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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7화 (7/102)

〈 7화 〉 검은개 도적단 (2)

* * *

“기상! 해가 중천이다. 이놈들아!”

백묘의 쩌렁쩌렁한 외침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일을 하러 움직였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한 밤 그 자체였다.

“해..? 아직 달밖에 안 보이는데요?”

“내가 해라면 해다.”

알면 알수록 미친 여자일세.

그나저나, 여기서 뭘 도와야 하지?

막상 일을 도와주기로 했지만, 역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길리언한테도 물어볼까?

“길리언, 넌 어딜 도울 거야?”

그는 이제 다행히 인육의 충격에서 벗어난 듯 보인다.

“나? 난 주방을 도우려고. 난 다리가 불편해서 힘쓰는 일은 힘드니까.”

“아, 그랬었지..”

요즘 매일 정신없는 나날이라 길리언의 다리가 불편하단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주방이라. 요리를 배워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근데, 나중에 써먹을 일이나 생길까..?

내 소설속 세계관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는 거친 장소였다.

소설에 나오지 않는 이런 시골 근방에서는 하루에도 끊임없이 생존 전쟁이 치러지고 있고.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나는 너무 약하다.

백묘씨는 족쇄를 가볍게 부숴낼 정도로 강했었는데.

내가 만약 충분히 강했더라면, 그런 일을 당할 일도 없지 않았을까?

“무언가 고민이 있으신가요, 사야님?”

때마침 흑견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처음부터 느낀 거지만 이 사람, 감이 무서울 정도로 좋다.

“저기.. 무슨 일을 도울까 고민이 돼서요. 혹시 힘을 기르는데 도움 될만한 일은 없을까요?”

“아, 그런 거라면야!”

흑견씨의 얼굴이 환해졌다.

대체 어떤 일이길래 그러지..?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나무 벽으로 사방이 둘러싸인 비좁은 방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여기엔 저밖에 없는데요? 다른 사람들은 어디로 갔죠?”

“다른 사람들은 없어요. 여긴 혼자서 일하는 곳이거든요.”

“...예?”

한 번 더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잠깐, 설마 이 벽…’

나무로 이루어진 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벽이 아닌 무수한 장작의 더미.

“여긴 장작을 모아두는 장소에요. 지금은 따듯한 시기라 장작이 남아나지만, 본격적으로 겨울이 오면 우리 도적단 몇십 명이 쓰기에 모자랄 정도가 된답니다.”

척 봐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한가지 내가 착각했던 것은, 이 방이 좁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드넓은 방이 엄청난 양의 장작으로 가득 메워져 있어 그렇게 보였던 것뿐.

“혼자 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교대 근무인가요?”

“아닌데요.”

“아하. 그럼 격일 근무구나!”

“그것도 아닌데요.”

“..그럼, 장작을 누가 못 훔쳐 가도록 감시하는 일이군요!”

“장난은 이제 멈추고, 일을 시작할까요. 사야님?”

어느샌가 내 손에는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원래 일하던 적호씨가 이번에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장작을 못 패고 있었는데 사야님이 해주신다니 한시름 놓았네요..”

기다려봐요, 나 아직 한다고 말 안 했다니까요?

“그럼, 겨울이 와도 곤란하지 않도록 힘내주세요!”

쿵.

흑견씨는 그대로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남은 것은 장작을 패기 알맞은 높이의 그루터기와, 벽을 이루는 장작들 뿐이다.

이미 도망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기에 뇌를 비우고 장작을 하나 올려놓았다.

‘그래도 혼자서 했다고 하는 거 보면, 의외로 쉬운 거 아냐?’

도끼를 들어 장작에 내려찍었다.

[팅]

“....?”

원래 장작에서 이런 소리가 나나..?

[푹] 이나 [탁] 도 아니고, [팅] 소리가 났다.

마치 금속이 금속을 튕겨내는 듯한 소리.

“잘못 들은 거겠지.”

[탱]

잘못 들은 거 아니었다.

도끼질을 받은 장작은, 명백하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도끼를 튕겨냈다.

“미친, 이거 나무 맞아..!?”

도끼를 놓고 나무의 표면을 살펴보았다.

자세히 보니 잘린 단면이 유난히 매끄럽고, 구릿빛으로 빛난다.

킁.

게다가 묘하게, 비릿한 냄새가 풍긴다.

그 후로도 포기하지 않고 도끼를 내려찍어봤지만, 장작에는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

점심 무렵, 흑견이 돌아왔다.

“어라. 사야님, 왜 기운이 없으세요?”

“몰라서 물어요? 이거 평범한 나무가 아니잖아요.”

“그럼요! 이 나무는 루덴 숲에서만 자라는, [철목]이니까요!”

“철목…?”

“철목은 이름 그대로 철분을 다량 함유한 나무에요. 우린 이걸 녹여서 무기를 만든답니다.”

그런 정보는 미리 말씀해주면 안 될까요..?

‘철을 함유한 나무라고..? 이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이번에도 내가 창조한 적 없는 요소가 자연스럽게 내 앞에 나타났다.

“이 지역에선 철이 귀해서 평범한 방법으론 구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철목을 녹여 철을 정제한답니다.”

이건 좀 놀라운데.

내가 서술하지 않았거나 설정하지 않은 세계의 빈 부분들은, 마치 개연성을 지키기 위해서인 듯 자연스럽게 끼워 맞춰져 있었다.

만약 주인공처럼 수도의 귀족저택에서 태어났다든가 했으면 평생 몰랐겠지.

예를 들면 숲 한가운데 도적단이 있다던가, 이곳에선 나무를 녹여 철을 구한다든가 하는 것들은.

“..아무튼, 불가능해요. 장작에 흠집도 안 나던걸요.”

“아무래도 사야님이 너무 피곤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분명 좀 쉬고 나면 힘이 붙으실 거에요.”

흑견은 싱긋 웃었다.

저기, 그런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조급해하실 필요는 없어요. 겨울까진 시간이 많이 있으니 매일 조금씩 양을 늘려가시면 문제 없을거에요…. 아마도?”

겨울까지라.

아마도라고 하시니까 괜히 더 불안하다.

앞으로 얼마나 이걸 해야 할지 생각하니, 벌써 머리가 핑 돌았다.

“이걸로 오전 일과는 끝이네요. 쉬었다가 저에게로 와주세요.”

여기서는 오전과 오후에 하는 일이 달랐다.

오전에는 주로 밖에 나가 채집을 해오거나 탐색을 하고, 오후에는 순찰조를 제외한 나머지는 굴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했다.

“그런데 밖에는 사르카가 돌아다닐 텐데, 용케 채집을 해오네요?”

“사르카들은 기본적으로 수인에게 흥미가 없거든요.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 수인을 습격하진 않아요. “

‘흐음.’

이것 또한 내가 설정하지 않은 숨겨진 요소 중 하나였다.

오후에는 흑견씨를 따라 식물을 키우고 있다는 수목원에 방문했다.

“우와, 땅속에서 저렇게 큰 나무가 자랄 수가 있네요?”

수목원은 땅굴의 가장 위층에 위치한 곳으로, 가운데에 기둥처럼 솟아난 거대한 나무 주위로 꽃이나 여러 식물이 즐비하게 피어있었다.

“네. 이 나무는 1대 대장님 때부터 키운 거거든요.”

“1대?”

“네. 백묘님 전에 무리를 이끌던 분이에요. 지금은 백묘님이 그 자릴 대신하고 있답니다.”

꽤 역사가 오래된 굴이구나. 여긴.

“1대 대장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죠?”

“...”

아차. 괜히 물어본 걸까.

흑견의 표정에서 서글픔이 느껴졌다.

“...그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를 어떻게 풀까 했던 참에, 수인족 아이들이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들고 왔다.

“흑견님, 이거 받으세요!”

“어머, 고마워요.”

화관을 쓴 흑견은 한층 더 우아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몇 살일까. 이 사람.

“형아는 귀가 이상해! 동그랗고 못생겼어! 원숭이 수인이야?”

아이 하나가 내게 관심을 보였다.

“난 형도 아니고, 원숭이도 아니야..”

“미안..! 고릴라구나!”

좀 상처받는데?

“누나 놀리면 못 써요. 죄송해요, 이 아이들. 따로 예절 교육 같은 건 시키지 않아서….”

“괜찮아요, 하하.”

사실 잼민이 참교육을 해주고 싶건만, 흑견씨 얼굴을 봐서 참았다.

“이건 뭐야? 반짝거려.”

네 살쯤으로 보이는 꼬마애 하나가, 내 목걸이를 벗겼다.

“아, 그건 안돼..!”

“히히.”

그들은 내 목걸이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놀다가,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린다.

“너네 잡히면..”

주르륵.

‘...어라?’

아이들이 순식간에 올라간 나무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미끄러웠다.

‘이거, 발 디딜 데도 거의 없잖아.’

이걸 오르려면, 순전히 팔힘만으로 올라야한다는 의미였다.

“끄으으응..!”

아, 역시 안 되겠다.

“애들아, 사야님이 곤란해하시잖니!”

“..네!”

흑견의 말에는 잘 따르는 모양이었다.

순순히 나무에서 내려와 내게 목걸이를 돌려준다.

“근데 이거, 뭐라고 써진 거야?”

“어?”

뭐라고 쓰여 있긴. 사야라는 내 이름이지.

“..실은, 그 아이들, 아직 글자를 못 읽어서요.”

“글자를요?”

“태어날 때부터 노예로 자랐던지라, 뭘 가르치는 게 쉽지 않아요..”

이해한다.

루나도 6살 넘겨서 겨우 글자를 뗐었으니.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가르쳐봐도 될까요?”

“사야님이요? 그러실 필요까지는..”

“아뇨, 비슷한 꼬맹이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서요.”

“..그런데, 사야님은 현재 몇 살이신지..”

아차.

내가 지금 7살밖에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사야님은 참 묘한 분이네요. 뭐랄까, 아이의 몸에 성인이 들어있는 듯한..”

“그,그런가요..? 하하..”

그냥 해 본 말이겠지?

..역시 흑견씨는 무서운 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흑견씨와 얘기한 결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쪽이 좋을 것 같다고 얘기되어 오전에는 장작 패기를, 오후에는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기로 했다.

문제는, 아이들이 엄청나게 활발하다는 거였다.

“사야! 나 잡아봐라!”

“거기서, 이놈들!”

공부는 팽개치고 도망만 다니기 일쑤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게 열이 뻗쳐서 무심결에 나무를 잡고 올랐다.

‘오?’

어제보다 조금 더 높이 오른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자마자, 주르륵하고 다시 내려와 버린다.

“누나는 원숭이 수인인데 왜 나무를 못 타?”

“...하하.”

어느 세계를 가든 간에, 잼민이는 사회의 악이다.

­

방에 돌아오자마자, 노인 같은 신음소리를 내며 짚단에 드러누웠다.

“흐어어어…”

“왜 그래, 사야? 10년은 늙어 보이네.”

“오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는 도끼질하고, 오후에는 꼬맹이들 쫓아다니느라 아주 죽을 맛이야.”

“..난, 요전번에 칼질하다 손가락이 아홉 개 될 뻔했지 뭐야..”

길리언 너도 고생이 만만치 않구나.

힘내라, 인마..

그 뒤로는, 거의 똑같은 나날의 반복이었다.

오전엔 장작. 오후엔 과외.

물론 아이들은 아직 자기들 이름을 못 쓴다.

요즘엔 노예 마차에서 만난 그 노인이 할 일 없다며 내가 나무 캐는걸 와서 구경한다.

누가 지켜보기까지 하니 괜히 더 힘이 빠진다.

“허허, 아가씨도 그때에 비하면 꽤 건강해 보이는구먼. 뼈만 앙상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할아버진 지루하지도 않으세요? 저 도끼 가지고 끙끙대는 게 뭐가 재미있다고.”

“재미있지. 예전 삶에 비하면 숨 쉬는 것도 재밌다네.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고 있었을게야. 자네한테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네.”

갑자기 그런 소릴 하면 좀 부끄러운데..

괜히 멋쩍어서, 도끼를 다시 들어 올린다.

“여기서 앉아만 있지 말고, 다른 분들이랑 바둑이라도..”

[틱.]

….틱?

지금껏 들어온 소리와는 묘하게 다른, 아주 약간이지만 묘하게 다른 소리가 났다.

설마..

도끼를 잡아 빼려고 하자, 무언가에 고정된 듯 빠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 눈이 잘못된 건가 싶어, 장작을 한 번 더 확인했다.

확실하게 얇지만, 한줄기 금이 가 있다.

“처음으로, 흠집을 냈다….!”

제자리걸음만 하던 이곳에서의, 첫 정진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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