 느꼈는지, 루나 또한 섣불리 다가오지 않고 자리에 정지했다. 이처럼 상대에게 모습이 발각되어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기본적으로 단검을 이용한 싸움법은 치고 빠지기다.
상대적으로 빠른 움직임을 이용하여 상대의 장갑을 하나씩 긁어내고, 틈새를 만들어 그곳에 확실하게 일격을 꽂아 마무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
루나의 몸에 접근하기 위해 또다시 몸을 기울였다. 그녀와 싸우면서 느꼈던 것은, 기사들에겐 자신들 나름의 습관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상대가 무기를 쥐고 싸울 것을 전제하는 하는 만큼 모든 공격이 상대를 무력화시키거나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쪽에 신경이 쏠려있다. 중갑을 착용하는 만큼 몸동작도 묵직하고, 자잘한 공격을 막기보다는 상대를 확실하게 제압할 방법에 집중한다.
내 쪽의 유일한 승산은 그녀가 입은 중갑 사이의 사슬 갑옷이었다. 베는 공격을 막는데 특화된 사슬 갑옷은 단검의 찌르기 공격에는 잘 찢겨나갔기에 집요하게 그녀의 오른 어깨만을 찌르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큿!"
처음으로 내 공격이 그녀의 어깨에 난 틈새로 제대로 박혀 들어갔을 때, 루나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문제는, 단검이 박힌 채로 남았기에 두 개의 단검 중 하나를 잃었다. 루나의 어깨에 단검이 꽤 깊은 곳까지 박힌 모양인지, 그녀는 한쪽 팔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였다. 이빨로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내 멀리 던진 루나는 남은 한 손으로 다시 달려왔다.
루나가 입은 중갑은 단순히 그녀의 몸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그만큼의 무게를 더 실어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것을, 그녀의 팔꿈치에 손목을 강타당하며 깨달았다.
"아악…!"
팔꿈치에 장착된 금속보호대로 체중이 실린 공격을 그대로 얻어맞은 내 손목은, 뼈가 박살 났는지 너덜거리며 그대로 들고 있던 단검을 떨구고 말았다. 곧바로 몸을 던져 멀쩡한 손으로 단검을 주워들었지만, 이렇게 되면 둘 다 무기 한쪽은 봉인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손잡이가..'
단검의 내구도가 거의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단단한 갑옷에 몇 번이고 부딪힌 칼날이 고정된 손잡이로부터 조금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날이 단단한 편이라 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경도가 낮은 손잡이가 그 고정력을 잃고 있었다.
'앞으로 두 번, 아니.. 한 번인가?'
느낌상으로 조금만 단검을 더 혹사시킨다면 날이 손잡이에서 분리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
한쪽 어깨가 기능하지 않아 흔들거리는 상태의 루나가 더욱 공포스러운 기운을 풍기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서움을 느끼는 나와 달리 그녀에게서는 감정이 완벽하게 배제된 상태인지라 망설임이란 것이 없었다.
짐승 같은 기합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든 나는, 그녀의 목을 노리기 위해 땅을 박차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단검을 쥔 내 손이 루나의 목을 향해 직진했고 당연하게도 루나의 칼에 공격을 제지당했다. 그녀의 사브르가 내 손목에 절반 넘게 박혀 들어 격한 고통이 몰려온다.
"....!"
그러나 자신이 벤 나의 손목을 바라본 루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자신이 막아낸 것은, 내 멀쩡한 손목이 아닌 이미 부러져 너덜거리던 손목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내 몸을 밀쳐내려고 했으나, 내 쪽이 미세하게 더 빨랐다.
내 쪽의 유일한 승산은 그녀가 입은 중갑 사이의 사슬 갑옷이었다. 베는 공격을 막는데 특화된 사슬 갑옷은 단검의 찌르기 공격에는 잘 찢겨나갔기에 집요하게 그녀의 오른 어깨만을 찌르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했다.
"...큿!"
처음으로 내 공격이 그녀의 어깨에 난 틈새로 제대로 박혀 들어갔을 때, 루나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문제는, 단검이 박힌 채로 남았기에 두 개의 단검 중 하나를 잃었다. 루나의 어깨에 단검이 꽤 깊은 곳까지 박힌 모양인지, 그녀는 한쪽 팔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으로 보였다. 이빨로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내 멀리 던진 루나는 남은 한 손으로 다시 달려왔다.
루나가 입은 중갑은 단순히 그녀의 몸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그만큼의 무게를 더 실어준다는 의미도 있었다. 그것을, 그녀의 팔꿈치에 손목을 강타당하며 깨달았다.
"아악…!"
팔꿈치에 장착된 금속보호대로 체중이 실린 공격을 그대로 얻어맞은 내 손목은, 뼈가 박살 났는지 너덜거리며 그대로 들고 있던 단검을 떨구고 말았다. 곧바로 몸을 던져 멀쩡한 손으로 단검을 주워들었지만, 이렇게 되면 둘 다 무기 한쪽은 봉인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젠장, 손잡이가..'
단검의 내구도가 거의 간당간당한 수준이었다. 단단한 갑옷에 몇 번이고 부딪힌 칼날이 고정된 손잡이로부터 조금 흔들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날이 단단한 편이라 휘지는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경도가 낮은 손잡이가 그 고정력을 잃고 있었다.
'앞으로 두 번, 아니.. 한 번인가?'
느낌상으로 조금만 단검을 더 혹사시킨다면 날이 손잡이에서 분리될 것임은 확실해 보였다.
"....."
한쪽 어깨가 기능하지 않아 흔들거리는 상태의 루나가 더욱 공포스러운 기운을 풍기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서움을 느끼는 나와 달리 그녀에게서는 감정이 완벽하게 배제된 상태인지라 망설임이란 것이 없었다.
짐승 같은 기합을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든 나는, 그녀의 목을 노리기 위해 땅을 박차고 깊숙이 파고들었다. 단검을 쥔 내 손이 루나의 목을 향해 직진했고 당연하게도 루나의 칼에 공격을 제지당했다. 그녀의 사브르가 내 손목에 절반 넘게 박혀 들어 격한 고통이 몰려온다.
"....!"
그러나 자신이 벤 나의 손목을 바라본 루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자신이 막아낸 것은, 내 멀쩡한 손목이 아닌 이미 부러져 너덜거리던 손목임을 알아챈 것이다. 그녀는 황급히 내 몸을 밀쳐내려고 했으나, 내 쪽이 미세하게 더 빨랐다.
"네게 힘을 하사해 주겠다. 확실하게 그자를 처리할 힘을."
"네? 힘을 말입니까..?"
"가까이 오거라."
그의 옆에 다가간 유리는, 비올레와 함께 빛이 쏟아지는 창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제국에는 혼돈과 무질서만이 가득했지. 인간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서로를 물어뜯고, 사르카는 그들의 터전을 위협하며 질서를 파괴했다."
눈을 감은 비올레는 고개를 들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혼돈도 끝이다. 너와 내가 가진 이 힘으로 제국을, 나아가 세계를 영원한 평화와 질서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 거야."
"....비올레님?"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비올레에게 유리는 두려움을 느꼈다.
"눈이…"
그의 양쪽 눈이, 검게 물들어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랑해, 프리지아."
비올레로부터 느껴지는 이질적인 분위기에 뒷걸음질 치려던 그녀였지만, 비올레가 유리의 턱을 강하게 잡아 들어 올렸다.
"비, 비올레님….!?"
"지금 이 제국에서 너보다 강한 자는 존재하지 않아, 프리지아. 그렇기에, 우리는 너를 강렬하게 사랑하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네 몸을….!"
검게 물들어 빨갛게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바라볼수록, 유리의 몸은 저항하려는 의지를 잃고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강제로 벌려진 그녀의 입 위로, 기괴할 정도로 크게 벌린 비올레의 입이 드리웠다.
"그 몸을 우리에게 줘.. 사랑스럽고, 강렬한 그 육체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