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 첫 임무 (3)
* * *
"가만히 계세요."
"...읏."
황녀의 손으로부터 나온 빛나는 물이, 내 상처에 스며들었다. 강한 소독작용을 일으키는지, 상처가 엄청나게 쓰라려 온다.
'힐링 워터…. 수속계인가?'
그녀의 손등을 보니, 수속성의 문양이 그려져 있다.
"검이 꽂힌 게 어깨라서 다행이었네요. 몸통에 꽂혔더라면…."
율리우스가 날린 검이, 내 어깨에 꽂혔었다.
아픔이 느껴짐과 동시에 댕댕이가 소환돼서 다행히 도망칠 순 있었지만, 숲 속 어딘가의 작은 피신처에 몸을 숨긴 게 다다.
"이 아이 덕에 살았어요. 이름이 뭐랬지, 댕댕이?"
그녀가 댕댕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단단한 꼬리를 마구 흔들었다.
댕댕이를 노려보면서, 황녀에게 감사를 표했다.
"..치료 고마워요. 황녀님."
"그냥 이사벨이라고 불러요. 서로 어깨에 구멍도 공유한 사이잖아요?"
그녀를 구출할 때, 사르카를 쏜다는 게 그만 이사벨의 어깨를 쏴버렸다.
"그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장난이에요. 령사님이 아니었으면, 전 진작에 거기서 죽었을걸요."
"..그런데, 율리우스라는 자와는 무슨 관계에요?"
율리우스라는 자와 황녀는 아는 사이인 듯 보였다.
"..율리우스는, 5년간 제 호위를 맡아온 기사였답니다."
"호위기사…? 기사가 왜 이런 짓을…."
"..처음부터, 저에게 목적으로 접근한 모양입니다. 한 번도 그런 성향을 드러낸 적이 없었기에 아바마마도 저도, 감쪽같이 속았건만…."
황녀를, 그것도 황실 전체를 상대로 연기했다니.
5년간 함께해온 사람의 정체가 실은 사이비 교주라면, 충격받지 않는 게 더 이상하다.
"그런데, 교역 마차에는 왜 타셨던 거에요?"
"..오랜만에 시장을 둘러보고 싶었어요. 세말에서 좀 떨어진 하플에는 각지의 상인들이 몰려들거든요."
율리우스가 본색을 드러내기까지 그녀는 생각도 못 했던 걸로 보아, 꽤나 자주 해왔던 일인듯했다.
그나저나, 사르카 교에서는 추적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방팔방으로 우릴 찾는 신도들의 발걸음소리며 대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저들이 우릴 순순히 놔주진 않을 거예요. 무사히 제가 성으로 돌아가 이 사실을 고하면, 아바마마께서 사르카 교에 대대적인 숙청을 가할 테니까요."
"...사르카 교라는 거,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어요."
딱 잘라 말해서, 나는 내 소설 속에 그런 걸 집어넣은 적이 없다.
루덴 숲의 검은 개 도적 단처럼, 내가 모르는 이 세계의 숨겨진 요소.
이사벨 황녀는, 댕댕이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 집단이에요. 처음엔 그저 민간 신앙 정도로 작았던 단체가, 몇 년 전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몸집을 키웠어요."
"혹시, 거대한 사르카들이 출몰한 이후였나요?"
"..예, 듣고 보니 딱 그때쯤이 기점인듯싶네요."
어찌 보면 일반인 입장에서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괴물들이 신이 내린 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다.
혼돈으로 발생한 주인 사르카들을 계기로 신도들을 꼬드겨 그 인원수를 더욱 늘려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르카 여신 같은 소리를 했어요. 제 머리카락이나 얼굴이, 꼭 빼닮았다면서…."
"당신에게요?"
그녀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 나라에서 검은 머리가 저주받았다는 인식이 박히게 된 이유, 그건 대대로 전해 내려온 신화 속 여신의 외모 묘사 때문이기도 해요."
"신화…."
"칠흑같이 검은 머리에 사르카와 같은 붉은 빛 눈을 지닌 외모, 그리고 그 곁을 보좌하는 검은 짐승을 데리고 온 여신이, 이 땅에 사르카를 잉태시켰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
외모만 보면 나랑 완전 판박인데…?
"민간신앙들이 늘 그렇듯, 유래를 찾기 힘들뿐더러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요. 문제는, 그런 이유를 삼아서 검은 머리를 지닌 사람들을 차별하는 시선이죠."
별 생각 없이 추가한 차별 클리셰에, 그런 뒷 배경이 생겨나 있었다니.
"..이사벨. 여기서 세말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요?"
"잡힐 거에요. 저들은 말도 있고, 무엇보다 율리우스는 기사로써 수색작전을 몇 번이고 참전한 베테랑이에요. 사냥감을 쉽게 놓아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꼼짝없이 갇힌거네요."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근처의 풀숲이 흔들거렸다.
부스럭.
'위치를 들켰나…?'
반사적으로 바닥에 놓인 한 손 검을 들어 올렸다.
율리우스가 나를 맞출 때 사용한, 왕가의 문양이 그려진 칼이다.
"키이익"
덤불 속에서, 자그마한 검은 생물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그냥 토끼 사르카였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릴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
잠시 고민하던 나는, 후드를 벗어 녀석을 감싸 들었다.
그 모습에, 놀란 이사벨이 물어온다.
"뭐, 뭐하시는 거에요…?."
"쓸 데가 있거든요."
주인 사르카의 난동을 겨우 진정시킨 사르카 교는, 우릴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숲을 몽땅 뒤져라! 다 불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찾아내!"
얼굴이 잔뜩 상기된 율리우스가, 신도들에게 지시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율리우스는, 직접 수색을 떠났다.
그가 떠났다. 지금이 기회다.
나와 같이 풀숲에 숨어 그걸 지켜보는 이사벨이, 소곤거리며 내게 말한다.
"령사님, 무슨 생각이에요…!"
"걱정 마요. 괜찮을 테니. 아마도."
"아마도…?"
심호흡하고, 댕댕이에 올라탔다.
한 손에는 율리우스의 칼을 든 채로, 당당하게 신도들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놀란 눈으로 이쪽을 보자, 이렇게 말했다.
"...신도들은 들어라!"
갑작스레 댕댕이를 타고 나타난 내 모습에, 그들은 하나같이 의아해하는 눈빛을 보냈다.
쪽팔려서 미칠 것 같지만, 여기서는 제대로 몰입해야 한다.
"이 몸은, 사르카 여신의 대변자다. 잘못된 길을 나아가는 그대들에게 여신의 말씀을 전하러 온 것이다."
"....여신의 대변자?"
신도들은 저마다 다양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 여자가 여신의 대변자라고?"
"그러고 보니, 저 모습은…."
부정하려 해도, 지금의 내 모습은 신화 속 여신의 묘사를 빼다 박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 신도가, 나를 향해 외쳤다.
"여신의 대변자라고? 그렇다면 증거를 보여봐!"
그가 외치자, 다른 녀석들도 기다렸다는 듯 외친다.
"그래. 무슨 목적으로 사르카 여신을 사칭하는거냐..!`
"신성 모독이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역시, 허풍만으로는 그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증거를 보여준다면, 내가 대변자라는 것을 믿겠는가?"
"말로만 하지 말고 어서 보여 보라고!"
나는 로브 속에 감춰두었던, 토끼형 사르카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히이익..!"
그 광경에, 가까이 있던 신도들이 한 발짝씩 뒤로 물러났다.
"안심해라. 이미 죽어있으니."
죽어있다는 말에 그들이 다시 슬금슬금 앞으로 나왔다.
"인간들이 놓은 독에 중독되어 목숨이 위독해 보였기에, 주어진 권능을 사용해 잠시 목숨을 거두어들인 것이다."
가장 앞에 있던 신도가, 사르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진짜다. 초점도 없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어."
신기해 할 만했다.
사르카의 시체를 보는 것은 처음일 테니.
이 세계의 지식에 의하면, 사르카는 죽자마자 산화되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사르카는, 그 형체를 고스란히 남긴 채 죽어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나를 못믿는 눈치다.
아까보다도 더 거세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이게 어쨌다는 거지!? 이런 건 사르카의 시체일 뿐이잖아!"
"그래. 그런데 시체라면, 어째서 산화되지 않았는지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 그건…."
내 질문에 그들은, 대답을 회피하는 쪽을 선택했다.
"저 여자, 무언가 속임수를 쓴 게 분명해! 사르카를 정교하게 본떠 만든 인형일 테지!"
아직 그들은 나에 대한 신뢰가 없다.
"인형이라…."
나는 댕댕이에게서 내려, 바닥에 굳어있는 사르카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말했다.
"내가 이것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나를 믿어주겠는가?"
"..뭐?"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살려내 보겠다는 거다."
신도들은 고개를 저었다.
재미있는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 헛웃음을 짓는 신도들도 있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들의 반론이 이어졌다.
"그게 진짜 사르카라고 해도, 치유 마법은 인간에게만 먹히는 거라고."
그래. 그렇게 믿어줄수록, 나에게 도움이 된다.
"그래. 힐링 마법은 인간에게만 효과를 발휘하지. 이건 마법 따위가 아니다. 잘 봐라."
손바닥을 사르카 위에 올리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굳어있던 사르카가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키이익…."
그리고는, 붉은 눈에 초점이 돌아오며 격하게 움찔거린다.
"키이이익!"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를 되찾은 사르카는, 숲 속으로 깡충깡충 뛰어가 사라졌다.
그 모습에, 지켜보던 신도들이 뒤로 놀라 자빠진다.
"맙소사…! 정말로 사르카를 살려내다니…!"
"뭘 한 거지, 사르카에게…!?`
손을 털고, 신도들을 바라보았다.
"분명히 말해 두었다. 나는 여신의 대변자이며, 권능을 사용했을 뿐."
마무리로, 한마디를 던졌다.
"여신으로 받은 힘으로, 그대들을 구원하러 온 것이다."
마지막 대사는 진짜 쪽팔렸다.
잇몸을 꽉 깨물고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기적이야! 사르카 여신님의 환생이다!"
처음엔 의심의 눈으로 보던 신도들도, 이제는 완전히 의심을 놓은 모양이다.
"대변자님, 제가 올해 안에 장가들 수 있을까요?"
"어…. 그건…."
"열심히 기도드리면, 탈모도 고칠 수 있겠죠!?"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그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손을 들어 올리고 외쳤다.
"모두 조용! 여신의 뜻을 전달하겠다!"
내 말에, 신도들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 조아렸다.
아니, 효과가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여신님 왈, 묶여있는 말을 전부 풀어주고, 다른 신도들에게 여신님의 대변자가 왔다는 것을 알리라고 하셨다."
"말을 전부 풀어주라굽쇼…?"
"여신님의 뜻이다. 동의하지 않는 자가 있는가?"
신도들은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행동하기 시작했다.
"...뭣들 하냐! 말들을 전부 풀어줘라!"
맞다, 우리 탈 건 남겨둬야지.
"...아, 한 마리는 남겨라. 내 여행길에 필요할 것 같으니."
"한 마리만요…? 알겠습니다. 이봐라! 한 마리는 남겨둬라!"
신도들은 지시에 따라 말을 전부 풀어줬고, 나와 황녀는 하나 남은 말에 올라탔다.
"대변자님! 이대로 떠나시는 겁니까…?"
출발하려는 때에, 그들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래. 다른 신도들에게도 뜻을 전해야 하거든."
"언젠가, 다시 뵐 수 있을까요…?"
머리를 긁적이며, 대충 대답했다.
"어…. 믿음이 있으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열심히 내가 왔음을 알리도록."
"알겠습니다! 대변자님!"
눈물까지 흘리는 신도들을 뒤로하고, 박차를 가해 말을 출발시켰다.
‘분위기좀 맞춰줄까.’
말을 타고 가면서, 스코타디 주문으로 어둠 장막을 펼쳤다.
어둠속으로 서서히 스며들며, 존재를 완전히 감춰버렸다.
"대변자님이 사라지셨다!"
어둠 너머로, 열렬한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은 이사벨 황녀가, 물어온다.
"령사님. 아까 그거, 어떻게 한 건가요…?"
"어떤 거요?"
"죽였다가, 막 살려내고 그랬잖아요."
"....아, 그거 그냥 얼음땡이에요."
"네…? 얼음…. 뭐요?"
사르카를 잡아다 빙결 주문으로 내부부터 얼린 뒤에, 다시 약한 화염 주문으로 녹였을 뿐이다.
설명을 들은 이사벨은, 허무한 표정을 짓는다.
"그게 그냥 기초 마법이라구요…?"
"그럼요. 열 살짜리도 배우면 할 수 있을걸요."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령사님도, 꽤 악질이시네요."
"하하…."
황녀와 나를 태운 말은, 세말을 향해 쉴 새 없이 달렸다.
시간이 지나, 수색을 마친 율리우스가 돌아왔다.
"쥐새끼 같은 놈들, 어디 숨은 거야…"
'..?'
이상하게도, 한참 수색작업을 펼쳐야 할 신도들이 저마다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수색하라고 보내놨더니, 여기 모여서 뭣들 하는 거냐!
"교주님! 여신의 대변자가 찾아왔었습니다!"
그들은 반성의 기미는커녕, 율리우스를 향해 이상한 소리를 해댔다.
"무슨 헛소리를…."
"똑똑히 봤습니다! 대변자님이 와서는, 뜻을 전하고 말을 타고 사라지셨다구요!"
"뭐? 단체로 환각이라도 본 거냐? 당장 쫓지 않고 뭐 하고 있어…!"
기가 찬 율리우스가, 말들이 묶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뭐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묶여있던 말들이,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전부 사라져있다.
"이봐! 말들을 어떻게 한 거냐!"
"여신님의 뜻에 따라, 말을 전부 풀어줬습니다!"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교주님도, 대변자님의 말을 듣고 구원받으십시오!"
"다 꺼져 이것들아, 꺼지라고…!"
그날 사르카 교의 밤은, 유난히도 소란스러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