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잉태 (2)
* * *
인간의 살덩이, 사르카의 검은 피부조직,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오스테온의 흔적을 가진 그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격렬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카르네, 일어나.”
유리가 카르네에게 묶인 밧줄을 풀고,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
“으음.. 뭐, 뭐야?”
카르네는 곧 자신의 눈앞에서 꿈틀거리는 이형의 생명체를 보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흐엑..!? 뭐야, 저건...!”
“..우선 사야 쪽으로 넘어가자. 서둘러!”
“유리!”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는 유리와 카르네를, 그 생명체가 촉수같이 생긴 팔을 휘둘러 공격했다.
유리가 칼을 꺼내 그것을 튕겨내듯 잘라냈다.
그녀들이 이쪽으로 열심히 뛰어오는 사이, 괴물의 잘려 나간 단면에서 두 개의 팔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미친, 뭘 마셨길래 저렇게 변한 거야?”
내가 유리에게 말했다.
“모르겠어. 확실한 건 벨 때 느낌이 사르카랑 달랐어. 좀 더 딱딱하다고 해야 하나.”
유리가, 칼에 묻은 짙은 보라색 피를 털어내며 말한다.
“도망칠 수 있겠어, 사야?”
유리의 물음에, 내 몸에 기대어 부축하던 루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들 만이라면 가능하지만 루나까지 업고 도망치는 건 무리야.”
이 이상 루나를 움직이게 했다간, 독이 삽시간에 온몸으로 퍼질게 뻔했다.
저번처럼 중급마법을 이용하면, 빠르게 끝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마법이 가능한 사람 있어?”
“..아니, 사야. 우리 셋 다 몸에 사르카 피가 섞인 상태야. 불가능해.”
“젠장, 이번에는 촉매도 있는데..”
혼란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던 카르네가, 나에게 물었다.
“저기, 마법을 못 쓴다는 건…?”
“사르카 피가 몸에 섞여 들어가면 마법이 안 나와. 너도 같이 당했잖아?”
그러자, 유리가 카르네를 보며 말했다.
“..아니, 사야. 카르네는 자느라 눈을 감고 있었을거야.”
“..뭐?”
또다시 날아오는 촉수 하나를, 유리가 칼로 잘라냈다.
기겁한 카르네가, 몸을 떨며 말했다.
“왜, 왜들 그렇게 봐?”
“카르네. 아무 마법이나 사용해봐, 어떤 거든!”
내 재촉에, 카르네가 눈을 질끈 감더니 소환 주문을 외웠다.
“...안가티!”
연기와 함께, 인간형의 오스테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반신 주변을 회전하는 톱니바퀴 같은 고리가 드레스를 연상시킨다.
유리의 말처럼, 카르네는 눈을 감고 있었기에 점막을 통해 피가 흘러들어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와 나는 카르네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카르네에게 촉매들을 넘기고, 그녀에게 말했다.
“카르네. 자연계 중급 마법으로 놈의 움직임을 묶어줘. 그 사이에 우리가 마무리 지을게.”
아직 괴물의 모습이 완전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모습을 갖추기 전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뭐..? 나 중급마법 같은 거 배운 적 없는걸..!”
“기간틱 바인을 쓰는 거야. 영창 주문은, 대지의 오스테온이여, 자연의 분노로 만물을 휘감아라. 이렇게 하면 됄거야”
“...아, 알겠어.”
두 사람 다 내가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냐는 눈치였지만, 상황이 급한 만큼 사소한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부탁할게, 카르네!”
“뭐? 잠깐..!”
유리와 나는 날아드는 촉수를 베어내면서, 녀석에게 가까이 접근하려 했다.
장전된 석궁으로 혈석 화살을 쏘아보나, 화살은 맥없이 튕겨 나간다.
“모습을 갖추기 전에 끝내야 해. 아직이야, 카르네..!?”
“기다려! 노력하고 있으니깐..!”
발목에 감겨오는 기분 나쁜 촉수들을, 유리가 칼로 쳐내고 있었다.
괴물에게 이성 같은 것이 보이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핵을 지켜내려고 하기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반항이 격해진다.
“침착하자.. 후우..”
촉매를 손에 쥔 카르네가, 주문을 영창했다.
“대지의 오스테온이여, 자연의 분노로 만물을 휘감아라..!”
그녀가 땅에 손을 짚자, 집채만 한 나무 덩굴들이 솟아 나와 괴물의 몸을 감쌌다.
상대를 거대한 줄기로 휘감는 자연계 중급 마법, 기간틱 바인.
가시가 박힌 거대한 덩굴이, 괴물의 팔다리로 보이는 것을 속박했다.
“...이런.”
그러나 마법적 재능이 두드러진다고는 할 수 없었던 카르네기에, 괴물의 움직임을 제압하기에는 덩굴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 자신도 그 점을 눈치챘는지, 이쪽을 향해 외쳤다.
“안돼! 힘이 너무 부족해..!”
애매하게 속박당한 괴물은, 다른 쪽의 촉수들로 더 격렬하게 저항을 해왔다.
“괜찮아, 카르네! 오스테온의 힘도 더하면 될 거야!”
령사가 다른 직업에 비해 마법적 능력에 있어서, 압도적인 우위를 범하는 이유.
바로 오스테온의 존재 때문이었다.
령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오스테온 또한 동일한 힘으로 시전할 수 있다.
댕댕이같은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스테온이 있다면 혼자서 두 명 분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부탁할게, 안가티.”
카르네의 요청을 받은 그녀의 오스테온은, 진동음을 내며 주문을 시전했다.
그러자, 땅에서 또 다른 거대한 덩굴이 한 다발 솟아 나와 괴물의 다른 쪽 몸통을 감쌌다.
아직 피부조직이 완전하지 않아, 사르카 특유의 빨간 핵이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다.
“끝내자, 사야.”
유리의 엄호를 받으며 달려 나가, 단검을 녀석의 핵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끼야아아아악!”
마치 아기와 괴물의 비명을 합친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틀대던 촉수들은 이내 저항을 멈추고 땅에 고꾸라졌다.
“..끔찍한 녀석 같으니.”
인간으로서 마지막 존엄성이라고 할 수 있을, 인간으로 죽기를 포기한 율리우스다.
구역질이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가며, 그의 몸에 박힌 단검을 빼냈다.
“..좀 이상해, 사야.”
“뭐가?”
경계를 거두고 이쪽으로 다가온 유리가, 놈의 시체를 유심히 살폈다.
“사르카가 죽으면 산화되는 게 보통인데, 어째서 시체가 남아있는…”
그녀가 시체를 칼로 뒤적거리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밀어냈다.
“떨어져, 사야...!”
“어!?”
유리가 뒤집은 시체의 뒷면에, 시퍼렇게 빛나는 핵이 하나 더 있었다.
핵은 우리에게 모습을 들키자마자, 열을 만들어 내며 진동했다.
“자폭..?”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인간일적 율리우스가 지닌 속성처럼, 괴물의 핵은 장렬한 불꽃을 내뿜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나를 밀어내느라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유리는 그대로 폭발에 휘말려, 멀리 날려 보내졌다.
“프리지아…!”
카르네와 내가 달려들어, 쓰러져 있는 그녀를 살폈다.
얼굴을 막아낸 한쪽 팔에는 커다란 화상이, 그리고 폭발에 직격당한 심장부의 옷이 검게 그을려있었다.
‘자폭할 때, 일부러 심장부를..!’
사르카와 오스테온의 핵을 동시에 지닌 것도 경이로운데, 유리를 죽이기 위해 핵을 자폭 시켜 정확히 그녀의 심장 부근을 노렸다.
“유리…?”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보나, 미동조차 없다.
“설마..”
그녀의 심장부에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대고, 소리에 집중했다.
“..........”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식을 잃은 유리의 심장은 폭발로 인해 멈춘 거다.
“..어때, 사야?”
“......심장이 안 뛰어.”
카르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놀란 눈으로 주저앉았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누르며 지압을 시작한다.
말도 안 돼.
주인 사르카에게서도 살아남았던 유리 프리지아가, 고작 이런걸로 죽는다니.
그런 결말은 와서도 안 됐고, 아무도 원치 않을 것이다.
입을 맞춰 숨을 불어넣고, 간절함을 담아 계속해서 심장부를 눌렀다.
그러나 아무리 반복해도, 그녀는 다시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_띠링_퀘스트에 실패했습니다.패널티 부여: 유리 프리지아의 죽음
“집어치워..!”
눈앞에 나타나는 퀘스트창을 신경질적으로 밀어냈다.
“젠장할..”
폭발 직전, 그녀가 나를 밀어낸 탓에 고스란히 피해가 그녀에게로 향했다.
눈치 없는 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등을 때려댔다.
그녀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하염없이 지압을 계속했다.
"..사야.”
그때, 옆에서 루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루나?"
“..나 좀 일으켜 줄래?"
옆구리를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루나가, 간신히 고개를 들고 나를 불렀다.
"날 유리 앞으로 옮겨 줘."
그녀의 요청대로, 어깨를 부축하고 유리의 앞에 옮겨주었다.
루나는 간신히 초점을 잡고, 한 손으로 다른 쪽 손목을 잡은 채 손바닥을 유리의 심장부에 가져다 댔다.
"어떡하려고..?"
"시도해볼 만한 게 있어. 잘 될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전기를 모아 한순간에 유리의 심장부에 그것을 방출시키자, 유리의 몸이 한순간 덜컹거리며 들어 올려졌다.
내가 유리의 심음을 다시 확인했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한 번 더 해보자."
루나가 아까보다 강하게 전기를 집어넣었지만, 유리의 심장은 다시 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야."
루나가 망설임 가득한 눈으로, 나를 불렀다.
"최대 출력이 남아있어. 그런데 이게 실패하면.."
"괜찮아. 해줘."
나의 대답에, 루나는 확신을 받은 듯 자세를 고쳐 잡았다.
"..흉터가 좀 남을수도 있을거야. 프리지아 양."
그녀의 손에 밝은 전기가 집중되고, 충격음과 함께 주변으로 전기가 퍼져나갔다.
"...."
한차례 전기가 사라지고, 나는 조심스레 유리의 심박음에 귀를 집중했다.
들려오는 반가운 쿵쿵 소리에, 환한 얼굴로 루나를 마주 봤다.
"....살았어. 네가 살렸어, 루나!"
"..그거, 참.. 다행…"
정신을 잃은 루나가, 내 어깨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다.
"루나? 정신 차려..!"
워낙 정신이 없던 탓에, 루나의 상태도 위급했던 것을 신경 쓰지 못했다.
"둘 다 위급한 상태야. 유리를 들어줄래, 카르네?"
루나를 등에 업고, 카르네에게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새 기절한 채다.
"...카르네?"
설마, 아까의 장면을 목격한 걸로 최면이 풀린 건가?
최면이 풀린 반동으로 그녀가 기절했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타이밍이다.
루나는 독이 잔뜩 퍼져 죽기 직전이고, 유리는 목숨은 부지했다곤 하나 이대로 빗속에 내버려 둬도 될 상태가 아니다.
“으윽..”
억지로 두 명을 들쳐메려고 할 때, 뒤에서 묵직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안가티!”
다행히, 그녀가 기절했음에도 오스테온만은 멀쩡히 소환되어 있었다.
내가 옮기는 것보다, 오스테온의 힘을 빌리는 쪽이 훨씬 빠를 것이다.
"안가티. 두 사람을 아카데미까지 부탁할게. 네 주인은 내가 옮길 테니 걱정하지 말고."
안가티는 내 말에 수긍한 듯 묵묵히 루나와 유리를 집어 들고, 공중을 도약했다.
카르네의 오스테온이 그녀들을 치료실로 데려가 줄 것이고, 나는 기절해버린 카르네를 업고 산을 내려갈 일만 남았다.
그녀들이 무사하기만을, 전적으로 빌 뿐이다.
"..카르네."
등에 업은 그녀를 불러보지만, 반응이 없었다.
정말로 세뇌가 풀린 걸까?
그녀가 깨어나서 대화해 보지 않는 이상, 알아낼 방법이 없다.
"으음.."
"...!"
내 등에 업힌 카르네가, 소리를 내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신이 좀 들어, 카르네?"
그녀는 말 없이 나를 응시하더니, 작게 말했다.
"엄마."
"...에?"
"엄아, 엄마아…후아앙..."
그리고는,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려버린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래.
환장하겠네.
(안가티의 대략적인 생김새)
(후에 변경될수 잇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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