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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72화 (72/102)

〈 72화 〉 통증

* * *

저택에 돌아와 집사에게 편지를 건네받은 유리는, 그것이 그녀 자신의 요청에 의한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명백하게 그런 기억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나,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그것을 열어 확인했다.

"....!"

종이 전체에 쓰여진 글귀는, 단 한글자였다.

[ 등 ]

".....?"

다른 글귀나 메모하나 없이, 큼지막하게 '등' 이라는 글자만이 쓰여있다.

'뭐야, 이게..?'

정황상으로 보아 그녀 자신이 작성하여 집사에게 넘긴것은 확실해보였으나, 왜 이런 의미불명의 문자만이 남아있는지 유리로써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이런 글을 쓴 기억은 없어..'

무엇보다도,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 이유를 생각하면 할수록 그녀의 머리가 조여오는 기분이었다.

'단순히 누군가의 장난인가..?'

누군가 자신을 사칭해 이런 장난을 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한가지 걸리는 점은, 집사가 자신을 못알아 봤을리가 없다는 것이다. 자신이 태어날적부터 벌써 19년을 옆에서 지켜봐왔던 그이기에 누군가가 변장했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알아보았을 것이라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유리 자신이 이 종이를 건넸다고 말했었다.

'..아무래도 좀 더 살펴봐야겠어.'

혹여 종이에 감춰진 다른 글자나 뜻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유리는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자신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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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아무것도 없었다.

특정 상태에서 안보이는 잉크라도 쓰였을까봐 종이에 대고 온갖 시도를 해본 유리지만, 가운데에 큼지막하게 쓰여진 '등' 이라는 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등이 뭐지..? 불빛을 말하는 건가..?'

혹시 몰라 불에도 살짝 가까이 비춰보았지만, 종이 끝이 까맣게 그을리기만 할 뿐 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등.. 등이라고…?'

위화감을 느낀 그녀가, 슬그머니 자신의 목덜미 뒤의 옷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곳을 더듬었다.

'.....?'

그곳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았어야할 묘한 느낌이 만져졌다. 불에 그을린 것 같기도 하고, 상처가 까끌하게 올라온 것도 같은 느낌이 손 끝을 통해 전해졌다. 등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등을 뜻함을 깨달은 유리는, 방에 달린 전신 거울 앞에서 뒤로 돌아 상의를 끌어내렸다.

'......!'

거울에 비친 것은, 유리 자신의 등에 직접 새겨진 작은 두 글자의 글귀였다.

[ 사야 ]

'사야.. 사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 단어를 알고 있었다. 분명한것은 그것은 누군가의 이름이었다. 생각만으로 화가 치솟고, 눈썹을 치켜뜨게 되는 그런 자의 이름이었다.

'누가 언제 이런짓을.. 아니, 그것보다 대체 왜…?'

쪽지로만 남겨놓았어도 될 글귀를 굳이 몸에 남겨놓았던 점이나, 의미를 알수 없는 단어를 새긴 것이 이해되지않았다.

'사야라고…?'

이상하게 그 이름을 되내일때마다, 오늘 자신이 맞닥뜨렸던 검은 머리의 사르카 인간이 떠올랐다. 붉은 빛의 눈동자. 몸에 선명하게 새겨진 전투의 흉터들. 왜 이런것들이 머릿속에 연상되는지 몰랐으나, 어디서 왔는지 모를 이미지들이 자신의 기억과 겹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 없을 누군가와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

밀려오는 끔찍한 두통에 견디지 못한 유리 프리지아는, 결국 눈 앞의 거울을 박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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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전혀 관련없는 단어를 몸의 은밀한 부위에 직접 새겨두는 것. 그것은, 여러 실험을 통해 과거의 유리 프리지아가 도달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일찍이 카르네의 사례를 통해 자신이 비올레와의 접촉에서 세뇌로부터 안전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던 그녀는, 그의 세뇌로부터 자신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매일같이 위험할 정도로 많은 양의 각성제를 복용했다.

그녀의 추측대로 비올레의 눈을 바라보고 그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그는 자신의 정신에 간섭해왔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사야라는 소녀에 대한 기억을 지우고, 본능적으로 자신을 향한 충성심만을 주입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정도로 정교했을 줄이야..'

언제나 비올레를 마주하고 나면 단편적인 기억 상실을 초래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온 노력을 기울여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트 한권으로 시작했던 기록은, 어느새 방 전체에 메모로 도배시킬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전부 부질없는 짓이었다.

집에 돌아와 습관처럼 각성제를 들이키면 잊었던 기억들이 되돌아오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언제나 자신이 남긴 기록을 스스로 말소한 뒤였다. 메모는 전부 펜으로 덧씌워 읽을 수 없게 만들었고, 가구나 책상에 남긴 흔적까지도 도구를 사용해 말끔하게 지워버렸다. 그녀의 몸이 스스로 그런 기억을 남겨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 마냥.

'각성제로도 무리야.'

어느 순간부터, 각성제를 복용해도 돌아오는 기억의 양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까지 생생히 기억나던 것이, 지금에 와서는 간단한 장면정도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약물에 내성이 생긴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그녀에게 걸린 세뇌가 점점 강력해짐에 있었다.

'잊으면 안돼. 잊으면...'

온갖 창의적인 방법을 시도해보아도,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그녀 자신의 손으로 기록들을 지워낸 뒤였다. 온전한 기억을 보존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이 절대로 잊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단어만을 남겨두기로 결심했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그녀 자신조차도 속일 필요가 있었다. 골목에 있는 불법 시술소에 찾아간 그녀는, 거액을 주며 무언가를 요구했다.

"..이런 글자를 새기고 싶은데요."

부탁의 내용은, 저택으로 직접 찾아와 잠들어있는 자신에게 시술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혹여 자신을 훗날 마주치더라도 그런 시술을 했다는 사실을 일체 언급하지 당부한 그녀는, 언젠가 자신이 새긴 글귀를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 계기가 필요했다.

거기에 그녀가 찾은 방법은, 집사에게 '등' 이라는 간단한 글귀가 적힌 쪽지를 맡겨두는 것이었다. 단순히 등이라는 글자로는 자신이 지켜야 할 기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기에, 통제를 벗어난 그녀 자신이 그것을 제거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었다.

시술이 예정된 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해 미리 잠에 들고나면 깨어난 그녀는 그런 시술을 받았다는 사실 조차도 깨닫지 못할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기다릴 것은, 7개월 뒤의 자신이 쪽지를 통해 몸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하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만약 몸에 새겨진 글자까지도 지워낸다고 해도, 상관없다.

기억과 달리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통증이라는 감각은, 죽지 않는 한 지워낼 수 없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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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셨습니까, 유리 아가씨."

"..."

거울을 부순 뒤로, 그녀는 꽤 오랫동안 바닥에 쓰러져 있던 듯 했다. 집사의 말에 의하면 상의를 탈의한 채 피를 흘리며 꺼진 거울 조각 위에서 한참을 기절해 있었다고 한다.

"등에 날카로운 것으로 베인 상처가 있었습니다. 유리에 찔린 것으로 보이긴 하나, 조금 걱정이 되는군요.."

그의 말처럼, 그녀 자신의 등 뒤쪽의 특정 부위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히 유리에 찔렸다기에는 수차례 그었던 것 같은 기분이 어렴풋이 들어왔다.

"...요즘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서 잠시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요….읏..!?"

유리의 등뒤의 상처가 찌릿하고 아려왔다. 그런데 그럴때마다, 그녀에게 어떠한 감정이 차올랐다.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린 그녀는, 옷을 걸쳐입고 침상에서 일어났다.

"바로 나가실 생각입니까..? 출혈이 있으십니다만.."

"이제 아카데미로 돌아갈게요. 자리를 오래 비웠어요."

쓸데없는 기억따위는 싸그리 잊은 그녀였지만, 등뒤의 통증과 함께 계속해서 자신을 콕콕 찌르듯 자극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여자....!'

릔志????Δ⒤????????????????????????????????????????????????????????砣????????????????????Δ????????賸????懅????笱????????????????켣Δ뽮????????????????????砣????????跴≪????????????셳뭻????????????禍????????짋????????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아주 오랫동안 무채색처럼 느껴졌던 그녀의 삶에 무언가 변화가 생겼음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아내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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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교관들과 수백명의 령사들을 앞에 둔 비올레 단장이, 그들에게 슬픈 목소리로 소식을 전했다.

"저조차 믿기지 않습니다만, 그동안 수많은 전장에서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던 클레드 전투 교관이.."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 기간 쿠데타를 계획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발언에, 사람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술렁거리는 분위기 속에서, 비올레는 묵묵히 발언을 이어갔다.

"어젯밤, 술에 잔뜩 취한 그에게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를 제압해 집요하게 물으니, 그런 사실을 자백하더군요.."

눈을 감고 오랜 고민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 그는, 결심한 듯 사람들 앞에서 선언했다.

"그가 훌륭한 업적을 남겼음은 알고 있으나, 반란모의는 곧 중죄입니다. 혼란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이런 결정을 내립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7일 뒤, 그의 처형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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