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79화 (79/151)

79. 사라온

「사라온?」

고병갑이 반사적으로 되뇌었다.

‘사라온이란 게 고블린의 진명(眞名)인가?’

그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그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고블린’이 진짜 이름이 아닌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물으려 했는데 깜빡했네. 그게 너희의 진짜 이름이냐? 고블린이 아닌?」

「고블린은!」

메리린이 급발진하는 것처럼 외쳤다.

「고블린은… 모욕적인 별명입니다. 추잡한 앞잡이들이 우리를 조롱하려 부르는 명칭이란 말입니다! 가령 인간 같은 놈들이…….」

그녀가 말을 흐리며 고병갑의 눈치를 살폈다.

「당신… 아니, 로드를 두고 한 말은 아닙니다.」

「됐다. 그보다 앞잡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야?」

「아까 들려 드렸던 전쟁사의 연장선입니다. 우리 사라온이 신성 전사와 전쟁을 벌일 때 지상의 모든 아인은 우리를 등졌습니다. 그들은 본래 우리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혜도 모르고 감히 창칼을 겨눈 겁니다!」

메리린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눈은 분노로 불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석판에서 비슷한 걸 읽었지.’

사원의 석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한때 뜻을 함께했던 모든 종족이 등을 돌렸다.

위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다음과 같은 상황이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먼 과거, 이 대륙에는 여러 종족이 모여 살았다. 그들은 사라온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며 지냈을 것이다.

은혜 어쩌고 하는 것을 보면 사라온이 타 종족에게 여러 도움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한데 ‘신성 전사’라는 것들과 전쟁이 벌어진 이후 타 종족은 사라온을 외면했던 것 같다. 쉽게 말해 강한 쪽에 붙은 것이다.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힘의 논리라는 게 보통 그런 법이니까.

‘전쟁에 관해서는 따로 얘기해야겠군.’

「뭐, 그 이야기는 그쯤하고. 네가 듣고 싶은 걸 들려줘야겠지. 도르마.」

「예, 로드시여.」

「들려줘.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알겠습니다.」

지금껏 잠자코 있었던 도르마가 목을 가다듬었다. 메리린은 짐짓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흘겨보았다.

「정확한 시기는 모르지만 아스빌람은 멸망을 맞이했소.」

도르마가 서두를 텄다.

그의 이야기는 한동안 이어졌다. 고병갑은 이미 한 차례 들은 내용이었다.

아스빌람이 멸망했고, 여성을 잃은 고블린들은 멸족을 면하기 위해 주술의 힘을 빌렸다.

주술로 어찌어찌 명맥만은 유지했으나 대를 거듭할수록 고블린은 열등해졌다. 또한 머릿수도 점점 줄어들기만 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 도르마는 ‘몇백 년’이란 표현을 썼다.

어느덧 고블린은 옛 모습을 싹 잃고 지금과 같은 추악한 형태로 변했다. 그들은 구심점을 완전히 잃었고, 대륙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야기가 거기까지 흘러갔을 무렵, 메리린은 사력을 다해 현실을 부정했다.

「우… 우리 사라온이, 지덕체로 지상에 당해 낼 종족이 없던 우리가 그대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고? 마, 말도 안 된다. 난 믿을 수 없어!」

「믿지 않으면 어쩌겠소? 내가, 그리고 저 밖에 있는 수많은 동족이 시대의 증거물인데.」

「아아…….」

메리린이 이마를 짚었다. 눈에 지진이라도 난 듯 동공이 떨렸다.

「나는 사라온이란 이름도 처음 들었소이다. 진명조차 잊고 스스로를 고블린이라 부른 것이지. 이실직고하면 나는 사라온보다 고블린이란 이름에 더 익숙하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구나.」

「이해하오. 당신은 과거에 살았고, 나는 현재를 살고 있으니까.」

이야기는 계속됐다.

고블린들은 짐승과 크게 다를 것도 방식으로 삶을 영위했다. 그리고 그 무렵 지상계가 쑥대밭이 됐고, 고블린들은 ‘무시무시한 무언가’에게 쫓겼다.

「무시무시한 무언가라니? 그건 또 뭐란 말이냐?」

「모르오, 나 역시 기억이 온전치 않소. 다만… 그건 악몽 그 자체였소.」

도르마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이어 말했다.

「이곳엔 정령 여인이 한 명 있소. 그녀가 말하길 악마가 지상계를 침략해 끝내는 천상까지 차지했다고 하더이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이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때 우리를 쫓던 게 악마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악마라고?」

메리린이 인상을 확 구겼다.

「헛소리! 지하계에 서식하는 사념 덩어리가 무슨 재주로 지상계를 침략한단 말이냐?」

「그러니 나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한 것이오.」

「그 정령이란 게 누구냐? 이 자리로 불러라!」

「내게 말해 봤자 소용없소. 로드의 허락을 구하시오.」

메리린이 몸을 흠칫 떨더니 고개를 돌려 고병갑을 보았다.

「그 정령 여인이란 자가 누구입니까? 좀 불러 주십시오. 자초지종을 물어야겠습니다!」

「너도 아까 봤어.」

「제가 봤다고요?」

「그래, 내가 널 패대기쳤을 때 날 말렸던 애가 정령이야. 이름은 에아고.」

메리린은 눈을 몇 바퀴 굴리더니 곧 에아를 떠올렸다. 그녀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그게 정령이었다고?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란 말인가?」

「지금 걔를 불러 줄 순 없다. 내일 해가 밝으면 그때 물어보도록 해.」

고병갑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니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이만하면 충분히 정보를 공유했다. 부족한 게 있어도 나중에 하면 된다. 오늘만 날인 건 아니니까.

「밤이 늦었다. 오늘은 이만 자리를 무르자. 도란.」

「네, 로드.」

「오늘은 당직에서 빠지고 메리린을 데리고 가서 함께 자라.」

「저… 저 여자랑 같이 자라고요?」

도란이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러나 고병갑이 그득하게 쳐다보자 못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다들 물러가도록 해.」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로드시여.」

「안녕히 주무세요. …너는 나 따라와.」

「아, 으응. 가자꾸나.」

세 고블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저녁 문안을 올리고 물러났다.

고병갑은 메리린이 문을 나서기 전 그녀를 불렀다.

「메리린.」

「아… 네, 말씀하십시오.」

「많이 심란하다는 거 안다. 그래도 며칠간 푹 쉬면서 마음을 잘 추스르도록 해. 지내면서 불편한 게 생기면 언제든 말하고. 가능한 한 최대한 편의를 봐줄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 가서 쉬어라.」

「쉬십시오.」

세 고블린이 사라지고. 고병갑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렵네.’

손에 쥔 게 많아질수록 어깨는 무거워진다. 새삼 그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애써 초연한 척하지만 그도 아직은 어린 애송이였다.

하지만 결코 무너질 수 없었다. 무너지려면 진즉 무너졌어야지. 고병갑은 오늘도 자신을 담금질했다.

다른 한편.

도란, 도르마, 메리린. 세 고블린은 집을 나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메리린은 어둠이 내리 앉은 발타드렌을 놀란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녀는 내심 감탄했다. 생각보다 잘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눈길을 돌려 앞서 걸어가는 도란을 보았다. 도란은 자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왜인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자네, 도르마라고 했나?」

그래서 옆에 선 도르마를 불렀다. 도르마는 덤덤하게 반응했다.

「그렇소.」

「그 사내는 신용할 수 있는 자인가?」

「그 사내라니? 혹시 로드를 일컫는 것이오?」

「그렇다.」

도르마의 눈이 꿈틀거렸다.

「호칭이 이상하구려. 앞으로는 말을 높이도록 하시오.」

「너희는 진정으로 그를 믿는 것이냐? 인간 사내를?」

「안 믿으면 어쩔 거요? 그리고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소? 그분은 우리의 로드이시오.」

메리린은 크게 한숨을 뱉어 내더니 대답했다.

「나는 타 종족을 믿지 않는다. 특히 인간은 아인 중에서도 가장 영악하고 비열하다. 우리 사라온이 번영할 때는 살살 알랑방귀를 뀌다가 위세가 기우니 가장 먼저 등을 돌린 것이 그네들이란 말이다. 전쟁 중에 적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한 것도 인간이고!」

「…….」

「그자가 무슨 사술을 부려 제왕의 기개를 계승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자도 인간인 이상 언젠가 우리를―」

「그만.」

도르마가 우두커니 멈춰 섰다.

그 순간이었다.

‘헉!?’

메리린은 어마어마한 살기를 느꼈다. 어찌나 농밀한지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메리린은 만다라 기사단의 부단장을 역임하며 수많은 적을 상대해 왔지만 이토록 어두운 기운은 본 적도 없었다.

살기를 내뿜는 주체는 도르마였다.

그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메리린을 쏘아보았다. 메리린은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도란이 화들짝 놀라며 말리고 나섰다.

「야야! 하지 마! 우리끼리 싸우기라도 하면 로드가 화내신다고!」

「내 경고 하나 드리리다. 다시는 내 앞에서 그분의 흉을 보지 마시오. 내게 걸리지도 말고. 나는 내가 모시는 분만큼 인자하지 못하니까.」

「윽…….」

「야, 바보야! 그만 좀 하라니까!」

도란이 버럭 소리치니 그제야 도르마가 살기를 거두어들였다. 하지만 입은 계속 움직였다.

「당신 머릿속이 무엇으로 그리 복잡한지 모르겠다만 우리에겐 그분뿐이오. 뿔뿔이 흩어져 짐승처럼 살고 있던 동족을 모아 적어도 등 따시고 배부르고 죽음의 위험 없이 살 수 있게 해 준 분이 지금의 로드란 말이오. 당신이 말하는 제왕이 아니라!」

메리린은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만 입술을 씹었다.

그러고 있으려니 도르마가 획 몸을 돌렸다.

「나는 이 방향이니 이만 가도록 하겠소. 잘 자시오, 도란.」

「…어, 어. 고생해라.」

도르마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 여인은 그 방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쟤 저렇게 화내는 거 처음 보네. 평소엔 말도 잘 안 하면서…….」

도란이 짐짓 소침한 기세로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번뜩 메리린을 째려보며 크게 말했다.

「그런데 쟤 말이 맞아. 로드 흉보지 마!」

「아, 아니. 도란아. 나는 그저…….」

「시끄러! 따라오기나 해!」

그녀가 씩씩거리며 앞서 나갔다. 메리린은 얼른 그녀를 쫓으며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나는 단지 걱정돼서 그런 거란다. 종족의 사활이 걸린 일이잖니. 사라온의 명운을 타 종족, 그것도 인간의 손에 맡기는 건 옳지 않아. 제왕께서도 이런 상황을 예견하신 건 아닐 거야.」

「아! 제왕이니 뭐니 그딴 거 난 몰라. 그리고 로드가 우리랑 다른 게 뭐가 문제인데? 로드는 그냥 로드야!」

「그치만…….」

「로드는 훌륭하셔. 그래서 다들 로드를 따르는 거고. 물론 조그만 바보들은 아무 생각 없는 것 같지만… 아무튼 다들 로드를 좋아해!」

「다들 그자를 좋아한다고?」

「그자가 아니라 로드라니까!」

메리린이 곤란한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그녀에게 로드란 오직 제왕 랜드리올뿐이었다.

다른 누군가를 주군으로 모시는 건 상상도 안 해 본 일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고집부리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그 인간 사내도 제왕의 기개를 지니고 있으니까.

그녀가 몇 번이나 입술을 벙긋거리다가 체념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라온들이 지금의 로드를 좋아하니?」

「당연하지!」

도란이 양옆으로 가지런히 들어선 주택들을 가리켰다.

「이거 다 로드가 지어 주신 거야.」

「이, 이걸 다 말이니?」

「그래! 어디 그뿐인 줄 알아? 로드는 우리를 먹이려고 매일 고기를 가지고 오셔. 성벽 밖에 괴물이라도 나타났다 치면 가장 앞장서서 싸우는 것도 로드고.」

도란은 내친김에 며칠 전 그러글의 공습 사건을 이야기했다.

일천이 넘는 괴물 때가 몰려왔지만 고병갑의 활약으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완승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메리린의 표정이 차츰 오묘해졌다.

좀 전의 도르마도 그렇고 도란이 해 준 이야기도 그랬다. 고병갑이란 사내가 사라온을 위해 헌신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메리린은 그를 인정했다.

「…그렇구나. 그분은 성군이시구나.」

「맞아, 너도 곧 로드를 좋아하게 될 거야.」

「그런데 도란아.」

「왜?」

메리린이 조금 뜸을 들였다.

「너는 옛날에 나를 대모님이라고 부르며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했단다. 그런데 지금의 태도는 조금 낯설구나. …혹시 그때처럼 해 줄 수는 없겠니?」

「앙?」

도란은 몇 초간 눈을 끔뻑이더니 인상을 확 구겼다.

「뭐래! 따라오기나 해!」

결국 메리린은 존댓말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 * *

이튿날이 밝았다.

일몰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는 없지만 고블린들은 부지런히 일어나 일과를 준비했다.

「식사하세요! 식사하세요!」

대신 에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아침을 알렸다. 고블린들은 식당에 모여들어 아침밥을 먹었다.

「어! 로드 왔네. 로드, 밥 먹어.」

「로드시여, 진지는 잡수셨습니까? 함께 식사하시지요.」

고블린들이 고병갑을 보자 인사를 해댔다. 고병갑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됐다, 너희나 많이 먹어라. 난 그런 거 안 먹는다.」

이제는 고블린들과 덧없이 지내는 그였지만 단 두 가지, 아직 허물지 못한 벽이 있었다.

고블린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과 그들의 밥을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건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했다.

고병갑은 커다란 포대 자루 하나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에아, 설탕 떨어졌다고 했지? 이거 어디 놓으면 돼?」

「아! 이쪽이에요! 웬일로 직접 들고 오네요?」

「야… 웬일로는 무슨 웬일로야.」

‘…….’

메리린은 한쪽 벽에 기대 그의 모습을 주시했다.

그녀가 이번엔 식당 내부를 쓱 둘렀다. 사라온들이 두런두런 모여 앉아 웃고 떠들며 밥을 먹는 중이다.

식기와 음식이 정갈하다. 몸과 의복은 깨끗했다.

그녀의 얼굴에 생각이 많아졌다.

얼마 후 주방에서 고병갑이 도로 나왔다. 메리린은 즉시 그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 너도 있었네. 잠은 잘 잤냐? 어디 불편하진 않았고?」

「…….」

「도란은 어디 갔나 보지? 아무튼 얼른 앉아서 밥 먹어라.」

「…….」

고병갑은 메리린을 발견하곤 인사치레를 건넸다. 한데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메리린은 입을 앙다물고 고병갑과 눈을 맞출 뿐이었다.

‘얘가 아침부터 왜 이래?’

그의 마음에 불안함이 싹텄다. 그때 메리린이 불쑥 한쪽 무릎을 꿇더니 고개를 조아렸다.

식당 안의 시선이 자연히 이쪽으로 몰렸다.

「너 뭐 하냐?」

「저의 지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뭐?」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당신을 믿지 못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건 저의 그릇된 판단이었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표정에서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소녀 메리린, 그대를 위해 여생을 바칠 것을 맹세하겠습니다. 부디 저를 신하로 받아 주십시오, 로드시여.」

「얘는 사람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고병갑은 떨떠름하게 웃으며 그녀를 일으키려 했다. 하나, 그녀는 일어나지 않고 버텼다.

「됐어. 됐으니까 얼른 일어나.」

「아직 대답을 못 들었습니다.」

「허!」

그가 기가 찬 눈빛으로 메리린을 내려보았다. 메리린은 돌처럼 굳건했다.

포기한 고병갑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여생을 바치든 말든 그건 너 알아서 하고… 식구가 된 걸 환영한다, 메리린.」

「저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그래.」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메리린은 그제야 몸을 일으키며 좋아했다. 고병갑은 광신도가 또 하나 늘었구나, 생각하며 얼른 식당을 빠져나갔다.

다른 한쪽에선 도르마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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