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쓴 소설에 전생했다-1화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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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보육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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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퀘스트 : 결말을 바꾸시오 ]

'뭐야, 이거…?'

허공에 반투명한 글자가 출력됐다.

놀라 기절할 것 같지만 전생까지 한 판에 더 놀라울 게 있을까.

주위를 둘러 다른 아이들을 보니 글자에 대해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듯하다.

'결말을... 바꾸라고?'

아마도 이곳은, 내가 쓴 소설 [아르모니아 전기] 속 세계.

만약 퀘스트에 실패해서 결말을 바꾸지 못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퀘스트같은것 신경쓰지 말고 살면 되는거 아니냐고?

그랬다간 이세계 사람들 전부가 죽는다.

내가 지은 소설의 결말은, 이 세상의 종말이었으니까.

­

머리가 좀 아프지만 정리해보자면,

나는 원인 모를 이유로 내 소설속에 여자아이로 전생했다.

상태창이고 능력이고, 그런것 하나도 없이.

아무래도 나는 고아인것 같다.

태어날 때 무슨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는데, 거기에 적힌 이름이 ‘사야’ 였기에 내 이름은 사야가 되었다.

일단은 살아남자.

살아남아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밝혀내고 말겠어.

"아가.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니?"

나를 돌봐주는 여자의 목소리다.

그녀의 이름은 헬레나.

헬레나는 아기를 무척 좋아했다.

그녀가 나를 돌봐줄 때만큼은 진짜로 아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복도에선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나쁜 아이라니까. 검은 머릴 하고서는."

"사르카를 불러오는 거 아니야? 저런 애를 들인 사실을 교회에서 알게 되면…."

다른 여자들이 나를 보며 비아냥대는 소리였다.

듣자 하니, 검은 머리의 아이는 저주받았다고 여겨 버려진다는 듯하다.

내가 쓴 설정이지만 머리 색깔 하나로 이렇게나 차별하다니.

과거로 돌아간다면 검은 머리는 대대로 왕족이라고 쓸거다.

다행히, 헬레나가 그녀들을 나무랐다.

"할 일 없으면 빨래라도 하지 그래요?"

"..네! 헬레나님."

‘꼴좋다.’

수군대던 그녀들은 헬레나의 눈총에 재빠르게 흩어진다.

어느덧 네 살.

당연한 일이지만 4년을 허송세월로 보내진 않았다.

헬레나에게 자주 책을 읽어달라 조르며, 언어를 조금씩 습득해나갔다.

거기다가, 내가 태어날 때 걸고 있었던 목걸이를 돌려받아 항상 차고다니게 되었다.

지금은 이 십자 목걸이가 유일한 내 재산이다.

그러고보니, 소설 주인공은 으리으리한 귀족집에서 태어나 사랑받고 자랐었는데.

인생 한번 불공평하네.

근데, 주인공 이름이.. 뭐였더라?

‘유리 ..프리지아.’

_띠링_<조건을 만족했습니다.="" [주인공에게="" 한걸음]=""/>

"악!"

뜬금없이 문자가 튀어나와 소릴 질렀다. 예고 좀 하고 튀어나와!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서브퀘스트 : 아르모니아어를 익히시오. ]달성도 : 50%보상: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조금 전 주인공의 이름을 떠올린 것만으로 무언가 조건을 만족한 것인지 퀘스트가 하나 생성되었다.

'언어를 익히라니…. 아니, 그보다­'

보상이라고 적힌 줄에 적힌 말이 심상치 않다.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그 말은, 퀘스트를 완료하면 소설의 1장을 지급해준다는 건가?

어떤 식으로? 전자책도 아니고, 설마 현실에 뿅 하고 나 타지는 않을 텐데.

지금 생각해봐야 알 턱이 없겠지. 우선은 퀘스트 목표대로 언어를 마스터해보는 수밖에.

달성도에는 현재 50%라고 적혀있다.

헬레나가 매일 책을 읽어주기 때문에 듣고 말하는 것은 완전히 숙달했지만, 아직 읽고 쓰는 수준은 심각했다. 그래서 50%인가?

우선 닥치는 대로 책에 있는 글자를 받아적어 볼까 했는…. 데.

'이런 미친.'

종이가 없다. 그 흔한 펜도 없다.

'여긴 설정상 중세시대였지. 하…'

현대물로 쓸걸, 시발.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어떻게든 구해볼 수 있었겠다만 나는 고아다. 그것도 검은 머리.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밖으로 나가 흙바닥에 쭈그려 앉아 나무 막대기로 글자를 하나하나 써 내려갔다.

..묘하게 다들 나를 보는 시선들이 더 이상해진 것 같은데..?

흙바닥에 글을 쓰며 생각했다.

세상의 종말 같은 결말을 만든 그 시절의 나란 새끼를 뒤지게 패고 싶다.

평범한 결말을 냈다면 퀘스트따위 신경끄고 살 수 있었을텐데.

그 당시에는 아포칼립스나, 뭐 세기말 같은 장르가 흥행해서 거기 영향을 받았던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종말의 원인이 주인공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생각해야 할 것은 주인공을 살리는 방법.

유리 프리지아.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만나서 운명을 바꿔놓아야 한다.

"사야. 흙장난해?"

흙바닥에 열심히 글을 쓰는데, 백금발의 곱슬머리 소녀가 말을 걸어온다.

그녀의 이름은 루나.

이 보육원에서 유일한 내 친구였다.

..우리 친구 맞지?

"흙장난 아니야. 공부해."

"공부?"

루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퀘스트 깨려고 공부하고 있단다. 이거 안깨면 세상 사람들 다 죽는다길래.

"몽블랑 아주머니가 여자애는 꾸밀 줄만 알면 된대. 귀족가에 시집가는 게 최고래!"

"하하…."

틀린 말은 아니지.

그래도 루나한테 벌써부터 그런 칙칙한 꿈을 품게 해주고 싶진 않은데.

"그것도 좋지만 루나라면 훨씬 다양한 걸 해볼 수 있을걸."

"그럼, 사야한테 시집갈래!"

"..시집은 남자한테 가는 거야. 루나."

"뭐야. 재미없어. 남자애들은 맨날 놀리기만 하는걸?"

그거, 관심의 표시구만.

루나는 어리지만 확실하게 미인이다.

곱슬거리는 백금발, 반짝이는 에메랄드 눈.

부유한 집에서 서로 입양하려고 사족을 못 쓸게 눈에 훤하다.

그에 비하면 나는..

검정색 머리, 아무렇게나 잘라서 상한 머릿결, 지저분한 단발. 옷에 잔뜩 묻은 흙들.

당장에 이게 여자애인지도 못 알아볼 정도다.

이번 생애 입양될 수 있냐?

날이 저물고, 빈곤한 식사를 마치자 짧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사야, 나 빗질!"

이불 속에서 루나를 빗질해주는 게 일과의 마무리다.

원래는 선생님들의 일이지만 루나가 나에게 받는다고 떼를 죽도록 썼다나 뭐라나.

태어나서 여자애 머리 같은 건 만져본 적도 없는데 굳이 내 손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뭘까.

머릴 빗겨주면서,

나는 이 세계에 관해 아는 이야기를 루나에게 들려주곤 했다.

소설의 내용과 설정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되새기는 일이기도 했고.

그런 일과를 반복하면서,

약 6개월 정도가 흘러갔다.

'슬슬 진척도를 확인해볼까?'

열심히 흙바닥에서 연습한 결과 책의 절반 정도는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쯤에서 달성도를 확인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 서브퀘스트 : 아르모니아어를 익히시오. ]달성도 : 75%보상: [아르모니아 전기] 제 1장

….

예상은 했지만 나도 어지간히 돌대가리다.

6개월 동안 25% 올렸네.

"하…"

무언가 더 효율적인 공부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에잇!"

"뭐야? 왜 이래?"

루나가 내 눈을 양손으로 가린다.

"순슈니 따라오시지!"

루나가 얼마 전에 앞니가 빠져서 발음이 좀 샌다.

귀여우니까 순순히 따라가 주기로 한다.

"무슨 일인데?"

"기대하세요, 짠 짜잔!"

선반 위에 포장되어있는 무언가가 올려져 있었다.

"생일 축하한다. 사야."

"헬레나…?"

어느새 온 건지 헬레나가 내 맞은편에서 방긋 웃고 있었다.

"루나랑 내가 널 위해서 사 왔지. 한 번도 챙겨준 적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고맙네. 날 위해서 이런 것까지….

포장된 선물 옆에는 루나의 것으로 보이는 작은 토끼 낙서도 있었다.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글을 몰라서 그림으로 대체했다고 볼 수 있겠다.

"빨리 열어봐! 사야!"

"응."

뭐, 여자아이를 위한 선물이니까 적당히 머리핀이나 인형 같은 게 들어있으려나.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다.

"....."

"어때? 마음에 들어?"

"루나가 골랐단다. 난 좀 더 귀여운걸 주려고 했는데…. 루나가 널 더 잘 아니깐."

..위험해.

진심으로 울 뻔했다.

26년 인생 처음으로.

아니, 지금은 5살이지.

루나와 헬레나로부터의 선물은 두꺼운 공책 한 권과 낡은 펜이었다.

그야말로 내게 정말 필요했던, 안성맞춤인 선물이다.

"고마워요. 헬레나씨. 그리고 루나."

"뭐야…. 좀 더 격한 반응을 기대했는데."

루나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다.

"너무 닦달하지 말렴. 사야는 솔직하질 못한 애니까."

정말로 고마워. 두 사람 모두.

이걸로 공부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까지 도움을 주는 데 실패할 수는 없지.

까짓거 팍팍 진도 나가주기로 했다.

이곳에서 어떻게든 발버둥쳐서, 살아남고 말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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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구)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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