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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2화 (12/102)

〈 12화 〉 이변 (3)

* * *

풀숲 사이를 헤치고 나오며,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아아아아아­!!!"

사람 머리통만 한 앞발.

늑대 정도는 때려눕힐 것 같은 풍채.

그러나 귀를 보나, 꼬리를 보나 그것은 영락없는 토끼형 사르카였다.

뭐지?

사르카는 전부 내가 만들었었다.

그런데, 곰만 한 토끼형 사르카라고?

저런 건 존재해서는 안 되는데..?

순간, 눈앞에 글자가 나타난다.

_띠링_혼돈 레벨 : 1혼돈과 마주했습니다.< 주인 사르카 >일반적인 사르카가 인간의 몸에 깃든 령을 포식하고 진화한 형태. 일반적으로 인간 50명분의 령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저번에 윈드가르트씨를 죽였더니, 혼돈 레벨이란 게 올랐었다. 설마, 그 영향으로..!?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눈앞의 괴물이 무지막지한 힘으로 앞발을 휘두르자, 앞에 있던 나무가 젓가락처럼 부서져 버린다.

'혼돈이고 뭐고, 일단 살고 보자…!'

늑대형 사르카와는 힘의 정도가 달랐다.

속도는 약간 더 느렸지만, 묵직한 앞발 한 번에 나무들이 픽픽 쓰러져간다.

나는 달리면서 석궁을 걸어 녀석에게 혈석 화살을 발사했다.

"크르아­!"

'미친.'

화살이 박히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지방이 미친 듯이 두꺼워 화살 중 어느 것 하나 치명상을 주진 못했다.

'이대로 기지까지 달려볼까? 아냐, 그랬다가는..'

당장에 사르카를 죽일 무기라곤 도적단 통틀어 내 단검 두 자루밖에 없는데, 기지로 데려가봤자 피해자만 늘리는 꼴이다.

비탈길을 달리면서, 남은 화살 전탄을 신중히 쏘면서 사르카의 왼쪽 발에 몰아넣었다.

"크르아아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는지, 쫓아오던 사르카의 속도가 꽤 느려졌다.

"좋아, 이 정도라면 따돌릴 수.."

쫓아오던 사르카가 갑작스레 멈춰 섰다.

'뭐지..?'

그리고는, 화살이 몰려있는 자신의 앞발을 물어뜯어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미친.."

다음 행동은 더 가관이었다. 주변을 미친 듯이 뒤지더니, 소형 토끼 사르카를 포식한다.

포식을 마치자, 다시 앞발이 자라나기 시작한다.

"동족을, 포식하다니.."

내가 창조한 사르카라는 생물은, 적어도 동족을 포식하지는 않는다.

죽으면 살과 가죽을 남기지 않고 산화되는 다소 이질적인 생명체이긴 하나, 그들도 그들 나름의 생존 규칙이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저것은, 마치 그런 규칙들을 깡그리 무시하기로 한 듯, 무시무시한 행동들을 보여준다.

'윈드가르트 루아레스가 죽으면서, 소설의 전개가 틀어졌어. 그리고, 저게 생겨났지..'

마치, 틀어진 세계를 용납하지 못한다는 듯이, 소설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달리고, 구르고, 나무를 올라봐도 그것은 지치질 않았다.

인간의 몸에 담긴 '령'을 포식하겠다는 그 집념만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를 이룬 듯한 모습이다.

"...!"

녀석의 거대한 발톱에, 후드 끝자락이 걸렸다.

망설일 것도 없이, 후드를 벗어 던져버렸다.

"크르아아­!"

분명, 이곳에서 생활하는 몇 년간 저런 괴물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건가..?

저건 괴물이다.

녀석이 후드에 정신이 팔려 그것을 찢어발기는 동안, 잠시 나무 뒤에 숨어 숨을 골랐다.

"하아..하아.."

화살은 진작에 다 떨어졌다. 단검을 들고 맞서기에는 저 녀석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애초에 저건, 사르카는 맞는가?

내가 찌른다고 해서, 한 번에 죽어줄까?

수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가운데, 손등 위 희미하게 비추는 문장을 바라보았다.

'...마법..?'

문장을 각성한 지 얼마 안되었기에,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다.

관련된 이론이며, 주문 같은걸 접해볼 방법도 없었다.

근데 나는, 그 주문들이며 마법들을 전부 창조한 사람이잖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어느새 그것은 내 등 뒤까지 다가왔다.

'제발.. 발동돼라..'

마법의 발동조건은 이러하다.

먼저, 발동시킬 마법을 머릿속으로 떠올린다.

마법을 정했으면 궤도를 지정한 뒤,

입을 통해 영창 한다.

"스코타디."

영창과 동시에,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마법에 있어서 감정은 기폭제가 되어, 효율을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행복한 기억이든, 분노했던 기억이든 모두 다른 방향으로 기폭제 되어준다.

내가 영창 한 것은 암흑 마법의 기초가 되는 '스코타디' 주문으로, 단어 그대로 암흑이라는 의미다.

내 몸을 주변으로, 암흑의 구체가 퍼져나간다.

"키아악­?"

갑작스레 시야를 차단당한 사르카가 고개를 마구 흔들어댄다.

지금이 도망칠 유일한 기회다.

마법의 지속시간이나 범위는 사용자의 잠재력과 숙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 같은 생초짜가 사용한 마법이 오래 지속될 리는 만무했다.

스코타디가 발동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친 듯이 기지로 뛰었다.

"크르아아아­!"

멀리서 그것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뛰었다.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저걸 물리칠 방법 또한 찾아내고 말 거다.

얼마나 달린 걸까, 폐가 터질 듯이 숨이 차오른다.

"허억, 허억…"

다행히, 그 괴물도 이곳까지는 쫓아오지 못했나 보다.

땅바닥에 주저앉아서, 미칠 듯이 숨을 골랐다.

마법이 아니었다면, 진짜로 위험할 뻔했다.

­

오늘은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마법 연구에 몰두하기로 했다.

단원들과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공책을 펼쳤다.

소설 속 주인공, 유리 프리지아가 마법 연습을 하는 대목이 나온다.

소녀는 관련 서적을 펼쳐놓고 손등에 있는 빙결의 문양을 노려보았다.

“파고스”

그녀가 빙결 마법의 기초가 되는 주문을 읊조리자, 눈앞의 수증기가 얼어붙어 얼음 뭉치를 형성했다.

빙결의 문장을 가진 그녀답게, 무난히 성공하는 묘사가 나온다.

어둠 마법은 다른 마법의 기초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정확히는, 훔칠 수 있다는 설정이지만.

그렇다면, 나도 한번 시도해보지 않을 것도 없지?

손을 쫙 펴고, 허공에 대고 외쳤다.

“..파고스.!”

예상했지만, 아무 반응도 없다.

한 번 더 해볼까?

이번엔 감정을 실어서.

“파고스!”

쿵.

갑자기 문이 열려, 놀라 소리를 쳤다.

“으악!”

“왜, 왜 그래!? 사야!?”

범인은 간식거리를 가지고 들어온 길리언이었다.

“길리언, 노크 좀..”

“아하하. 미안..”

목발을 짚은 길리언의 손등이 눈에 들어왔다.

희미하게 빛나는 초록빛 문장.

도적단과 싸웠던 령사와 같은, 바람의 문장이다.

“길리언. 너, 마법 써본 적 있어?”

“마법? 설마. 이런 곳에서 그런 지식을 접할 수가 없다는 거 너도 알잖아.”

역시, 길리언은 문장이 생긴 뒤로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았다.

“해볼래, 마법?”

“..어떻게?”

길리언에게 마법이론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마치고, 주문을 시켜보기로 했다.

그는 어디서 이런 걸 배웠는지 궁금해했지만, 마을에서 배워왔다는 식으로 대충 넘어갔다.

내가 그에게 가르쳐준 주문은 바람 마법의 기초인 ‘아네모스(바람)’.

길리언은 손을 쫙 펼치고 외쳤다,

“..아네모스!”

그러나 마법은 발동은커녕, 문장이 빛나지도 않았다.

“안 되는데..?”

“감정을 실어야 해. 즐거운 일 하나 떠올려봐.”

“즐거운 일..? 우리 인생에 그런 게 있었어..?”

“..아.”

그건 그러네.

길리언도, 나도 왠지 숙연해졌다.

“그럼 화났던 일이라던지, 떠올려봐.”

이번엔 제대로 감정을 실어서, 길리언이 외쳤다.

“아네모스.”

그 순간, 방향이 정해지지 않은 사나운 공기가 방안에서 날뛰었다.

그 령사의 것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깜짝 놀랄 정도는 됐다.

‘지금이다..!’

강풍 속에서 손을 펼치고 외쳤다.

“앱솔루션(흡수)!"

그러자, 바람이 거짓말같이 사그라들며 내 문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뭘 한 거야?"

"네 걸 훔쳤어. 잘 봐."

이번엔 나의 입을 통해, 주문을 읊조렸다.

"아네모스."

이번에도 방의 공기가 날뛰기 시작했다.

이걸로 확실해진 것은, 다른 마법의 기초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발동 순간을 노려 그것을 흡수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사야, 다른 마법은 또 없어?"

"어디보자, 바람 마법이.."

길리언과 한동안 바람을 쏴대며 놀았다. 정제되지 않은 바람 마법은 그 위력이랄 것도 없어서, 마음껏 쏴 제껴도 별다른 피해가 가지 않았다.

문제는, 너무 많이 쐈다.

마법 남용에 따른 사고 정지.

바보같이 낮은 한계치를 훌쩍 넘겨 마법을 쏴댄 길리언과 나는, 눈만 뜬 채로 몇 시간을 뻗어있었다.

­

중급 마법부터는 조건이 필요했기 때문에 시도해보지 못했지만, 암흑 마법의 기초와 초급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갔다.

먼저 가장 기초가 되는 스코타디(암흑).

처음에는 1.5m가량의 시야를 차단했던 것이, 지금은 대략 3m까지도 가능해졌다.

암흑계 초급 마법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다른 마법의 기초를 뺏어올 수 있는 앱솔루션(흡수) 주문은, 이제는 사용할 데가 없기에 봉인해두었다.

길리언의 마법을 가져올 수 있었던 걸 보면, 다른 속성의 마법사의 마법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두 번째로는 나이트메어(악몽) 주문.

상대에게 악몽을 보여주는 마법이라는데, 자고 있을 때만 쓸 수 있다고 하여 사용한 적이 없다. 그야말로 잉여 기술.

세 번째 주문이 이번에 시험해 볼 '암흑탄' 주문이다.

환술에만 치중된 암흑계 마법에서 몇 안 되는 공격 마법으로, 시전자에 따라 그 위력과 크기가 천차만별인 원거리 공격 마법.

저번 탐색 때 괴물 토끼에게 쫓긴 뒤로, 숲을 다시 찾는 것은 처음이다.

아직도 그때의 공포가 남아있긴 하지만 위험한 마법을 안에서 실험할 순 없으니, 결국 연습장은 다시 숲이다.

화살을 몇 발이고 시험했던 나무 앞에 서서, 암흑탄의 주문을 외웠다.

'암흑탄!'

손끝에서 검은 공 같은 것이 발사되더니, 나무에 맞고 흩어져 사라진다.

"...?"

다시 한번, 암흑탄.

이번에도 검은 공이 발사되더니, 나무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하고 바스러진다.

예상은 했지만, 내 상상을 초월하는 쓰레기다.

"이걸론 벌레도 못 잡겠는데..?"

어둠 마법.

하나 같이 잉여 마법들 투성이다.

시야를 차단하는 기술에, 다른 속성의 기초 마법 훔쳐 쓰기, 악몽 꾸게 하기, 환상의 검은 공 쇼까지.

대단하다, 암흑 마법!

사실 여기에는 중학교 시절 마법 간의 파워 밸런스라던지,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은 내 잘못이 크다.

그렇다면, 이 마법은 무얼 위해 존재하는 거지?

한숨을 푹 쉬고, 나무 그늘 밑에 걸터앉았다.

이게 다 뭐람.

남들은, 이세계에서 S급 재능을 얻거나, 용사로 각성하거나, 아무튼 주인공 보정 팍팍 받을 때, 나는 온갖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11살이 돼서야 손에서 무슨 먹물 탄이나 쏴 재끼고 있다.

아, 부조리하다..!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해서, 아까 쏘았던 나무에 대고 한 번 더 암흑탄을 쏘았다.

[파앙]

암흑탄은 파앙­ 소리를 내며, 나무에 맞아 바스러진다.

‘...?’

뭔가 다르다.

아까보다 박력이 있고, 게다가 크기도 조금 더 컸던 느낌인데.

어리둥절하며 나무에 다가갔다.

“세졌네?”

몇 발을 맞아도 꿈쩍 않던 나무가, 그늘 밑에서 쏘았을 때는 나무가 조금 갈려 나갔다.

실험을 위해, 햇빛 밑에서 한번, 그늘 밑에서 한번 쏘아보았다.

‘..역시.’

햇볕에서 쏜 것과 위력이 달랐다.

역시 전투에 쓸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늘 밑에서는 확실하게 위력이 올랐다.

‘설마, 어두울수록 위력이 오르는 건가?’

밤이 되면 더 위력이 강해지는 걸까.

당장이라도 실험해보고 싶지만, 밤이 되려면 아직 한참은 멀었다.

실내에서 했다가는 뭘 부술지 모르고.

그늘에 앉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빛만 차단할 수 있으면.. 빛..?’

잠깐, 생각해보니까 좋은 기술이 이미 있었잖아?

암흑 기초마법 ‘스코타디’로 범위형 암흑을 생성한 뒤, 그 안에서 암흑탄을 사용한다면..?

두 가지 마법을 연달아 사용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실험해 볼 가치는 충분했다.

“스코타디.”

주문을 외워 몸 주변에 약 3M 정도의 암흑 반구를 형성시켰다.

지속시간은 길지 않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좋다.

스코타디를 사용함과 동시에, 암흑탄을 구상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가장 강렬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민가에서 탈출하려다 실패했던 기억.

노예로 사로잡혀 절망했던 기억.

어두운 기억들을 상기시키면서, 손끝에 온 정신을 끌어모았다.

“암흑탄!”

그것은, 이미 초급마법이라 부를 게 아니었다.

펼친 손끝으로부터, 광범위한 어둠이 응집하여 일렁이는 구를 형성했다.

구의 중앙은 심오할 정도로 어두워, 심연에 가까울 정도다.

내 키를 웃돌 정도의 거대한 구가, 손끝으로부터 발사된다.

"...."

그것이 지나간 흔적은 실로 엄청났다.

나선형으로 회전하던 칠흑의 구는, 마치 작은 블랙홀이라도 된 것 마냥 경로에 있는 것들을 없애어 원형의 흔적만을 남겼다.

"아."

감탄할 틈도 없이, 몰려오는 현기증에 사고가 정지하며 바닥에 쓰러진다.

무식한 위력만큼, 엄청난 정신력의 소모량이다.

이거, 암흑마법의 숨겨진 활용법을 발견해 버린게 아닐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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