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113화 (113/151)

113화 난리통

지구로 돌아온 고병갑은 즉시 주위의 기척을 살폈다. 하지만 무수한 인파 속에서 몬스터를 특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몇 초간 끙 앓다가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시점부터 엄마 걱정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우선 기절한 여자를 둘러업고 거리로 나갔다. 그는 일부러 군인을 찾아 여인을 인계했다. 좀 전의 사건도 있고 하니 일루미션 소속 자경단은 믿을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군인들도 미심쩍긴 매한가지였지만.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난 건 이곳 한 군데입니까?”

고병갑이 여인을 인계하며 물었다. 질문받은 모 일병은 자기가 무슨 말을 들은 건지도 모르는 듯했다.

“아, 그, 저… 혀, 현재 파악 중…….”

“됐습니다. 고생하십시오.”

고병갑이 서둘러 몸을 돌렸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다리를 놀린다. 건물과 건물을 타 넘으며 집으로 달려간다. 천만다행으로 집 근처에선 난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관문을 확 열어젖힌다. 어머니 박영옥은 초조한 얼굴로 거실을 배회하고 있었다.

“아들! …아, 아들?”

박영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고병갑의 옷 군데군데 번진 핏자국 때문이다.

그는 엄마가 기절이라도 하기 전에 얼른 설명했다.

“엄마, 괜찮아! 이거 내 피 아니야!”

“아니라고?”

“어, 나 멀쩡해. 하나도 안 다쳤어.”

“아이구…….”

박영옥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풀썩 주저앉았다. 고병갑은 얼른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아들, 왜 전화 안 받니……. 엄마가 재난 문자 받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전화?”

고병갑이 핸드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10통도 넘게 찍혀 있다. 하도 경황이 없어서 전화는 생각도 못했다.

“미안, 무음이어서 못 봤어.”

“아무튼 무사하다니 다행이구나. 아이고, 하느님, 부처님 감사합니다.”

고병갑은 엄마를 소파로 옮겨 앉힌 후 몸을 씻었다. 샤워 호스에서 쏟아지는 물을 얻어맞으니 저절로 상념에 잠겼다.

‘저번 지리산도 그렇고… 몬스터 웨이브는 앞으로 더 빈번히 일어날 거야. 난 점점 더 집을 자주 비울 테고. 그러면 엄마를 보살펴 줄 수가 없어.’

조심해야 할 건 비단 몬스터뿐만이 아니다. 이제는 사람도 함부로 믿어선 안 됐다. 고병갑은 이내 결심을 굳혔다.

‘엄마한테 전부 고백해야겠어. 그리고 위협이 없어질 때까지만이라도 아스빌람에서 모시자.’

그가 샤워를 마치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박영옥은 아직도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고병갑은 슬그머니 엄마 옆에 앉았다.

박영옥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병갑아,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통 말을 안 해 주니 모르겠다만, 당분간은 집에 얌전히 있으렴. 시국이 여간 흉흉한 게 아니잖니.”

“엄마, 그렇지 않아도 그거에 관해서 할 말이 있는데.”

“할 말? 응. 뭐든 말하렴.”

“흠흠.”

그가 목을 가다듬었다.

“무슨 말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이니? 엄마 좀 불안해지려고 한다.”

“엄마, 나 사실 헌터야.”

“…뭐?”

이야기는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시작됐다.

왜 헌터가 됐는지, 헌터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작년 여름경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일로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그리고 현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고병갑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털어놓았다.

박영옥은 처음엔 경기를 일으켰다. 무리도 아니었다. 자신의 남편, 다시 말해 고병갑의 아버지가 짐꾼으로 살다가 허망하게 갔음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하지만 고병갑이 늘어놓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표정이 누그러졌다. 종장에 이르러서는 미묘하게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그 고블린이란 친구들이 사는 곳? 사는 세계? 에 가 있으라는 말이니?”

“응, 믿을 만한 애들이야. 겉보기는 좀 께름칙할지 몰라도 알고 보면 다들 진국이고.”

“조금… 믿기 어렵구나. 그치만 우리 아들이 엄마한테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고.”

고병갑이 어머니의 손을 꼭 쥐었다.

“엄마, 모두 말할 수는 없지만 곧 위험한 일이 닥칠 거야. 난 엄마가 아스빌람에 가 있으면 좋겠어. 그래야 내가 맘 편히 싸울 수… 아니, 일할 수 있을 테니까.”

박영옥은 얼마간 침묵했다. 고병갑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고, 머지않아 어머니의 입이 열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꾸나.”

“응, 바로 짐 싸자.”

고병갑은 간단히 짐을 챙겼다. 짐이라 봤자 어머니가 입을 옷가지가 전부였다.

채비를 마친 뒤 그는 처음으로 어머니 앞에서 능력을 사용했다. 아스빌람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자 박영옥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시… 신기하구나. 너희 아빠는 이런 거 못했는데.”

‘그야 아빠는 평범한 F급 각성자였으니까.’

라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가자.”

대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천천히 문을 넘었다.

* * *

경비 병력을 제외한 발타드렌의 모든 고블린이 중앙 광장에 집결했다. 그들은 조금은 놀란 눈망울로 단상을 바라보았다.

「바보야, 늦었잖아.」

「미안해요, 뒷정리할 게 조금 남아서 마저 끝마치고 왔거든요. 그나저나 고블린분들이 다 모였네요.」

에아가 단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란네 로드도 왔네요. 그런데 그 옆에 여자는 누구예요? 처음 보는 사람이네요.」

「로드 어머니이시래.」

「어머니요? 아… 그러고 보니 어쩐지 닮은 것 같기도 하네요. 나는 눈썰미가 꽤 좋아서 이런 걸 잘 알아보거든요.」

「에휴, 이리 와서 서기나 해.」

도란이 작게 한숨 쉬며 에아를 잡아당겼다. 그때 맞춰 고병갑이 말했다.

「다들 밥은 먹었냐?」

「예! 먹었습니다!」

고블린들이 입 맞춰 대답했다. 우렁찬 목소리가 울리자 박영옥이 움찔 떨었다.

「다들 보이지?」

「예!」

「우리 엄마, 박영옥 여사님이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실 거야.」

고병갑은 잠깐 고민하다가 짧게 말했다.

「잘해 드려라. 알겠지?」

「예!」

「정성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일하러 가.」

모였던 고블린들이 빠르게 해산했다. 광장에 남은 건 몇몇 간부뿐이었다. 그들은 일제히 단상에 올라 인사를 건냈다.

「왕대비시여, 로드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도르마라고 합니다.」

「키리얀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도란이에요!」

「투르카입니다. 쾌차하셨다니 다행입니다.」

「바몬드입니다. 앞으로 어디 불편한 곳 있으신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간부 녀석들이 고개를 수그리며 인사를 올렸다. 박영옥은 알아듣지 못해서 입만 뻐끔거렸다.

“아, 아들. 뭐라고들 하시는 거야?”

“그냥 자기소개하고 인사하네. 다들 잘 부탁한대.”

“아아, 안녕하세요. 병갑이 엄마예요. 우리 아들이 여러모로 신세 지고 있다고… 아무튼 만나서 반가워요.”

“엄마, 한국말로 해 봤자 어차피 얘들 못 알아들어.”

고병갑의 말마따나 고블린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머, 그럼 어떡하니? 네가 얼른 통역해 줘.”

「아하! 어머님께서 이쪽 말을 못하시는군요?」

에아가 투르카 뒤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그녀를 보자 박영옥이 깜짝 놀랐다. 흡사 살아 움직이는 마네킹을 보는 듯하니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에아, 너도 있었네. 응, 네 말대로야. 울 엄마는 이쪽 말 못해.」

「내가 도와줄까요? 당신도 알다시피 난 이런 부분에서 꽤 쓸 만한 재주를 가지고 있거든요.」

고병갑은 반사적으로 대답하려다가 말을 삼켰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야, 너 최근에 권능을 너무 많이 썼어. 저번에 하피 기억 지워 주고도 반나절이나 끙끙 앓았잖아.」

「에이, 괜찮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신 어머니인걸요. 더구나 앞으로 함께 살 건데 말이 안 통하면 이래저래 불편할 거 아녜요.」

「그렇긴 한데… 네가 무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러지.」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그치만 아직은 버틸 만하답니다. 나는 보기보다 튼튼하거든요. 그리고 당신이 동족들을 불러 줘서 요 며칠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이런 식으로라도 보은하고 싶은 내 마음을 모르겠나요? 나는 은혜를 알고 염치를 안답니다.」

「후우, 그럼 좀 부탁할게.」

「네!」

에아가 통통 튀듯 다가와 박영옥의 손을 맞잡았다.

“아, 아들. 이 아가씨는 누구니? 네가 만나는 아가씨야?”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냥 고마운 친구야.”

「후후, 잠깐이면 된답니다.」

에아가 권능을 부렸다. 저번에 고병갑에게 했던 것과 같은 시술이었다. 맞잡은 손에서 은은한 빛이 피어오르더니 이윽고 박영옥에게 흡수됐다.

의식이 끝나자 에아가 어지러운 듯 비틀거렸다. 도란이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에헤헤… 다 됐어요. 역시 조금 피곤하네요.」

「어머,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니?」

박영옥이 깜짝 놀랐다.

고병갑은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다시금 인사와 자기소개를 나누었다. 고블린들은 박영옥에게 말을 편하게 하라고 간청했지만 그녀가 한사코 거절했다.

고병갑은 어머니에게 집을 안내해 주었다. 원래는 자신이 전용으로 사용하던 거처인데, 이번에 조금 개조를 거쳤다.

통나무 소재의 멋들어진 2층 주택. 마당에는 큼직한 텃밭이 있고, 개도 한 마리 있다. 딱 시골에 지어진 별장 느낌이다.

다행히 박영옥도 대만족했다.

“아들! 너무 멋지다! 엄마 꿈꾸는 것 같아.”

“다행이네. 그래도 지내다 보면 이래저래 불편한 게 있을 거야. 아무래도 지구에 비하면 낙후됐으니까.”

“으으응, 내가 시골 생활 동경했던 거 알잖니. 엄마가 딱 원하던 그림이야.”

“엄마가 좋다니까 나도 좋네. 궁금하거나 필요한 거 있으면 아무 애나 붙잡고 물어보면 돼. 다들 친절히 알려 줄 거야.”

「으흐흥! 알았어.」

박영옥은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고병갑은 아이처럼 해맑은 엄마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고블린 애들 실제로 보니까 좀 무섭지?”

“흐음,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다들 인상도 선하고 예의도 바르고 괜찮던걸? 네가 어떻게 그분들 대빵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너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나라고 하면 죽고 못 살긴 하지.”

“그나저나 아까 보니까 귀여운 아가씨도 한 명 있던데… 이름이 도란이었나?”

“어, 도란 맞아. 도란은 왜?”

“아니, 그냥 귀엽다고.”

그녀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고병갑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엄마, 이상한 생각 하지 마.”

“참나, 내가 뭐랬니?”

“아무튼 쉬어. 나는 일하러 갔다 올게.”

“응, 아들. 꼭 몸조심해야 해.”

“걱정하지 마.”

고병갑은 몸을 돌려 성벽 쪽으로 향했다.

좀 전까지 은근한 미소가 번졌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지금부터 할 일은 어머니에겐 절대 보여 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성벽 내부에 마련된 공간으로 들어갔다. 팔다리가 분질러진 채 쇠사슬에 꽁꽁 감긴 사내가 흐느껴 울고 있다.

오르카가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로드시여, 오셨습니까.」

「투르카는 어디 가고 네가 여기 있네.」

「예, 아까 교대해서 말입니다.」

「아, 그래?」

고병갑이 매서운 눈빛으로 사내를 째려보았다.

「별일 없었지?」

「제가 인계받고는 별일 없었습니다. 한데 투르카가 말하길 자꾸 꽥꽥 소리를 질러 대는 통에 몇 대 쥐어박았다고 하더군요.」

그가 다시금 사내를 보았다. 인제 보니 얼굴에 코피가 말라붙은 자국이 있었다.

「조용하니 좋네. 나중에 투르카 보면 내가 칭찬하더라고 전해 줘.」

「알겠습니다.」

고병갑이 근처에서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사내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고병갑이 십수 차례나 부른 뒤에야 간신히 반응했다.

“어… 어……?”

“이제야 반응하네.”

“사, 살려 줘! 살려 주십쇼! 형님, 살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살려 줄지 말지는 고민을 좀 해 보도록 하고… 일단 몇 가지 물어보자.”

“예! 예!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사내는 썩 협조적으로 굴었다. 고병갑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며 물었다.

“일루미션, 그리고 네놈들이 뭘 계획하고 있는지 깡그리 말해. 눈알 돌리거나 어물쩍거리는 낌새 보이면 뭐, 뒷감당은 알아서 하고.”

“…….”

사내가 입을 뻐끔거렸다. 동시에 고병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이놈은 경고를 해도…….”

“혀, 형님! 아닙니다! 제 말 좀 들어 보십시오! 저, 저는 말단이라서 아는 게 없습니다! 그, 그저…….”

“그저 뭐?”

사내의 얼굴이 고뇌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결심한 듯 말했다.

“조… 조만간 한국도 아르헨티나처럼 몬스터한테 잡아먹힐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몬스터과 합세해 불신자들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았습니다.”

“불신자?”

“그… 육망교에 가입되지 않은 사람들을 말하는 겁니다.”

“시발, 민간인들을 다 죽인다고?”

“예, 한반도에 불신자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저, 저는 이것밖에 모릅니다! 정말입니다!”

“이거 순 또라이들이네.”

고병갑이 생각을 곱씹었다. 그러다가 번뜩 생각나 물었다.

“그러고 보니 꺽치가 널 건들지 않았지.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몬스터가 사람 가려 가며 조진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는데?”

“이, 이번에 새로 보급받은 심볼 덕분입니다.”

사내가 부러진 손을 꾸역꾸역 들어 올렸다. 고병갑의 시선이 사내의 왼손 약지로 향했다.

자수정으로 만들어진 육각형 모양 반지.

‘육망교 신자들이 가지고 다니는 펜던트잖아.’

보기에는 평범한 사치품으로 보인다. 고병갑은 가까이 다가가서 반지를 뽑았다.

그 후 자세히 들여보았다.

‘그냥 평범한 반지… 흡!’

“크흑!?”

고병갑이 기겁하며 반지를 던져 버렸다. 이마를 타고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마… 마드무트의 기운이야.’

그는 마드무트를 만나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뇌리 깊숙한 곳에 새겨진 랜드리올의 기억에서 놈의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다는 말이다.

고병갑은 께름칙함을 참으며 반지를 주워 들었다.

“이게 있으면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는다는 건가?”

“예, 예! 먼저 공격하지만 않으면 몬스터들이 알아서 피해 갈 거라고 들었습니다.”

“끝내주는 물건이네. 몬스터를 병풍으로 만들 수 있다니.”

“마, 맞습니다! 그거 형님 드리겠습니다! 가지십시오! 수량이 적어서 길드 내에서도 몇 명 갖지 못한 겁니다.”

“그 귀한 걸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냐? 너 말단이라며?”

“아… 저는 보급계라 몰래 하나 슬쩍했습니다. 헤헤.”

사내가 멋쩍게 웃었다. 눈물 콧물, 코피로 범벅인 얼굴로 웃는 꼴이 괴상하다.

“쩝, 준다니까 고맙게 받으마.”

고병갑이 반지를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내의 얼굴에 화색이 돋는다.

“그럼 저는 살려 주시는 겁니까?”

“어, 내가 죽이지는 않을 거야.”

“가, 감사합니……! 예? 방금 뭐라고?”

「오르카, 이놈 쇠사슬 몇 겹 더 감아서 숲에 던져 놔.」

「예!」

“뭐, 뭐라고 한 겁니까? 예? 뭐, 뭐야!? 가까이 오지 마! 으아악!”

“엄한 사람 몬스터 밥으로 던져 줄 때 네가 잡아먹힐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어야지.”

“야, 이 개새끼야! 다 말했잖아! 살려 줘, 살려 달라고!”

“내일 동틀 때까지 살아 있으면 한번 재고해 보마.”

고병갑은 매정하게 돌아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숲에선 사내의 백골마저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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