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9화 (19/102)

〈 19화 〉 오스테온

* * *

집무실에 끌려가서, 사이좋게 징계를 받았다.

부상이 크지 않았던 것을 참작해서, 일주일간 아카데미 부지의 잡초를 뽑는데 동원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대련에서 이겨서 아르모니아 전기 2장을 손에 넣었다는 것.

이걸로 앞으로의 전개도 한동안 예측할 수 있었다.

령사단장 비올레는 과연 무시무시한 사람이었다.

령사 중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사람인 만큼, 그의 말 한마디마다 중압감이 느껴졌다.

쨍쨍한 햇볕 아래서, 유리 프리지아와 쭈그려 앉아 풀을 뜯었다.

“어느 세월에 이걸 다 뽑냐..”

날씨까지 더우니 불쾌지수가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아카데미의 부지는 거의 작은 마을 수준이라도 믿을 정도라서, 끝없이 펼쳐진 잡초 판을 보고 있자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걱정 마. 앞으로 당신이랑 나랑 이십 육만 개 정도 더 뽑으면 끝날 거야.”

짜증이 날 법도 한데, 유리는 담담하기만 하다.

“유리는 걸리면 징계인 거 알고 있었어?.”

내가 물었다.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알면서까지..?”

“당신이랑 싸워보고 싶었으니까.”

놀라움을 넘어, 경의를 표하게 되는 전투 본능이다.

잡초를 뽑는 내 손을, 그녀가 유심히 들여다본다.

너무 농땡이 부렸나?

“상처가 많네.”

몇 번이고 손가락이 부러졌다 붙은 흉터가 있고, 손등에 칼자국이 잔뜩 남아있다.

“..보기 흉해?”

“아니, 훌륭해 보여. 단련의 증거잖아.”

의외인 곳에서 그녀에게 칭찬받았다.

지금껏 흉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당신이 보여줬던 그 체술, 평범한 체술이 아니지?”

그녀는, 수인족의 체술에 관심을 가졌다.

“손을 지지대처럼 자유롭게 쓰던 걸. 그런 건 여태껏 본 적 없었어.”

“..그럴거야. 인간한테서 배운 게 아니거든.”

“인간의 것이 아니라고?”

“수인족의 싸움방식이야.”

차별 때문에 가뜩이나 폐쇄성이 강한 수인족의 특성상, 인간과 정면으로 겨룰 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세말에서만 살았던 그녀가 수인족과 싸울 일은 없었겠지.

“당신이란 사람은, 알면 알수록 수수께끼 투성이네.”

떳떳한 유년기를 보냈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쉽게 남에게 성장 배경을 밝힐 수는 없다.

그녀는내가 차고 있는 이 단검이, 자신이 존경했던 령사 윈드가르트의 롱소드였다는것을 알까. 어쩌면 유리가 그걸 아는 날이 내 제삿날일지도.

댕­

성당에 달린 정각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유리와 나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사야, 작명식에 늦겠어. 이쯤 해두고 가자.”

“응.”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가, 조금은 유해진 기분이 든다.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사야.”

“응?”

“좀 떨어져서 걸어주겠어?”

내 착각인가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을 걸어서, 대강당에 도착했다.

오늘 모인 이유는 본격적으로 오스테온에게 이름을 붙이고, 소환하기 위해서였다.

령사가 됐다고 짠 하고 령을 소환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름을 붙여 자신의 종속으로 확정 짓는 과정이 필요하다.

학생들에게 배부된 주문이 걸린 스크롤에, 령의 이름을 적어 불태운다.

다른 학생들은 서둘러 이름을 적고 있다.

펜을 깜빡해버렸다.

멍하니 빈 스크롤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카르네가 다가왔다.

“이름은 정했어? 사야?”

카르네 에커만. 임명식때부터 왜인지 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에 방심하면 안 된다.

그녀는 명실공히, 내가 창작한 인물 중 아카데미 최고의 악녀다.

모든 말과 행동에는, 분명 속셈이 있을 거다.

“아직 못 정했어. 펜도 없더라고.”

“그래? 내걸 빌려줄게.”

카르네는 장갑을 낀 손으로 내게 펜을 내밀었다.

일단은, 받아야겠지?

“..고마워.”

펜을 받는 과정에서 손이 약간 닿았는데, 그녀가 조금 움츠린 느낌이 들었다.

“...친구끼린데, 뭘.”

어쨌든, 이름은 지어줘야 했기에 스크롤에 펜을 가져다 댔다.

‘미치겠네. 이럴 때 결정장애가 도지다니.”

선작 2개짜리 하꼬작을 연재했긴 했지만 그래도 엄연한 작가였다.

괜히 설정을 짤 때 쓸데없는 완벽주의 때문에 날밤을 샌게 아니다.

싸울 때 보았던 내 오스테온의 모습을 떠올렸다.

검은 갑주로 무장한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생김새.

남들과 겹치는 이름으로 하고 싶진 않고, 또 참신한 이름이 떠오르진 않는다.

“모두, 앞에 있는 불꽃에 스크롤을 태워주세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이름을 적어넣었는지, 일제히 스크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나도 즉석에서 떠오른 이름을 적어, 불 속에 던져넣었다.

..너무 유니크한 이름을 지어버린 것 같은데, 괜찮겠지?

학생들이 모두 작명을 마치자, 누군가 단상 앞으로 걸어왔다.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아이리스. 앞으로 여러분에게 소환 마법을 가르치게 될 교관이랍니다.”

긴 갈색 생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쓴, 푸근한 인상의 젊은 여성이었다.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긴장한 그녀를 보고있자니,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의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오스테온을 다루는 능력은 곧 령사의 강함과 직결돼요. 오스테온을 소환하는데, 별다른 주문이랄 것은 없고, 여러분이 불태운 스크롤에 적힌 이름이 바로 소환 주문이 된답니다.”

그 말대로다.

만약 이름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것으로 짓는다면 대화 중에도 시도 때도 없이 소환되겠지. 애초에 그런 이름으로 지을 리가 없지만.

“예를 들어, 이런 식으로요. 이그노시!”

아이리스의 말에, 검은 연기를 머금은 구체형의 오스테온이 소환되었다.

톱니 장치가 잔뜩 달린, 개성 있는 외형이다.

그러고 보니, 나와 같은 암흑계 령사였구나.

“그리고, 이 상태에서 다시 소환을 해제하려면, 인사와 함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하면 돼요. 편히 쉬어, 이그노시.”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듯이, 그녀의 오스테온은 연기의 형태로 다시 사라졌다.

“가끔 독립성이 강한 개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령사의 말을 대부분 이해한답니다.”

인간과 수명의 절반을 나누어 가진 오스테온은, 어찌 보면 령사에겐 분신과도 같은 존재다.

령사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그럼, 직접 소환에 앞서 우선 밖으로 나갈까요? 이런 곳에서 모두가 오스테온을 꺼냈다간 시설이 박살 날 거예요.”

그녀를 따라 학생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학생들은 저마다가 지은, 오스테온의 이름을 허공에 대고 외친다.

각자의 영혼을 닮은 가지가색의 령들이 소환되어 주인과 마주했다.

그 중, 한명의 오스테온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3m에 달하는 크기에, 냉기를 뿜는 서리골렘의 형태를 한 오스테온.

“기간타스.”

그것의 이름을 부른 주인은, 유리 프리지아다.

기간타스가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다른 학생들의 오스테온이 멋대로 소환을 해제하며 도망쳐버린다.

거대한 풍채에서 오는 위압감은 무시할 수 있을만한게 아니었다.

말없이 자신의 오스테온을 바라보는 유리에게 카르네가 다가간다.

“유리는, 저런걸 상대로 이긴 거야..?”

“생각보다 동작이 느려서 피하기 쉬웠어.”

유리의 오스테온을 보고 있자니 새삼, 다른 학생들의 것이 작게 보일 정도다.

카르네의 옆에는, 인간 여성체 형태의 오스테온이 떠 있다. 주변을 이루는 다양한 크기의 고리가, 흡사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생김새다.

유리가 관심을 보이고 물어온다.

“카르네의 령이야?”

“싸워봐도 돼?”

“아... 나는 자연계 령사라서, 오스테온도 별로 강하지 않을 거야. 무엇보다, 싸우고 싶지 않아..”

오스테온이랑도 싸워보려 하는 유리가 이제 무서울 정도다,

유리와 어울리던 카르네는, 내쪽을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사야의 오스테온도 궁금한데, 꺼내 봐!”

“아..그게..”

이름이 좀, 많이 특이해서 좀 그런데.

어느새 유리도 말없이 이쪽을 보고 있는걸 보니, 나름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는 수 없이, 허공에 대고 이름을 외쳤다.

“대... 댕댕이!”

이름을 외치자, 댕댕이는 검은 연기와 함께 늑대의 형태를 한 나의 오스테온이 소환됐다.

“...댕댕이? 무슨 뜻이야..?”

카르네는 의아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유리또한 이름을 들었는지, 내게 질문했다.

“특이한 이름이네. 이국적인 이름인데, 그 의미를 물어도 될까?”

뜻이 뭐가 있어. 댕댕이가 그냥 댕댕이지.

“...댕댕이는 말이야..”

머리를 쥐어짜 내서, 아무 말이나 내뱉는다.

“고대어로 늑대라는 뜻이야.”

“고대어..”

별로 의심할 생각은 없는지, 유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구나. 지식이 늘었어.”

이상한 지식을 늘려줘서 미안.

‘..그나저나, 되게 얌전하네.’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다.

그리고, 물렸다.

“악!”

다행히 피는 안나지만,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찍혔다.

아니, 주인을 공격하기도 하는 거였어?

직접 본 게 처음이라 착각을 한 건가.

이번엔, 부드러운 말과 함께 손을 내밀어본다.

“착하지, 댕댕아..? 이리 온.. 악!”

무섭게 내 손을 물려 하기에, 확 뒤로 뺐다.

뭐야, 얘..?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이리스 교관이 내 소리를 들은 모양이다.

“댕댕이, 아니. 제오스테온이 저를 물려고 해서요.”

“아…”

그녀는 댕댕이와 눈을 맞추고 조심히 손을 내밀었다.

내 손길엔 바로 거부반응을 보였던 댕댕이는, 아이리스의 손길에는 얌전하다.

“가끔 독립성을 많이 보이는 개체가 있어요. 주인의 성격을 따라간다고 할까요? 형태가 비슷한 오스테온이라도 성향은 전부 다르거든요.”

“앞으로도 절 물면 어쩌죠?”

“처음이라 그럴 거예요. 성향이야 어찌 됐든 학생의 영혼이 담겨있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다 보면, 맞춰갈 수 있을 거예요.”

어째 불안한 생각만 들긴 한다만, 그녀의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럼, 다들 소환을 해제시키고 슬슬 들어갈까요?”

아이리스의 말에 다들 오스테온을 다시 불러들인다.

“들어가, 댕댕이!”

“.....”

“편히 쉬어! 댕댕이!”

“.....”

어라..?

몇 번을 반복해도, 녀석은 굳게 자리만을 지킬 뿐이었다.

“댕댕이! 이제 들어가! 좀..!”

들은 채도 안 하고, 뒷다리로 얼굴 부분을 긁는다.

하..

내 인생아...

결국 다른 학생들이 전부 돌아갈때까지, 끝내 댕댕이를 불러들이지 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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