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8화 (8/102)

〈 8화 〉 검은개 도적단 (3)

* * *

“강해지고 싶습니다!”

“뭐?”

어느 정도 장작 패기에 익숙해져 갈 때쯤, 백묘에게 찾아갔다.

“백묘 대장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나더러 어쩌라고?”

“저를 훈련시켜 주세요.”

“안 돼.”

예상은 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생각하는 척도 안 했다.

“제가 인간이라서요..?”

“아니. 달라. 나는 암살자지, 무도가가 아니다. 가르치는 건 못해.”

“무릎 꿇고 빌어도요?”

“안 돼.”

“신발을 핥아도요?”

“안 돼. 신발은 거기서 왜 나오나.”

영화 같은 거 보면 이러면 넘어가 주던데.

“그리고, 너 같은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건 너무 이르다. 내가 하는 건 쌈박질이 아니야!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라고.”

그녀는 생각보다 완고했다. 더 집적댔다가는 맞을 것 같아서, 일단 방으로 후퇴했다.

­

텅 빈 식당에서, 백묘가 홀로 술을 홀짝이며 생고기를 물어뜯었다.

흑견이 고기를 조달하며 그녀에게 말한다.

“대장. 무슨 고민 있죠?”

“없어.”

“대장이 이렇게 대낮부터 술을 퍼마시는 건 관심을 달라는 증거잖아요.”

“..아니, 그 꼬맹이. 검은 머리 꼬마. 자꾸 훈련시켜 달라잖아. 새파랗게 어린 게.”

“사야님 말씀이군요.”

백묘는 고기를 한 점 물어뜯더니, 푸념을 이어갔다.

“애시당초, 왜 단련하려는 건지 모르겠네.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글쎄요. 대장님의 강함을 동경하는 게 아닐까요?”

“뭐? 설마.”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백묘님 얘기를 하던걸요. 아주 홀딱 빠졌던데요. 소문에 의하면, 백묘님에게 훈련받고 싶어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그 정도란 말이냐..? 잠을 못 이룰 정도로..?”

백묘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하가 곤란해하고 있는데, 대장된 자로써 이를 어찌 보고만 있는단 말이냐. 내일부터 당장 훈련 시작이라고 전해!”

‘아직 부하는 아닐 텐데요, 백묘님.’

흑견씨를 매수한 보람이 있었다.

흑견씨와 나의 작전은 멋지게 먹혀들었고, 갑작스럽지만 당장 내일부터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너무 쉽게 풀리니까 괜히 불안한데..?

다음날, 그 불안한 느낌은 여지없이 맞아떨어졌다.

“뭐? 인간은 이 정도로 기절한단 말이냐..?”

단련에는 실전이 최고라며 날린 백묘의 주먹을 맞고,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깨어났다.

“절 죽이실 생각인가요?!”

“아니.. 수인끼리는 원래 이 정도로 치고받고 해서 인간도 비슷할 줄 알았다.”

급소에 맞았다면 소설이 끝날 뻔했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으로 단련시켜야겠구만. 피곤한 녀석일세.”

“때리는 건 피해 주세요. 이번엔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

“으음.. 그렇다면야..”

백묘는 손으로 땅을 짚더니, 하체를 하늘로 들어 올려 물구나무를 섰다.

“따라해보거라.”

100% 안 된다는 걸 확신하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하게라도 따라 해볼까.

“웃챠.”

양팔로 땅을 짚고, 그대로 한 바퀴 굴러버렸다.

“..뭐하는거냐.”

“균형이 안 잡혀요.”

“이건 수인족 갓난이들도 하는 거다! 걸음마 같은 거란 말이다!”

수인족 갓난이, 대단하다!

백묘는 일어나 손을 탁 털더니 고개를 절레 저었다.

“이 자세가 잡히기 전까진 더 이상의 수업은 무리다. 혼자서 숙지해!”

“넵.”

오후에 아이들 교육을 끝낸 뒤, 매일같이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했다.

방에서도, 식당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방에서 물구나무선 채로 잠들었더니, 길리언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걱정해준 적도 있었다.

“..사야,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니야.”

수련이라고. 나도 이해가 안 가긴 하지만.

오랜 무지성 장작 패기가 도움이 된 걸까?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물구나무 서기 정도는 어디서든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가요..! 제 물구나무..!”

“음, 기본은 잡혔군. 이제 한 손으로 해라.”

“...예?”

“한 손으로 할 수 있게 되면, 다시 이야기하지.”

“나중엔 이 상태로 걷는 것까지 시키진 않겠죠..?.”

“..어떻게 그걸 알아냈지!? 내 생각을 읽은 것이냐?”

진짜였네, 미친.

한동안은 또 거꾸로 살아가야 할 것 같다.

­

“호­”

입에서 입김이 나오기 시작했다.

벌써 이런 계절이 온 건가?

또각.

도끼질 두어 번 만에, 장작이 절반으로 쪼개졌다.

지켜보던 노인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오. 이제 장작 패는 게 아주 숨 쉬듯 능숙하구먼.”

“그럼요. 제가 나무를 몇백 그루를 해 먹었는데요.”

잘은 모르지만, 운동장 정도 면적의 나무는 죽였을 거다. 내가 베어온 건 아니지만.

“그리고, 이제 이런 것도 가능하다구요!”

그루터기에 도끼를 아주 강하게 박아넣은 뒤, 도끼를 잡은 한쪽 팔로 공중에서 몸을 세워 버텼다.

“오오, 내 아들놈이 4살 때 했던 거구만! 그립다, 그리워..”

아니. 네 살 때 이걸 했다고?

“아들이 있었군요.”

“키도 딱 지금 아가씨만 했었지. 자네는 애늙은이지만! 자넨 아이 같은 맛이 없어.”

왜 갑자기 욕해요.

“살아있었다면, 손주 놈도 볼 수 있었으려나?”

“...”

노예와 차별.

중학교 시절, 그저 현실감을 부여하기 위해 넣었던 별거 아닌 설정들이, 누군가에겐 매일이 지옥 같은 삶을 살게 했다.

어쩌면, 나는 속죄라도 받기 위해 소설 속에 들어온 걸까?

“사야 언니! 사야 언니! 밖으로 나와봐!”

공방의 문이 열리며 아이들이 밀려들어 왔다.

누구 할 것 없이 저마다가 내 팔다리를 붙들고 밖으로 끌고 간다.

“뭐야, 왜들 이래!?”

“이거 봐..!”

뭐길래 이렇게 호들갑들인지.

입구로 나가자, 눈 위에 쓰인 내 이름과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들이 보였다.

“잘 만들었네! 내 이름 적는 법은 가르쳐 준 적 없었는데..”

함박눈이 펑펑 쏟아졌다.

전생에서는 관심도 없었던 게, 이렇게 이뻐 보일 줄이야.

“사야가 가르쳐줘서 이제 다 쓸 줄 알아!”

한동안 해가 질 때까지 아이들과 눈밭에서 구르며 놀았다.

만약 진짜 속죄를 위해 이 세계에 온 거라면, 이렇게 즐거운 일이 있을 리 없겠지.

그다음 날, 단체로 감기 걸려서 흑견씨한테 무진장 깨졌다.

­

눈도 오겠다, 이제 글자는 가르칠 것도 없겠다,

본격적으로 백묘가 수련을 봐주기 시작했다.

“이제 팔로서는 법은 문제없지?”

“네, 대장.”

이렇게 쉽게 대답하니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거의 1년을 거꾸로 서서 지냈다.

길리언이 이젠 내 엉덩이에 대고 말하는 게 더 익숙하다고 했을 정도라고.

“좋아. 내가 그 자세를 강조한 이유를 알려주마.”

그녀는 손목을 들어 주먹을 쥐락펴락 하는 것을 보여준다.

“수인에게 있어서, 팔은 제3의 다리다.”

제3의 다리?

“만약 내가 이 자리에서 네 다리를 걸면, 넌 어떻게 대처할 거지?”

“다리를 걸면..? 그야 넘어지면서 손으로 땅을 짚겠죠?”

“틀렸다. 그건 인간의 방식이야. 나를 넘어뜨려라.”

“...얍.”

좀 무섭긴 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그녀는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면서, 남아있는 다리를 회전 시켜 반격을 가했다.

“켁!”

“넘어질 거라는 생각을 버려라. 우리에겐 다리가 네 개나 있으니까.”

..그렇구나..!

땅에 몸이 닿질 않으니 상대의 공격에 유연하고 빠르게 반격할 수 있다.

“인간이 수인과의 싸움에서 밀리는 이유는 우선 이 보법의 차이에서 오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그리고 기초적인 힘이 달라. 지금 네 악력은 세 살짜리 수인 아기나 다름없다.”

그게 제일 큰 거 아니에요?

“하지만 인간에겐 마법이 있으니 꼭 어느 쪽이 우위라고 말 할 순 없다.”

그러고 보니, 마법은 인간만이 쓸 수 있었지.

“수인만큼은 아니다만, 사야,네 수준으로도 다른 인간과의 싸움에선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거다.”

신기하다.

1년간 내가 수련한 거라곤 물구나무서기, 물구나무서서 걷기, 백 텀블링 정도가 끝이었을 텐데.

팔힘이 그동안 많이 늘었는지, 이제는 나무를 타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럼 체력은 끝났으니, 뭘 할건지는 알고 있겠지.”

“잠깐, 또 때린다는 말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묵직한 주먹이 이쪽으로 날아왔다.

‘맞으면, 진짜로 죽는다..!’

백덤블링하며 간신히 피해 넘겼다.

“아직 미숙해. 어느 방향으로 피할지 까지도 고려해라.”

그냥 주먹일 뿐인데. 흙바닥에 크레이터마냥 균열이 생겼다.

‘괴물이다..’

“내가 7년간 우리 도적단 놈들을 가르쳐 본 결과, 처맞으면서 배우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사야, 너는 인간이지만 난 힘조절같은건 무리니 알아서 잘 피하도록.”

부하 여럿 울렸겠네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그녀의 맹공을 피하느라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주먹이 살에 살짝살짝 스칠 때마다, 저승사자가 보인 것 같은데.

훈련을 마친 뒤, 손에 축축함이 느껴져 손바닥을 보았다.

‘음?’

딱딱한 지면을 맨손으로 수도 없이 비비고 스친 탓에 피부가죽이 너덜너덜해져선, 피가 잔뜩난다.

“푸하핫! 그 정도 사용한 걸로 피부가 벗겨지는 거냐? 인간의 몸은 정말 연비가 구리구만.”

“...”

왜냐하면, 손바닥을 그 정도로 쓸 일이 인간한테는 없으니까요.

그녀는 옷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상처가 아물때까지 훈련은 중지다. 당분간은 치료에 집중해.”

“넵.”

“손이 참 많이 가는구만, 인간은..”

며칠날을 지나 손이 다 아물 때 쯤, 대장이 뭔가를 툭 던져주었다.

“껴. 손이 다치는걸 방지해줄 거다.”

“장갑이네요?”

엉성한 바느질이지만, 크기가 내 손에 맞춘 듯 딱 맞았다.

“감사합니다. 근데 이거, 뭘로 만든 거에요?”

백묘는 자랑스러운 듯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너에게 잘 맞을만한 소재를 찾았지. 잘 늘어나면서, 통풍도 문제없고, 게다가 튼튼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

“내 속옷을 썼다. 직접 입어봤었으니 튼튼함은 문제없을 거야.”

...네?

나는 장갑을 손에 낀 채,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뭐지, 이 오묘한 기분은?

수인들의 생각을 이해하기엔, 아직 멀었나보다.

“그나저나 대장, 혹시 저도 이젠 도적단에..”

“검은개 도적단에 인간은 받지 않는다. 1대 대장도 그랬었고, 나도 그럴 거다”

이번 생에 퀘스트 깨긴 글렀군.

“대장, 큰일이에요!”

그때였다. 도적 단원중 하나가, 얼굴이 시뻘겋게 돼선 뛰어왔다.

“무슨 일이야?”

“우리 꼬마애 하나가 사라졌어요, 아이들 말에 따르면 다른 인기척이 있었답니다..!”

“꼬마애 중에 누가!?”

“그게, 묘아가 사라졌습니다..!”

뭐? 묘아?

분홍색 고양이 수인 여자아이였다.

장난기가 좀 많긴 했어도, 글자도 제일 먼저 배우고 누구보다 나를 따랐던 아이.

“순찰조가 발자국을 쫓고 있긴 한데, 아직 멀리 가진 않았을 겁니다.”

“준비하마. 나도 그쪽으로 가지.”

서둘러 출발하는 대장을 뒤따랐다.

“대장, 저도 갈게요!”

“안에 있어! 두 명을 잃을 수도 있다!”

“제가 뭣 때문에 단련을 했는데요, 이럴 때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요!”

“...”

백묘는 나를 한번 노려보더니, 달리기 시작했다.

“네 몸은 네가 지켜라. 바짝 쫓아와.”

“..네.”

그 아이가 아직 무사하길 빌면서,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백묘의 뒤를 쫓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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