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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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63 협력?
크리스를 따라 저택에 온 지 한 달째, 조금씩 이 사람들과의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다들 같은 피가 흐르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의외로 성격이 잘 맞았다. 소라랑만 빼고.
평소같이 작전을 나간 동료들을 기다리며 저택 내부를 청소하고 있는데, 크리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내게, 자신들의 작전에 협력해 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작전 협력이요?”
“네. 사야 씨께서 괜찮다면, 저희를 좀 도와주셨으면 해요.
그는 내가 받아들일 만한 이유가 있다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야 씨가 반란 같은 것에는 부담을 느끼는 것 알고 있어요. 공교롭게도 저희의 우선 목표는 황제 암살이 아니에요. 현재로서는 령사단장 비올레를 제거하는 게 저항군의 최우선 목표랍니다.”
크리스는 일찍이 아카데미에서 비올레 암살을 시도했지만, 화살이 그의 머리가 아닌 어깨로 향하면서 실패로 돌아갔었다.
령사단장 비올레.
인비디아를 없애고 나면 달성될 줄 알았던 메인 퀘스트는, 여전히 완료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비올레 령사단장이 멀쩡히 살아있기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
“좋아요. 비올레의 정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걸 말해준다면, 당신들에게 협력할게요. 그동안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하니.”
필시 내가 모르는, 그만이 알고 있는 비올레의 뒷면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도 극히 일부분이란걸 알아두셔야 해요….”
크리스는, 자신의 목에 걸린 검은 십자가를 들어 올렸다.
“제가 예전에 우리 같이 바르나바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사르카와의 동화율이 높다고 말했었죠?”
여기 지내는 사람들의 머리색이 전부 짙은 이유도, 우리가 몸에 사르카를 집어넣기 위해 인위적으로 태어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인비디아를 몸에 품고도 별다른 부작용이 없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셨을 거라 믿지만, 비올레는 당신처럼 사르카의 힘을 다루는 인간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죠. 사르카 일족도 아닌 그가, 어떻게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그의 머리는 동화율이 높다는 검은 머리가 아닌, 오히려 새하얀 백발이었다. 사르카와의 궁합은 가히 최악을 달릴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이상하네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그는 단장직에 오른 직후부터, 이상할 정도로 영혼석의 수집에 집착하고 있어요.”
영혼석이란, 령사의 소환수인 오스테온이 사멸했을 때 남겨지는 특수한 성분의 돌로써, 령사들이 쓰는 무기에 들어가는 소재가 바로 이 영혼석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전투로 목숨을 잃거나, 발현식을 시도하다 실패한 령사들의 영혼석의 절반은 비올레에게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는 대체 그만큼의 영혼석을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
“..단순히 수집, 이라기엔 너무 과한 집착인데요.”
“그렇죠? 거기에 대해 제가 세운 가설은 이래요.”
그는 사르카 일족과는 달리 동화율이 낮은 비올레가, 강제로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영혼석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마 영혼석을 먹기라도 하는 걸까요…?”
척 봐도 단단해 보이는 영혼석을 삼키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내 물음에, 크리스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어디까지나 전부 제 가설이니까요. 아무튼, 이제 약속대로 저희에게 협력하시는 거죠?”
비올레에 대한 의문은 더 커져만 갔지만, 어쨌든 그들의 협력 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들이 나와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는 든든한 동료로서 부족함이 없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었으니까.
처음으로 내가 그들과 같이 뛰어든 작전은 아카데미로 향하는 보급 마차를 습격하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도적단과 하는 짓이 다를게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목적은 돈이 아닌, 마차 안에 든 대량의 영혼석이었다.
아카데미에 영혼석을 싣고 가는 마차를 미리 털어서, 비올레가 영혼석을 수급하지 못하면 어떤 식으로 나올지 지켜볼 생각이었다.
마차가 이동하는 것을 지켜보던 더스틴이, 거대한 메이스를 가뿐하게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안이 엄청난데. 호위도 전부 령사들뿐이야."
"저런 마법사 나부랭이들, 나 혼자서도 처리하고 남아."
"하하, 저번에 화염탄이 날아오니 바로 도망친 사람이 누구였더라?"
더스틴이 휴이를 향해 도발하자, 휴이가 인상을 쓰며 으르릉거렸다. 잡담이 길어지자, 크리스가 흐름을 끊는다.
"다들 집중해. 곧 마차가 이쪽으로 올 거야. 계획대로 소라랑 나는 앞줄을 노릴 테니, 셋은 뒤를 돌아서 령사들을 맡아 줘."
평범한 규모의 마차 행렬이 아니었다. 귀중품을 잔뜩 실은 만큼 호위를 태울 마차도 따로 있고, 평범한 도적단이라면 엄두도 못 낼 규모였을 것이다.
피슉.
크리스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를 놓아 말을 맞추었고, 뒤이어 소라의 도끼 또한 날아들었다. 말을 잃은 마부가 당황하며 자신의 자리에서 뛰어내렸고, 수상함을 감지한 령사들이 하나둘 마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어디, 몸 좀 풀어볼까…!"
휴이와 더스틴이 령사들을 향해 달렸고, 나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것이 습격임을 알아챈 령사들이 재빨리 오스테온을 소환하고 마법을 사용하려 했지만, 이미 등 뒤까지 접근한 우리에 의해 맥없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아무리 숙련된 령사라도 결국 마법에 의존하는 성향이 크기 때문에, 근접 용병을 상대로는 거리에 따라 크게 불리해지곤 했다.
나 역시 단검을 빼 들고 령사들을 상대하던 와중에 검을 들고 휴이의 뒤를 노려오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타나토스…!'
망설이지 않고 타나토스 주문으로 그를 치려는 자의 몸에 구멍을 뚫어 쓰러뜨렸다.
"...큰일 날 뻔했네. 고마워!"
내 덕분에 목숨을 구해진 휴이는, 휘파람을 불며 내게 말했다.
압도적인 전력차로 인해 난전은 순식간에 정리되었고, 령사들은 죽거나 상인들과 같이 포박되어 나무에 묶어두었다.
'....응?'
령사들의 시체를 살피던 중,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사람, 아카데미의….’
한때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기도 했던 동기가, 몸에 구멍이 뚫려 죽어있었다.
‘...일일이 연연하지 말자. 내가 선택한 길이야.’
바르나바 저항군의 주적이 령사들이라는 것은, 크리스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런 데서 감정을 소모해봤자, 지금의 동료들에게 부담이 될 뿐이다. 시체를 향해 남몰래 두 손 모아 기도한 후, 크리스들이 있는 곳으로 합류했다.
“애 좀 먹었네.”
크리스를 필두로 다들 굳게 잠긴 짐칸 앞에 모여, 그 내용물을 확인하려고 했다.
“..어라?”
앞에서 크리스가 문을 아무리 당겨보았으나 짐칸의 문은 굳게 잠긴 채 열리지 않았다. 이번엔 가장 근력이 좋은 더스틴이 도전해 보았지만, 여전히 문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뭔짓을 해놓은 거야, 이놈의 문짝…!”
더스틴이 열에 뻗쳐 쿵쿵거리자, 안쪽에 철판이라도 대놓은 건지 쇠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모습을 지켜본 크리스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카데미로 향하는 짐마차는 받는 쪽에서만 열 수 있도록 조치를 해뒀다는데, 그 소문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
뒤에서 잠자코 그들을 지켜보던 내가, 조심히 앞으로 다가갔다.
“제가 해봐도 될까요?”
“어, 사야 씨가…?”
더스틴이 놀란 눈치로 나를 보았다.
정신을 집중한 나는, 양쪽 팔을 거대한 검은 사르카의 팔로 변이시켰다. 도움을 받아 꾸준히 수련한 결과, 이제는 양팔에 사르카의 힘을 다룰 수 있게 된 나였다. 거대한 두 팔로 손잡이를 잡고, 이를 꽉 물며 잡아당겼다.
‘...끄응..!’
나사가 하나씩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쩌적 소리와 함께 짐칸의 절반이 그대로 뜯겨나갔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지켜보던 동료들도 입을 떡 벌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와, 대단한데요. 사야 씨.”
크리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치로 내게 말했다. 짐칸의 뜯겨나간 안쪽은 커다란 공간에 비해 적당한 크기의 상자와 여러 장의 종이 따위만 굴러다녔고, 크리스는 그 종이들을 발로 치운 채 상자를 열어 확인했다.
“맙소사. 이만한 양의 영혼석이면, 세말에 집도 한 채 사겠어.”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며 영혼석을 관찰하던 휴이가 말을 이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전부 저항군 활동 기금으로 배분해버릴 거지? 다 알고 있다고.”
"..넌 나를 너무 잘 안다니까, 휴이.”
휴이의 말에, 크리스는 미소를 지었다.
“읏챠."
크리스가 상자를 가지고 짐칸에서 뛰어내렸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성공이야. 다들 철수하자.”
그를 따라서 다시 숲길로 들어서려는데, 휴이가 마차에서 아직 내리지 않았다. 크리스가 그런 그를 향해 손을 흔들며 재촉했다.
“휴이! 늦으면 두고 간다?”
“어, 지금 가…!”
후다닥 달려온 휴이의 주머니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종이 하나가 꽂혀있었다.
‘..음?’
그것이 뭔지 물어볼까도 했지만, 도적단에서 개인적으로 전리품을 챙기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임을 떠올리곤 굳이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기로 했다.
“..캬아, 역시 작전 끝나고 먹는 맥주가 최고라니까.”
휴이와 더스틴이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있었다. 소라는 술이 익숙하지 않았는지 술에 취해 얼굴이 빨개져서 허공에 대고 뻐끔대고만 있었고, 크리스는 홀로 창문을 보며 서 있다.
“너도 와서 잔 좀 들지? 이런 날에 빼기 있어?”
더스틴의 해맑은 요청에, 크리스가 손을 저으며 답했다.
“하하, 난 술은 그닥 안 좋아해서. 게다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는 대로 서신도 보내야 하거든.”
그 말에, 더스틴이 자신의 근육질 팔로 나를 꽉 압박해왔다.
'...윽!'
“사야 씨도 마신다는 데 네가 빼기야? 그렇지, 사야?”
더스틴의 머릿속에서, 내가 마신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나보다.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을 바라보던 크리스는, 결국 동료들의 성원에 못 이겨 자리에 착석했다.
“그럼, 딱 한 잔만이야.”
술자리 불변의 법칙. 정말 딱 한 잔만 마시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밤새도록 술판이 이어졌고, 나름 술이 센 편인 나조차도 테이블에 얼굴을 붙이고 눈만 뜨고 있었다. 얼굴이 새빨개진 휴이가, 크리스를 향해 물었다.
“야아…. 크리스. 넌 저항군이 승리하면…. 이제 뭐 할 거냐?”
“..그야, 새로운 정권에 누구를 세울지 의논해야겠지.”
“...재미없는 새끼, 하여간….”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은 휴이는, 배배 꼬인 발음으로 말했다.
“나는 말이다, 남들이 평생 못 만질 만큼의 돈을 한번 벌어보련다. 언제까지 흙냄새 풍기면서 살래? 사치도 좀 부려보고 해야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
그의 중얼거림을 마지막으로, 술자리의 모두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결국 크리스는 서신을 제 시간에 못 보냈고 우리는 그 희귀하다는 크리스의 화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영혼석이 가득 실린 상자를 들고, 클레드가 지하에 있는 비올레 단장의 방을 향해 걸어갔다. 비올레는 꼭 한 달에 한 번, 자신의 방으로 대량의 영혼석을 가져다주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가 그것을 어디에 쓰는지, 왜 요구하는지 클레드로써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사야. 어디서 잘 살아있냐?’
처형이 사고로 인해 무산된 이후 사야가 아카데미에서 사라진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가끔 몰래 같이 음주를 즐기거나 수업을 빠지고 낮잠을 자곤 하던, 클레드에게 있어서 상당히 아끼는 제자였을 그녀가 사라지고 난 뒤의 아카데미는 거의 매일이 초상집이나 다름 없었다.
클레드는 비올레의 방문 앞에 다다른 그는, 문을 노크하며 말했다.
“클레드입니다. 부탁하신 영혼석입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활짝 열리며, 그가 클레드를 맞이했다.
“오, 고맙네. 클레드.”
비올레는 영혼석이 담긴 상자를 한쪽에 두고, 의자에 다시 앉아 클레드에게 물었다.
“요즘 제자들이랑은 좀 어떤가? 최근 뒤숭숭한 일들 때문에 많이들 침울해 있던데.”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평범하게 대답을 이어가던 클레드는, 커다란 위화감에 말을 멈추었다.
‘단장님, 눈이…?’
분명히 사야의 공격으로 실명되었던 그의 한쪽 눈이, 감쪽같이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러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클레드는 당황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채. 평소대로의 대답만을 하고 방에서 나왔다.
'저게 가능한 일인가…?'
그는 이제, 비올레라는 인간에 대해서 조금씩 의구심이 샘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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