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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1화 (11/102)

〈 11화 〉 이변 (2)

* * *

아카데미 전투 교관을 죽였다.

정확히는, 전투 교관이 될 자를 죽였다.

_띠링_현재 혼돈 수치 : 1

새로운 수치가 튀어나왔다.

이건 뭐지, 혼돈 수치..?

'잠깐, 아카데미 교관이 죽었으면, 소설 내용은 어떻게 되는 거지?'

가방에 있던 [아르모니아 전기 1장]을 펼쳤다.

.....

"내용이, 바뀌었어…!?"

루덴 지역의 도적무리 소탕으로 표창을 받을 예정이었던 윈드가르트 루아레스는, 사망 처리가 되어있었다.

아직은 뭔지 모를 '혼돈 수치'만이, 내 눈앞에서 깜빡거렸다.

­

다행히 인명을 제외한 피해는 없다시피 했다.

그러나 상당한 인원을 잃었기에, 도적단은 일주일 내내 가라앉아 있었다.

수인족 방식으로 장례를 치른 뒤, 그들의 이름을 새겨 땅에 묻어주었다.

나는 거의 2주일을 방에 틀어박혔다.

뭐가 내가 만든 세계야.

내 목숨 하나 부지하는 것도 못하면서, 세계의 종말을 막겠다거니 거창한 꿈을 꾸고 있던 건 아닐까.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 괜찮겠냐, 사야?"

대장의 목소리였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자, 여느 때와 같은 백묘의 모습이 보였다.

"몸은 좀 어때."

"괜찮은 것 같은데요."

"뭐, 네 나이 때는 팔 하나 잘려도 자라니까."

안 자라요.

나를 살피던 그녀가, 내 손을 들어 올렸다.

"너 이거, 언제 생겼냐?"

"이거라니, 뭐가요?"

대장에 의해 들어 올려진 내 손등엔, 보랏빛 문장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뭐야, 이거 언제 생겼대..!?"

"방에 박혀있느라 본인 몸에 생긴 변화도 못 봤나 보군. 하하!"

이 문장은 아무래도, 암흑의 문장이다.

암흑계열 마법을 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암흑계는 주로 은신이나 환각 같은 마법이 주를 이룬다.

특이한 점으로는, 다른 속성의 마법을 조금이나마 베껴올 수 있다는 건데, 평판이 그렇게 좋은 문장은 아니었다.

"너,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냐?"

"네?"

"언제까지 도적질 할거냐고 물은거다."

그러고 보니, 7살 때의 나는 여기 눌러앉을 생각 따위 없었다.

처음엔 퀘스트 보상을 위해서 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검은개 도적단에 대한 내 소속감은 커져만 갔다.

이제는, 이쪽 세계에서의 가족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우린 수인이다. 문명으로 나간다 한들 할 수 있는게 없지. 하지만 너는 달라. 분명 더 나은 일을 하는, 괜찮은 녀석이 될 수 있을 거다."

"대장.."

"뭐, 그건 네가 알아서 하는 부분이고. 줄 게 있어서."

백묘는, 검은빛이 도는 단검 두 자루를 내게 건넸다. 도신이 칠흑같이 새까맣고, 전에 쓰던 단검과 꼭 알맞은 크기였다.

"이건..?"

"전에 죽였던 령사놈의 시체를 수습하면서, 그놈의 롱소드를 어떻게 처분할까 생각했지. 그러다, 마침 너한테 주면 좋을 것 같다 싶어서 말이다."

그녀는 롱소드를 다시 녹여, 단검 두 개의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부터 너도 숲으로 나와라. 그 칼은 사르카를 찌를 수 있으니 좋은 연습이 될 거다."

"..고마워요."

"사르카 잡다가 뒤지진 말고."

그날부터 곧장 숲으로 나가 돌아다녔다.

여러 야생동물도 보았고, 장작으로만 보던 철목의 거대함도 다시 한번 관찰했다.

"역시, 땅굴이랑은 공기가 다르네."

작전을 나갈 때 빠르게 숲을 지나치긴 했지만 이렇게 여유롭게 있었던 적은 없었다.

한가롭게 열매나 채집하던 중, 귀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키이이이익­!"

'사르카..!"

다행히 내 발목 높이만 한 크기의 소형 사르카다.

귀가 기다란 걸로 봐선, 토끼형 사르카로 보였다.

노예마차에서 늑대형 사르카와 마주했던 이후로, 직접 대면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고 보니, 그때 목걸이를 보고 피했었지?'

그때 죽을 뻔 했던 것을, 걸고 있던 십자 목걸이가 살려주었었다.

지금은 귀걸이로 옮겨 달긴 했지만, 효과가 있지 않을까?

"키아아아악­!"

그렇게 생각하던 내 기대와 무관하게, 사르카는 폴짝폴짝 뛰며 무서운 기세로 나를 공격해온다.

'이번엔 왜 안 먹히는 거야!?'

여러 차례 공격을 피해내다 보니, 한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공격하는 사르카는, 내 손등에 있는 문장을 집요할 정도로 노리고 있다.

'문장이 생겨서 귀걸이 효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건가..?'

사르카는 본래 인간 몸에 있는 '령'에 집착하는 존재.

령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장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내 몸에서 령의 기운이 강해졌기에 더는 귀걸이만으로는 덮을 수 없다는 것으로 보였다.

하는 수 없이, 사르카가 뛰는 순간을 노려 심장부를 찔렀다.

"키이이이익­!"

귀를 긁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사르카는 먼지로 돌아가며 검붉은 혈석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 혈석, 너무 작은데..?'

사르카의 크기마다 혈석의 크기도 천차만별인지, 방금 잡은 소형 사르카에게선 손가락으로 잡을 만큼 작은 혈석이 나왔다.

'일단 가지고 가볼까.'

혈석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키이이이익­!"

"키아아악­!"

"..아."

거의 수십 마리에 달하는, 소형 사르카들이 나를 잔뜩 둘러싸고 있었다.

방금 죽은 놈의 비명을 듣고 몰려온 걸로 보인다.

"험난한 하루가 되겠구만."

단검을 고쳐잡고, 전투 자세를 취했다.

­

72개.

오늘 소형 사르카를 잡고 모은 혈석의 개수였다.

확실히 무기가 좋으니, 소형 사르카정도는 칼질 한두 번에 찢겨나갔다.

"근데, 이걸 어디다 쓴담..?"

설정을 짤 때도, 혈석을 사용하는 곳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령사가 아니면 수급이 힘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혈석을 대체할 자원들이 넘쳐나서 굳이 혈석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 싸움 중에 사르카 하나가 앞에 있던 사르카를 물어뜯었다. 여러마리가 달려드니 공격성이 올라 분별력이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말은, 사르카끼리는 공격이 통한다는 이야긴가?

시도해 볼 게 생겼다.

먼저, 도적단에서 사용하는 활을 가져온 뒤, 화살의 촉부분을 뾰족하게 갈아낸 혈석으로 교체한다.

그 후, 나무에 대고 활시위를 당겨보았다.

[팅]

화살촉이 금속이 아닌 탓에, 충분히 단단하지 않은 혈석화살은 나무에 박히지 않고 부러져버렸다.

'활의 힘으론 부족한가?'

사람이 손으로 당겼다가 놓는 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석궁은 어떨까?

"뭐? 석궁? 도적단에 그런 게 있을 리 없잖냐."

백묘에게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노획한 거라던가, 그런 거 없어요?'

"그런 게 들어오면 다 팔아버리지. 어차피 사용하지도 못할 거."

기지에 하나쯤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 필요하면, 마을에 가서 구해와야 할 거다."

마을이라. 7살 때 이후로 가본 적이 없는데.

"석궁은 보통 가격이 얼마나 나가죠?"

"무기점에서 그런 복잡한 무기들은 대체로 가격이 비싸. 못해도 150골드는 할 거다."

150골드!?

"비싸..!'

내 수중에 그런 돈이 있을리가 없잖아.

"싸게 구해보고 싶다면야,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알려주세요!"

"여길 찾아가. 루덴 뒷골목에 있는…"

­

"어서 오세요! 빌의 만물상입니다!"

어딘가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쳤다. 미쳤다.

여길 다시 오게 되다니.

7살 때 파이프를 강매했던 그 만물상이었다.

"어라? 아가씨, 어디선가 본 듯한.."

"아닌데요."

"아니야. 내가 기억력 하나는..!"

"아니라고."

"아, 알겠네.."

살기를 담아 그를 노려보자, 그가 끄덕였다.

"뭘 찾으시오? 평범한 걸 원하진 않을 것 같은데."

"석궁을 찾고 있어요. 혹시 있을까요?"

"석궁이라. 잠깐 기다리게."

잠시 후, 남자는 오래된 석궁 여러 개를 가져왔다. 대부분 먼지가 잔뜩 끼고 줄이 나간 것들이었다.

"뭘 고르든 수리가 필요할 거야. 여기 오는 건 대부분 노획품이거나 수명이 다한 것들이거든."

그나마 멀쩡한 것이 있나 둘러보는데, 유독 조그마한 석궁이 눈에 들어온다.

석궁의 거추장스러운 장식 같은 부분을 아예 제거하고, 딱 제 기능만 하게 만들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 그 물건은, 실용성이 없을 거야. 누군가 일부러 작게 만들어 놓은 모양인데 의도는 모르겠구만."

보존 상태도 괜찮고, 줄만 갈아주면 아직 작동할 지 모른다.

"그럼 이걸 가져갈게요. 얼마죠?"

"아가씨, 진심!? 나중에 환불은 안 된다?"

그는 주판을 두들겨보더니 손가락 10개를 펼쳤다.

"100골드 정도면 되겠구만."

수중에 딱 100골드가 있긴 했다.

하지만 그 가격에 사는 건,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이랄까.

"좀 더 싸게 주시면 안될까요~?"

"안돼! 우리 가게도 돈이 남아도는 게 아닐세!"

눈빛 공격을 해보았지만, 이 아저씨 몇 년 전에 비해 방어력을 더 키웠다.

그렇다면..

­

70골드를 지불하고 사 온 석궁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30골드나 깎았냐면,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

'수리하느라 10골드가 나갔으니까, 사실상 80골드에 사 왔네.'

150골드보다야 저렴하긴 했지만 역시 비싸다.

'이거, 끈이 있잖아?'

자세히 보니, 밑바닥에 팔을 끼울 수 있는 가죽끈이 달려있다.

팔을 끼운 채로 움직여보니, 무척 가벼워서 팔을 움직이는데 제약이 덜했다.

그 상태로 이번엔 나무를 조준하고, 혈석 화살을 끼워 발사시켰다.

[푹]

'박혔다!'

확실히, 사람의 힘만 쓰는 것 보다 기구가 보조해주는 건 위력의 차이가 있었다.

다만, 한번 사용한 화살은 재사용이 불가능했다. 혈석이 표적에 박힌 순간 금이 가버린다.

'강도는 좀 아쉽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럽네.'

이제 남은 건, 사르카를 상대로 먹힐지 시험해보는 것이었다.

숲에 나가 풀숲을 열심히 뒤지며 사르카를 찾았다.

'보인다!'

열심히 무언가의 냄새를 맡는 토끼형 사르카가 보였다.

신중하게 조준해서, 걸어놓았던 석궁을 발사시켰다.

"끼엑!"

예상대로 화살은 사르카를 관통했고, 픽 하고 쓰러져버린다.

"성공!"

순식간에 죽은 덕에, 울음소리를 내어 동료를 부르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두려움에 벌벌 떨던 생명체가, 화살 한방에 픽픽 나가떨어진다.

신이 나서, 보이는 대로 화살을 쏘고 다녔다.

"창조주의 화살을 받아라!"

"키아악!"

"발사!"

풀숲뒤로 보이는 토끼 귀에, 한발을 더 쏘아냈다.

"크르아아아아­!"

...어라?

지금까지 들렸던 것과는 딴판의, 낮고 굵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큼직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아아아아아아아­!!!"

사람 머리통만 한 앞발.

늑대 정도는 때려눕힐 것 같은 풍채.

그러나 귀를 보나, 꼬리를 보나 그것은 영락없는 토끼형 사르카였다.

다만, 지금껏 보아온 어떤 사르카보다도 거대할 뿐인.

혼돈 수치 : 1

혼돈과 마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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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야는 대충 이런느낌의 석궁을 사용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짤보단 좀더 경량화된 나무석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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