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 궁수 바르나바 (2)
* * *
"이게 뭐에요?"
나는 클레드가 건넨 다섯 개의 조그마한 알을 받고, 그것들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게 네 무기다. 몸에 숨길 수 있는데 전부 숨겨."
"이거, 그냥 새알인데요."
"소조(小?)의 알이다."
삶은 것도 아니고, 비릿한 냄새가 남아있는 조그마한 새알들이다.
메추리알만 한 크기의 얼룩진 알.
'대체 무슨 훈련을 시킨다는 거지?'
손목까지 덮는 긴 소매의 상의와 답답하게 생긴 바지를 주며 갈아 입고 오라고 했는데, 소매 안에 새알이나 넣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일단은 그가 말하는 데로, 옷에 있는 주머니에 되는대로 새알을 쑤셔 넣었다.
"좋아. 그 상태로 알이 깨지지 않게 유지하도록.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칭찬해주마."
"그런 거라면 식은 죽 먹기죠."
라고 말하는 순간, 그의 발차기가 내 안면으로 날아왔다.
"우왓..!"
반사적으로 한 손으로 방어하자, 소매 속에 들어있던 새알이 퍽 하고 터져버린다.
"무슨 짓이에요..?"
박살 난 달걀에 끈적해진 옷소매가 찝찝하다.
"훈련이다."
뭐라고 반론할 틈도 없이, 그의 공격이 쉴 새 없이 날아들었다.
얼핏 보면 백묘 대장과 비슷한 훈련 방식이지만, 그녀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
마치, 알이 들어 있는 곳만 노려서 타격한다는 느낌이다.
이번엔 팔꿈치가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오른손으로 막아내면 손쉽게 받아낼 수 있겠지만, 그랬다간 소매 속에 넣어둔 새알이 박살 나버린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젖혀 피하는 쪽으로 행동이 유도됐다.
"아래가 허술해."
아차, 싶은 순간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새알이 허무하게 박살 났다.
"집중해라. 아직 세 개 남아있으니."
'찝찝해서 그게 안돼는데요...'
누가 보면 오줌이라도 지린 것 같은 비주얼이 되어버렸다.
그 후로 몇 번이고 그가 새알을 노려온 공격을 해온 탓에, 몸 구석구석이 끈적하고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이거, 진짜 훈련 맞아요..!?"
억울한 표정으로 그에게 호소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내가 싸워오면서, 제일 많이 다쳤던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지?"
"..사르카요?"
"아니, 몸에 있던 무기다."
그는 자신의 소매와 주머니 속에서, 수많은 암기며 칼날을 바닥에 쏟아냈다.
"...!"
"이게 실전이었다면, 지금 네 몸에 묻어있는 건 노른자가 아니라 네 피가 됐을거다. 사야."
몸에 수많은 무기를 감춰두고 다닌다는 건, 그만큼 외부의 타격에 더 취약해진다는 의미였다.
찌르기 위해 숨겨둔 칼날이 자칫하면 자신에게 박힐 수도 있고, 적절한 위치를 선정하지 않으면 무기로서의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그런 거였나..'
내가 맞은 위치에 들어있던 게 칼날이었다고 생각하니, 몸에 오한이 돋았다.
"이런 위험한 기술을 전수하는 이상, 나도 제자가 자기 무기에 박혀 죽는 꼴을 볼 수는 없어서 말이야."
전신을 무기로 바꾸는 대가는, 신체의 어디든지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있었다.
"한동안은 새알이 깨지지 않도록 해봐라. 옷은 알아서 빨아오도록."
"...네."
앞으로 이런 끈적함을 얼마나 더 느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루나와 유리는 아직 회복 중인 탓에 접견이 불가능했고, 카르네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기에 당분간은 온전히 훈련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그 뒤로 클레드와의 훈련에는 3분짜리 모래시계를 두게 되었다.
3분간 그는 전력으로 알을 깨려고 하고, 나는 반대로 그걸 지켜야 했다.
처음에는 방어하고 피하는 데에만 급급해 혼자서 나자빠지기 일쑤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공격적으로 나가는 게 더 효율적이란 걸 몸으로 느끼게 됐다.
소극적으로 임할수록, 클레드에게 공격 기회를 더 벌어주는 꼴이다.
새알이 깨질 위험을 감수하고 공격에 나서는 건 물론 어려운 일이었고, 실제로 번번이 깨졌지만 내가 공격적인 성향으로 바뀔수록 버티는 시간이 점점 늘어갔다.
대련 중에 코를 팔 정도로 여유 있어 보였던 클레드도, 약간 땀을 흘릴 정도로 적극적으로 임하는 수준이 되었다.
딱 일주일이 지났을 즈음, 훈련이 한창이던 때에 클레드가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
"....?"
누가 봐도 그대로 발차기를 질렀으면 마지막 남은 알이 박살 났을 텐데, 그는 동작을 이어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딱 굳었다.
"....버텼군, 3분."
"에?"
그러고 보니, 마지막 새알이 남아있는 시점에서 모래시계가 정확히 다 떨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가 무심하게 자리를 떴고, 나는 소매 속에 남아있던 새알을 꺼내어 쥐었다.
'...드디어 지켰다!'
일주일간 처음으로 지켜낸 새알이었다.
들뜬 기분으로, 그것을 높이 치켜들었다.
바스락.
"....아."
너무 세게 쥔 탓에, 새알이 손에서 허무하게 바스라져 액체가 손을 타고 뚝뚝 흘렀다.
유독 태평한 주말이었다.
클레드는 어젯밤의 과음으로 인한 술병 때문에 앓아누웠고, 카르네는 밤새 난리를 치다가 곯아떨어졌다.
훈련장의 나무 그늘에 앉아서, 멍하니 구름이 지나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슬슬 더워지네.'
요즘 들어 본격적으로 햇빛이 더 쨍쨍해지고, 낮이 길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초읽기에 들어간 걸까.
그때, 푹 하는 소리와 훈련장의 궁술 표적에 화살이 박혀 들어갔다.
'...음?'
령사 아카데미에서 활은 상당히 비주류 무기였던 탓에 여길 이용하는 건 나 정도가 전부였는데, 오랜만의 이용자였다.
첫 번째 표적의 정중앙에 화살이 꽂힌 뒤, 추가로 발사된 두세 발째의 화살도 정확하게 표적들의 가운데에 날아가 꽂혔다.
정확하면서 빠르기까지 한, 무서운 실력자다.
'누구지?'
그자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갔다.
"...크리스?"
"어라, 여기 계셨네요. 령사님!"
그의 정체는, 이사벨 황녀의 새로운 호위인 크리스 바르나바였다.
일주일 전에 석궁의 수리를 맡겨두었었지.
"기숙사에도 안 계시길래 한참 찾았어요. 제가 손 본 부분 좀 보실래요?"
그에게 맡겨두었던 석궁을 받아들자, 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손잡이가 추가되어 있다.
"이건?"
"우선 썩은 부분을 교체하고 줄도 갈았어요. 안쪽을 파내서 무게도 더 줄었을 거고요. 그리고, 손잡이를 써서 전보다 쉽게 장전할 수 있을 거예요."
"..."
"..앗, 혹시 마음대로 개조해서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오히려 고마워서.."
수리를 맡겼을 뿐인데, 전보다 훨씬 발전된 형태를 갖춰서 돌아왔다.
경량화에 중점을 준 부품들에서, 그의 무기를 향한 애정이 느껴질 정도다.
"그랬다면 다행이네요. 이런걸 만지다 보면 무심코 진심이 되어버리곤 해서요."
그가 돌려준 석궁을 손에 고정해보았다.
"바로 테스트해봐도 될까요?"
"그럼요! 저야 영광이죠."
그렇다면 사양하지 않고 바로 사용해볼까.
새로운 장전방식인 손잡이를 당겨 살을 고정하고, 표적을 겨냥해 발사했다.
그리고 곧바로 화살을 재장전해 옆의 표적에 발사했다.
'..훨씬 편한데!'
지금까지 석궁을 장전하려면 바닥에 고정한 후 온 힘을 다해 끌어올려야 했던 것과 달리, 손잡이가 달린 것만으로 연속 발사가 가능해졌다.
내 사격을 지켜보던 크리스가, 뒤에서 석궁의 끝자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위력을 더 올리고 싶으시다면, 이 뒷부분에 줄을 걸어서 장전할 수도 있어요. 물론, 보통의 장전보다는 힘이 엄청나게 들어가겠지만요."
180도 바뀐 석궁을 보고 있자니, 감탄밖엔 나오지 않았다.
"고마워요. 이 정도로 신경 써주실 줄은 몰랐어요."
"뭘요. 수리비는 100골드만 청구할게요."
"네 !?"
깜짝놀라 그를 보자, 천진난만하게 웃고있었다.
"장난이에요, 령사님."
그가 진지한 눈으로 말한 탓에, 진짜로 청구하는 줄 알고 철렁했다.
그러고 보니, 장난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아카데미는 이런 분위기군요. 뭐랄까, 부럽네요. 다들."
"부럽다구요?"
그만한 나이에 황실의 궁술 지도 교사에 오를 정도면 남부러울 게 없을 줄 알았는데, 크리스가 그런 말을 하니 의외였다.
"14살에 입대한 후로 쭉 궁병으로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서 뭔가를 같이 배우는 건 조금 동경하게 되네요."
"아.."
"..령사님만 괜찮다면, 혹시 주말마다 여기 들려도 될까요? 잘하는 건 활 쏘는 것뿐이지만, 관심이 있으시다면 성심껏 지도해드릴게요."
"네? 그래도 돼요? 황녀님의 호위 임무는.."
이런 엘리트가 궁술을 가르쳐준다면야 나야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호위를 맡는 입장으로써 그녀에게서 떨어져 있어도 되는 걸까?
"황녀님은 외출하실 때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궁궐 내에서 언제나 보호를 받으시니까요. 오히려 평상시엔 좀 떨어져 있으라는 분위기시네요."
"..하긴, 워낙 자유분방한 분이시니까."
"그리고, 고민이 좀 있기도 하고.."
'고민?'
그는 얼굴을 긁적이더니, 시선을 가만히 두질 못했다.
"곧 있으면 령사 아카데미 내에서 무도회가 있는 건 알고 계시죠? 실은 거기에, 황녀님도 참석하실 예정이라서.."
그러고 보니, 벌써 무도회 날이 다가오고 있었나.
무도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원작 소설의 종장부에 다다르고 있다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래서요?"
"그러니까.. 으음.. 무도회에서.."
그의 눈빛과 제스처로 보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런거구만.
"무도회에서 황녀님의 파트너가 되고 싶다구요?"
"려, 령사님…! 그런 걸 큰 소리로 말씀하시면..!"
"뭐 어때요. 여긴 둘밖에 없는데."
얼굴이 빨개져서 당황하는 모습이, 그도 역시 한창 사춘기의 소년이란 걸 체감하게 해줬다.
"..령사님이라면, 여성분이시니 그 부분을 간접적으로나마 알려주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연애 상담에 필요한 사람을 찾은 게, 나라는 이야기구나.
"죄송하지만 상담사를 잘못 찾으신 것 같은데, 저는 남자.."
"...남자?"
곧바로 말실수를 직감하고, 빠르게 말을 돌렸다.
"남자 경험 같은 건, 없어서…!"
"...아. 그, 그렇군요. 령사님께서도.."
하마터면 우주 내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을 실토할뻔했다.
생각해보면, 그를 도와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이사벨이 음흉한 남정네와 춤을 추는 모습을 떠올리는 게 별로기도 했고, 크리스 정도라면 그런 놈들에 비해 훨씬 괜찮은 녀석이니까.
"..그래도, 노력이 닿는 한은 도와줄게요. 여자 입장으로써 뭔가 알려줄 수 있는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깐."
지금의 나는 여자인 게 맞는데, 스스로를 여자로 소개하는 게 이토록 어색한 일이었다니.
"정말요? 감사합니다, 령사님!"
들떠 보이는 그를 마중하며 돌려보냈고, 부탁을 받아들인 나에 대해서 걱정이 밀려왔다.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 사이에 끼어든 건 아닐지.'
걱정이 앞서는 건 사실이지만, 이미 받아들였으니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봐야지.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싸구려 술을 사 들고 클레드에게 찾아갔다.
"수업료 가져왔어요."
"첫날 같은 열정을 보여준다면 정말 기쁠 것 같은데."
'열정이 아니라, 가격이겠죠..'
술병을 받아든 그는, 이번에도 내게 훈련에 사용할 알들을 건네주었다.
"...클레드?"
"왜 그러냐."
"알이 전보다 좀 커진 것 같은데요."
그가 이번에 건넨 것은, 저번과 같은 새알이 아닌 요리에 사용하는 황색 달걀이었다.
"문제 있나?"
"문제가 있다고 해도, 그냥 진행할 거죠?"
"나를 너무 잘 아는군."
겨우 한발 정진했다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노른자로 샤워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