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71화 (71/151)

71. 보급로를 뚫다

「우와아아!」

주행 거리가 막 30만 킬로를 돌파한 고물 경차가 황야를 질주했다.

도로가 닦이지 않았으니 차가 지나가면 자욱한 먼지구름이 생겼다. 그래도 달리는 데엔 지장이 없었다.

「도란, 머리 집어넣어라. 창문도 닫고.」

「그치만요, 로드! 이거 되게 기분 좋아요!」

「어휴.」

도란은 창문 밖으로 몸을 반쯤 빼낸 채 마구 환호성 질렀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다.

‘어린아이 맞지, 뭐.’

고병갑은 피식 웃으며 가속 페달을 더 밟았다. 속도계의 바늘이 90을 넘기가 차체가 덜컹덜컹 떨렸다. 그럴수록 도란의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결국 건진 건 없네.’

발타드렌을 중심으로 반경 20킬로를 돌았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황야를 배회하는 그러글 몇 마리가 전부였다.

‘하긴, 정령들은 산에 숨어 살았다고 했으니까.’

에아가 말하길 대륙 대부분은 황무지라고 한다. 그 척박한 곳에선 정령들도 살 수 없었다. 그나마 산속은 살 만했기에 정령들은 산으로, 산으로 파고들었다.

‘그래도 좋은 장소 몇 군데는 봐 놨으니까 만족하자.’

아예 수확이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큰 물줄기를 보았고, 넓은 산맥도 보았다. 먼 훗날 제3의 거점을 세울 때 좋은 참고가 되리라.

「슬슬 돌아가자.」

「네!」

슬슬 발타드렌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 머리를 돌렸다. 서쪽 하늘에 석양이 걸려 멋진 노을이 펼쳐졌다.

다른 건 몰라도 운치 하나는 죽여줬다. 고병갑은 못 참고 차를 세웠다.

「엥? 로드, 왜요?」

「사진 하나 찍으려고. 너도 내려봐.」

「사진이요?」

그와 도란이 차에서 내렸다. 고병갑은 핸드폰 카메라를 켜서 석양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곁에 선 도란이 신기하단 눈빛으로 쳐다본다.

내친김에 렌즈를 돌려 도란도 한 컷 찍었다.

자신을 향해 찰칵! 소리가 나자 그녀가 몸을 움찔거렸다.

「뭐, 뭐한 거예요?」

「이거 봐 봐.」

「우와! 이거 나잖아요? 어떻게 한 거예요?」

그는 도란에게 사진이 무엇인지 대강 설명해 주었다. 머리가 비상한 그녀는 금방 이해했다.

「그럼 내가 로드 찍어 줄게요.」

「나를? 에이, 됐어.」

「빨리요!」

「참…….」

그가 마지못한 척 핸드폰을 넘겨주었다. 도란은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 댔다.

‘꽤 잘 나왔네.’

배경이 끝내주니 대충 찍어도 멋진 그림이 나온다. 특히 석양이 걸려 있는 민둥산이 명물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사진을 찍어 대다가 다시 차에 올랐다. 경치를 감상하며 차를 모니 금세 발타드렌에 도착했다.

「문을. 열어라!」

「로드께서. 돌아오셨다!」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부리나케 문을 열었다. 고병갑은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고생들 한다.」

「아닙니다!」

「수고해.」

고블린들은 슬슬 일과를 마무리 짓는 중이었다. 폐허나 다름없었던 발타드렌에 차츰 사람 사는 모양새가 갖춰졌다.

한 무리의 고블린이 건물 잔해를 들고 앞을 지나쳐 갔다. 고병갑은 습관적으로 입을 열었다.

「얘들아, 고붕이 어디…….」

「예?」

「아… 아니다. 하던 거나 마저 해라.」

‘맞다, 고붕이 여기 없지.’

뭔가 시킬 일이 있으면 고붕이부터 찾는 게 버릇이 됐다.

‘고붕이 녀석 덕분에 일 시키기가 수월했는데.’

솜니움에 두고 온 고붕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작업 반장 몇 명 뽑아야겠네.’

고병갑은 후보 몇몇을 떠올리며 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한 곳은 주택가였다. 내부 정리를 마친 몇몇 건물 중 한 곳을 집어 들어간다.

「아. 로드. 왔어?」

쪼꼬미 한 녀석이 몸을 일으키며 고병갑을 맞이했다.

고병갑은 집안을 슬쩍 훑었다. 가구라곤 간이침대 하나뿐. 한쪽 구석엔 빈 분유통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별일 없었냐?」

「응. 별일 없다. 그런데…….」

「그런데?」

「얘. 밥. 계속 먹는다. 안 쉬고. 먹는다.」

쪼꼬미가 침대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침대엔 우량아 한 명이 누워 분유를 빨아먹고 있었다. 아주 살벌한 기세로 말이다.

「오늘 세 통. 먹었다. 먹고 싸고. 먹고 싸고. 그것만 한다.」

「흠…….」

「밥 안 주면. 크게 운다.」

사흘 전, 그는 하피의 배에서 나온 아이를 거두어 왔다.

보통의 몬스터 새끼였다면 그냥 죽였으리라. 하지만 나온 것은 생뚱맞게도 인간 아이였다.

차마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고병갑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일단은 계속 먹여. 굶기는 것보단 낫겠지.」

「응. 알겠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고블린들은 두런두런 모여 저녁 식사를 하였다. 고병갑은 그 사이에서 10명의 홉 고블린을 꼽았다.

아스빌람에 온 지 꽤 된 녀석들로만 말이다.

「너희는 오늘부로 작업 반장이다.」

「자… 작업 반장?」

「그게. 뭡니까?」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솜니움에 있을 때 고붕이가 하던 것처럼 애들 관리하고 작업 총괄하고 하면 돼.」

「아…….」

「일단은 그렇게만 알고 있어라. 너희가 당장 해 줄 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애들 이름도 지어 줘야겠네.’

앞으로 부르기 수월해지려면 이름 정도는 지어 줘야 했다. 고병갑은 밤 동안 고민해 보자고 생각했다.

이튿날, 고병갑은 오피스텔에서 아침을 맞았다.

오늘은 아스빌람의 업무를 보기로 한 만큼 토벌은 걸렀다. 지난 3일간 매일 두 탕씩 뛰기도 했고.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고 그가 향한 곳은 대형 문구점이었다. 고병갑은 거기서 완장과 이름표를 각각 10개씩 샀다.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하나. …별것도 아닌 게 골치 아프게 하네.”

고병갑은 유성 매직을 들고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다 번뜩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쉽게 가자, 쉽게. 일붕이, 이붕이 삼붕이, 사붕이…….”

솔직히 본인도 자신의 창의력 수준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어쨌건 완장과 이름표를 들고 아스빌람에 넘어간다. 고블린들은 갓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일과를 준비 중이었다.

마침 모두가 한자리에 모였다.

‘잘됐네.’

그가 큰소리로 외쳤다.

「내가 어제 작업 반장으로 임명한 애들 나와 봐!」

「앗! 옙!」

10명의 홉 고블린이 부리나케 나왔다.

고병갑은 그들에게 완장과 이름표를 달아 주며 간단한 취임식을 진행했다.

「모두 들어. 앞으로 얘네가 하는 말은 나의 전언이니까 그렇게 알고 따르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좋아, 작업 반장들은 잠깐 나 따라와.」

일붕이부터 열붕이까지 앞에 모아 놓고, 고병갑은 분위기를 잡았다.

「오늘부터 산에 길 내는 작업을 진행할 거야.」

「어느 산. 말입니까?」

「솜니움이 위치한 산 말이야. 다행히 경사가 완만해서 돌이랑 나무 좀 치우고, 군데군데 손만 보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오오. 그렇습니까?」

작업 반장들이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병갑은 끙 앓다가 작업 반장을 두 분류로 나누었다.

일붕이부터 칠붕이까지는 왼편, 나머지는 오른편이다.

「너희는 나랑 같이 나갈 거야. 음… 쪼꼬미들 제외해서 두당 70명씩 작업 인원을 뽑아. 도끼랑 삽, 괭이 챙기고. 이해했어?」

녀석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한 명당. 70명. 그리고 도끼, 삽, 괭이 챙기면. 되는 거. 아닙니까?」

「맞아, 정확히 이해했네. 잘했다.」

「집결지는. 어디입니까?」

「남문 앞으로 모이면 돼.」

「옙!」

명령을 받은 작업 반장들이 쌩 사라졌다. 이번엔 남은 녀석들에게 임무를 맡긴다.

「너희는 우리가 나가 있는 동안 여기 일을 마무리해 줘. 그냥 하던 거 그대로 하면 돼.」

「그대로.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아, 열붕아.」

「…아! 옙!」

「너는 쪼꼬미 한 20명 데려다가 강에 가서 흙 좀 퍼와라.」

「흙… 말입니까?」

「응, 양동이 같은 거 들고 가서 쉬엄쉬엄 퍼오면 될 거야. 어디다 쌓아 놓으면 되는지는 따로 알려 줄게.」

「알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퍼옵니까?」

「그냥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해.」

「알겠습니다.」

「경비대 애들한테 말해 놓을 테니 혹여라도 그러글이 나타나면 바로 성안으로 피신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고병갑은 그렇게 일러둔 뒤 도란을 찾아갔다. 도란에게는 1, 2보병대와 함께 무장을 갖추고 성문 앞에 대기하라고 말했다.

「네, 알겠어요. 그것만 하면 돼요?」

「아, 그리고 냉동 저장고 가서 전투 식량 510개만 챙겨. 생수도 그만큼 챙기고.」

「각각 510개씩이요? 네! 그렇게 챙길게요.」

「점심은 밖에서 먹어야 할 것 같거든. 아무튼 맡겨 둔다.」

「걱정 붙들어 매세요! 후후!」

「다 챙기면 남문으로 와.」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고병갑은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명령을 하달했고, 그사이 작업 인원들이 남쪽 성문 앞에 모였다.

고병갑은 경차를 끌고 그리로 갔다.

대기 인원들은 차를 몰고 나타난 로드를 보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그가 차에서 잠깐 내려 인원과 물자를 점검했다. 모두 문제없었다.

「도란.」

「네, 로드. 그런데 차는 왜 타고 오셨어요?」

「나는 먼저 가서 솜니움 찍고 올 거거든. 네가 애들 잘 인솔해서 바위산으로 와. 할 수 있지?」

「당근이죠! 문제없어요.」

「그럼 부탁 좀 하자. 천천히 와. 괜히 서두르지 말고.」

「네!」

「오냐, 그럼 이따 보자.」

성문이 열렸다. 고병갑은 차를 타고 잽싸게 튀어 나갔다.

가속 페달을 한껏 밟으며 바위산으로 향했다. 거슬릴 게 없는 황야를 질주하길 몇 분. 그는 금세 바위산에 도착했다.

하지만 진짜는 지금부터다. 솜니움까지 꽤 먼 산행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애들 오기 전에 찍고 와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그가 흡사 전투 때처럼 내력을 방출했다. 일순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거침없이 산을 올랐다.

한 마리의 늑대, 아니 송골매 같은 몸놀림이었다.

그러다 좀 숨이 차고 힘이 빠진다 싶으면 준비해 온 육포를 품에서 꺼냈다.

‘골드 드래곤 고기로 만든 육포라니.’

무려 2,000 수정 짜리 육포다. 아까워서 다는 못 먹고 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만 물어뜯었다.

혓바닥으로 고소한 감칠맛이 싸고돌았다. 곧이어 빠졌던 활력이 다시금 차올랐다.

넘치는 힘으로 산을 오른다.

솜니움이 위치한 중턱까지 30분 만에 도달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아이고, 힘들어 죽겠네.”

그가 힘 빠진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왔다. 정면으로 거대한 성벽이 보였다.

그 위로 경계를 서고 있는 고블린들도 보였다. 혹여 오인 사격을 할까 싶어 두 팔까지 들었을 때였다.

「로드다! 로드께서 오셨다!」

별안간 저쪽에서 고성이 들리더니 성문이 열렸다.

‘짜식들, 호들갑은.’

성문 안쪽으로 들어서니 가장 먼저 반겨 준 것은 경비병들이었다.

그들은 ‘로드시여. 로드시여.’하며 반가움을 표출했다.

「고붕이는 어디 있냐?」

「아마. 동굴 쪽에. 있을 것입니다.」

「그래? 알겠어. 다들 볼일 봐라.」

오랜만에 밟는 솜니움 땅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고병갑은 정취를 한껏 느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야, 닭장 넓혔구나? 밭도 풍성하고.”

언뜻 보기엔 잘 지내는 것 같았다. 밭이나 닭장에서 일을 보던 고블린들은 고병갑을 발견하더니 눈이 커졌다.

그러곤 한달음에 뛰어왔다.

「로드! 로드!」

「로드! 언제 왔어!」

「로드시여!」

「잘 지냈냐, 짜식들아!」

고병갑은 밝게 웃으며 녀석들을 맞았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자 동굴 내부에서도 감지한 모양이다.

누군가 동굴 밖으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냈다. 고붕이였다.

「로, 로로, 로드시여!?」

「오, 고붕이!」

「로드가 오셨다! 다들 나와! 로드가 오셨다!」

「뭐? 로드?」

잠시 후 동굴에서 고블린들이 우수수 튀어나왔다. 다들 잘 먹고 잘 자는지 때깔이 좋았다.

「로드시여! 어, 언제. 오신 겁니까?」

「방금 왔어. 이야, 고붕이 오랜만이다.」

「옙! 오랜만… 흑!」

「아유, 왜 또 울고 그래. 징그럽게.」

고블린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여간 이놈들은 생긴 거랑 다르게 감수성이 풍부하다.

「지내는 데 문제는 없냐? 먹는 건 제대로 챙겨 먹어?」

「예. 굶지 않고. 잘 챙겨 먹고. 있습니다.」

「거, 다행이네. 그러글은 어때?」

「로드께서 가시고. 몇 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한두 마리. 뿐이었습니다.」

「걱정했었는데 다행이다.」

「그나저나. 어쩐. 일이십니까? 혼자서.」

「어쩐 일은, 그냥 너희 어떻게 사는가 궁금해서 왔지.」

「그렇습니까? 로드시여.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고, 징그러운 소리 좀 그만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고병갑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그가 번뜩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아. 할 일이 하나 있기는 하지.」

「음? 솜니움에. 할 일이. 남으셨습니까?」

「어, 너한테 맡길 일이 있다.」

「어… 어떤?」

고병갑은 대답 대신 고대의 상점을 열었다.

[고대의 상점]

-건설

-기술

-잡화

-기타

[보유 수정: 10,089,469]

‘드디어 사는구먼. 드디어.’

어제 보유 수정이 1천만을 넘겼다.

고병갑은 거침없이 손가락을 놀려 원하는 상품을 찾았다.

[계몽의 씨앗]

-가격: 10,000,000 수정

-설명: 세계수 위그드라실의 씨앗. 신의 분노로 지혜를 잃은 어느 종족의 얼이 담겨 있다. 세계수가 싹을 틔우면 신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다.

고병갑은 상점 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별일 아니야. 닭 키웠던 것처럼 나무 한 그루만 키워 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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