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74화 (74/151)

74. 큰 전투

고병갑은 관심 없는 척 게시판에 붙은 모집 공고를 흘겨보았다.

‘두당 현상금이 5억이라고? 심지어 생포하면 15억이네.’

뉴스에 따르면 발전 단지를 습격하는 괴한의 수는 네다섯 명. 빠르게 산수를 해 본다.

‘다섯 명이라 가정하면 사살 시 25억, 생포하면… 75억!’

75억이라는 금액에 입이 떡 벌어졌다.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가 아니던가?

사실 현재 고병갑의 수익은 나쁘지 않았다. 한 달에 5일 이상 쉬지 않고 균열을 돌고 있으니 적게 잡아도 월 수익이 3억은 됐다. 상류층이라 부름에도 손색없는 수준.

평범한 D급 헌터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수십 배 이상의 돈을 벌고 있지만 그래도 75억이란 액수는 선뜻 와닿지 않았다.

그는 밀크 커피를 홀짝이며 한동안 게시판 앞에 서 있었다.

‘쩝, 나랑은 상관없는 일인가.’

떫은 입맛을 다시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물론 많은 돈을 벌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능력 밖의 일을 하겠다고 덤벼 봤자 뒷맛만 쓸 뿐이다.

‘내가 S급짜리 괴한을 무슨 수로 잡을 거야? 당치도 않지.’

괴한은 B급 헌터 20명도 단숨에 제압하는 실력자다. 자신이 팔 걷고 나선들 제압당하는 ‘엑스트라 1’에 지나지 않으리라.

‘…뭐, 영혼 계열 상품을 사용하면 어떻게 비빌 수야 있겠지만.’

대기석에 도로 앉으며 짧게 과거를 회상했다. 이북 원정에서 발록을 만났을 당시였다.

발록은 그가 속했던 C조를 궤멸 직전까지 몰아넣었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선 순간, 고병갑은 ‘트로바틴의 영혼’이란 상품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때 사용했던 기술과 감각, 아무리 재현해 보려고 해도 되지 않았지.’

영혼과 동화가 풀린 이후 아무리 노력해도 그때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이를테면 넘지 못할 거대한 벽 앞에 선 것이다.

‘상급 교본으로 넘어가면 어떻게든 실마리가 풀릴 것 같은데 말이야.’

띵동!

“132번 고객님!”

멍하니 상념에 잠겨 있자니 자신의 순서가 됐다. 고병갑은 마석이 잔뜩 담긴 보따리를 챙겨서 데스크 앞으로 이동했다.

대략 20분 정도. 번거로운 정산 절차가 끝나고 정산금을 지급받았다. 오늘 하루 B랭크, C랭크 균열을 돌고 얻은 돈은 1,500만 원 정도였다.

평범한 직장인 몇 달 치 월급에 비견되는 액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어머니 병원비로만 매달 5,000만 원 정도의 지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사지 멀쩡할 때 최대한 많은 돈을 뽑아내야 했다.

“그러니까 더 부지런히 균열을 돌아야지.”

괜히 일확천금을 노리기보단 부지런한 개미가 되는 편이 낫다. 고병갑은 피어오르는 잡념을 떨쳐 냈다.

* * *

“푸우우우!”

B급 몬스터 샤프디어가 날카로운 뿔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샤프디어의 패턴은 파악했다. 놈의 패턴은 강약강중강…….’

“푸우우우!”

“으악!”

장난은 집어치우자. 고병갑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몸 깊숙한 곳부터 내력을 폭발시켰다. 뿔을 맞대고 있던 샤프디어는 그 여파에 휩쓸려 튕겨 나갔다.

놈이 무방비가 된 틈을 놓치지 않는다. 고병갑은 벼락처럼 달려들어 놈의 옆구리를 그었다.

“뀌이이에엑!”

“찌릿하지?”

살갗이 벌어지며 뜻밖의 장기 자랑이 펼쳐졌다. 바닥에 엎어져 버둥거리는 거구의 괴물 사슴. 고병갑은 껑충 뛰어오르며 검을 거꾸로 잡았다.

쑤컹!

뚝 떨어진 칼이 샤프디어의 목을 관통했다. 그 상태로 세차게 그어 버리자 목이 뚝 떨어진다. 샤프디어는 슬픈 눈망울로 몇 번 움찔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고대 검술 교본-중급’을 완전 습득하였습니다.]

[‘고대 육체 단련술 교본-중급’을 완전 습득하였습니다.]

“그렇지!”

중급 교본 두 개가 드디어 완전해졌다. 초급 교본과 비교하면 꽤 오래 걸린 셈이다.

‘이걸로 상급 교본을 익힐 수 있게 됐어.’

그가 흡족하게 웃으며 뒤쪽 상황을 살폈다. 공격대 인원들이 부하 몬스터를 정리하고 있다. 이제 하위 몬스터는 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잔당 소탕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고병갑은 일꾼들을 불러내 몬스터의 사체를 옮기게 했다.

담배를 한 대 물고 공격대에 다가가 물었다.

「너희 교본 성취율이 어느 정도 되냐?」

「저는 7할 정도 익혔습니다.」

「저도 그 정도입니다.」

고블린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듣자 하니 성취율 63~75% 사이에 포진하고 있었다.

「요새는 통 오르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괴물 수십을 상대해도 조금 오를까 말까 합니다.」

‘맞아, 저 구간부터 더럽게 안 오르지.’

성취율이 60%를 넘기면 진행이 더디다. 그나마 빠르게 성취율을 올릴 방법은 더 강한 적과 싸우는 것뿐.

하지만 B급 이상의 상위 몬스터는 항상 고병갑이 맡았다. 고블린들이 다칠까 걱정됐기 때문이다.

‘이제 공격대 애들은 못해도 B급 중상은 될 실력이야. 애들 성장을 위해서라도 슬슬 A랭크 균열을…….’

고병갑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A랭크 균열에 들어가려면 S급 전력이 최소 하나는 있어야 하는데.’

A랭크 균열, B랭크 균열. 둘 다 상위권 균열로 취급되지만 동일 선상에 놓으면 곤란하다. 실질적인 난이도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B랭크 균열은 부하 몬스터가 하위 몬스터들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A랭크 균열은 다르다. 변종이나 던전처럼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부하 몬스터가 B급으로 이루어져 있다.

쉽게 말해 300마리가 넘는 상위 몬스터를 상대해야 한다는 소리. C급 300마리와 B급 300마리는 그 어감 자체가 다르다.

멋모르고 덤볐다간 단체로 요단강 직행 열차 타는 거다.

「돌아가자.」

「옙!」

고블린들을 돌려보내고, 자신도 아스빌람에 넘어간다. 강가로 가서 더러운 몸을 대충 씻어 낸 후엔 곧장 고대의 상점을 열었다.

[고대 검술 교본-상급]

-가격: 3,000 수정

-설명: 고대의 기술 중 ‘검술-상급’을 다룬 교본. 고대 기사단의 검술이 담겨 있다.

[고대 육체 단련술 교본-상급]

-가격: 3,000 수정

-설명: 고대의 기술 중 ‘육체 단련술-상급’을 다룬 교본. 고대 기사단의 육체 단련술이 담겨 있다.

도합 6,000 수정을 지불하고 교본 두 권을 사들였다. 교본을 손에 쥐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하급에서 중급으로 넘어갈 때 신세계를 한 번 맛보지 않았던가? 이번에도 그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까?

기대를 가득 안고 교본 각인을 시작했다.

[‘고대 검술 교본-상급’을 각인하시겠습니까?]

‘물론.’

속으로 승낙 의사를 밝히자 양피지로 이루어진 책자가 고병갑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방대한 지식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자 거북함이 온몸을 감쌌다.

‘젠장, 이건 도무지 적응이 안 되네.’

이 거북함이 싫지만 강해지는 대가가 고작 이거라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한다.

고병갑은 여세를 몰아 나머지 한 권의 교본까지 각인을 마쳤다.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새로 유입된 지식을 음미했다.

‘오호? 그런 게 가능하다고?’

육체 단련술 교본에서 엿본 기술이 흥미롭다. 고병갑은 교본의 지식에 기대 내력을 운용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내력을 팔에 가둔다. 그 뒤 공식에 맞춰 내력을 조작하니…….

“허! 진짜 되네?”

피부에 반짝이는 광택이 번졌다. 경화(硬化)한 것이다. 언뜻 봐도 경도가 강철을 상회했다.

내친김에 검으로 그어 본다. 아무리 가볍게 그었다지만 샤프디어의 뿔로 만든 예리한 날이 조금도 파고들지 못했다. 내력이나 카르마를 두르지 않는다면 웬만한 타격은 버텨 낼 성싶었다.

“대단한데?”

기존의 방어술보다 기능적으로도, 효율적으로도 우수했다.

이번에는 상급 검술이다. 그렇게 중얼거린 고병갑이 자세를 잡았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둥! 둥! 둥!

북문 쪽에서 별안간 북소리가 들려왔다. 고병갑은 그 소리에 담긴 의미를 누구보다 빠르게 파악했다.

‘위험 상황이라고?’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시 북을 치라고 교육한 게 바로 자신이었다. 고병갑은 당장 북문으로 달려갔다.

가까이 가니 고블린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글이 몰려온다!」

「성벽 밖에 누가 나가 있어? 그들에게 알려야 한다!」

「로드께 알려야 한다! 로드를―헉! 로드시여!」

「무슨 일이야!」

고병갑이 고함쳤다. 성벽 위에서 경계를 서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저 먼 곳, 직선거리로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새카만 무리가 보였다.

「웬 것들이 몰려옵니다! 그러글 같습니다!」

「염병! 저게 다 몇 마리야?」

언뜻 봐도 일천은 가볍게 넘길 듯했다.

고병갑이 이를 바득 갈았다. 그가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지시했다.

「성벽 밖에 나가 있는 녀석들부터 내성으로 불러들여! 성문을 걸어 잠그고 모든 방위의 성벽에 이 사실을 알려라!」

「알겠습니다!」

「도란은 어디 있어!」

「아마 서문에 있을 겁니다!」

고병갑이 서쪽으로 내달렸다.

서쪽 성벽 옥상에는 그녀가 없었다. 고병갑은 20미터 성벽을 훌쩍 뛰어내려 아래쪽 처소로 들어갔다.

그곳에선 도란과 에아가 나란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고병갑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서니 둘 다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로드?」

「당신? 왜 그렇게 숨을 헐떡여요?」

「도란! 지금 모든 전투 병력을 소집해서 무장을 갖추라고 전해!」

「대체 무슨… 아니, 네! 알겠어요!」

「병력을 끌고 북문으로 와!」

「네, 로드!」

도란이 쏜살처럼 튀어 나갔다. 에아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아, 아니.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래요? 나는 당신이 왜 그렇게 흥분했는지 모르겠어요. 뭔가 잘못된 건가요?」

「에아, 넌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고병갑이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물었다. 에아는 품에 든 소쿠리를 내보였다.

「그, 그냥 간식을 좀 나눠 주려고…….」

「성벽 쪽에 있지 마. 전투가 벌어질 거야.」

「전투요? 갑자기요?」

「그러글이 몰려오고 있다.」

그러글이란 단어에 에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고병갑은 그녀를 타이르려 말을 덧붙였다.

「별일 없을 거야. 내성에 가만히 숨어 있어.」

「아…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당신.」

「어.」

고블린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작업 중이던 인원들은 즉각 연장을 놓고 무장을 갖추었다. 아직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인원들은 지정된 장소로 피신했다.

모든 전투 병력이 북문에 집결했을 때는 그러글이 1킬로 근방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이쯤 되니 놈들의 표적이 발타드렌인 것은 명확해졌다.

고병갑이 성벽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보았다. 대략 300쯤 되는 병력이다. 수적으로 밀리지만 질적으로는 이쪽이 우세할 터!

「모두 집중해라! 집중!」

「집중!」

고블린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그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천오백 정도의 그러글이 발타드렌을 노리고 있다! 놈들에게 이곳을 내어 줘서는 안 될 일이다! 솜니움에 닿게 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고! 내 말이 맞냐, 틀리냐!」

「맞습니다!」

「모두 무기는 똑바로 챙겼냐!」

「예! 그렇습니다!」

「좋아! 성문을 열어라! 싹 쓸어버리는 거다!」

「우워어어어어!」

「케르륵! 케르륵!」

북문이 열렸다. 이윽고 고병갑을 필두로 한 300의 전투 병력이 튀어 나갔다.

「도란! 도르마! 키리얀! 투르카!」

고병갑은 주요 전투원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터지는 함성 사이에서도 그의 목소리는 명확히 닿았다.

「네! 저 여기 있어요, 로드!」

「듣고 있습니다, 로드시여!」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선수를 쳐야 한다! 놈들의 대열을 깨트려야 해! 속도를 높여서 내게 붙어라!」

「옙!」

「워어어어!」

고병갑이 내력을 한껏 방출하며 바닥을 찼다. 곧 그는 한 발의 포탄이 되어 황무지를 뻗어 나갔다.

“아으으아아……!”

“아우욱! 아우우으……!”

괴성을 내는 그러글 군집. 그들과의 거리가 50걸음 안팎까지 좁혀졌다. 고병갑의 눈살이 찌푸려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전에 봤던 것들과 다르다고?’

이제껏 봐 왔던 그러글과는 생김새며 아우라며 여러모로 달랐다. 그것들은 정말이지 괴상했다.

모두가 제각각. 각기 다른 괴이한 생김새를 갖췄다. 그건 절대 온전한 생물이라고 부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예컨대 눈으로만 이루어진 생물체.

다리가 머리 위에 달려서 기어 오는 생물체.

아가리가 10개쯤, 팔이 30개쯤 달린 생물체 같은 것들이었다.

개중엔 덩치가 5미터를 넘기는 녀석도 있었다.

“쳇!”

뭐가 됐건 이 뒤로 보낼 수 없는 일이다. 고병갑은 검에 내력을 두르며 세차게 휘둘렀다. 칼끝을 타고 거대한 검기가 전방위로 쏘아졌다.

검기가 그러글에게 닿자 큰 폭발을 일으켰다. 썩은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황무지에 썩은 내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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