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 현혹의 마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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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르카 연구일지 빈센트 프리지아. ]사르카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인간을 벌하러 하늘이 내린 악귀, 혹은 금지된 연금술에 의해 탄생한 비극이라는 의견도 있다.그러한 종교적, 신화적 관점을 부여하는 것은 객관적인 연구를 흐리게 만들 뿐이다.그렇기에 나는, 사르카 자체를 우리와 다르게 진화한 생명체일 뿐이라고 정의토록 하겠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다음 장을 넘겼다.
한참 내용을 살피는 중, 유리가 말했다.
“.. 오스테온과 사르카는, 같은 조상을 공유한다고..?”
유리가 읽었던 지문을 살펴봤다.
고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오스테온과 사르카가 등장하기 이전에 어떠한 생물이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뼈로 된 외형질이 검은 피부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으로 자주 묘사된다.딱딱하고 정제된 외형을 지닌 오스테온과, 비교적 부드러운 사르카의 외형을 합쳐놓은 듯한 모습이다.본래 그것들은 하나의 생명체로써, 인간의 몸 밖을 자유롭게 오가며 인류와 공존했을 것이다.그들의 몸에 들어가 능력을 빌려주고, 밖으로 나와 수렵을 도왔다.
“공존? 허무맹랑한 소리를 적어뒀네.”
“...”
유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솔직히 나는 무척 흥분해있었다.
그들이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분화됐다는 건, 아마 이 세계를 써 내려간 나뿐이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빈센트 프리지아는 그런 내 생각을 깨버리고, 고대의 기록으로부터 멋지게 그걸 추정해낸 거다.
사르카 연구가 금지된 이 땅에서, 고서와 유적들만으로 이정도의 결론에 다다른 일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열정과 능력에 감탄하면서, 남은 부분을 계속 읽어 내려갔다.
하나의 생물이었던 그것은 각각 사르카와 오스테온으로 분화했다.오스테온은 인간과 공존하기를 넘어서, 인간이란 종에게 흡수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사르카는 인간과 공존하기를 포기하고, 자연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꾸렸다.인간의 번식을 통해 자연스레 개체를 번식해 나갈 수 있었던 오스테온과 달리, 사르카는 종족을 이어나갈 능력이 부족했다.그렇기에 그들은 다소 이질적인 번식 방법을 택했다.인간에게 깃든 오스테온의 힘을 흡수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복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르카들은 자가생식을 가지는 쪽으로 진화했지만. 태초에는 그렇지 않은 종족 또한 존재했던 모양이다.고대종이라고 불리는 개체들이다.그들은 개체 수를 늘리기 보다는 독립 개체의 능력을 키워나가는 방식을 택했다고 추정한다.그렇다 보니 점점 몸집을 키우고, 그들의 능력 또한 오스테온의 것과 유사해져 갔다.
‘고대종의 유래까지 추정했단 말이야…?’
7대 죄악을 모티브로 삼았던 고대종들.
그걸 만든 건 분명 나였지만, 막연히 설정했을 뿐 그들의 탄생 배경따위는 만든 적이 없었다.
고대종이라 불리는 그들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몇 번이고 모습을 드러내 재앙을 가져다줬다.생애의 대부분을 잠에 빠져있는 대신, 한번 깨어나면 오랜 잠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오스테온을 흡수하기 위해 마을, 도시 단위의 습격을 가했다.기록에 따르면, 그들 중에는 마법을 구사하는 개체도 있었던 모양이다.마법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가장 명확하게 서술된 고대종들을 뽑자면 다음과 같다.하늘로부터 번개를 불러 일으켰다는 ‘분노’의 이라.대지를 갈랐다는 ‘식탐’의 굴라.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환각으로 미치게 했다는 ‘색욕’의 럭셔리아.
나는 마지막 문장에 주목했다.
‘색욕’의 럭셔리아.
환각을 사용했다는 럭셔리아는, 암흑계 마법을 구사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내가 찾고 있던, 규격 외의 마법을 사용하는 사르카일까?
럭셔리아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위해, 자세히 서술된 페이지를 찾아 넘겼다.
아주 오래 전 기록에 의하면, 색욕의 럭셔리아는 대체로 두 개의 머리를 지닌 암수 한 쌍의 사슴 형상으로 묘사됐다.왼쪽 머리는 뿔을 지녔고, 오른 쪽 머리는 이상한 노랫소리를 냈다고 한다.
오른쪽 머리가 노래를 흘려 사람들을 홀리면, 왼쪽 머리가 머리에 난 뿔로 그들을 찢어 발겼다고 한다.그러나 럭셔리아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사망한 고대종이다.인류에 의한 토벌이 아닌, 다른 고대종에 의한 죽음이었다.우연히도 같은 시기에 깨어난 색욕의 럭셔리아, 그리고 식탐의 굴라는 서로를 방해꾼이라고 여긴 모양이다.만족스러운 포식을 걸고, 럭셔리아와 굴라는 사흘 밤낮으로 싸웠다고 한다.그 과정에서 마을 몇 개는 가뿐히 괴멸되었고, 엄청난 피해를 입혔지만 의외의 수확이 있었다.식탐의 굴라에 의해, 럭셔리아의 숨통이 끊어진 것이다.
‘고대종이, 다른 고대종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숨통이 끊어진 럭셔리아를 굴라가 입을 벌려 통째로 집어삼켰다고 한다.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 인간에 의해 최초로 토벌당했던 고대종이 굴라였던것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그렇게 식탐의 굴라또한 세상에서 사라짐으로써, 남아있는 고대종은 총 5 종이라고 추정한다.
거기까지 읽고, 종이를 내려두었다.
국가에 위협을 가져다 줄 정도의 힘을 지닌 고대종 사르카라면, 인간 하나에게 아주 강력한 암시 주문을 걸어 세뇌시키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닐거다.
서술된 바에 의하면, 색욕의 럭셔리아는 암흑 마법을 구사했다.
그러나 카르네에게 걸린 세뇌가 럭셔리아에 의한 것이라면, 말이 되지 않는다.
기록상으로, 아주 오래 전에 럭셔리아는 굴라에게 먹혀 죽었으니까.
럭셔리아의 힘에 필적하는 사르카가, 아직 남아있기라도 한다는 건가?
그리고, 카르네에게 암시 주문을 통해 그런 구체적인 지시를 내릴 만한 지능까지 갖추어야 한다.
“사야.”
그런 생물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한 걸까..?
“불렀잖아, 사야.”
“..어?”
생각에 빠져있는 중에, 유리가 말을 걸어왔다.
“슬슬 들어야 할 것 같아. 네가 여기 온 진짜 목적을.”
"..말했잖아. 단순히 공부 목적으로.."
"이게 과연 법을 어겨가면서 까지 공부할만한 주제일까?"
“...”
그녀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될 수 있으면, 유리에게는 최대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카르네에게 걸린 세뇌의 목적이, 유리의 죽음을 향해 있으니까.
“들어도 믿기 힘들 거야. 유리."
"괜찮으니 말해봐."
그녀에게 알리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유리 또한 이번 일에 깊게 얽힌 사람으로서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카르네의 일화부터, 세뇌에 관련된 것까지 전부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좀 더 당황할 거라 생각했지만, 유리는 의외로 침착했다.
"어떠한 목적으로 내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가, 카르네에게 세뇌를 걸어뒀다…. 라고."
이야기를 전부 들은 유리는, 믿기지 않는 눈치다.
“..좀 충격적인데.”
“카르네에게 걸린 건 출처 불명의 강력한 세뇌야. 처음엔 암흑계 주문의 영향이라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낼 수 있는 주문의 효과를 아득히 넘어섰어.”
“오늘 여길 찾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구나."
자신도 모른 채 목숨이 노려지고 있었다고 듣고, 게다가 그게 가까이 붙어 지내던 사람이라는데.
유리는 상황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뇌를 건 주체는 알아냈어?"
"아니. 처음엔 고대종 사르카의 짓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지 오래야."
설령 색욕의 럭셔리아가 지금까지 살아있었다고 해도, 사르카가 인간에게 그런 구체적인 지시가 담긴 세뇌를 걸었다는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다.
"다시 말해서, 카르네에게 걸린 세뇌를 풀어내지 않는 이상은 정체를 알 방법이 없다는 거네."
"..맞아."
"그럼, 세뇌를 풀고 카르네에게 직접 들으면 될 일 아니야?"
유리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보며 말했다.
"그게 됐다면, 여기서 이 고생하고 있지도 않았지.."
"아무리 강력해도 결국 주문일 텐데, 방법이야 있을걸."
'세뇌를 풀어낼 방법..'
일반적으로 암시 주문을 풀어내려면, 술자의 몸에 직접적인 해를 가하지 않는 이상은 힘들다.
"당신의 암시 주문으로 덮어씌우는 건 어때. 사야."
"그것도 생각해 봤는데, 이미 암시가 걸려있는 상태에선 주문이 차단당할 거야. 게다가 너무 강력한 게 걸려있어서 내 힘으론 방해조차 못할 거고."
유리가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듯 했다.
"..암시 주문이란건 결국,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게 하려고 거는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이번 세뇌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거고."
그녀답지 않게 눈을 번뜩인다.
"그럼, 죽어주자. 카르네의 눈앞에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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