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첫 임무 (2)
* * *
"읍…. 으읍…!"
어느 정도 숲 깊숙이 들어오자, 남자가 말했다.
"입은 풀어도 좋다. 귀한 제물이니 소중히 다뤄야지."
겨우 막혔던 입이 풀린 여자가, 그를 보며 말한다.
"율리우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죠..!?"
"이사벨 님은 지금 사르카 교의 숭고한 의식의 제물이 되러 가시는 겁니다. 영광으로 생각하시지요."
여자의 동공이, 한차례 커졌다.
"당신 설마 지금까지, 이걸 위해 제 호위를…"
"맞습니다. 황제까지도 깜빡 속아 넘어가더군요. 능력제 사회란 좋지 않습니까?"
"이런 짓을 하고도, 넘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물론 아닙니다. 황녀님을 바치고 곧장 세말을 뜰 거거든요. 사르카 교의 번영을 위해서는, 저라는 존재가 아직 세상에 필요하니까요."
"미쳤어요…. 당신.."
미행 중, 의미심장한 단어들이 들려온다.
'황녀..? 사르카 교..?'
황제까지 거론된 것을 보면, 역시 평범한 납치 같은 것은 아닌 듯하다.
이거, 내가 손대도 되는 규모의 일이 맞는 걸까.
그들을 미행하며 숲 깊은 곳으로 계속 들어가니, 누가 봐도 이런 곳에 있는 게 부자연스러운 사원 형태의 건물이 등장했다.
거기에 모여있는 수상한 자들은, 전부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후드를 눌러 쓰고 있었다.
'숲 한가운데에, 어째서 이런 게..'
근처의 풀숲에 숨어 지켜보는 동안, 그들은 여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정면 돌파하기에는 경비가 꽤 삼엄하다.
문지기 두 명에, 다른 인원 세 명은 각자 돌아다니며 순찰을 돌고 있었다.
건물 안에도 몇 명이나 더 있을지 모르고.
결국, 순찰조 한 명이 이쪽으로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부스럭.
"..뭐야, 동물인가…?"
일부러 조금 소리를 내어 표적의 관심을 유도한 뒤, 가까이 온 표적의 이마에 미리 장전해준 석궁으로 구멍을 뚫어줬다.
뇌에 화살이 깊게 박혀 즉사한 표적이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빠르게 달라붙어 풀숲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게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클레드로부터 받은 촉매를 손에 쥐고, 주문을 머릿속으로 영창했다.
'어둠의 오스테온이여, 당신의 그림자 속에 몸을 담글지어다..'
가물가물한 기억으로, 암흑계 중급마법 '폴리모프'의 주문을 외웠다.
접촉한 대상의 형상으로 변하는 주문으로, 다만 정말로 변하는 것이 아닌 환상을 뒤집어쓰는 쪽에 가깝다.
쥐고 있던 촉매가 한순간 반짝이며, 내용물이 검게 물들었다.
'성공이다.'
손을 보니, 실제 느껴지는 감각과 다르게 훨씬 커다란 손이 보였다.
그리고, 손바닥 위로 핏방울이 떨어진다.
'...아.'
시체의 머리에 구멍을 내놓은 탓에, 머리의 상처까지 재현돼버렸다.
쓸데없이 현실적이구만..
'파고스.'
마법으로 만들어진 형상은 다른 마법의 영향을 받는 점을 이용해, 이마가 있을법한 위치에 얼음 주문을 외워 지혈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모습이니, 후드 안쪽을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이상 수상한 점은 없을 거다.
누가 만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문지기 두 명이 지키고 있는 곳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형제여, 잠깐 나 좀 보지."
그냥 들여보내 주나 했더니, 한 명이 날 불러세웠다.
말을 걸리면 곤란한데.
"얼굴이 못 본 새에 많이 창백해졌어. 시체처럼."
벌써 들킨 건가..?
혹시 모를 전투를 위해, 한 손을 단검 손잡이 위에 가져다 댔다.
"이 사람아, 신혼인데 당연하지. 한참 불타오를 때 아니겠어."
...시, 신혼?
"부럽네, 부러워. 이번에 첫째도 낳았다면서. 팍팍 해서 둘째도 서둘러 만들어야지. 아니, 이미 생겼으려나? 하하하!"
문지기 두 명은, 나를 사이에 두고 허탈하게 웃었다.
별다른 제지가 없자, 나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나저나, 좀 죄책감이 드는데.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사람이었나 보다.
..죽이지 말고, 기절만 시킬 걸 그랬나..? 몰라, 이미 죽여버렸는데 뭐.
"구원이 있으리라!"
사원 중앙을 보니, 후드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잔뜩 몰려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몰려있는 사람들 때문에 맨 앞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기에, 열심히 그들 사이로 껴 들어갔다.
"우리 사르카 교는 오늘, 왕족의 혈통을 그 제물로 삼아 구원받을 겁니다!"
"구원! 구원!"
'아까 그 남자다..!'
율리우스라고 불린 남성이 수많은 신도들 앞에서 일장 연설 중이었다.
"이 세상은, 사르카에게 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먹고 먹힘으로써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인간 따위가 무분별하게 탄압하면 안 된단 말입니다!"
'..그렇게 먹히고 싶으면 네가 먹히면 되잖아.'
"기사의 신분으로 위장하여, 황제의 신뢰를 얻어내기까지 몇 년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오늘, 그 노력의 결실이 드디어 열매를 맺겠군요."
자신을 기사라고 말한 율리우스는, 손뼉을 짝 쳤다.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오늘 밤의 제물, 아르모니아 황실의 이사벨 황녀입니다!"
손발이 묶인 그녀의 등장에, 신도들이 일제히 환영했다.
'황녀라고…!?'
공주를 납치해서, 제물로 바쳐..?
최악의 상황까지 간다면, 전쟁까지도 일어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럼, 위대하신 사르카님. 숭고한 식사가 되시길."
율리우스가 어떠한 장치를 당기자, 벽이 열리면서 안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
"크르르르르…."
그것은, 거대한 돼지의 형태를 띈 무시무시한 사르카였다.
'주인 사르카를, 속박해뒀어…?'
소재를 모를 수갑에 손발이 묶인 채, 황녀를 보며 흘리는 침이 바닥을 적신다.
"꺄아악…! 싫어..!"
"받아들이십시오, 황녀여. 실은 그대가 너무나도 부럽습니다만, 사르카 교의 신도 된 입장으로써 교리에 따라 먹히지 못하는 것이 한입니다."
"당신들, 지옥에 떨어질 거야.."
"잠시나마 당신을 보좌해서 영광입니다. 황녀님."
상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앉은 의자를 서서히 발로 밀어 사르카의 주둥이에 가까이 옮겼다.
"아바마마.."
죽음을 직감한 그녀는, 반항하기를 멈춘 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어서, 결국 혈석화살을 괴물에 겨냥했다.
폴리모프 탓인지, 시야가 평소보다 높다.
다행히, 발사된 화살은 성공적으로 날아가 박혔다.
..황녀의 어깨에.
"꺄아악!"
"어느 놈이냐..! 귀중한 제물에 상처를 낸 게..!"
'..아.'
사르카를 겨냥한다는 게, 황녀에게 꽂혀버렸다.
그나마 머리를 안 맞은 게 다행이려나.
정체를 들키기 전에, 빠르게 어둠 장막을 펼쳤다.
"암령사인가..? 어느 틈에 숨어들어온 거지..?"
그는 내 기술을 보고, 령사임을 간파한 듯했다.
눈앞이 깜깜해져 혼비백산인 신도들 사이를 헤쳐나가, 황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플로가!"
율리우스가 주문을 영창 하자, 순식간에 불꽃이 일며 주변이 밝아져 버린다.
"더러운 오스테온의 힘을 빌리게 하다니, 이리도 치욕스러울 수가…!"
간혹 마법을 겸하는 기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하필이면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의 손끝으로부터, 화염이 발사됐다.
고갤 숙여 피해냈지만, 쓰고 있던 환영에 불꽃이 닿아 정체가 탄로 나버렸다.
"이제 보니, 눈속임용으로 고용했던 령사년이구나..!"
갑작스레 모습이 바뀐 나를 보고, 황녀가 놀란 듯이 물어왔다.
"당신은..?"
"설명은 나중에요. 어깨 계속 누르고 계세요."
다행히 화살촉이 금속이 아닌 혈석이지만, 지혈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율리우스가 칼을 빼 들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주제넘게 나서지 말고, 네놈들 임무나 신경 쓰면 좋았잖아.."
칼을 쥔 자세로부터, 심상치 않은 연륜이 느껴졌다.
그는 강하다. 어쩌면 루나보다도.
율리우스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인재구나. 그 검은 머리칼이며 외모를 보면, 사르카 여신님을 꼭 빼닮았는데."
"..여신..?"
자꾸 알 수 없는 소리를 해댄다.
점점 다가오는 그에게, 단검을 빼 들었다. 그러자, 율리우스가 씩 웃으며 말한다.
"이길 수 없을걸."
그 역시, 나와의 격차를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누가 싸운대?"
툭. 툭.
사르카를 속박했던 사슬이, 끊어지는 소리를 냈다.
이제야 사슬의 상태를 확인한 그가, 칼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정신나간 짓을..!"
내 손으로부터 나온 작은 불꽃이 계속해서 사슬을 빨갛게 물들였다.
그가 나를 공격했을 때 훔쳐 온 화염 마법으로, 계속해서 이걸 녹이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사슬을, 단검으로 내려찍어 부순다.
"크르르르르르!"
달려드는 사르카를 피해, 황녀의 손을 잡고 달렸다.
"당신들이 그렇게 좋아죽는 사르카랑 잘 놀아봐!"
그는 약이 바짝 올라 나를 추격하지만, 주인 사르카의 거대한 몸집에 가로막힌다.
"크윽…!"
사르카의 난동에 의해 사원 기둥이 무너지고, 신도들은 혼비백산으로 도망가기 바쁘다.
그녀의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나와 계속해서 달렸다.
“댕댕이!”
댕댕이를 불러보지만, 응답이 없다.
“..댕댕이! 댕댕이!”
저번 등급평가 전투 때 멋대로 소환을 해제한 뒤로 이젠 소환 자체를 거부한다.
“… 망할 똥개가..”
성격은 주인을 닮는다더니, 내 성격이 이런가..?
하는 수 없이, 황녀를 안고 무작정 뛰었다.
이 난리 통에, 조금이라도 멀어져야 한다.
어떻게든, 숲속으로 들어가 따돌리기만 한다면..
눈 앞에, 우거진 풀숲이 보였다.
‘좋아, 이제 곧 따돌릴 수…’
푹.
등 뒤로 날아온 무언가가, 내 신체 부위에 깊숙이 날아와 박힌다.
엄청난 관통력에, 몸이 경직되어 버린다.
'칼을...날렸어..?'
“...잡았구나, 요 쥐새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