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 본심
* * *
해가 저물 지경이건만, 댕댕이는 자리에 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자기가 무슨 피O츄인줄 알아?’
생긴 건 살인기계처럼 생겨먹어선, 하는 짓은 어느 만화의 노란 전기쥐랑 다를 게 없다. 손대는 것도 싫어, 다시 들어가기도 싫다고 하니 기가 찬다. 수업이 곧 시작될 예정이건만,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으니 결국 댕댕이를 줄로 묶어 질질 끌고 다음 수업으로 향했다.
“그르르르…”
몸의 외견을 이루는 갑옷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텅 빈 영혼체라서, 끌고 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다른 학생들의 시선을 무지하게 끌고 있었다.
따가운 시선들을 애써 무시하며, 마법 강의가 열리는 다음 교실에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오스테온을 질질 끌고 들어오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참질 못한다.
“쟤 뭐하냐? 설마 지금까지 못 집어넣은 거야?”
“그러게 내가 뭐랬냐, 천민 할당제 맞는다니까. 기본적인 거 하나 못하잖아.”
험담들을 애써 외면했다. 두리번거리며 빈자리를 찾다가, 마침 카르네가 나를 불렀기에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카르네가 실은 무시무시한 여자라는 걸 알고 있지만, 카르네 말고는 인사해주는 사람도 없으니 선택권이 없다. 유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고.
“늦었네, 사야? 댕댕이는 아직 못 집어넣었구나.”
“말을 통 안 들어서..”
그때, 마법 교관을 맡고있는 중년의 여성이 뚜벅뚜벅 내 쪽으로 걸어와 물었다.
“학생, 왜 오스테온을 꺼낸채로 들어왔지?”
“..소환 해제가 안 돼서요..?”
“아니, 령사라는 자가 자기 오스테온 하나 못 다루나?”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드는 와중에, 댕댕이는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책상 모서리나 물어뜯고 있다.
“하... 아무쪼록 다른 학생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해주게. 교관이 된 이후로 처음 보는 광경일세.”
“..면목이 없습니다. 오드리 교관님.”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나?”
아차.
소설 속 인물들은, 내가 일방적으로 이름을 외우고 있을 뿐이란 걸 자주 깜빡하곤 한다.
“입학 전부터 들었어요. 여기에 오래 근무하셨잖아요?”
“흠, 아무튼 방해가 가지 않도록 해주게.”
첫날부터 아주 제대로 찍힌 모양이다.
몸으로 익히는 감이 더 중요한 마법 수업인 만큼, 오드리 교관에게서 간단한 이론 설명을 들은 뒤 바로 기초 주문의 시전으로 들어갔다.
오드리가 주문을 외우자 손에서 꽤 커다란 불꽃이 한차례 솟았다. 한차례 시범을 보인 그녀는, 강의실을 돌며 학생들을 하나씩 검사하기 시작했다.
“주문의 위력은 딱 두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 첫째는 령사의 역량이고, 둘째는 그날그날의 컨디션이다.”
그녀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컨디션은 마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지. 최상위급 사르카를 상대하는 령사들조차도, 컨디션 조절 때문에 마법 출력량에 있어서 난처함을 겪기도 하니까.”
‘컨디션이라고..?’
그날의 컨디션이 마법을 좌우한다는 말은,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컨디션에 따라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경우가 잦으니까. 그런데, 컨디션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 텐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가 설명해주는 이론에 의아함을 품게 된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결국 손을 들어 질문한다.
“질문이 있습니다.”
“..뭐지?”
“마법의 위력이 결정될 때, 사용자에 감정의 변화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지 않나요?”
“감정..? 그딴 게 무슨 상관이지?”
내 질문에 오드리는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그런 궤변을 주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책에도 그런 서술은 나와 있지 않네.”
어느 책에도, 나와 있지 않다고?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령사들은 대체 어떤 느낌으로 마법을 써왔다는 거지?
“하지만, 직접 해보시면..”
“이미 답변은 했을 텐데. 계속 수업을 끊어 먹을 텐가?”
“...아닙니다.”
그녀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앉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들었냐? 감정론이란다.”
“쟤만 보면 웃겨서 숨넘어가겠다고, 진짜..”
반응을 보아하니, 정말로 마법은 그날의 컨디션 따위로 결정되는 것이라 굳게 믿는 모양이다. 내 주변에 앉은 사람 중 웃지 않아 줬던 건, 카르네와 유리 뿐이 유일했다.
‘말을 말자..’
더는 말해봤자 더 괴짜 취급만 받을 게 뻔했다.
앞줄부터 시작해 점점 나의 차례가 다가오고 있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다른 학생들이 기초 마법을 시전하는걸 구경했다.
특이한 점은, 수많은 학생들 중에 암흑계 령사가 극히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겨우 4명 정도. 암흑계 령사인 남학생의 차례가 와서, 그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스코타디!”
남학생이 암흑계 기초마법을 외치자, 0.5m 가량의 암흑 반구가 펼쳐졌다.
“오호, 어둡지도 않은 곳에서 꽤나 노력했구나. 훌륭해.”
나는 작다고 생각했지만, 오드리와 다른 학생들에겐 아니었나보다. 다들 감탄을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암흑계열 마법은 실용성이 떨어지니까, 적당히 연습하고 전투에 더 신경 쓰는 게 좋을거다.”
‘전투에 더 신경을 쓰라고..?’
오드리의 말에 약간 눈살을 찌푸렸다. 아무리 암흑 마법이 전투에 특화되지 않았다고 한들, 적당히 하라는 건 마법 교관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 않는가.
“...왜, 왜 이러지..?”
내 옆자리에 앉은 카르네가,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손을 덜덜 떨고 있다.
“무슨 일 있어?”
“마법이 안 나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잘 됐었는데..”
식은땀이 조금 흐르고, 얼굴빛이 창백하다. 아마도 과하게 긴장을 한 탓이겠지. 솔직히, 나는 그녀를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아카데미에서 무슨 행동을 저지를지, 그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지 알고 있었기에.
그래도, 먼저 호의를 줬던 그녀를 매정하게 내치는 건 속이 조금 불편했다. 무슨 꿍꿍이가 있었는진 몰라도.
“카르네. 내가 도와 줄까?”
“뭐? 어떻게?”
진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한다.
“..땅이 어떻게 우는지 알아?”
“...어떻게 우는데?”
“흙흙.”
몇 초간 침묵이었다. 망했다고 생각할 때쯤, 그녀가 피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 뭐야 그거. 바보 같아..!”
“...”
다행이다. 다행히 아직 이 세계에는, 아재 개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나 보지.
그녀가 웃는 사이, 오드리 교관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준비는 됐나, 학생?”
오드리가 카르네에게 물었다.
“앗, 네!”
나와 오드리가 지켜보는 사이에서, 그녀가 주문을 외운다.
“..피토!”
그녀가 자연계 기초 마법을 읊자, 그녀의 손 위에서 빛나는 씨앗이 형성되어 싹을 틔운다.
“.. 나쁘지 않구나.”
카르네는 아마도 성공할지 몰랐나 보다. 토끼 눈을 뜨고선, 내게 속삭인다.
“됐어! 방금까지 아무리 해봐도 안 됐는데, 어떻게 한 거야..?”
“...비밀이야.”
카르네의 마법이 발동되지 않았던 이유는, 과한 긴장 때문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었기 때문일 거다. 여유가 없이 그저 불안하기만 한 감정은 어떤 방향으로든 마법에 기폭제가 되어주지 않는다.
이제 카르네의 차례가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다.
“..다음. 학생 차례다.”
그녀는 아마, 수업에 흐름을 방해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반기지 않는 타입이다.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내가 무슨 말을 늘어놓든, 이들은 책으로 남겨진 기록 따위만 맹신할 뿐이다.
“어이, 감정론의 힘을 보여주라고!”
뒷자리서 계속 얄궂게 굴어오는 남학생이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열이 확 올라서, 아주 제대로 된 걸 보여주겠노라 다짐했을 때였다.
“....”
“왜 그러지? 무슨 문제 있나?”
주문을 펼치려 손을 내밀었다가, 멈칫했다.
그래.
내가 여기서 광범위한 어둠 마법을 펼친다면, 내 이론이 맞다는 걸 증명시킬 수 있다.
만약 사실이라는 게 입증되면, 학생들을 가르치는 커리큘럼도 개편되어 전체적인 마법의 수준이 비약적으로 오르겠지.
그런데,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남이 선의를 가지고 베푼 지식에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녀석들에게, 제대로 된 이론 따위는 백만 년은 이르다.
그럴 바엔 차라리, 지식을 독점해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해버리자고 생각했다.
‘최대한, 침착하게..’
애국가라도 마음속으로 제창하면서, 주문을 무심하게 툭 외쳤다.
“스코타디.”
내 손끝을 기점으로, 0.7m가량의 암흑 반구가 생성되어 아슬아슬하게 시야를 가렸다. 감정을 조절한다고 했는데도, 그동안 역량이 꽤 올랐는지 생각보다 크게 나와버렸다.
지금까지의 암흑계 령사 학생 중 가장 큰 크기였기에, 다른 학생들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침묵했다.
“..꽤 쓸만하구나. 하지만, 내가 말했듯이..”
“암흑 마법은 전투에 도움이 안 되니까, 적당히 투자하라는 거죠?”
오드리의 말을 가로채듯 대답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그 뒤로는, 쭉 무난하게 흘러갔다. 나도 별다른 특이행동을 취하지 않았기에, 조용히 강의가 끝났다.
댕댕이를 질질 끌며 강의실을 나가는데, 어느새 카르네와 유리가 말을 걸어온다.
"수고했어. 처음이라 막 정신없고 그렇다. 그치?"
"..난 먼저 가볼게. 시험해 볼 게 있어서."
유리는 먼저 사라졌고, 카르네와 나만이 남는다. 아, 댕댕이도.
"고마워, 사야 덕분에 오늘 무사히 넘겼네."
카르네는 활짝 웃으며 내게 감사를 건넨다. 하지만 거기에 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사야,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그만하자. 카르네 에커만.”
“뭘 그만하자는 거야? 영문을 모르겠어..”
이번엔 말을 돌리지 못하도록, 확실하게 못 박았다.
“어설픈 친구연기는 집어치워. 왜 유리 프리지아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어째서..?”
다시 그녀가 얼굴을 들었을 때는, 이미 지금까지의 인상에서 180도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들킬 이유가 없었는데, 왜 들킨걸까?”
나만이 알고 있었던, 카르네 에커만의 모습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