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소동 이후
* * *
"사르카 교와의 싸움에 휘말렸다고?"
햇빛이 비추는 치료실 밖에서, 클레드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그런 상황이 있었는데 왜 교관을 부르지 않은 거냐."
"교관을 대동하면 납치된 령사들을 죽인다고 해서.."
"..내가 그 정도 대처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정말이지.."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보는 클레드의 취하지 않은 모습이다.
"술, 안 드셨네요?"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
얼굴이 벌겋고 눈이 충혈된 클레드만 보다 보니 왠지 어색한 느낌이다.
“그 남자가 마셨던 건, 결국 뭐였을까요.”
“..그 액체를 마시고, 오스테온과 사르카가 뒤섞인 듯한 괴물로 변했다고 했었나. 그런 건 나도 듣도보도 못했군.”
역시, 그 액체의 정체는 클레드조차도 모르는 성분이었다.
“비올레 총장님께서도 령사들을 파견해서 시체를 조사중이니, 밝혀지는 대로 이야기 해주마.”
“..네.”
"그나저나.."
그는 자신에게 달라붙어 머리를 잡아당기고 있는 카르네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왜 이러고 있는 거냐?"
"사야, 이거 늘어나…!"
"카르네..!"
카르네의 돌발행동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제지했다.
"사야 엄마!”
그녀의 의미불명 대사에, 클레드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엄…. 마?"
"이건, 그러니까.. 벌칙이에요. 벌칙!”
“벌칙이라고..?”
머리를 빠르게 굴려서, 최대한 그럴싸한 개소리를 생각해냈다.
“내기에서 진 사람이, 하루 동안 아기처럼 행동하는…"
그는 의심이 잔뜩 낀 눈초리로 나를 노려봤지만, 내가 그에게서 카르네를 떼어내자 시선을 곧 시선을 거뒀다.
"이해할 수 없군. 요즘 젊은 애들이란.."
“하하...하..”
어젯밤부터 카르네가 쭉 이랬다.
나를 보고 엄마라고 하질 않나, 이상한 행동을 보이질 않나.
하도 울며 보채길래, 업고 가는동안 탈진하는 줄 알았다.
충격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얌전히 있어줘, 카르네. 제발..”
“싫어!”
내게 달라붙는 카르네를 진정시키고 있는데, 회복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나왔다.
"많이 기다렸죠. 둘의 경과가 나왔어요."
"아이리스 교관님!?"
소환 마법 교관이면서, 동시에 사서를 맡고 있는 그녀가 회복실로부터 나왔다.
"왜 교관님이 여기에.."
"아아.. 실은, 아카데미 측에서 응급환자가 생길 때마다 제게 의무보조를 맡기고 있거든요. 역시 수업이 없으니 그런 걸까…. 요."
"...교관님이 다재다능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어머, 정말요?"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것 같지만, 그녀가 측은해 보이기에 그렇게 말해줬다.
"어쨌든, 둘 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어요."
"둘의 몸에는 문제없을까요..?"
유리는 근거리 폭발주문에 직격당했고, 루나는 맹독에 꽤 오랜 시간을 중독당했다.
"..없다고는 못하겠네요. 후유증이 뒤따를 거에요. 일단 유리 양은 왼팔과 가슴팍에 생긴 화상을 계속 치료해야겠네요. 면적이 꽤 커요."
"..루나는요?"
"루나 양은…"
아이리스 교관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루나 양은, 독이 장기에 많이 퍼진 상태라 장기 일부를 조금 적출했어요. 앞으로 예전처럼 싸우는 건 어려울 거에요."
"..."
두 사람 다, 죽기 직전까지 갔던 결과 몸에 큰 피해가 있었다.
특히 루나는, 앞으로의 전투능력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의 부상을 입었고.
"아직 두 사람 다 회복 중이니, 병문안은 며칠 뒤로 미뤄주세요."
아이리스가 떠나고, 다시클레드와 남겨졌다.
카르네는 어느새 내 무릎에서 잠든 채, 새근새근 졸고 있었다.
"제가 더 강했더라면.."
"그랬어도 저 녀석들은 똑같이 행동했을 거다."
"적어도, 피해는 훨씬 줄었지 않을까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작은 변수로도 목이 날아가는 게 전장이야. 개개인의 힘으로 지킬 수 있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
"..."
강해지려고 익힌 수인족 체술도, 머릿속에 갖춘 마법 지식도 어젯밤 같은 돌발상황 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결국 나는, 아직도 너무 약하다는거다.
클레드가 상심해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너, 수인족 체술을 알고 있다고 했었지. 그거, 누구에게 배운 거냐?"
"..."
그의 질문에 섣불리 대답할 수 없었다.
도적단에서 배웠다는 걸 말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그다지 떳떳한 스승은 아니었나 보군. 이해하마."
그의 눈치를 힐끔 보곤, 내가 물었다.
"..그런데, 체술은 갑자기 왜요?"
"그런 무기를 썩히고 있으니 안타까워서 말이야."
"썩히고 있다고요..?"
"그래. 50% 정도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어."
나름대로 최선의 방법으로 활용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클레드에게 정면으로 부정당했다.
"배운 그대로 쓰고 있을 뿐인데,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거에요?"
"그대로 쓴다고? 체술을 그대로 활용해서 재미를 볼 수 있는 건 적절한 신체조건이 갖춰진 수인들이지, 우리 인간들이 아니다."
"..그럼 어떤 식으로 활용해야 하는데요?"
"발톱이 없으면 대신할 무기를, 근육이 없으면 그에 걸맞은 도구를 달아줘야지."
그가 손가락을 접자, 몸의 여러 곳에서 숨어있던 칼날과 스파이크가 잔뜩 튀어나왔다.
"평소에 옷에 이런걸 달고 다닌단 말이에요…!?"
"이것도 있지."
이번엔, 그의 손등 쪽에 접혀있던 뾰족한 칼날이 소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수인과 인간은 신체 조건부터가 달라. 그러니 무기를 같이 활용하는 방식을 배워야 할거다."
"..어디서 아신 거에요, 그런 지식은?"
"독학했지. 싸워보면서."
즉, 원래의 수인족 체술에서 클레드의 변형이 가해진 버전이라는 이야기다.
"배울 생각이 있다면 아무 때나 술병 들고 훈련장으로 와라."
"술병은 왜요?"
"수업료."
그냥 술을 먹고 싶을 뿐이라고 솔직히 말하지.
'..내 체술이 완전하지 않았다니.'
개인 수업을 제안한 건, 자책하고 있던 나에 대한 클레드 나름대로의 격려였다고 생각했다.
'..제일 싼 술이 얼마지?'
수업료를 맞출 생각을 하며, 클레드를 떠나보냈다.
유리와 루나의 병문안은 빨라야 2~3일 뒤에나 가능하다고 하니, 당분간 기숙사 안에는 카르네와 나 둘 뿐이었다.
"배고파…. 배고파!"
문제는, 카르네가 마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 듯한 행동을 보인다는 거다.
"아까 밥 먹었잖아, 카르네."
"..훌쩍."
아니, 설마 또 우는 거야?
하는 수 없이 그녀를 달래는데, 피곤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뭐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
몇 가지 가설을 생각해봤다.
첫 번째, 그녀가 연기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평소의 카르네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일부러 아기 같은 행동을 하는 것 쯤은..
“더워!”
카르네가 갑자기 입고 있던 원피스를 훌렁 벗어 던져버린다.
“다시 입어..!”
첫 번째 가설은 취소다.
나를 속이려 든다기엔, 그렇게 해서 그녀가 얻는 게 없다.
지금 떠오르는 유력한 가설은, 방어 기제의 발동이다.
만약 그녀에게 세뇌를 걸었던 술자가 누군가 그녀의 세뇌를 풀어버릴 것을 대비했다면, 원래대로 돌아온 그녀가 술자의 정체를 부는 것을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이 예상치 않았던 요인에 의해 세뇌가 풀리게 되면, 자신의 정체를 까발리지 못하게 일시적으로 그녀의 기억을 날려버리도록 설계했다는 가정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아기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가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나저나, 이대로 아카데미 내를 돌아다니게 건 꿈도 못 꾸겠고.’
아카데미 측에는, 그녀가 충격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한 상태라고 얘기해 뒀다.
카르네를 혼자 두고 어디를 돌아다니기도 애매하단 말이지.
“..댕댕이.”
오랜만의 부름에, 댕댕이가 군말 없이 소환에 응했다.
방 한가운데 소환된 댕댕이의 모습을 보자, 카르네가 격하게 달라들었다.
“멍멍이다!”
“컹?”
갑자기 그녀에게 안겨진 댕댕이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나를 빤히 바라봤다.
음, 댕댕이가 딱히 카르네에게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진 않는군.
“..그럼, 오전 동안에만 좀 부탁 하마.”
“컹? 컹! 컹!”
그가 나를 향해 무어라 분노를 표출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재빨리 방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24시간 그녀와 붙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인간정도의 지능이 있는 댕댕이에게 맡겨놓는 것이 차라리 안전할 거라고 판단했다.
‘..괜찮겠지?’
뭐, 나 말고 다른 인간에겐 피해를 끼친 적이 없는 놈이니까.
안젤리카의 팬티를 벗겨온 것 빼고는.
문에 몸을 기대고 복도에 멍하니 서 있는데,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다.
‘잠깐, 그 뒤로 퀘스트는 어떻게 됐지?’
유리의 심장이 멈춘 순간, 퀘스트는 그녀가 사망했다고 판단해 실패로 처리됐다.
그렇다면, 제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던 타이머 또한 같이 멈췄을까?
_띠링_
‘...뭐야?’
글자들이 제멋대로 변형되고, 알아볼 수 없게 흔들리고 있었다.
생리적인 기분 나쁨에 재빨리 기묘하게 변형된 퀘스트 창을 닫고, 곧바로 혼돈 수치를 확인했다.
현재 혼돈 수치 : 1.8
“1.8….!?”
엄청난 폭으로 수치가 상승했다.
이대로면, 언제 수치가 2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괜찮은 거야, 이거..?’
카르네와 유리.
둘 중 누군가는 죽어야 했을 운명을 바꿔버려서, 이런 결과가 나와버린 건가.
정리되지 않는 복잡함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 이전화인 39화에 못쓰였던 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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