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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25화 (25/102)

〈 25화 〉 휴식

* * *

“어디가 문제지?”

클레드가 새끼 손가락으로 코를 파며 말한다. 그 모습에 약이 오른 카르네가, 꽥꽥 소리를 지른다.

“ F라니, 이상하잖아요! 혈석은 두 자루나 있었을 텐데.”

“철저하게 기준대로 평가했다. 너희가 싸우던 곳에는 빈 자루밖에 없더군.”

“빈 자루라고요..? 그럴 리가..”

카르네와 눈이 마주쳤다. 결국, 사실을 실토했다.

“..비어있던거 맞아. 중급 마법에 혈석을 다 쏟아부었어.”

“....그걸, 전부..?”

그녀의 표정이, 소름 끼치게 변했다.

“히히…. 히히히.”

충격에 빠진 것 같은 카르네는, 벽을 짚고 비틀대며 퇴장한다.

“충격이 컸나 보군.”

병실에는, 나와 클레드 만이 남았다.

그는 술병을 꺼내 한 모금 마시더니, 내게 말했다.

“둘이서 혈석만으로 중급 마법을 전개한 건가? 놀라운 실력이구나.”

“..프리지아 덕분이에요.”

즉석에서 만든 촉매로 마법 전개에 성공했던 건, 전적으로 유리 프리지아의 기량 덕분이었다.

“용감하구나. 도망치지 않고.”

술만 마셔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칭찬할 줄도 안다.

“그럼, 저희 등급은..”

“그건 별개다.”

진짜 꽉 막혔네.

그러고 보니, 그에게 물어볼 것이 있었다.

“사르카와 싸울 때 사용한 거, 수인족의 체술이죠?”

클레드가 사르카를 벨 때 사용한 몸놀림은, 분명 수인족의 체술이었다.

“..별일이군. 인간 중에 그걸 알아보는 자가 있다니.”

그는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오랜 친구에게서 배웠다. 같이 용병 일을 했었거든.”

나 이외에도, 수인족과 깊게 접촉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런것보다, 가장 궁금한 질문은 따로 있었다.

“실례지만, 교관직은 어떤 식으로 받은 건가요..!”

마법도, 오스테온도 없는 그가 아카데미측의 눈에 들게 된 계기가 있을거다.

“..궁금한게 많나 보군. 뭐, 좋다. 수업이 중단돼서 시간도 많으니.”

언제 비웠는지 모를 술병을 내려두고, 그는 새로운 술을 개봉했다.

“약 20년 전에, 그러니까 네가 태어나기 전이였겠군. ‘굴라’가 활동을 시작했다. 한 번쯤은 들어봤겠지?”

무척이나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고대종 사르카, 굴라.’

사실 내가 지은 정확한 명칭은, ‘식탐’ 의 굴라다.

고대 사르카라는, 현 사르카들의 조상 격 생물체.

7대 죄악은 언제나 인기 많은 소재였기에, 7개의 개체에 하나씩 주제를 붙여주었다.

그중에서도 굴라는, 식탐을 담당하는 고대 사르카였다.

“당시의 나는 17살이었다. 떠돌이 용병 생활 중, 굴라에 의해 파괴되는 중인 마을을 방문하게 됐지. 끔찍하더군. 건물이고 농작물이고 할 것 없이 전부 사라졌다.”

지나는 자리의 모든 것을 먹어 치운다.

배를 채우면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고 일정 간격으로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그야말로 인간의 입장에서는 최악의 사르카.

“하필이면 그날 마을을 덮친 굴라와 맞닥뜨려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비올레 령사단장에 의해 목숨을 구원받았지.”

“총장님이요..?”

“그래. 아직 지금의 지위는 아니었지만, 단신으로 굴라와 호각을 이룰 정도로 강했어.”

‘고대 종을, 단신으로..?’

“삼일 밤낮동안 싸움이 지속됐다. 그건 괴물이었어. 베어낸 자리에선 두 배가 넘는 살덩이가 자라났지. 셀 수도 없는 령사들이 죽어 나갔고. 마지막에는 전장에 서 있는 자는 비올레씨 한사람 뿐이였다.”

“그럼, 비올레님이 굴라의 목숨을 끝낸 거네요?”

“그건 모른다.”

“..예?”

“당시의 전장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자는 없었다. 다만, 그 이후로 다시는 굴라가 나타나지 않은 거로 보아 정황상 그에 의해 죽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식탐의 굴라를 잠재운 공로를 인정받아, 비올레는 령사단장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나는 그를 보며 령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문장은 없었지만.”

그가 문장 없이 여기까지 오려고, 얼마나 노력했을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이형의 사르카들을 해치우며 다니다, 다시 그와 재회한 거다.”

혼돈에 의해 발생한 주인 사르카들이, 클레드가그와 다시 엮이는 기회가 된 것이다.

“..이 정도면 궁금한 건 대충 답변이 된 것 같군. 더 질문 있나?”

“..아뇨, 충분해요.”

“몸조리 잘해라.”

그는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병실을 떠났다.

창밖을 보니, 비가 한바탕 쏟아지고 있다.

클레드 교관이 비에 홀딱 젖을 생각을 하니, 만족스럽구만.

‘혼돈 수치는 어느 정도지?’

...오랜만에, 혼돈 수치를 확인한다.

_띠링_

현재 혼돈 수치 : 1.7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가 발현식 때였는데, 1.3이던 게 어느새 1.7까지 올랐다.

이대로 가면, 2.0에 도달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달칵.

그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밥 먹자!”

루나가 직접 준비한 식사를 들고, 언제나 와 같은 밝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팔을 다친 후부터, 루나에게 직접 떠먹여 지는 것이 일상이 돼버렸다.

솔직히, 왼팔로도 못 먹을 건 없지만 왠지 루나가 슬퍼할 것 같아서 얌전히 받아먹는 중이다.

“아­ 벌려주세요.”

“....아.”

루나가 떠주는 음식을, 한 입 크게 받아 먹었다.

:”어때?”

“..마시어.”

사실 뜨거워서 맛있다는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는다.

헤어진 후의 기억 속에서는 마냥 자식처럼만 느껴졌던 그녀였는데, 상황이 역전돼버린 느낌이랄까.

밥을 먹이는 루나의 손은, 여전히 장갑을 낀 채다.

루나는 아카데미에 오고서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모양인지, 언제나 훈련할 수 있도록 상시 무장상태였다,

그때, 창문으로 빛이 한번 번쩍이더니, 쿠궁 하며 벼락 치는 소리가 들렸다.

“꺅…!”

그 소리를 들은 루나가, 숟가락을 놓고 내 무릎맡에 놓인 이불로 머리를 집어넣는다.

“...루나?”

“...미, 미안.”

벼락을 무서워 하는 건가?

루나가 뭘 무서워 하는 걸 본적은 처음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의 커튼을 쳤다.

“이러면 좀 덜할 거야.”

“..하나도 안 무서워! 추워서 그랬어, 추워서!”

토끼 눈을 뜨고 이불속에 들어가서 그런 말을 해봤자, 전혀 설득력이 없는데.

조금 시간이 지나 진정된 루나에게서 빗질을 받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으음..”

그녀가, 턱을 궨 채 나를 지긋이 바라본다.

“왜, 왜 그래..?”

“그러고 보니까, 슬슬 씻어야 하지 않겠어?”

“..그러네. 전투 이후로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그럼, 간단하게라도 씻으러 다녀올까.

침상에서 일어서려는데, 그녀에 의해 저지당한다.

“잠깐, 그 팔로? 상처에 물이라도 들어가면 어쩌려고?”

이거 좀 불안한데.

“물 안 들어가게 잘 하면 되지 않을까?”

“안돼. 도와줄게.”

그녀와 있다 보면, 왜 꼭 이런 전개가 돼버리는 걸까.

“생각해보니까, 내일 씻어도 될 것 같..”

“으쌰.”

말을 돌리려 하는 중에, 그녀에 의해 공주님 안기를 당해 이동당 한다.

“루나!?”

아니, 무슨 힘이 이렇게 세..?

“루나, 나 진짜 괜찮아..! 혼자 할 수 있다니깐…!”

“억지 부리긴. 걱정 말고 맡겨. 어릴 때 자주 같이 씻었잖아?”

아니, 그때랑은 다르다고.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자, 빨리 벗자. 참, 혼자 벗기 힘들지? 영차.”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상의를 훌렁 벗겨져 버린다.

“루나, 잠깐 기다...”

“얘가 왜 이래. 자, 아래도 마저 벗자.”

펄럭­

결국, 루나에 의해 무기력하게 알몸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어릴 적에 못 볼 꼴 다 본 사이라곤 하나, 2차성징이 드러난 몸을 보이는 건 조금 부끄러웠다.

“이상하네, 사야. 뭘 그렇게 가리고 그래?”

루나는 갑옷을 벗어 내려놓더니, 자신의 손을 상의 끝자락으로 향했다.

“너도 벗게?”

“당연하지! 옷이 젖으면 안 되니깐.”

그리고, 훌렁 들어 올린다.

백묘 대장의 몸과는 달리 적당히 건강미 있는 몸매에, 기사라고 생각되지 않게 하얀 피부다.

예고 없이 들어오는 살색의 향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그녀에게 떠밀쳐지듯 욕실에 들어왔다.

“옛날 생각난다, 그치?”

“..그러네.”

처음엔 조금 부끄러웠지만, 금세 적응되어 버렸다.

루나의 몸이 어릴 때에 비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친구끼리 아무렴 어때.

거품을 묻힌 천이, 내 몸 구석구석까지 향했다.

초반에는 조금 움찔거렸지만, 아예 포기해버리고 몸을 맡기니 그냥 편하다.

“많이 컸네. 사야.”

“엄마 같은 소리 하지 마.”

“흐흐.”

몸에 물을 끼얹으며 마무리했다.

‘.....?’

그때, 문득 루나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이지만, 스치듯 지나간 그녀의 손등에서, 희미한 문장이 반짝였다.

“..루나.”

분명 그녀는, 문장이 발현되지 않았다고 말했을 텐데.

손등에 새겨진, 저 문장은 뭐지?

“응, 무슨 일 있어?”

내가 말을 걸고 침묵하자, 루나가 걱정되는 듯 물어왔다.

“..아니, 아무것도.”

빠르게 화제를 돌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꿨다.

손등에 새겨진 문장을, 본인이 자각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기에, 그것에 관해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나에게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루나 그레이스의 천진난만한 미소 뒤에는, 무언가 있다.

­

옷을 껴 입고, 유리의 병실에 들렸다.

유리는 전투 이후로 쭉 잠들어 있는 상태였다. 오스테온이 손상을 입기도 했고, 무리한 출력으로 중급마법을 사용한 것에 기력을 너무 쏟은 탓이다.

그런데, 유리의 침대맡에 누군가 있었다.

새하얀 장발의, 순백 갑주를 두른 사내.

'비올레 령사단장..'

그가, 왜 여기에..

그는 잠깐동안 유리를 지켜보더니, 복도로 나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사야 양이었지?"

저번 징계 때도 보았지만, 클레드에게 예전 이야기를 듣고 난 후라 그런지 더 신비하게 느껴진다.

"학생들을 습격한 주인 사르카를 격퇴했다고 들었네. 자네들은 이미, 한 사람의 훌륭한 령사야."

"..그럴리가요."

그에게 칭찬을 들으니, 괜히 으쓱해진다.

사실 클레드가 없었다면 마무리할 수 없었겠지만.

"프리지아 양의 상태가 걱정되어 들렀단다. 사야 양도 건강해 보이니 안심이야. .. 이만 자릴 비켜줘야 할까?."

비올레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단다. 열심히 해주길 바라.”

“...”

떠나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비올레는 나와 같은 암흑계 령사다. 그런 그가 고대종 사르카를 단신으로 상대할 정도면, 얼마나 강하다는 걸까.

‘..그럼, 이제 어떡할까.’

방으로 돌아가봤자 할 것도 없고, 유리의 상태를 좀 볼까 했다.

“실례합니다.”

노크를 하고 들어갔지만, 유리 프리지아는 아직 눈을 깊게 감은 채다.

침대에 가까이 가서, 그녀를 조심스레 지켜봤다.

그동안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 소설 속 주인공인 만큼, 외모 또한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다.

허리까지 오는 은발에, 길게 자란 속눈썹과 창백한 피부.

글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현실적인 미소녀였다.

..성격만 빼고.

“.....아.”

그러던 중, 눈을 떠버린 그녀와 마주 보게 되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난 유리는,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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