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81화 (81/151)

81. A랭크에 도전하다

「허억, 허억!」

「헐떡일 때가 아니다! 막아라, 투르카!」

「알겠습니다! 우워어어어!」

투르카가 앞으로 나서서 방패를 쳐들었다. 곧바로 숯처럼 새카만 주먹이 격돌했다. 쾅! 마치 포탄이 때려 박은 듯 굉음이 울린다.

공격을 날린 주체는 B급의 인간형 괴수 크러울. 2미터급 신장에 어깨는 대가리 세 개쯤 더 얹어도 될 만큼 넓다. 이목구비 하나 없는 대가리엔 악어의 것을 닮은 주둥이만 삐쭉 튀어나와 있었다.

놈이 후속타를 날리려 팔을 당겼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투르카가 방패를 세차게 밀었다.

“캬하학!”

큰 타격은 없었지만 문제없다. 처음부터 목적은 놈에게서 빈틈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으니.

투르카의 뒤에 숨어 있던 고병갑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가 두 손으로 쥔 검을 곧게 뻗었다.

크러울은 즉시 팔을 교차하며 막았으나 결과적으로 무의미한 짓이었다.

「뒤져!」

“캬학!”

내력이 버무려진 칼끝은 크러울의 카르마 배리어를 간단히 뚫고 들어갔다. B급 몬스터가 절단육이 되는 데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또 한 놈을 잡았으나 호수에서 물 한 컵 덜어 낸 것에 지나지 않다.

“캬하학!”

“키에엑!”

「원… 징글징글하네.」

어림잡아 스물쯤 되는 크러울이 각자 아가리를 쩍쩍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몬스터 진영과 아군의 진영. 대치한 두 진영 사이 분위기가 살얼음판이다.

고병갑은 발치에 너저분한 몬스터 시체를 거칠게 차 버리며 명령했다.

「대형을 흩트리지 마라! 전투 대형을 유지해!」

「알겠습니다!」

「키리얀, 도르마. 저 새끼들한테 먼저 한 방 먹여 줘라. 이왕이면 화끈한 거로!」

「그럽죠!」

「알겠습니다!」

사방에 암흑 창과 전격 화살이 생성됐다. 이쪽에서 이상 기류가 맴돌자 크러울 때는 즉각 반응했다.

쇠 긁는 소리를 뱉으며 일제히 달려든다. 하위 몬스터 나부랭이와는 그 기세부터가 다르다. 섬뜩한 아우라에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다.

「쏴!」

그가 소리치자마자 수십 발의 투사체가 발사됐다. 격한 고성과 함께 땅 곳곳에서 파편이 튄다. 하나 그런 위력적인 공격을 쏟아부었음에도 적들의 전진을 완전히 저지할 수는 없었다.

만약 저것들이 하위 몬스터였다면 좀전의 공격으로 싹 뒤져 버렸을 터. 그러나 눈앞의 상대는 이제껏 상대해 왔던 겉절이들과는 근골부터가 달랐다.

“캬하학!”

「케르르륵!」

두 집단이 맞붙었다. 큰 파도와 파도가 부닥치니 거센 파동이 일었다.

수적으로는 이쪽이 열세다. 하지만 그게 속절없이 쓸려 나갈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이쪽에는 고병갑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으니까.

‘정면 두 놈 먼저. 측면 세 놈은 한 번에 벤다.’

빠르게 계산을 마친 고병갑은 공식대로 움직였다. 그의 발은 저절로 보법을 밟고 팔과 허리는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였다.

내력으로 도포된 장검이 빛을 번뜩인 순간 곳곳에서 핏방울이 번졌다.

눈 깜짝할 사이 사지육신과 이산가족이 된 크러울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바닥을 나뒹굴었다.

고병갑은 잠시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곁눈질하며 전황을 살폈다.

그는 고블린들을 전적으로 신임하고 있었지만 강자와의 싸움이란 언제 어떻게 비명횡사할지 모르는 것이다.

이 괴물들은 타고나기를 전투 달인으로 타고난지라 고블린들이 암만 심기일전해도 허점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쿠억!」

아니나 다를까, 귓전으로 아군의 신음이 들렸다. 투르카의 허벅지가 붉게 물들어 있다. 큰 부상은 아니다.

투르카는 곧장 몸을 털어 크러울을 떨쳐 냈다. 그러자마자 암흑 구체가 날아들어 놈을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다. 뒤이어 열이 오른 투르카가 놈을 완전히 끝장냈다.

바몬드가 서둘러 치유의 권능을 부렸다. 고병갑은 크러울의 목을 피 뿜는 분수 비스무리한 걸로 만든 뒤 소리쳤다.

「바몬드, 힘을 아껴라! 큰 상처가 아니면 내버려 둬!」

「아, 알겠습니다!」

자잘한 상처는 운기조식으로 자가 회복이 가능하다. 바몬드가 애먼 곳에 힘을 다 써 버리면 진짜 시급할 때 발만 동동 구를 수 있다.

고병갑이 매의 눈을 하고 시야각을 넓게 잡았다. 남은 적은 다섯 마리.

‘애들이 많이 지쳤다. 내가 맡아야 해.’

고병갑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내력을 끌어 올렸다. 방출된 내력이 검에 실려 폭풍을 만들어 냈다.

“캬하하학!”

「흐아아!」

야구 배트를 휘두르듯 크게 휘두른다. 검기가 곧고 빠르게 쏘아졌다. 정면으로 달려오던 크러울 세 마리는 초승달 검기에 꼼짝없이 이등분됐고, 나머지 두 마리는 어찌어찌 피해 냈다.

물론 피해 냈다는 것이 후속타까지 피해 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캬학!”

벼락처럼 날아든 검이 크러울을 사선으로 갈랐다. 한데 놈은 몸이 반 토막 났음에도 주먹을 날렸다.

초근접 상태인지라 도저히 피할 각이 나오지 않았다.

‘경화.’

급한 대로 몸을 경화시켜 방어한다. 시커먼 주먹이 왼뺨에 냅다 꽂혔다. 둔탁한 통증이 일긴 했으나,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었다.

최후의 공격을 날린 크러울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키햐아아악!”

마지막 한 놈이 비수처럼 다듬은 손날을 찔러 왔다. 상당한 양의 카르마가 손끝에 집결해 있었다.

저거에 찔리면 아무리 경화 능력이라도 꽤 아프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려니 암흑 구체와 전격 화살이 놈의 몸뚱이를 때려 박았다.

“쿠하학!”

놈의 몸이 한껏 휘청였다. 고병갑은 부하들이 만들어 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칼날은 한 획에 한 덩어리씩 절단육을 만들어 냈다.

“쿠어…….”

또 한 차례의 전투가 끝났다. 이면 세계에 남은 것은 비릿한 피 내음과 묘한 정적이었다.

고병갑은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들여보았다. 오전 11시 37… 38분.

‘균열에 들어온 지 거의 4시간째인데 아직 절반도 못 왔다니.’

평소였다면 B랭크 균열 하나 뚝딱 박살 내고 국밥 때리고 있을 시간이다.

A랭크 균열은 통상 350마리 이상의 몬스터를 품고 있다. 이제껏 크러울 150마리는 잡았다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다친 녀석 없……! 아니, 없을 리가 없지.」

공격대 인원들은 크건 작건 몸에 상처 하나씩은 새기고 있었다.

가장 크게 다친 건 아무래도 방패잡이들이었다. 창식과 태식은 근접 공격수였음에도 특유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치명상은 면한 듯했다.

고병갑은 두 자이언트 고블린에게 포션을 나누어 주고 나머지 인원에게는 운기조식하라고 일러두었다.

사실 매 전투 포션과 경단을 나누어 주며 대원들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고병갑은 속된 말로 부하들을 빡세게 굴리고 있었다.

‘급속히 성장하려면 적절한 고난이 필수 불가결한 법이지.’

최근 고블린들의 교본 성취율이 더디게 오른 까닭은, 처리하는 일이 너무 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하위 몬스터와 싸우는 일이 누워서 떡 먹는 것과 비슷한 난이도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성장을 위한 충분한 동력을 뽑아내기엔 아무래도 땔감이 부족했다.

게임처럼 강한 몬스터 잡는다고 경험치가 뚝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실제로 비슷한 원리가 작용하긴 했으니까.

「다들 튀어나와라. 일할 시간이다.」

고병갑은 아스빌람으로 통하는 문을 열었다. 커다란 타원형 통로에서 노멀-홉 고블린들이 우후죽순 튀어나왔다.

「알지? 후딱 해치우는 거다. 자, 서둘러라. 서둘러.」

「옙!」

「옮기자!」

고병갑이 일꾼들을 닦달했다. 남 일하는 옆에서 재잘재잘 보채는 게 참 꼴불견 짓이긴 하다만 어쩔 수 없다.

여긴 A랭크 균열이지 않은가? 아주 위험한 장소란 말이다. 평소처럼 쉬엄쉬엄할 여유가 없다.

그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전투의 흔적을 훑었다.

‘생각보단 순조롭다. 애들도 잘 따라오고.’

A랭크 균열의 경우 S급 서넛이나 S급 한둘에 상위 헌터 여럿으로 이루어진 토벌대가 공략하는 게 일반적이다.

뭐가 됐건 S급 헌터는 꼭 필요했다. 그들이 공략대의 중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병갑은 중추 역할을 꽤 잘 수행했다. 공격대원들도 악바리처럼 따라붙었고.

‘그래도 애들이 퍼지면 곤란하니까.’

「바몬드.」

「아. 예… 예, 로드시여.」

「배낭에서 육포 꺼내서 애들 나누어 줘.」

「육포 말입니까? 그러겠습니다.」

바몬드가 메고 있던 배낭을 열었다. 검은 비닐봉지가 나왔고, 그 안에서 다시 육포 조각이 나왔다.

‘골드 드래곤 고기’를 육포로 만든 것이다. 참고로 골드 드래곤 고기는 원기 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지녔다. 비싸긴 해도 돈값은 확실히 했다.

공격대원들이 육포 한 조각씩 뜯어먹는다. 그들에게 녹아 있던 지친 기색이 싹 사라졌다.

「로드시여, 운반 작업 다 끝났습니다.」

「어, 그래, 육붕아. 빨리 끝냈구나. 잘했다.」

「헤헤, 아닙니다.」

팔에 완장을 찬 작업반장 녀석이 헤헤 웃었다.

「자, 얼른 애들 데리고 돌아가.」

「옙! 좀 있다가 다시 뵙겠습니다. 고생하십시오!」

「오냐. 공격대 전부 일어나라, 움직이자.」

「예! 알겠습니다.」

진행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으니 서두를 필요가 있다. 그들은 10여 분 정도 짧게 휴식을 취한 뒤 토벌을 속행했다.

* * *

몬스터 사체가 쌓여 갈수록 몸을 덮는 상처도 늘어난다. 팔다리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폐는 발작을 해댔다.

피와 오물, 땀이 뒤섞인 몸에선 역겨운 악취가 내풍겼다.

「하악, 하악!」

「허억, 허억…….」

공격대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이마에 떡하니 쓰여 있었다.

「힘드냐?」

「아, 아닙니다!」

「아니기는. 숨을 그렇게 헐떡이면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

「예!」

이제 곧 보스가 나타나리라. 고병갑은 공격대원들에게 충분할 만큼 육포와 포션을 나누어 주었다.

‘4시 19분. 이제 슬슬 나오겠군.’

고병갑 일행은 부지런히 이면 세계를 전진했다. 늑장 부리다가 해라도 저물면 이래저래 곤란하니까.

그리고 얼마 뒤 기대하고 고대하던 보스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모습을 드러냈다는 표현은 조금 부적절했다.

‘레이븐이다!’

레이븐. 클로킹 능력이 있는 까다로운 몬스터다.

보스를 보좌하는 부하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도 레이븐이 날리는 눈먼 공격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뭉쳐!」

「뭉쳐라!」

「대형을 바꿔! 십자 대형으로 서는 거다!」

「옙!」

원거리 딜러 두 명, 힐러 한 명이 중앙에서 보호를 받는다.

투르카와 오르카, 그리고 창식과 태식이 각자 한 방위를 맡고 섰다.

고병갑은 대형의 제일 앞에서 레이븐을 주시했다. 일순 놈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서서히 배경과 겹쳐졌다. 클로킹 능력을 사용하는 것이다.

「다들 기척에 집중해라. 눈으로 좇다간 늦는다!」

「알겠습니다!」

레이븐을 비롯한 몬스터 무리가 밀어닥쳤다. 고병갑은 그 사이에서 레이븐의 자취를 쫓았다.

공간의 울렁임. 그것을 놓치지 않고 즉시 튀어 나가 검을 휘두른다.

파각! 허공에 불씨가 튀더니 레이븐의 모습이 드러났다.

「넌 나랑 놀자, 개자식아!」

“하아아악!”

이번 토벌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다.

고병갑은 집요하게 레이븐을 붙잡고 늘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놈을 고블린들에게 보내서는 안 될 일이다.

단순 전투력만 따지면 고병갑이 레이븐을 압도했다. 하지만 전투는 쉽사리 결판나지 않았다.

레이븐, 이 영악한 괴인은 자기 힘이 밀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병갑의 주의를 분산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공격 후 재빠른 은신, 그리고 후퇴.

부하 몬스터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서 재차 공격. 놈은 노련한 아웃복서 같았다.

“이 염병할 새끼가, 감히 성질을 살살 긁어!”

고병갑이 넓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칼날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공간의 일렁임과 함께 레이븐의 기척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고병갑은 놈의 후속타에 대비하기 위해 곧장 자세를 가다듬었다.

한데 레이븐의 기척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공격대원 쪽이었다.

‘제길!’

현재 공격대는 부하 몬스터를 막아 내는 것이 한계였다. 레이븐의 눈먼 공격을 받아 낼 여력이 없을 터!

‘이대로면 당한다!’

고병갑도 서둘러 몸을 돌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꿈틀거리는 공간. 거기서 불현듯 뾰족한 송곳 팔이 튀어나와 투르카를 향해 뻗어 나갔다.

적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일러두었음에도 투르카는 그 공격을 알아채지 못했다.

고병갑이 이를 빠드득 갈며 몸을 날렸다.

콰직!

“……!?”

「끄으으… 잡았다, 이 망할 놈.」

그는 가까스로 투르카 앞을 막아섰다. 송곳 팔이 그의 어깨를 조금 파고들었다.

레이븐은 즉시 몸을 빼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고병갑이 놈의 팔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아악!”

「하악대지 말고 뒤져.」

그가 검을 휘둘렀다. 검에는 어마어마한 내력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분쇄(粉碎)

검기 폭풍이 레이븐을 비롯한 주변 몬스터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캬하학!”

“컥!”

그것에 맞은 놈들은 아주 가루 단위로 쪼개지며 비명횡사했다.

「로, 로드시여! 괜찮으십―」

「싸움 아직 안 끝났다! 끝까지 집중해!」

「예, 옙!」

고병갑 일행은 근면 성실히 잔당을 소탕했다. 레이븐이란 복병이 사라졌으니 그까짓 일은 금방 끝났다.

오후 4시 59분.

장장 9시간에 걸친 A랭크 균열 토벌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 * *

「모두 고생 많았다.」

「로드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냐, 하여간 무탈하게 끝나서 정말 다행이다. 다들 몸을 치료하고 쉬도록 해. 밥도 많이 먹고. 이따 밤에 다시 오마.」

「옙!」

토벌이 끝났다. 고병갑은 잠시 아스빌람에 들러 인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몸을 씻었다.

다시 바깥으로 나오니 하늘이 어둑어둑했다. 그가 바깥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후우……. 후흐, 후흐흐! 푸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나! 정말로 A랭크 균열을 토벌하는 데 성공하다니. 이게 말이 되나?

몸은 녹초였지만 뇌에선 폭죽이 마구 터졌다. 성취에서 오는 쾌감이었다.

비단 성취감이 보상 전부가 아니다. A랭크 하나를 돌면 못해도 7천만 원은 나온다. 평소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을 하루 만에 벌어들인 것이다!

고병갑은 축배를 드는 대신 담배를 태웠다. 담배 맛이 그 어떤 때보다 달콤했다.

‘얼른 서울 가서 국밥 한 그릇 때리자. 배고파 죽겠네.’

얼른 차에 올라탔다. 서울 도착하면 빨라도 8시 이리라. 서울에 가서 밥을 먹을지 가는 길에 먹을지 고민하며 차 바퀴를 굴렸다.

“이놈의 시골길은 무슨 가로등 하나가 없어.”

아직 한밤인 건 아니다만 주변이 온통 산이고 가로등이 없으니 상당히 어두웠다. 믿을 거라곤 전조등 불빛뿐이다.

그렇게 조심 조심히 차를 모는데 한순간 주위가 훤해졌다. 그리고 대략 3초 후. 어마어마한 굉음이 달팽이관을 후벼 팠다.

펑! 퍼퍼펑!

“뭐, 뭐야!?”

차체가 마구 떨리고 유리창은 비명을 질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소리 난 곳을 쳐다보았다.

이윽고 그의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셨다.

“야, 야야, 시발!”

왼편 가드레일 너머였다. 넓은 분지와 그 위에 지어진 발전 단지가 보였다. 아침에 지나치면서도 봤던 곳이다.

한데… 그 발전 단지에서 어마어마한 화염이 치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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