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5화 (15/102)

〈 15화 〉 유리 프리지아

* * *

아르모니아 령사 아카데미에 위치한 대성당.

그곳에서, 은발의 귀족 소녀는 의식을 마치고 눈을 떴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리 프리지아님."

"고마워요. 기록은 어땠죠?"

그녀를 보조하던 수녀는 모래시계를 멈추고 기록을 확인했다.

"...4분."

그녀의 한마디에, 모두의 이목이 유리에게 쏠렸다.

"4분입니다.. 신기록 갱신이에요..!"

그것은, 아르모니아 령사 아카데미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中 ­

­

나는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암흑탄을 터뜨렸다.

암흑탄이 직격한 마차를 시작으로, 주변의 인물과 배경이 차례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악몽속에서 비현실적인 일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보다 나이트메어 마법은 간단하게 풀린다.

물론 꿈이라는 것을 자각한 경우에 한해서.

이윽고, 다시 칠흑의 갑주를 두른 늑대와 마주했다.

..물론 한쪽팔은 먹혀있는 그 상태로.

"끝내자."

새어 나오는 갑주의 파란 빛 틈새로, 검은 단검을 깊숙이 찔러넣었다.

검은 개의 모습을 한 갑주령은 일말의 단말마와 함께 영혼의 형태로 내 심장부에 빨려 들어갔다.

이윽고, 눈을 뜬다.

다시 돌아온 대성당.

주변에는 나를 바라보는 수녀들과, 모여든 다른 참가자들이 보였다.

그들이 무어라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진짜냐..? 3분..?"

"역대급 기록 아니야, 저거?"

3분? 역대급 기록?

무슨 말들을 하는걸까.

어리둥절해선 수녀에게 물었다.

"저기, 잘 알 수 없어서 그런데 3분이면 10등 안에 든 거 맞죠?"

"10등이 아니라.. 1등을 하신 거에요. 참가자님. 그것도 아르모니아 역사상 최고 기록으로."

"...네?"

망했다.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원래 1등을 차치할 사람은...

그때, 저편에서 누군가 또 깨어난 모양이었다.

"이쪽도 깨어났습니다!"

내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금세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서, 은발의 귀족 소녀는 의식을 마치고 눈을 떴다.

"수고하셨습니다. 유리 프리지아님."

"고마워요. 기록은 어땠죠?"

그녀를 보조하던 수녀는 모래시계를 멈추고 기록을 확인했다.

"...4분입니다. 유리님, 신기록이 될 뻔했습니다만..."

"했습니다만?"

"방금, 3분대 기록을 세운 참가자가 나왔습니다.."

"...뭐라구요?"

그녀가 누구인지 특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현재 누워있던 참가자 중, 모래시계가 멈춘 건 그녀와 나뿐이었으니.

그녀는 은발을 휘날리며 곧장 내게 걸어왔다.

"당신인가요. 3분대의 기록을 냈다는 게."

나와 비슷한 키, 단정하게 정리된 은발, 투명한 피부를 보고, 마주친 것만으로 그녀의 정체를 특정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소설 속 주인공, 유리 프리지아였다.

그녀를 만나려고 꼬박 17년을 살아남았다.

참을 수 없는 반가움에 그만 이름을 불러버렸다.

"혹시, 유리 프리지아..?"

"..어떻게 제 이름을 아는 거죠?"

아차. 지금 그녀에게 있어서 나는 철저한 남이었지.

일단 변명이라도 늘어놓자.

"올해 제일 주목받는 참가자니까요...?"

"...흠."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그녀였으니, 내가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지.

"그건 그렇고, 어떻게 3분 만에 오스테온을 제압한건가요?"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건 의심의 눈초리가 아니다.

미칠 듯이 굶주린 학구열의 눈이다.

"말해드려도 믿으실지 모르겠는데.."

"일단 말씀해주세요. 기록으로 입증됐으니, 믿을 수밖에요."

잠깐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한 팔을 내줬어요. 움직임이 하도 잽싸서 차라리 팔 한쪽을 미끼로 줘버리는 게 빨리 끝날 것 같아서."

"....팔을…?"

상당히 경악하는 눈치였다.

계속 노려보니까, 무언가 잘못을 저지른 느낌이다.

"보통 그런 상황이라면, 의식이 튕겨 나올 텐데요."

"참았어요. 근성으로."

"...제대로 미쳤네요. 당신."

감탄과 경외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한동안 말없이 나를 보던 그녀는, 내게서 돌아서서 그대로 성당을 나가버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한숨을 쉬었다.

"..하."

원래 나의 계획은 이러했다.

10등 안에 들어서 유리에게 자연스럽게 관심을 사고, 어떻게든 가까워져 보려고 했었는데.

너무 진심으로 해버린 나머지, 1등을 해버렸다.

그것 때문에 미움을 사버린 건가?

17년 만에 만났는데도, 가까워지지 못하면 그걸로 끝이잖아.

"..참가자님."

나를 담당했던 수녀가 내게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일, 령사 임명식에서 황제 폐하께 직접 령사직을 하사받을 예정이오니, 부디 늦지 않게 임명식에 참가해주시기 바랍니다."

"고, 고마워요."

유리가 사라지자, 구경꾼들도 하나들 흩어졌다.

우선 큰 건은 해결했으니, 나도 오늘은 잘 곳을 찾아야 하겠지.

그전에, 확인할 게 하나 있다.

대성당 밖으로 나온 나는, 재빨리 소설이 적힌 공책을 펼쳤다.

'발현식이 나오는 부분.. 여깄다.'

예상대로였다.

또 소설의 내용이 바뀌었다.

유리가 최고의 기록을 낸 부분이, 뜬금없이 등장한 '나'라는 인물로 인해 바뀌어 있었다.

'혼돈 수치는 어떻게 되는 거지..!?'

_띠링_

현재 혼돈 수치 : 1.3

올랐다.

몇 년 동안 1이었던 혼돈 수치가, 방금의 행동으로 0.3만큼 상승했다.

'위험한데, 이거..'

혼돈 수치가 1이 되었을 때, 이 세계에 '주인 사르카' 라는 개념이 생겨났었다.

알아둬야 할 건, 내가 상대했던 건 주인 사르카중에서도 제일 약한 종이라는 거다.

그건 어떻게든 혼자서도 해볼 만한 상대였지만, 늑대형 사르카나 더 강한 사르카들중에도 주인 사르카가 생겨날 것이다.

1의 수치만으로도 그런 게 생겨났는데, 이대로 혼돈 수치가 2가 돼버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기도 싫었다.

'..배고프네.'

일단은 싸우느라 지친 배도 채울 겸, 남은 골드로 식당이라도 들릴 생각이다.

령사고 뭐고, 일단 밥이나 먹자!

골드가 든 주머니를 짤랑거리며, 식당가를 찾아 나섰다.

­

수녀들은 후드를 뒤집어쓴 검은 머리 소녀가 멀어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말하고 싶은 게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주제를 젊은 수녀 하나가 먼저 꺼냈다.

"검은 머리의 령사가 기록을 세우다니.. 올해 령사 아카데미는 저주라도 받는 거 아니에요?"

"그것 뿐이 아니라, 천박한 차림새도 그래요. 다른 학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지.."

"성직자 된 입장에서, 그런 편견을 가져도 되는 건가요?"

대화에 끼어든 것은, 은발의 귀족 소녀였다.

비밀스런 대화를 들킨 수녀들은, 얼굴이 빨개져 괜히 헛기침을 해댔다.

"유, 유리님.. 아직 돌아가지 않으셨군요."

"가려 했는데, 두고 온 게 있어서요."

허름한 펜던트를 챙긴 유리는, 수녀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성당을 나왔다.

'그 사람, 팔을 내줬다는 건 허풍이 아니었어.'

방금 전 성당 안에서 대화하면서, 유리는 로브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몸을 살폈다.

손끝부터 발목까지 수없이 많은 상처에, 무릎이나 손목 부분이 묘하게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모습에서 수없이 부러졌다 붙었음을 알 수 있었다.

평소부터 아픔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증거다.

'...분해.'

대략 삼천 번.

그녀가 발현식의 전투를 위해 머릿속으로 시행한 가상 전투의 횟수였다.

지금 그녀가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방어를 포기하면 위험성이 오르지만, 그만큼 빠른 기록을 낼 수 있었다.

그 소녀가 했던 방법은, 가장 확실하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방법 그 자체다.

물론 자기 파괴적인 방법이고, 까딱하면 통증을 참지 못해 의식이 날아가 버릴 위험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안전함 뒤에 숨어 차선책을 택한 자신에게, 그녀는 깊은 실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묻지 못했어.'

검은 머리의 소녀.

머리를 가리려는 듯 깊게 눌러 쓴 보라색 후드에 , 그 소재를 알 수 없는 무기들은 그녀에게 있어 궁금증들을 자아냈다.

여긴 제국의 수도, 세말이다. 그런 자가 여길 돌아다녔다면 분명 눈에 띄었을 터.

게다가 차림새를 보아 외부인이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나를 알고 있었지?'

그자에겐 아직, 묻고 싶은 것이 산더미같이 남은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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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이번에 바뀐 표지에 그려진게 유리애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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