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66화 (66/102)

〈 66화 〉 바르나바의 이름으로

* * *

크리스를 인비디아를 태우고 달리는 중에, 옷에 이질적인 흥건함이 느껴졌다. 상처가 있나 살펴보았으나, 내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크리스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머리를 다친 줄만 알았던 그는, 도망치면서 복부에 부상을 입은 채 출혈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버텨요, 크리스…’

한 시간 정도를 달려 작은 마을에 도착했지만, 그곳에도 우리가 있을 장소 따윈 없었다. 이미 세말 내부에는 현상금에 관한 정보가 퍼질 대로 퍼져서, 내 몽타주가 그려진 종이 따위가 발에 밟힐 정도로 많았다.

결국 세말에 남는 것을 포기하기로 한 나는, 크리스를 데리고 마차의 짐칸에 가축들과 함께 몰래 올라탔다. 이러면 소리가 좀 나더라도, 동물들이 그랬거니 하고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이 마차가 어디로 향할지는 모르는 일이나, 적어도 세말에서 최대한 멀어졌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EP. 65 ­ 바르나바의 이름으로

마차가 도착한 장소는 눈과 얼음의 땅, 크리오였다. 크리오는 특유의 척박한 환경으로 인해 마을 하나 없는 미개척지로 유명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생활할 수 있었지만, 식음은 전부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다.

운 좋게도 버려진 텐트를 발견한 우리는, 그것을 수선하여 잘만한 장소로 바꾸어 놓았다. 크리스는 마차가 크리오에 도착하기 전에 정신을 되찾았지만, 부상의 후유증인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를 돕겠다는 그를 극구 말리고, 낮에는 내가 돌아다니며 사냥감과 장작 따위를 모으기 시작했다.

'..플로가.'

마른 장작에 기초 주문으로 불을 밝히자, 내부에 따듯한 공기가 들어참을 느꼈다. 내가 다른 속성 주문을 쓸 수 있는 암흑계 령사라는 게 이럴 땐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밤마다 장작에 불을 어렵지 않게 붙일 수 있었고, 힘겹긴 하지만 어찌어찌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크리스, 오늘도 먹지 않았네.'

그가 시간이 지나면 회복할 거라고 기대했던 내 바램과는 달리, 그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나중에는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못해, 죽을 끓이면 하루에 두 스푼정도 먹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걱정하며 물을 때마다, 크리스는 괜찮다며 웃을 뿐이었다.

이날도 평소처럼 사냥감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크리스가 오랜만에 깨어있었다.

"안 잤어요?"

“..항상 사야만 고생시키니 좀 미안해서요.”

오늘은 조금 기운이 나는 모양이었는지, 얼굴빛도 살짝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능숙하게 잡아 온 짐승의 손질을 시작하며, 그에게 물었다.

“이 앞에 돌로 쌓아둔 탑이 두 개 있던데, 크리스 씨가 해둔 거예요?”

텐트의 주변에 인위적으로 쌓아둔 듯한 두 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었기에 그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아…. 그거, 더스틴과 소라를 위한 거예요.”

몇 개월 만에 처음 듣는 두 이름에, 나는 손질을 하던 손을 멈칫했다.

“..따로 무덤이랄 것도 만들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저렇게라도 해 뒀어요.”

소라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는 우리였지만, 나와 그는 이미 체념하고 있었다.

참고로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령사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유일하게 눈앞에서 목격한 아이였다고 한다. 령사였던 나를 경계했던 이유도, 그런 것 때문이라고.

“...다들, 좋아할 거에요.”

잠시 손을 멈춰있던 나는, 다시 분주하게 움직여서 고기 손질을 마무리했다. 손을 한번 눈에 비벼서 피를 씻어내고, 캐내 온 약초를 꺼내 들어 즙이 나오도록 갈았다.

“상처 좀 봐요. 크리스.”

내 말에 크리스가 상의를 들어 올리자, 위험할 정도로 색이 변해있는 상처가 드러났다.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한 탓에, 상처 부위가 썩어 문드러져 아무리 매일 약초를 발라도 그 속도를 조금 늦출 뿐이었다.

이제 익숙하다는 표정을 지은 크리스가,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상처는 좀 어때요? 요즘은 무서워서 한동안 안 봤었는데.”

잠깐 고민한 나는,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많이 나아졌어요. 이제 곧 돌아다닐 수도 있겠는데요?”

그는 다행이네요, 라고 말한 뒤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야."

약을 바르느라 가까이 다가온 내 얼굴을 바라보던 크리스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이야기한다.

“이런 좁은 공간에 남녀 둘이서 매일 같이 자는데, 아무 일도 안 생긴 다는 게 신기하지 않나요?”

“..그게 뭐 어때서요.”

“제가 몸만 아프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열정적으로 해서 아이를 한두 명 정도는….”

"하긴 뭘 해요!?"

그의 이마를 가볍게 한 대 쳤다. 크리스는 평소처럼 실눈을 뜨고 즐거운 듯 하하 웃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곧 이런 실없는 대화조차 힘들게 될 거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조용히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재미없었어요? 사야 씨 웃으라고 한 말이었는데. 나도 이제 감이 많이 떨어진 거려나.”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내 표정이 보이지 않도록 감추었다. 이런 표정을 보여주기 싫었기에, 고개를 돌려 모른 척했다. 하지만, 참고 있던 속내가 결국 터져 나온다.

"...저주가 분명해요. 크리스."

"..네?"

“제가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져요. 이게 저주가 아니면 뭐에요…?"

처음으로 날 받아주었던 검은 개 도적단의 일원들도, 대장도, 흑견 씨도. 내 손으로 전부 죽이거나 다른 요인으로 죽었다. 세상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와 관련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죽어 나갔다.

가만히 나를 바라보던 크리스가, 몸을 일으켜서 살포시 내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거 우연이네요. 저도 그래요.”

크리스는, 자신이 지금 이끌었던 분대는 사실 두 번째라고 말해주었다. 첫 번째 분대도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 작전 중에 죽거나 자살했다고 말해주었다. 담담히 그것을 설명해나가던 크리스는 평소와 같이 온화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전 당신을 만난 게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황녀님을 모시면서, 당신을 만난 건 행운이었어요."

“거짓말 마요. 애초에 절 구하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당신 분대가 이렇게 될 일은…”

그가 나를 저택으로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휴이가 현상금 때문에 그런 유혹을 받을 일도 없었을 거다. 상황이 이렇게 된 지금에서야 쳐 죽일 쓰레기 자식이지만, 내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조금 투덜거림이 조금 많은 사람일 뿐 대체로 온화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사야 씨를 구한 건 제 선택이에요. 전 후회 안 해요. 결과를 알고 시간을 돌린다고 한들, 전 그때도 똑같이 당신을 구할 거니까요.”

그는 내가 아니었으면 진작에 아카데미에서 암살 시도 건으로 붙잡혀 죽었을 것이라고 말하며, 오히려 나에 의해 살아갈 시간을 부여받았다고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마요. 곧 죽을 사람처럼.”

“어라, 제가 그랬나요?”

크리스 특유의 능청스런 웃음을 지으며, 따듯한 저녁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워나갔다. 그는 저택에서 지내던 때처럼 수다스럽게 농담을 해왔고, 나는 그에 맞춰 깔깔대며 웃었다.

그는 유하지만 강한 사람이었다. 특이한 머리색을 가지고 태어난 사실을 비관하기는커녕,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자들을 데려다 모아 희망을 심어주었다.

비록 그것이 이루지 못할 꿈이었을 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삶의 목표가 되어 빡빡하기만 한 삶을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내가 느꼈던 것처럼.

"..내일 봐요, 크리스."

잠들기 전 내가 그에게 인사했고, 크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나 밖에 나갈 채비를 했다.

내 다녀온다는 내 인사에도, 크리스는 이불을 덮은 채 벽을 바라보며 누워있을 뿐이다.

"...크리스, 고마워요."

다시 혼자가 돼버린 나였지만,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온화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잃을 게 없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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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눈으로 덮여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찌그러진 텐트 옆에서, 나는 가지런히 세워진 세 개의 돌탑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크리스네와 만난 뒤로는 한 번도 자르지 않았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며 흔들거렸다.

‘인비디아.’

내가 그를 부르자, 익숙한 사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 ..나를 부른 건가? 별일이군. 6개월간 한 번도 찾지 않았으면서. ]

크리스가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은 날로부터, 한 번도 그의 힘을 사용하거나 불러내 보지 않았었다.

‘여길 떠날 거야. 루덴까지 갈 생각이니까, 미리 힘을 비축해 두자.’

내 의사를 전달하자, 인비디아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 루덴? 여기서 가장 반대편에 있는 지역이 아니더냐. 지금에 와서 굳이 그곳에 간다고? ]

‘..두고 온 가족을 찾아야지.’

인비디아는 군말 없이 내게 따르며 필요한 것들을 지시했다. 루덴으로 가는 동안, 지금까지 잡아낸 것보다 많은 수의 사르카를 죽이고 인비디아에게 먹였다.

그가 다른 종에 대한 분석을 거듭할수록, 나와 합쳐졌을 때의 모습도 점점 인간이라기보다는 사르카에 가까운 모습을 띠게 됐다.

양팔과 다리를 모두 사르카의 것으로 변화시킨 채 이질적인 꼬리를 휘두르는 내 모습을 누군가 본다면, 어떻게 보아도 인간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 모습도 익숙해진 모양이군. ]

인비디아가 사용할 수 있는 사르카의 기능은 이제 온전히 전부 내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변화시킨 뒷다리를 이용해서 엄청난 거리를 도약하거나, 손이 변화된 상태에서도 마법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숨 쉬듯 해냈다.

‘...아직이야. 아직 비올레에 대항하려면 부족해.’

추정컨대, 그는 적어도 고대종에 필적하는 힘을 가진 사르카를 두 종류 이상 몸속에 품고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이 필요했다.

'...그거다.'

나는 내 미친 계획을 인비디아에게 전달했고, 예상대로 그는 강하게 반발했다.

[ 완전히 돌았군…!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것이냐…? ]

내가 생각한 계획이라는 것은, 또 하나의 고대종을 몸속에 취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한 소리지만,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깨어났다 잠들기를 반복하는 고대종을 강제로 깨운다는 생각부터가 말이 안 되는 짓이었다.

[ ...네가 굳이 깨우려고 한다면야, 아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인비디아의 설명에 의하면, 둥지에 있는 고치 형태의 미성숙체에 대량의 마법 주문을 흘려보내면 부화 주기에 혼란이 생겨 예정보다 일찍 부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그런 미친 짓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지금의 나는 힘이 매우 간절한 상황이었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종은 칠죄종에 따른 분류법으로 보았을 때 질투, 색욕, 식탐을 제외한 나머지 4종이었다. 교만, 탐욕, 분노, 나태 중 내가 깨우기로 한 것은, 그들 중에서도 분노를 담당하는 이라였다.

하늘을 날며 먼 과거부터 번개를 떨구었다는 ‘분노의 이라’ 는, 인간에 의해 목격된 가장 강력한 고대종 사르카였다.

[ 만약 정말로 이라를 죽이게 된다면, 그 뒤로는 뭘 어쩔 작정이지? ]

‘ 당연히, 그 힘을 내 걸로 만들어야지.’

인비디아는 내 결정에 대해서,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 지금 이상으로 몸에 사르카 성분이 많아진다면, 그때는….]

그조차, 새로운 힘을 받아들이게 된 우리가 어떤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은 확실하게 내 쪽으로 넘어와 있는 몸의 주도권이,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잃을 게 없어, 인비디아.’

[ ..그게 네 뜻이라면야.]

내 각오를 전해 들은 인비디아는, 순순히 나를 이라의 둥지로 안내했다. 아르모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있다고 말한 인비디아는 나를 태우고 쉴 새 없이 달린 끝에 결국 이라의 둥지에 도달했다.

‘..이게, 이라…?’

산 정상에 돌로 가득 메워진 구덩이가 마치 새의 둥지를 연상케 하는 장소였다. 거기에 놓인 이라의 알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인비디아의 것과는 비교가 안 되게 컸다.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인비디아와 달리, 완전한 모습으로 태어나는 이라는 고치에서부터 꾸준히 몸집을 불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 시작하자. ]

나는 그의 말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문을 사용하기 위해, 양손을 모으고 타나토스의 주문을 영창했다. 손으로부터 굵직한 암흑의 광선이 뻗어나갔고, 그것은 이라의 알 전체에 빨려 들어가듯 흡수당하고 있었다.

[ 시간을 오래 끌수록 대가로 사용되는 수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거다. 한계라고 생각되면 바로 그만두도록. ]

마치 나에게서 마법을 빨아들이듯 알 형태의 고치 속으로 계속해서 빨려 들어가던 주문이 슬슬 한계에 달할 때쯤, 쩌적 소리와 함께 이라의 고치에 거대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 그만! ]

나는 주문을 쏘던 손을 멈추고, 조용히 그의 부화를 지켜보았다.

"키이익…"

깨진 균열로부터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거대한 검은 날개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이라는 차례차례 자신의 몸을 감싼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부숴 나갔고, 이윽고 거대한 몸뚱아리를 세상에 드러냈다.

완전히 성장하지 못해 비쩍 말라비틀어진 모습인 이라는, 하늘을 향해 귀가 찢어질 정도로 크게 포효했다. 그러자 거대한 낙뢰가 그의 몸을 적시며 깃털 같은 조직들이 꼿꼿하게 세워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라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 준비해라, 사야. ]

‘..알겠어.’

우리는 형태를 변화시켜 사르카의 힘을 끌어냈고, 이라에게 돌진했다. 자신을 공격하려는 의도를 알아챈 이라가 비행을 시도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접근을 허용한 후였다.

그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다는 점은 우리에게 있어서 몇 없는 이점이었다. 몸이 아직 강하게 발달하지 못하고 깨어난 이라는 전적으로 마법 공격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며칠 밤낮을 그의 등에 들러붙어 두꺼운 조직을 파괴하려고 노력했고, 그럴수록 그도 하늘에서 힘껏 몸을 흔들고 자기 몸에 낙뢰를 때려가며 몸에 달라붙은 이 끔찍한 포식자를 내쫓으려고 했다.

"으윽…!"

이라가 내려친 번개가 또 한 번 내 전신에 내리꽂혔다. 처음엔 끔찍한 비명을 참지 못할 정도로 온몸의 장기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주었던 이라의 번개는, 그 횟수가 반복될수록 인비디아에 의해 분석·모방되어가기 시작했다.

결국에는, 인비디아는 번개를 하늘에서의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정도로 전기와 그를 받아들이는 특수한 기관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며칠 동안 밤낮 구분하지 않고 쉴 새 없이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쳤으니, 산 일대가 전부 불에 타서 잿더미로 변해갔다.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본능적으로 몸을 추락시켜 땅에 처박혔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던 이라였지만, 힘에 대한 내 무서운 집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절대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단단한 외피를 꿰뚫고, 끊임없이 회복되며 얽혀오는 조직들을 끊어가며 처절한 싸움을 반복한 끝에,

'..찾았다.'

나는 결국 이라의 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사르카 특유의 빨간 빛에 푸른 번개의 색이 섞여 보랏빛을 내는 그 핵을 쥐고, 있는 힘껏 그것을 몸 밖으로 끌어냈다. 강제로 밖으로 끌어내진 그의 핵은 눈이 터질듯한 빛을 뿜어내며 내 몸으로 흡수되기에 이르렀고, 온 세상이 떠나갈듯한 고통 섞인 비명을 내지르던 이라는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힘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가장 오랜 세월 인간들의 신화 속에 등장하며 공포를 심어주었던 전설의 괴조는, 그 생명을 잃고 흙으로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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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여파에서 겨우 회복한 나와 인비디아는, 루덴에 도착하여 그 일대를 쥐잡듯이 뒤졌다. 인비디아의 거듭된 질문에도 그저 가족을 찾는다고 말할 뿐 그 이상의 답변은 하지 않았다.

[ 이해할 수 없군. 이런 곳에서 사람을 찾는다니. ]

우리가 집중적으로 살폈던 곳은 아무도 살지 않을 듯한 산속이나, 깊은 숲 같은 장소였다.

[ 사야, 전방에 생물체의 반응이다. ]

‘보나 마나 또 멧돼지겠지.’

오늘만 해도 수도 없이 산 짐승을 사람으로 착각했던 나였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인비디아가 말한 쪽을 바라보았다.

“...히익!”

동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정체는, 도토리를 품에 모으고 있는 한 소녀였다. 핑크빛 머리와 쫑긋거리는 동물 귀를 가진 수인 소녀는, 나를 보고는 가지고 있던 도토리를 전부 버리고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 도망치는데. ]

“..아.”

내 모습이 남들이 보기에 상당히 이질적인 형태였음을 깨달은 나는, 다시 형태를 되돌려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그녀를 뒤쫓았다. 얼마 안 가 나에게 붙잡힌 소녀는, 울먹거리는 얼굴로 살려달라며 애원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날 몰라보는 건가?’

소녀의 이름을 불러보아도, 그녀는 낯선 이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두려움만을 느낄 뿐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괜찮아, 해치지 않을게.”

“...”

겨우 소녀를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말했다.

“네가 사는 거처에, 길리언이란 인간이 있지?”

소녀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길리언이란 이름에 반응한 것으로 보아 정답인 듯싶었다.

“돌아가서, 이걸 좀 전해줄래?”

나는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 그녀의 작은 손에 쪽지와 함께 잡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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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리언은 복잡한 심정에 휩싸여 있었다.

오늘 오전 밖에 나간 묘아가 이상한 여자를 만나, 쪽지를 건네받았다고 그에게 말해준 것이다.

‘여길 어떻게 알아냈다는 거지…?’

수상함을 느낀 그는, 망설이지 않고 쪽지를 펼쳐 내용을 확인했다.

[ 하던 일을 마치면, 모두를 데리러 올게. ­ 사야 바르나바. ]

‘사야…!’

그것을 읽어 본 길리언은, 반가움과 의구심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데, 사야에게 성이 있었나..?’

자신과 같이 성이 존재하지 않았을 사야의 이름에는, 바르나바라는 처음보는 성이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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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 표지로 바꾸었습니다! 투샷을 넣으려다보니 작아져서 생각보다 별로처럼 나왔내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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