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 종말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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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く????몞릾????鄏????梣????????????????????클레드와의 훈련이 전부 끝났다. 계란을 이용하던 훈련법도 처음에 비해 눈에 띄게 익숙해졌고, 언제부턴가 팔꿈치와 무릎 부분에도 연습용 날이 달린 보호대를 장착해 본격적으로 실전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손이 아닌 다른 부위를 사용해 공격한다는 것은 확실히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반격할 때 자세를 회복할 시간이 필요 없기에, 보다 접근전에 있어서 뛰어난 효율을 보여준다.
“됐다. 그 정도면 슬슬 실전용으로 교체해도 되겠어.”
한창 대련을 받아주던 클레드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벌써요? 아직 클레드의 발끝도 못 따라갔을 텐데요.”
“훈련으로 사용감을 늘릴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나머지는 직접 실전에서 사용하며 네 것으로 만들 수밖에.”
평소라면 훈련을 마치고 병나발을 불 생각에 얼굴이 헤벌쭉 해져야 했을 그가,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답지 않은 표정을 짓는 것이 조금 걱정되어,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일 있어요?”
그는 답변을 망설이는 듯하더니, 술을 한 모금 입에 적시고 입을 열었다.
“오늘 아침에, 단장님으로부터 임무를 하달받았다. 인원을 꾸려서 인비디아의 둥지에 정찰을 나간다는군.”
어젯밤 령사단장 비올레가 내게 말했던 인비디아의 부화 조짐 이야기는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부화 중인 상태의 인비디아를 둘러싼 알 모양의 외피는 모든 공격을 차단하기 때문에, 아무리 공격을 퍼부어 봐야 헛수고다. 따라서 정찰의 목적은 단순히 위치를 특정하고 토벌전에 있을 인력배치를 고려하기 위함일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의 고대종 사르카 토벌은, 전적으로 비올레의 능력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그가 토벌한 고대종, ‘식탐의 굴라’는 깨어나는 주기가 짧은 만큼 그 피해가 마을 하나 정도에 그쳤다.
“인비디아는 단장님조차도 버겁다고 말한 괴물이다. 준비를 단단히 해두지 않으면 당하고 말거야.”
질투의 인비디아의 부화 주기는 다른 고대종에 비해 아득히 길었다. 문헌에서조차도 기록을 몇 번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인류가 그것을 목격한 정보가 극도로 적다. 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그것이 깨어날 때마다 세상을 한번 뒤엎는 수준의 재앙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저희 팀도 따라가게 해주세요.”
“뭐?”
나 역시도 인비디아 토벌전에 가담하게 될 전투 인원으로써, 두 눈으로 현재 그것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 유리의 마법력이 토벌에 있어 키를 쥐게 될 수도 있는 만큼, 싸울 장소를 확실하게 익혀두는 것은 중요했다.
“단순 정찰일 뿐이다. 필요 이상의 인력을 대동할 필요는 없어.”
“저희도 목숨을 걸고 싸울 전장이에요. 적어도, 전투지를 눈으로 담아둘 수 있도록 해주세요.”
“...”
그는 고민하는 듯하더니, 한숨을 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너라는 놈은 항상 귀찮게 군단 말이지.. 단장님에겐 내가 말해두마. 내일 아침에 바로 출발할 수 있도록 해둬.”
“고마워요, 클레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그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이제는 그가 생각보다 말랑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참, 날이 갈수록 뻔뻔해지는군.”
그에게 억지를 부려가면서까지 정찰에 따라나설 이유는 충분했다. 이 시기에 미리 안전한 전투지를 경험해보는 건, 나뿐 아니라 동료들에게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거다.
그날 밤, 팀원들이 자는 사이 혼자 밖으로 나왔다. 지난번을 마지막으로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던 혼돈 수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주어진 퀘스트를 억지로 실패시킨 것이 무언가 문제를 일으켰는지, 기분 나쁜 노이즈와 함께 상태창이 망가졌었기에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혼돈 수치를 확인했다.
‘1.9..’
기분 나쁘게 망가진 시스템은 그대로였지만, 그 수치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대로 2.0에 도달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수치가 오르는 걸 늦출 수는 있어도, 낮추는 방법은 없다. 온갖 방법을 시도해봤었다. 주연 캐릭터들에게 원작 대사를 말하게 하기, 일부러 동일한 상황을 연출하기 등등 시도를 안 해 본 게 더 적었지만, 수치가 내려가는 일은 없었으니까.
“잠이 안 오나 봐?”
뒤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황급히 수치창을 닫았다. 어차피 남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굳이 켜놓고 있을 이유 또한 없다.
“아.. 유리구나.”
유리는 한쪽 팔에 전에 없던 면장갑을 끼고 있었다. 폭발로부터 나를 구하려다가 팔에 입은 화상을 가리기 위함이다. 잊으려고 해도, 그녀의 장갑을 볼 때마다 당시의 충격이 계속해서 회상된다.
“..흉터가 남아버렸네. 유리.”
그녀는 팔을 잠깐 들어 보이더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슥 들어 올렸다.
“상관없어. 마법이 나가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유리는 늘 이런 식이었다. 그 나이대의 소녀들과 달리, 강해지는 것 외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혼자 있을 때는 늘 수련 중이고, 밥 먹는 시간조차도 아깝다고 생각해 1분을 넘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그녀의 곱상한 외모를 보며 연심을 품던 남학생들이 괜히 제풀에 질려 나가떨어진게 아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널 살렸잖아. 사야.”
그녀답지 않은 의외의 언어 선택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넌 앞으로도 쭉 내 훈련 상대야. 뛰어넘을 목표가 죽어버리면 곤란해. 죽어도, 내 손에 죽어줘야 겠어.”
그 말만 덧붙이지 않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풀밭에 말없이 앉아있던 내 옆으로, 그녀가 자연스럽게 걸터앉았다. 필요 이상의 대화를 극적으로 꺼리던 그녀였던지라, 이런 사소한 변화들 하나가 놀라울 뿐이다. 조용히 달을 바라보던 유리는, 내게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같이 빈센트의 방에 들어갔었지. 사야.”
세뇌 능력이 있는 사르카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유리의 오빠, 빈센트 프리지아의 닫혀있던 방에 들어갔던 날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자식이 떠난 뒤로 7년 동안 미워했었어. 설마, 나한테 한마디 없이 사라질 줄은 몰랐거든.”
유리가 내게 말했던 대로, 빈센트는 그의 부모가 자료를 몽땅 태워버린 다음 날 집을 나갔다. 정확한 근황은 알 수 없으나, 살아있다면 필시 더욱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르카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도 미워?”
“그래. 하지만, 네가 찾아왔던 그날부로, 그 자식을 용서했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유리가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던 유일한 대상이, 어린 자신을 남겨두고 홀연히 떠나버린 데에 대한 분노가 아직까지 그녀에게 남아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제 자신의 오빠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그 자식을 미워했는지 몰라. 그만큼 내 전부였어. 하지만 집을 떠나는 게 그 자식한테 꼭 필요한 일이었다면, 난 오히려 등을 떠밀어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어. 빈센트가 꿈을 이루기에는, 프리지아 가문은 최악의 환경이니까."
"..좋은 남매네."
유리의 오빠라는 존재가 잠시나마 그녀의 유년 시절을 함께했었기에, 조금 비틀리긴 했어도 그녀가 올바른 길을 걸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리는 평소답지 않게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내 턱을 잡아 올렸다.
"....!?"
"신기하단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넌 빈센트와 닮았어."
스킨쉽을 하는 습관이라곤 일절 찾아볼 수 없었던 그녀였기에, 손길에 쉽게 당황해버린다.
"닮았다니, 외모 말이야..?"
"아니. 외모를 말하는 게 아니야. 너랑 얘기하다 보면, 너한테 묘하게 빈센트가 겹쳐 보인단 말이지. 참 이상해."
그녀가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사실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유리의 오빠인 빈센트 프리지아는, 사실 구상단계부터 나와 가장 유사한 캐릭터로 만들었었다.
전생에서의 나는, 글이라는 꿈을 포기하지 못한 채 매번 변변찮은 소설들을 써 내려갔을 뿐인 어중이떠중이였다.
부모님의 반대가 있었던 건 물론이거니와,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않는 나를 보며 그들에게는 내가 글을 쓰는 일이 하나의 저주처럼 보였을 것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해야 했던 하나뿐인 자식을 타락시킨 저주.
그런 입장에 서서, 나를 투영해서 만든 캐릭터가 바로 빈센트였다. 그러니, 그녀가 나를 그와 겹쳐 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그렇고, 드디어 감정 기폭제를 완성했어. 저번에 너한테 보여줬던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야."
유리는 유리 플라스크에 담긴 자줏빛 용액들을 꺼내 내게 보여주었다.
그녀에게 마법의 발동 원리에 관한 진실을 말해 준 뒤로, 한동안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가, 강제로 흥분을 유발하는 약초를 사용해 만든 이것이었다. 성분을 비틀면 발정제로도 사용되는 약물이었기에, 쉽게 구할 수 없는 편이었다.
"이번엔 단순히 흥분시켜서 상시 분노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데 더해, 마법 출력양을 비약적으로 늘려줄 거야."
"..대체 그 안에 뭘 집어넣은 거야?"
"혈석을 녹여 만든 촉매를 소량 집어넣었어. 본래 마시는 용도는 아니지만, 몸에 해가 없을 정도만 첨가했으니 크게 문제 되진 않을 거야."
남들이 보면 분명 미친 x이라고 할법한 위험천만한 시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런 모험심이 그녀를 강인하게 만들어주는 이유기도 했다..
지금의 유리는 개인이 낼 수 있는 최대 위력의 중급 마법을, 그것도 여러 번이나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그녀 자신이 직접 만든 약으로 도핑한다면, 일시적으로 비올레에 버금가는 마법을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올레 령사단장. 대체 무슨 생각일까."
깨어난 유리에게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두었었다. 정황상으로 보아, 유리를 죽이기 위해 카르네를 세뇌시켰던 건 그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그는 우리의 행동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알아챘음에도, 평소처럼 행동할 뿐이다.
"아직 그가 확실하다는 제대로 된 보장은 없어, 사야. 만약 비올레가 맞다고 해도, 이렇게 된 이상 그가 나를 토벌전이 끝나기 전까지는 방치할 거라 생각해."
..확실히, 유리는 토벌전에 꼭 필요한 인재였으니까. 그때까지 그녀를 살려두는 게 더 나은 판단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혹은, 우리가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거나.
"이만 들어가자. 내일 있을 정찰을 대비해야지."
유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기숙사 방으로 되돌아갔다.
내일.
드디어 이 세계를 종말로 몰아갔던 인비디아의 실체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불안하면서도 본능적인 궁금증이, 잠들려는 나를 계속해서 방해했다.
나는, 이 세계의 정해진 운명에 저항할 수 있을까.
그날이 찾아와도, 웃는 얼굴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다음날 새벽,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준비를 하고 아카데미를 떠났다. 정찰을 나서게 된 인원들은 령사 단장 비올레, 교관들, 그리고 우리 팀을 포함한 S등급 팀의 령사들이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나름 최상의 인재들을 선발했으나, 예정일 전에 인비디아가 깨어나는 일 따위는 없다. 부화 단계도 아직 극초기에 불과해, 오늘의 업무는 단순히 그것의 진행도를 관찰하고 전투에 필요한 설비를 갖추는 일이었다.
드디어 인비디아의 부화 장소에 입성하기 직전, 전투 교관클레드가 우리에게 경고했다.
"꼬맹이들, 무슨 일이 있어도 인비디아와의 접촉은 금물이다. 단순히 우리를 도와서 잡무만 진행하도록 해."
잡무라 함은, 간이 텐트 설치나 보급된 물자를 옮기는 일이었다. 국가 단위의 인력이 투여될 예정이고, 부화가 가까워지면 전투 인력들이 미리 근처에서 상주해야 했기 때문에 필요한 설비였다.
"질투의 인비디아는 어떤 모습일까. 사야."
오는 내내 말없이 내게 딱 붙어있던 루나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방패를 쓰지 못하게 된 그녀는, 이제 나머지 빈손으로 마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싸우는 방식을 연습 중이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인비디아는 정해진 모습이 없다고 해."
7대 죄악중 질투를 담당하는, 고대종 인비디아.
정해진 고유의 형체가 없는 인비디아는그 이명답게 만물을 질투하여 모습을 모방했다고 한다.
단순히 외견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 능력까지도 완벽하게 재현해낸다고 하기에 더욱 무시무시한 사르카다.
"둥지는 이 앞이다. 다들 돌발상황에 주의하도록."
나름 전투 교관답게, 클레드가 앞장서 둥지 내부로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사실 말이 둥지지, 하나의 거대한 분지에 가까웠다. 운석에 맞아 패인 크레이터처럼, 동그란 반구의 모양으로 패여 있는 지형이었다.
그가 숨을 죽이고 둥지 내부로 들어갔으나, 몇 초가 흘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전을 확인한 클레드는, 손을 흔들어 들어와도 됨을 알렸다.
인원들이 차례로 분지를 미끄러지듯 내려갔고, 드디어 그 실체를 마주할 수 있었다.
"이게.. 인비디아..?"
분지의 벽면으로부터 수없이 이어진 검은색의 촉수들이, 가운데에 있는 하나의 구체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근육 덩어리를 뭉쳐놓은 듯 울퉁불퉁한 그 검은 덩어리는, 자신이 살아 숨 쉼을 주장하듯 쿵쿵거리며 박동하고 있었다. 크기는 의외로 사람보다 약간 큰 정도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였다.
그 형체를 지켜보던 카르네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역겨워."
아마 그녀의 표정이,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온통 수수께끼에 쌓인 저 생물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길함을 증폭시키고 있었다.
"활동성을 보이는 것 같진 않습니다. 어떡할까요, 단장님."
클레드가 비올레 령사단장에게 묻자,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처음의 계획대로, 오늘은 전투에 필요한 설비만을 하고 돌아갈 겁니다. 애초에 저걸 둘러싼 장막은 마법을 차단할뿐더러, 오히려 양분으로 삼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섣불리 공격할 필요는 없어요."
"..알겠습니다."
비올레 역시, 인비디아의 위험성에 대해선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벽면으로부터 이어진 촉수조차도 최대한 건드리지 않고, 조심스레 설비하도록 요구했다.
인원들은 계획에 따라 움직이며 보급 물자를 옮기고, 간이 텐트를 세워나갔다. 소수의 인원은 설비가 끝나고도 이곳에 남아 인비디아의 동태를 관찰한다고 한다.
설비 중에는 토벌을 위한 함정 따위도 포함되어있어, 특수 소재로 만든 창이나 폭발함정 등이 살벌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인원들의 지휘를 맡은 교관 하나가, 내게 줄과 폭발물이 담긴 액체를 들려주며 말했다.
"이걸 놈의 밑부분에 조심히 고정해둬. 자칫해서 폭발하면 끝장이니까 꼭 주의하고."
왜 굳이 위험한 작업을 우리에게 시키는가 하면, 교관들의 키가 대부분 큰 편이라 촉수 밑으로 기어갈 공간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최대한 몸을 낮추고, 촉수에 닿지 않도록 주의하며 인비디아의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징그럽네.'
아마 여기 있는 인원들 중에는, 내가 가장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 밑에서 올려다본 검은색 모양의 근육 덩어리에는 자세히 보니 감겨있는 수많은 눈이 달려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딱 붙어있자니 박동이 더 실감 나게 전해져 와서, 재빨리 설비를 마치고 촉수 밖으로 빠져나와 그들에게 끝냈음을 알렸다.
"다 끝났어요."
"좋아. 이만 철수한다!"
다들 잔뜩 긴장해있던 초반에 비해, 의외로 심심한 작업만이 이어졌을 뿐인지라 일이 끝났음에 환호했다.
저 멀리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거운 짐을 옮기는 작업을 했던 루나가, 유리와 카르네에게 붙어 밝은 표정으로 무어라 말하고 있었다.
"사야, 이제 돌아가자! 오늘 저녁은 고기찜 해줄게!"
그녀의 부름에 멋쩍은 미소와 손짓으로 화답하고, 발걸음을 뗀 순간이었다.
혼_|수치_ 정해진| _에 도달_습니_|
마구 깨져가는 글자들과 함께, 혼돈 수치를 나타내는 상태창이 눈앞에 강제로 출력되었다.
패널_ㅣ 부여 : 인_디아_ㅣ 부화_ 가속_됩_다ㅣ
처음으로 느껴진 것은 묘한 기시감이었다.
혼돈 수치가 1.0 에 도달했을 때와 같은, 어딘가 메스꺼우면서도 불쾌한 기분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기분 나쁜 뒤틀린 감각과 함께, 까드득거리는 소리가 아주 조용하게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뒤를 돌아본 나는,
종말과 선명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새 표지 러프입니다!
이번 표지 작업은 야광다이노 작가님이 맡아주셨습니다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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