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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33화 (33/102)

〈 33화 〉 현혹의 마수 (2)

* * *

빈센트 프리지아를 만나보고 싶다는 말에, 유리의 반응은 무척이나 싸늘했다.

“...나한테 남매가 있다는 사실은,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었을 텐데.”

“...아, 그게..”

생각이 짧았다.

뭐라고 변명하지?

그래, 유리가 늘 차고 다니던 펜던트. 거기엔 그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네 펜던트 안을 봤거든.”

“..훔쳐보다니, 취미가 나쁘네..”

약간 매도당하는 기분인데.

펜던트를 열어 그의 얼굴을 확인하는 유리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못 만날 거야. 7년도 전에 집에서 나갔거든. 그 괴짜를 왜 만나려고?

“..네 오빠가, 사르카에 대해 모아둔 정보가 필요해.”

누가 듣지 못하도록, 작은 말로 그녀에게 속삭였다.

“어떻게 그런걸..? 뒷조사라도 한 거야?”

“..어둠의 경로랄까. 아무튼, 도움을 좀 빌려줬으면 좋겠는데. 유리.”

출처는 어둠의 경로같은게 아니고, 그냥 내 머릿속이지만.

이름있는 귀족가의 자녀가, 그런 것에 몰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가문의 이름에 크나큰 불명예로 여겨질 것이다.

프리지아 가문이 그의 존재를 기를 쓰고 숨기고, 집에서 내쫓았던 이유다.

“동료의 순수한 부탁인데, 들어줄 거지?”

“..질이 나쁘네. 사야.”

그녀가 표정일 찡그리며 말했다.

“알겠어. 그 자식을 찾는 건 무리지만, 머물던 방이라면 구경시켜줄게.”

귀족들은 명예, 규율 같은 것들을 심하게 중시하는 편이다.

그 규율에는, 프리지아도 벗어날 수 없었다.

덕분에 빈센트의 방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

유리를 따라 저택에 들어섰다.

이번이 두 번째지만, 역시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저택이다.

다 구경하는데 한 시간은 거뜬히 걸릴듯한, 거대한 규모다.

이중으로 잠겨있던 자물쇠를 풀어내면서, 유리가 내게 말했다.

“..말해두는데, 혹시나 외부에 발설할 생각이라면..”

“걱정 마, 진짜로 자료가 필요한 것 뿐이니까.”

“...”

끼익, 그녀가 녹슨 문고리를 돌리자 묵은 먼지가 날리며 방의 내부가 드러났다.

오랫동안 방치된 탓인지, 책상과 의자 위로 두꺼운 먼지가 쌓여있고 거미줄도 한가득이다.

생각보다 엄청난 먼지 탓에, 코를 막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

“..몇년만에 들어오는 거야?”

“7년. 그 자식이 집에서 나간 뒤로 처음이야.”

어쩐지, 유리가 집사에게 방 열쇠를 달라고 하자 당황했던 이유가 있었다.

빈센트 프리지아는 사실상 가문에서 추방된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다시 이 방문을 열 날이 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겠지.

“전부 그대로네..”

유리는 반가워 보이면서도, 씁쓸한듯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수많은 서적이 빽빽이 들어선 그의 책장이었다.

한 권만 있어도 잡혀갈 만한 서적들이, 수두룩하게 꽂혀있다.

그가 얼마나 사르카 연구에 진심이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유리. 마법을 쓰는 사르카에 대해 들어본 적 있어?”

책상에 손을 올리고 감상에 잠겨있는 유리에게 질문했다.

“..들은 적은 없지만, 딱 한 번 본적은 있지. 너랑 같이.”

등급평가 때 보았던, 화염 마법을 사용하는 주인 사르카.

유리와 내가 죽을 뻔하게 만든 괴물이었기에, 잊을려한들 잊을 수가 없다.

“그때, 그놈이 사용한 마법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던 것 같아?”

“..정확하진 않지만, 흔한 아카데미 화령사 정도의 화력이었어.”

“아카데미 화령사..”

강하지만, 현역으로 뛰고 있는 령사들의 수준까지는 아니라는 거다.

이걸 세뇌에 사용하는 암시 주문으로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그 위력은 기껏해야 내 마법과 비슷한 정도일 거다.

암흑계 령사의 정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올레가 쓰는 암시 주문조차 30초가 한계인데, 그렇다면 대체 카르네에게 걸린 세뇌의 출처는 어디란걸까.

정보를 더 얻어내기 위해,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단순히 종류를 기록한 책부터, 사르카의 기원에 관한 책도 있었다.

‘뭐야, 이거 순 엉터리잖아..?’

그러나 기원 같은 부분을 다루는 책들은, 종교적 관점에서 사르카를 바라보거나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기록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가장 가깝게 서술한 책은, 사르카도 그저 생물체일 뿐이라고 적어놓은 책뿐이다.

다음장에서 사르카에 암수구별이 있다는 소릴 해대서 덮었지만.

‘생각보다 유용한 정보는 별로 없네.’

사르카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자세히 적어둔 책 말고는, 그다지 영양가 있다고 볼만한 책은 없었다.

그도 그럴게, 설정을 짜둔 나보다 사르카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테니.

실망감에 가득 차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누워있는데, 맞은편에서 유리가 말을 걸었다.

“찾는 정보가 없나 봐? 도둑고양이씨.”

“책으로는 부족해. 뭔가, 더 깊이 있는 자료들이 필요한데...”

책장의 서적들만으로는, 아직 단서를 찾을 수가 없다.

기억하기로, 빈센트와 유리는 7살이나 차이 나는 남매다.

유리가 10살일 때 그가 집을 나갔다면, 적어도 17살이었을 터.

유소년기를 전부 바쳐서 연구한 것 치고는, 자료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다른 기록은 없어? 책만으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질 않아서.”

“없어.”

그녀가 짧게 단언했다.

“..오빠가 집을 나가기 전에, 어머니께서 자료를 전부 태웠으니까.”

“...뭐?”

“그가 사르카를 그린 그림이나, 기록으로 보이는 것들은 전부 태우셨어. 빈센트는 그 뒤로 집을 나가선 돌아오지 않았고.”

제기랄.

왜 이 나라 사람들은 나를 못 도와줘서 난릴까.

그가 집을 나간 것은 서술해 두었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이런 골치 아픈 방식으로 생겨났을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빈센트의 방 밖에서, 누군가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계십니까? 프레드입니다.”

“무슨 일이죠?”

유리가 문을 열자, 노인이 서 있었다.

“실은, 아까 전해드리지 못한 게 있었기에..”

그는 조그마한 상자를 열어, 그것을 유리에게 건넸다.

“..프레드, 이건?”

상자 안에는, 조그마한 열쇠가 하나 들어있었다.

“빈센트 도련님이 전해주라고 하셨던 물건입니다. 본래는 아가씨가 성인이 되면 전달해주라고 하셨는데, 저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오늘 여기에 관심을 보이신 김에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꽤 놀라는 눈치였다.

설마하니, 그가 이런걸 남겨뒀을 줄이야.

“..고마워요, 프레드.”

그는 정중히 인사를 하고, 방문을 닫고 떠났다.

“오오, 열쇠야? 어디에 쓰는 거래?”

“..너무 들뜬 것 같은데, 사야.”

솔직히 들떴다.

집 나간 가족이 몇 년에 걸쳐 전달한 물건이라니.

기대되지 않는 쪽이 이상하잖아.

“..썩 내키진 않지만, 찾아보는 게 좋겠네. 당신은 서재쪽을 살펴주겠어?”

“맡겨둬.”

유리와 나는, 그의 방안을 샅샅이 뒤졌다.

서재에 있는 책이란 책은 다 꺼내어 뒤를 확인해보고, 가구도 전부 밀어서 숨겨진 공간이라도 있나 살폈다.

바닥, 천장, 창틀까지 안본 곳 없이 전부 살펴도 열쇠가 들어갈 만한 곳은 나오지 않았다.

“...이 방이 아닌 거 아닐까?”

“틀림없이 여기야. 어머니께선 평소에 빈센트를 방에서 나오지도 못하게 하셨으니까.”

“..이건 뭐야?”

방에 붙어있는 종이 중에서, 혼자만 낙서가 그려진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토끼 사르카인가? 귀엽네.”

“..이건 왜 붙여놓았담. 쓸데없이.”

토끼형 사르카를 그려놓은 귀여운 낙서였다.

그녀의 어머니가 그림들을 전부 떼어내 불태웠다고 했는데, 하도 단순하게 그려진 탓에 사르카라고 생각되지 않아 남겨두었던 모양이다.

“원래는 이것보단 좀 더 뒷다리가 발달해서 크고, 이빨도 무시무시한데.”

“빈센트랑 똑같은 소릴 하네. 사야.”

그녀는 멀리서 팔짱을 낀 채, 그 낙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이거, 유리 그림이야?”

“....”

그녀가 부정하진 않는 걸 보니 맞는 모양이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이야. 이걸 그린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께서 빈센트와 다시는 어울리지 못하게 하셨거든.”

“..가족끼린데도?”

“..귀족가에 있어서 가족 같은 건 명예 다음의 문제야. 나를 물들이고 싶지 않으셨던 모양이지. 어머니께서는.”

“..그러고보니, 어머니께서는 어디에 계셔?”

저번에 들렀을 때도, 이 커다란 저택 안에 유리와 집사 뿐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빈센트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계셔. 저택에는.. 가끔씩 들리시고.”

부모는 부모라는 걸까.

아마 자신들 때문에 집을 나갔을 거란 책임감 때문이겠지.

유리의 그림을 좀 더 관찰했다.

어린아이 특유의 어리숙한 펜선이 무척 귀여워서, 그녀가 그렸을 것이라고는 상상되지 않는다.

‘..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보였다.

“유리. 잠깐 가까이 와서 이것 좀 볼래?”

“왜?”

“이 부분. 원래라면 빨간색 눈이 있어야 하잖아.”

사르카 특유의 빨간 눈이 있어야 할 부분이, 유독 시커멓게 보인다.

“..이거, 구멍 아니야?”

“..!”

내 말에, 유리는 곧바로 그림을 뜯어냈다.

그림이 붙어있던 벽 뒤에는, 열쇠 구멍이 새겨진 적당한 크기의 서랍 같은 것이 보였다.

유리가 노인에게 건네받은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자, 찰칵 소리와 함께 내용물을 드러냈다.

두껍게 쌓인 종이 더미 위에, 그가 남긴 것으로 보이는 글귀가 쓰여있었다.

[ 사르카 연구일지 ­ 빈센트 프리지아. ]

“..아무래도, 찾은 모양이네.”

유리와 나는, 조심스레 그것의 첫 장을 넘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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