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 검은개 도적단 (1)
* * *
“인(人)육이다.”
핏기를 머금은 선홍빛 고기가, 철퍽 하고 길리언의 앞에 떨어졌다.
시야가 흐릿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그의 간절한 뒷모습만큼은 확실히 보였다.
길리언.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길리언… 그만둬..”
“.....”
그는 나를 향해 돌아보더니, 알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덥석.
고기를 집어, 큼지막하게 베어 물고 씹는다.
맛을 느낄 틈도 없이, 단숨에 집어삼켰다.
“....우우욱…! 우웩,,,!”
생리적인 거부가, 그리고 돌이킬 수 없다는 배덕감이 그를 괴롭혔다.
몸이 그걸 게워내는 뒷모습은, 가히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안쓰럽다.
더는 토해낼 것이 없자, 위액이 주르륵 흐른다.
“....푸훗.”
수인족 여자가 실소를 참지 못하고 토해냈다.
“푸하하하하! 재밌는 놈일세!”
“하하하하!”
주변의 수인들도, 그녀를 뒤따라 웃었다.
“인육 따위 가지고 있을 리 없잖아. 단순한 토끼고기다.”
“...뭐, 뭐라구요..!? 토끼!?”
“아무리 그래도 덥석 집어먹다니. 남자구만, 이거!”
길리언이 남은 고기를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제 친구는 도와주시는 거죠!?”
“무슨 소리야. 벌써 치료받고 있잖으냐.”
“....엥?”
그가 열심히 토하는 동안, 정신을 잃은 사야의 응급처치가 끝나있었다.
길게 내려오는 흑발의 수인 여성이 길리언에게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대장이 장난을 좋아해서요.”
“이 녀석 눈 부릅뜨고 먹는 거 봤어? 올해 본 것 중에 최고라니까, 진짜! 푸하하하!”
길리언은 이미, 이 상황에 대해서 반쯤 정신을 놨다고 볼 수 있겠다.
“백묘도 사과하세요, 어서.”
“알았어. 미안했다, 인마. 그렇지만 최고로 재미있었어.”
“....”
수인이란 작자들은, 다 이런 식인가?
길리언은 인생 처음으로 마음속에 어딘가 깊은 분노를 느낀 것도 같았다.
“보스! 마차 밑바닥에 꼬맹이가 하나 더 있는데요?”
“뭐? 확인해봐!
눈을 떴다.
이걸로 두 번째 낯선 천장이다.
‘길리언은..?’
주변을 둘러보니, 길리언이 쭈그려 앉아 무어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토끼..고기.. 하하.. 하하하..”
“..길리언?”
“그냥 놔둬. 장난 좀 쳤더니 상심이 큰 모양이더라. 누가 보면 진짜 인육이라도 먹인 줄 알겠어.”
어디선가 들리는, 시원시원한 목소리.
기절 직전 마주했던 신장 2m의 토끼 수인 여성이었다.
“그 괴력녀..!”
“누가 괴력녀냐. 인간 꼬맹이.”
누운 곳을 다시 보니 푸근한 짚단의 위였다.
“다른 사람들은 무사한가요?”
“전부 무사해. 듣자 하니 사르카를 불러내려고 피를 냈었다지? 너도 정상은 아니구만.”
“...”
내가 생각해도 아찔했다.
실패했다면 그대로 개죽음이었을 텐데, 아무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맞다, 내 노트!
“혹시 가방 같은 건 없었나요?”
“마차를 수색할 때 저 남자애가 챙겨 뒀을 거다. 머리맡을 봐.”
다행히도, 여관에 놓고 온 짐들이 그대로 있었다.
‘살았다..’
안 그래도 부조리만 한가득한데, 앞으로의 전개가 적힌 이 노트까지 없어졌다간 어떻게 되려나 싶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딘가요..?”
“우리 아지트. 검은개 도적단의 아지트다.”
검은개 도적단..?
‘도적단 같은 건, 만든 적 없었는데..’
내가 썼던 소설에는, 도적단 같은 것은 한 번도 설정하거나 등장한 적이 없었다. 내가 미처 설정하지 못한 부분들은 스스로 생성되었다는 말인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나저나, 마차 밑에 인간 꼬맹이 한 놈이 더 묶여있더군. 아는 사인가?”
“...네?”
길리언과 나는 그녀를 따라 지하로 이동했다.
그녀를 따라간 곳에는, 큼지막한 철장에 갇힌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살려주세요…. 전 맛이 없어요…!”
“아는 얼굴인가?”
“....”
어거스트였다.
“사야, …! 우리 친구지? 그치…!? 그렇다고 좀 해줘..!”
“전 모르는 얼굴이네요.”
“야, 길리언..! 부탁이다! 한 번만 아는 체 해줘..!”
“...토끼고기.. 깡총깡총..”
길리언은 아직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진짜 착하게 살게. 내가 미쳤었어! 이렇게 빌게. 제발…!”
“어떻게 할까. 이놈?””
“늑대 밥으로 주는 게 어떨까요. 친구를 노예로 팔아먹는 놈이니까.”
“그거 재미있겠군. 이봐! 이 녀석을 숲에 버려둬라!”
“숲은 안돼..! 숲은 안 된다고….!”
부하들이 철장에서 그를 꺼내 끌고 갔다.
이걸로 다시 마주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는데.
“이제 어떻게 될까요?”
“글쎄. 이 근방은 사르카가 많아서 고깃덩어리라도 남으면 기적일 테지.”
“살려줘, 이 새끼들아….!”
푼돈을 위해 친구를 팔아넘긴, 그야말로 쓰레기다운 말로구만.
그날 저녁, 식사를 대접받았다.
루덴에서는 이질적이게, 풀 대신 고기가 한가득한 밥상이다.
“우와, 고기가 이렇게나..!”
“인육은 없으니 안심하라고.”
“우욱..!”
허겁지겁 먹던 길리언이, 우욱 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장난은 이제 충분히 하셨잖아요. 백묘 대장.”
“해도 해도 질리질 않는다고, 저놈 반응은.”
늘씬한 몸매의, 검은 장발의 수인여성이 그녀를 나무랐다.
귀랑 꼬리를 보면, 개 수인인가?
“마차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검은 개 도적단 전체를 대신해서, 이 흑견이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그녀는 나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확실히 수인 족은 내가 만든 종족 중, 가장 긍지 높은 종족이다.
적대시하는 종족일지라도 확실하게 경의를 표하는 데서, 그런 면이 느껴졌다.
“뭘요, 전부 우연의 일치였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모의 수인 여성이 띄워주니 입꼬리가 들쑥날쑥 하는데.
“이 근방은 우거진 숲이라 경비가 다니지 않기에 노예 운송로로 자주 이용됩니다. 운 좋게 구출하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검거하기 쉽지 않죠.”
“그래서, 꼬맹이들. 이제 어떡할 거냐? 밖으로 나간다고 말리진 않겠다만, 사르카랑 마주쳤다간 좋은 꼴 못 볼 거야.”
그랬지.
아무래도 여긴 숲 한가운데 숨겨진 도적단의 은신처인 모양으로, 길리언과 둘이서 숲으로 나갔다간 개죽음이 확정이다.
“난 인간 놈들은 질색이지만, 동족을 구한 업적을 봐서 남고 싶다면 여기 남는 것도 허락하마.”
“어떡할까, 사야?”
“...”
생각해보자.
어차피 소설의 내용대로 아카데미의 입학 날까진 10년은 남아있다.
여기선 굶을 일도 없고,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을 일도 없을 거다.
노예로 팔아넘겨 진다던가, 그런 일은 물론 없을 것이고.
‘나쁠 게 없어. 하지만..’
내가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을, 이곳에서 과연 무엇 하나 얻어갈 수 있을까?
도움받는 풍족한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결국 스스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거다.
나한테는 목적이 있잖아.
여기서는 위험을 좀 감수하더라도, 여행을 지속해야겠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저희는 이곳에서..”
_띠링
< 서브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검은개 도적단 가입하기」 >
“이곳에서 100년 정도 있고 싶습니다!”
“...”
“...”
백묘 대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의 수명은 그렇게 길지 않을 거다.”
미친. 왜 갑자기 튀어나오고 난리야?
무려 2년 만이다.
그렇게 찾아내려고 노력했던 망할 놈의 퀘스트가, 지금에서야 툭 하고 튀어나왔다고.
‘이번 보상은 뭐지?’
부끄러움을 가라앉히고 다시 자리에 앉아 퀘스트 창을 확인했다.
[ 서브 퀘스트 : 검은개 도적단 가입하기. ]
달성도 : 0%
보상: [아르모니아 제국 연혁표]
‘연혁표…?’
연혁표라 함은, 역사를 기록한 연표로 아르모니아 제국의 탄생과정부터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을 확인할 수 있는 표를 의미했다.
이런 것까지 만들었다니.
진짜 미친놈이었구나, 그 시절의 나.
이게 있다면, 확실히 유용한 정보가 될 것임엔 틀림없다.
“뭐.. 여기에 머물든 말든 좋을 대로 하고. 다만 알아둘 규칙이 세 가지 있다.”
“어떤 거죠?”
“첫째. 음식은 남기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남겨놓은 음식을 노골적으로 바라보았다.
먹으라는 무언의 압박인 것 같아서, 접시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둘째. 거짓말하지 않는다.”
뭔가 귀여운데?
어린이집 규칙 같고.
“어길 시 혓바닥을 자른다.”
귀엽다는 말 취소.
어린이집에선 혓바닥을 자르진 않는다.
“마지막, 셋째.”
그녀는 우리들을 가리키고 말했다.
“공짜는 없다. 얻어먹으려면, 그만큼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지.”
“뭘 하면 되는 거죠..?”
“정해진 건 없다. 요리, 빨래, 사냥. 뭐든 좋으니 열심히만 하면 돼.”
내가 할만한 게 있을까?
보육원에서 잘한 거라곤 이불 각 잡아 접는 것밖에 없었는데.
“이상! 오늘 저녁 식사는 여기서 마치겠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음식을 순식간에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흩어진다.
“빨라..!”
개 수인 아가씨, 흑견이 내게 다가왔다.
“여기선 백묘의 말이 절대적이에요. 앞서 말한 세 가지 규칙이랑, 대장의 심기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잘 지낼 수 있을 겁니다.”
하루를 지냈을 뿐인데, 벌써 앞날이 걱정이다.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흑견씨와 함께 식탁을 정리했다.
첨벙.
“따듯해..! 여긴 뜨거운 물도 있구나!”
마치 온천을 연상시키는, 굴속의 욕탕에 몸을 담갔다.
기분 좋네.
온탕에 몸을 맡기고, 서서히 몸에 힘을 뺀다.
“...”
문득,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루나, 잘 지내고 있으려나?’
보육원을 나온 지 겨우 삼일.
삼일뿐인데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만물상에서 곤욕을 치르고, 할망구에게 재워지고, 노예 마차에 올랐다가 가까스로 살아났다.
근데 이거 난이도 너무한 거 아니야..?
“기분 좋지? 내가 이곳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다.”
“네. 확실히 기분좋…에엑?!”
첨벙.
거대한 알몸의 여체 하나가, 내 옆에 첨벙거리며 앉았다.
불투명한 수면위로 거대한 구릿빛의 살덩이가 둥실둥실 떠오른다.
볎쉟????????????????????????????匏????????????跴????痛????????魏룽“아, 아뇨. 대장. 딱 좋은데요.”
물이 아니라, 내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백묘라고 부르면 된다. 넌 전투원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니, 퀘스트를 받은 뒤로 달성도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단순히 여기 머무르는 것으로는, 검은개 도적단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인가?
“저기.. 검은개 도적단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인간?”
그녀의 목소리가 아까와는 달리 낮게 깔렸다.
“검은개 도적단은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생겨난 단체다. 주로 노예상이나 부패 귀족을 대상으로 하지만, 그래봤자 인간을 수없이 죽인다는 점은 변하지 않아.”
“..인간을 싫어하시나요.”
“싫어하지. 생각만으로도, 울화가 치솟을 정도로.”
고개 숙인 그녀의 목 뒷부분에서, 102라는 숫자가 보였다.
“설마, 그 숫자..”
“그래. 난 태어날 적부터 노예였어. 나를 낳은 어머니는 얼마 안 돼 죽고 말았지.”
“..힘들었겠네요.”
“...”
백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10분가량 온욕을 즐기다, 그녀가 먼저 일어섰다.
“검은개 도적단에 인간은 받지 않는다. 방금 나온 말은 못 들은 거로 하지.”
그녀가 나간 욕탕에 홀로 남겨졌다.
백묘의 인간에 대한 증오는 상상 이상이다.
마음이 바뀌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 바뀌기는 하려나?
“모르겠다~”
욕탕에 앉아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가 돼서 좋았다는 생각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