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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39화 (39/102)

〈 39화 〉 잉태 (1)

* * *

비가 쏟아지는 구 훈련장.

나는 신도들에게 잡혀, 꼼짝없이 두 사람의 승부를 지켜보게 되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루나가, 상대에게 말한다.

“시작부터 마법이라니. 이젠 이상한 자존심 같은 건 넣어둔 모양이네.”

“영광으로 생각하도록 해라. 이 내가 더러운 오스테온의 힘을 쓰게 만들 정도의 상대가 되었다는 걸 말이야.”

“그 더러운 힘으로 이겼던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이 년이…!”

불길을 두른 그의 칼날이, 루나의 머리가 있는 방향을 갈랐다.

루나가 숙여서 반격을 가하려 했지만 이어지는 불꽃 세례에 방패를 높게 치켜들었다.

마치 유리와 했던 대련을 연상시킨다.

마법과 검술의 공방 일체라는 게 이런 거지 싶은 숙련도.

유리만큼은 아니지만, 기사로써 대단할 정도의 마법 실력이다.

“꽤 고전하는구나, 그레이스. 힘들다면 마법은 넣어두도록 할까?”

루나는 그의 도발에 대답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어에 집중했다.

마법을 날려대는 그는, 무언가 시원스럽지 않은 눈치였다.

“..칫, 망할놈의 비 때문에 화력이 안 사는군.”

빗속에서도 화염이 방패를 살짝씩 뚫고 넘어갈 정도인데, 비가 없었다면 방패도 소용없었으리라.

뛰쳐나가 루나를 돕고 싶지만, 사르카의 피가 몸에 들어간 탓에 마법이 나오지 않을 거다.

게다가, 신도들 여럿이서 내 목에 날붙이를 겨루고 있으니 움직였다간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령사 쪽에 붙은 기사들이 가진 공통적인 문제점이 뭔 줄 아나, 루나?”

그의 롱소드가 매섭게 날아들고, 루나의 사브르가 그것을 힘겹게 튕겨냈다.

“특수 무기를 써야 하는 탓에, 일반 금속제 칼에 밀린다는 거지.”

거리를 벌린 루나가, 자신의 칼을 들여다본다.

“...!”

그녀가 율리우스의 롱소드를 막아낸 흔적이, 칼에 고스란히 패여 있었다.

그것은 루나가 간과했던 사실이었다.

사르카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 금속은, 일반 금속보다 그 강도가 떨어진다..

싸움이 오래 지속될수록, 루나의 무기는 점차 날을 잃고 말 거다.

가속이라도 받은 것 마냥, 율리우스의 베기는 점점 속도를 붙여갔다.

“이번에 부서지는 건 어느 쪽의 무기일까. 루나 그레이스..!”

“무기가 부러졌던 경험을 상당히 담아두고 있었나 봐?”

전력은 압도적으로 율리우스 쪽이 우세해 보였지만, 루나 또한 그럴싸한 유효타는 한 번도 입지 않았다.

루나는 그의 검을 흐르듯 받아넘기고, 다른 손의 방패로 마법을 막아낸다.

그런데 마법이 나가야 할 손에서, 마디 마디에 뾰족한 무언가가 들려있다.

‘암기..!’

율리우스가 루나에게 날린 것은, 날을 시퍼렇게 갈아낸 여러 개의 은침.

그것들은 각 루나의 목, 가슴, 그리고 허리춤을 향해 날아들었다.

“윽..!”

방패를 이용해 목과 가슴으로 날아든 은침을 막아낸 루나였지만, 옆구리에 은침이 꽂히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은침이 박힌 루나는, 거리를 벌려 그것을 뽑아내 바닥에 던졌다.

“비겁하다고 하진 않겠지. 네 수준에 맞는 적절한 대응을 했을 뿐이다.”

그녀가 뽑아 던진 은침이, 묶여있던 유리와 카르네의 발밑까지 미끄러졌다.

“...이거, 단순한 암기가 아니구나.”

은침 끝에 묻어있는 정체불명의 보라색 액체가, 불길함을 자아낸다.

루나는 피와 함께 묻어나오는 그것을 보고, 눈치를 챈 듯했다.

“..뭘 발라둔 거지?”

“맹독이다. 곰도 쓰러뜨리는 독초로 만들었지.”

“정말 수단을 가리지 않는구나, 율리우스.”

그래도 한때 기사였던 자가, 독과 암기라니.

아무리 길을 벗어났다곤 하지만, 전직 도적인 내가 봐도 소름 끼친다.

“지금이라도 검을 내려두면, 목숨은 부지 시켜 주마.”

그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비에 젖은 머리를 쓰러 넘겼다.

“네 친구가 죽는 건 변함없겠지만, 너만은 성노예로 부리면서 인생을 부지할 수 있게 해주지. 옛정을 생각해서 말이야.”

“정? 당신에게도 그런 게 있었는지 몰랐는데.”

“대답을 신중하게 고르는 게 좋을 거다. 그레이스. 내 손에 들린 이게, 하나 남은 해독제니까.”

루나는 나를 보더니,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고마운 제안이지만, 사양하겠어.”

“..좋을대로.”

율리우스의 손에서, 해독제를 담은 병이 바스락거리며 박살 났다.

“내 칼에 죽거나, 중독돼서 죽겠구나, 그레이스.”

“...칼이 아니라 마법이겠지. 마법사 율리우스.”

“좋을 대로 지껄여라. 이제 곧 나불거릴 힘도 없어질 테니.”

정말 중독된 거라면, 루나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루나는 진지한 눈으로, 율리우스를 노려보았다.

“네가 오스테온의 힘을 혐오하는 만큼, 나도 마찬가지야. 율리우스.”

그녀는 자신의 장갑을 잡고, 서서히 내렸다.

“...문장..!”

장갑을 내린 그녀의 손등에는, 번개의 문장이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아니었나…?”

“정확히는, 한 번도 쓰지 않았었지.”

그녀는 사브르와 방패를 고쳐잡고, 돌진 자세를 취했다.

“먼저 선을 넘은 건 당신이야. 율리우스.”

“..그래봤자, 힘의 차이가..”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그녀는 튕겨 나가듯 율리우스에게 돌진했다.

이성을 버린 루나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자신의 칼날이 상하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맞닿은 칼날끼리 스파크가 튀길 정도로 그를 강하게 몰아붙인다.

당황한 기색의 율리우스가, 불길을 흩뿌리며 롱소드를 옆으로 강하게 휘둘렀다.

루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칼을 반대로 쥐어 다른 손의 방패에 힘을 실어 밀었다.

어찌나 강하게 누른 건지, 방패를 양손으로 밀었는데도 전부 막아내지 못한 그의 칼끝이 루나의 팔꿈치에 박혀 피를 튀겨냈다.

“크윽…!”

그녀는 롱소드가 꽂힌 방패를 저 멀리 내던졌고, 무기를 잃은 율리우스는 곧바로 주문을 영창했다.

“플로가!”

루나 또한, 손으로부터 전기를 모았다.

그러나 전기를 모은 루나의 손은, 율리우스에게 향하지 않고 그녀 자신이 쥔 칼로 방향을 틀었다.

1초 남짓한 순간, 율리우스의 손목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철퍼덕 하고 떨어졌다.

“끄아악­!”

한쪽 손목이 잘려 나간 그는, 다른 손으로 절단면을 부여잡고 괴성을 질렀다.

“접근전에서 마법에 의존하는 거, 당신의 나쁜 버릇이야. 율리우스.”

“이럴 리 없어.. 그때와 다를게 없을텐데..!”

“대련 때와 같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 의외로 순진하네, 당신.”

1년 전보다 루나가 강해졌다느니, 그런 바보 같은 문제가 아니었다.

대련 당시의 그녀가 졌던 것은, 단순히 날아오던 칼날에 스쳐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이미 패배를 직감한 그녀로서는 굳이 그에게 공격을 가할 이유가 없었고, 그가 날린 마법을 칼로 막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근접전에서 칼을 상대로 마법을 영창 하는 멍청이는,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악에 받친 율리우스가, 신도들을 보며 외쳤다.

“뭣들 하고 있느냐..! 어서 달려들어 죽이지 않고­!”

“그, 그것이..!”

다른 신도 하나가, 유리가 든 칼에 의해 목을 위협당하고 있었다.

“어느 틈에..?”

유리가 그에게 말했다.

“한참 전에. 그레이스 양이 날린 선물 덕분에 풀었지.”

루나가 자신에게 박혔던 은침을 일부러 유리 쪽으로 던져, 그녀가 스스로 탈출할 수 있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그깟 놈은 버리고 빨리 나를 도우란 말이다!”

“우리 중에 제일 젊은 놈입니다..! 교주님..!”

“그깟게 무슨 상관이야!”

신도들이 교주의 말을 거부하는, 황당한 사태다.

그걸 지켜보던 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 교주 맞아..? 교주란 자가 리더쉽이 이렇게 없어서야..”

“젠장, 쓸모없는 것들…!”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표정을 짓는 루나가 한 손에 피를 뚝뚝 흘리며 그에게 다가갔다.

“당신의 쓰레기 같은 업보도 이제 끝이야. 율리우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전부 쓸모없는 새끼들이…!”

루나는 칼을 높이 들어, 그의 목을 겨냥했다.

“이런 데서 죽을 듯싶으냐..!”

“남은 말은 지옥에서 하도록!”

루나가 칼을 내려치는 순간, 그는 자신의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벌컥 들이켰다.

그의 목은 잘려 나가 피를 튀겼고, 그가 마셨던 정체불명의 액체가 피와 함께 바닥에서 뒤섞였다.

“그, 금기..!”

“교주님께서, 성수를 들이키셨다…!”

목이 잘린 그를 내버려 둔 채, 신도들이 갑작스레 혼비백산으로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혼란 속에서 나를 구속하던 인원들도 덩달아 도망쳐버린다.

“뭐, 뭐야..?”

율리우스의 시체 밑에 흘러넘치는 액체를 본 루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이 보라색 물은..?”

그녀가 허릴 숙여 그 액체를 살피려는 순간, 루나는 표정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무릎을 꿇었다.

“크윽..!”

“루나..!”

루나에게 달려가 허리를 부축했다.

“너, 중독이…”

그녀의 허리를 보니, 상처 부위가 시퍼렇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몸을 격하게 움직인 탓에, 독이 더 빠르게 퍼져나갔다.

“움직이지 마. 일단 아카데미로 돌아가자.”

그녀를 부축하고, 자리를 뜨려는 때였다.

“잠깐, 저건 뭐야..?”

맞은 편에서 카르네를 풀어주던 유리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뒤를 돌아보자, 죽어있던 율리우스의 피가 부글거리며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건, 무슨..?”

부글거리던 피는, 곧 율리우스의 시체를 잠식하든 뒤덮었고 꾸물거리며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 냈다.

정체불명의 덩어리는 점점 몸집을 키우며 조직을 만들어나갔다.

처음에는 다리, 그리고 꼬리.

사르카에게서 볼 수 있는 끔찍한 특징들을 하나씩 갖추어 간 그것은, 마침내 이질적인 눈동자를 빛내며 우릴 바라보았다.

‘사르카..? 아냐, 이건..’

방금까지만 해도 율리우스였던 그것은, 끔찍한 소리를 내는 하나의 괴물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통상의 사르카와 다른 점이 있었다.

푸르게 빛나는 특징적인 눈동자.

일반적으로 오스테온에게만 보이는 푸른빛 눈동자가, 그 괴물에게서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르카도, 인간도, 그렇다고 오스테온도 아닌 그 미지의 무언가는, 우릴 향해 강한 괴성을 내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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