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안에 고블린 작업장-70화 (70/151)

70. 몬스터

배불뚝이 몬스터를 보는 일은 4년 차에 접어든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없었다.

고병갑은 고개를 갸웃거림과 동시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저건 새끼를 밴 것이었다. 배꼽 아래로 길게 난 임신선은 똥배로 생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끼아아아아―!”

하피가 미칠듯한 고성을 질렀다. 어찌나 쩌렁쩌렁한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지경이다. 놈은 훌쩍 날아오르며 토벌대와 거리를 벌렸다.

놈의 휘하에 있는 C, D급 몬스터가 으르렁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보스를 지키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열 유지해. 온다.」

혼 가브리와 염마로 구성된 말 군단. 대가리 수는 어림잡아 마흔쯤 됐다. 일순, 놈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파도 같기도 했다.

쾅! 쾅!

파직!

키리얀과 도르마는 일찌감치 요격을 시작했다. 적진 사이사이로 폭발과 전격이 치솟았다. 그럴 때면 꼭 한두 마리씩 수족을 떨어뜨리며 괴팍한 신음을 토했다.

「창식이, 태식이. 붙어라!」

「옙!」

「알겠습니다!」

고병갑과 두 비스트 고블린이 질주했다. 그들이 적들과 충돌하기 직전, 키리얀이 전격의 창을 쏘아 길을 열었다.

덕분에 근접 딜러들은 한결 수월하게 침투할 수 있었다.

“히이잉!”

“크아아악!”

사방에서 아가리와 뒷다리가 날아든다.

고병갑은 유연하게 움직이며 몰아치는 공세를 회피했고, 틈틈이 대나무 결처럼 곧은 검격을 적의 면상에 꽂아 주었다.

이따금 사각에서 허를 찌르는 공격이 날아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창식과 태식이 멋지게 서포트해 주었다.

그들의 클로가 살벌한 궤적을 그리면 자욱한 피 안개가 생성됐다. 아무리 명불허전의 괴물이라도 뇌에 바람구멍이 뚫리면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케엑!」

그때 바닥에서 돌 파편이 튀겨 오르더니 창식이 비명을 내질렀다. 고병갑은 깜짝 놀라 그곳을 보았다.

창식이 다리를 얼싸쥔 채 신음을 삼키고 있었다.

‘뭐야!’

고병갑은 눈먼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빠르게 탐색했다. 위쪽이다. 위쪽에서 하피가 뭔가 술책을 꾸미고 있었다.

“꺄아!”

놈의 거대한 아가리에 발사되는 무색 무형의 충격파. 잠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빼면 관측하기조차 힘들었다.

충격파가 창식에게 재차 쇄도했다. 고병갑은 얼른 그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휘둘렀다.

날쌘 검격이 충격파를 상쇄시켰다.

「괜찮냐?」

「으윽! 괘, 괜찮습니다!」

「그럼 얼른 일어서!」

“꺄아!”

「제길!」

3연발 충격파가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2발은 어찌어찌 쳐냈는데 나머지 하나가 왼쪽 어깨를 때려 맞추었다.

내력으로 몸을 보강했음에도 욱신거리는 통증이 일었다.

‘제길! 뭐가 보이질 않으니!’

감으로 때려 맞추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고병갑과 창식의 몸에서 하얀빛이 일렁이며 피어올랐다. 그러자 통증이 씻은 듯 가시고 상처 또한 아물었다.

힐러 바몬드의 치유 권능이었다.

창식이 재빠르게 일어나 전열을 다잡았다.

후위의 지원 사격 덕분에 부하 몬스터는 7할 이상 잡은 상태였다. 고병갑은 하피를 쏘아보며 이를 갈았다.

‘저년 먼저 잡아야겠군.’

「창식이, 태식이! 부하 놈들을 몰아라!」

「앗! 옙!」

「케르르륵!」

창식과 태식은 특유의 날쌘 몸놀림으로 부하 몬스터를 유인했다. 고병갑은 미끄러지듯 몬스터의 격류를 빠져나와 하피를 바로 보았다.

지상에서 5미터 정도 상공에 떠 있는 하피.

‘젠장, 저걸 어떻게 잡지?’

상위 각성자 중에는 하늘을 나는 이도 존재한다고 한다. 뭐, 불도 뿜고 전기도 던지는 게 이 바닥이니 하늘 나는 것쯤이야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자신에겐 그런 재주가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

날 수는 없어도 닿을 수는 있다.

그가 다리를 한껏 굽히며 도약을 준비했다. 하반신으로 터질 듯한 내력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팍!

바닥이 움푹 파였다. 그 반작용으로 고병갑은 하늘로 치솟았다.

“꺄아!”

하피는 반사적으로 몸을 빼며 충격파를 토해 냈다. 충격파가 이마에 직격 했을 땐 시야가 캄캄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부릅뜬 눈을 감지 않았다.

“꺄, 꺄아―!”

“잡았다, 이 망할 년!”

고병갑이 하피의 한쪽 팔을 잡아챘다. 하피의 팔은 팔인 동시에 날개였다. 고병갑으로 인해 비행의 균형이 깨졌고, 둘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끼야아아아!”

“큭!”

하피와 고병갑이 뒤엉켜 바닥을 굴렀다. 추락의 충격도 잠시. 녀석은 주먹과 팔을 닥치는 대로 휘저으며 고병갑을 공격했다.

고병갑은 결국 하피의 팔을 놓쳤다. 녀석이 다시 날아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서걱!

“어딜 가려고.”

“꺄아악!”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았던 그가 하피의 팔 한 짝을 절단하는 데 성공했다.

하피가 잘린 어깨를 부여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꺄아아!”

쏟아 치는 충격파. 고병갑은 본능적으로 몸을 수그리며 바닥의 돌멩이를 주워 들었다.

일순 그의 팔이 흐릿해졌다. 그와 동시에 돌멩이가 하피의 배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하피는 기겁하며 배를 가렸다. 고작 돌팔매질일 뿐임에도 과민 반응하는 모습.

‘역시 배를 보호한다.’

내력이 담기지 않은 투석은 당연히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공격받은 하피조차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일 정도로.

물론 메인 디쉬는 따로 있었다. 내력을 가득 머금은 찌르기가 하피의 면상으로 날아들었다.

“꺅!”

“칫!”

간신히 반응한 녀석이 고개를 틀어 치명상을 면했다. 검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놈이 훌쩍 뛰어오르며 거리를 벌렸다. 아직도 한쪽 팔로 배를 감싸 쥔 모양새였다.

몬스터 주제에 모성애 하나는 투철하다는 건가?

고병갑이 곁눈질로 뒤쪽 상황을 살폈다. 부하 몬스터가 전멸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이제 하피는 독 안에 든 쥐 신세다.

그는 다시금 돌멩이 하나를 주워 들고 도발하듯 비웃음을 흘렸다.

“순순히 포기해라. 서로 피곤하게 뭐 하는 짓이냐, 이게?”

“끼야아아!”

고성과 함께 연신 쇄도하는 충격파. 고병갑은 옆으로 훌쩍 몸을 날려 피해 냈다.

그러면서 재차 돌팔매질했다. 이번에도 노리는 곳은 하피의 복부였다.

그때 하피가 허리가 휠 만큼 큰 숨을 들이마시더니 한순간 발산했다.

“꺄아아아아아!!”

“크흑!”

무협지 속 사자후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충격파가 전방위로 쏘아졌다. 날아가던 돌멩이는 가루가 돼 버렸다.

동시에 고병갑도 거대한 몽둥이에 얻어맞은 것처럼 훌쩍 날아갔다.

‘젠장!’

몸의 통증보다도 귀가 먹먹했다. 목이 뜨뜻미지근한 것을 보니 정말로 귀에서 피가 흐르는 모양이었다.

한데 좀전의 공격은 하피 본인에게도 피해를 준 듯했다. 절단된 어깨의 출혈이 가속화됐다. 몸이 기술의 반동을 버티지 못하는 것이다.

“꺄으으… 꺄으…….”

비틀거리는 하피. 고병갑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저릿저릿하다. 하나 바몬드가 즉시 힐을 써 주었고, 운기조식까지 곁들이니 상처는 금세 치료됐다.

반면 하피는 만신창이다. 이게 바로 힐러의 중요성이다.

“아니꼬우면 너도 힐러 부하 하나 두던가!”

그가 벼락처럼 돌진했다. 하늘로 치솟은 칼날이 언제 그랬냐는 듯 뚝 떨어졌다. 쇠약한 하피는 피할 기력도 없었다.

“끼야아악!”

‘저 상태로도 몸을 틀어 피한 건가. 몬스터답게 집념이 대단하군.’

사실 좀전의 공격은 머리를 노린 것이었다. 하피는 팔을 대가로 수명을 벌었다. 그래 봤자 몇 초뿐이지만.

칼날이 바닥을 치자마자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이번엔 복수를 노렸다. 하피가 필사적으로 몸을 뺐다.

칼날이 녀석의 배를 아주 얕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피는 절뚝거리다가 풀썩 쓰러졌다.

고병갑은 아주 끝장을 낼 심산이었다. 하지만 하피의 골통을 으깨기 직전, 그가 멈칫했다.

하피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사람을 닮은 몸체에 새의 날개. 대가리는 사람과 새를 반쯤 섞어 놓은 듯 괴상하다.

그런 괴상한 것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하지 마아아악!!」

「흡!?」

하피가 별안간 소리를 빽 질렀다. 충격파를 동반한 고성이 아닌, 평범한 발악이었다.

「너… 너 이 새끼 방금 말을……?」

「하지 마아악! 하지 마아아악!」

「로드시여! 괜찮으십니까!」

부하 몬스터를 끝장낸 공격대 인원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하피를 보며 흠칫 놀랐다.

「제가 끝장을 내 버리겠습니다!」

그때 키리얀이 피뢰침에 전격을 모았다. 고병갑은 기겁하며 제지하고 나섰다.

「안 돼! 가만히 있어 봐!」

「로… 로드시여?」

「다 내 뒤로 물러서.」

곧 죽을 것처럼 보여도 B급 몬스터다. 언제 충격파를 쏘아 댈지 모르는 일.

고병갑은 언제든 검을 휘두를 수 있게 자세를 잡으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내 말 알아듣지?」

「로드시여? 지금 뭐 하시는?」

「쉿! 조용해 봐!」

「죄, 죄송합니다!」

고병갑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너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런 거지?」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캬악, 퉤!」

「이런 미친!」

하피가 눈을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속사포로 악담을 쏘아 댔다. 소름이 돋을 만큼 음산한 음성이었다. 마지막엔 침까지 뱉어 버린다.

고병갑이 이마로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너만 고통받을 뿐이다. 좋게 말할 때―」

「죽어! 죽어! 죽… 아! 아흐흑! 꺄흐아악!」

「야야! 이거 갑자기 왜 이래?」

「그, 글쎄요. 저도 잘…….」

별안간 하피가 자지러졌다. 녀석은 잘린 팔로 배를 말아 쥐고는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곧 보고 있기 민망하고, 거북한 장면이 연출됐다. 하피의 사타구니 아래가 붉어진 것이다.

이윽고 피와 양수가 뒤섞여 마구 쏟아졌다. 고병갑은 흠칫 몸을 떨며 물러났다.

“끼야아악! 끼아아악!”

끊어질 듯한 비명. 하피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버둥거렸다.

「로, 로드시여. 어떡합니까?」

「얀마,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죽입니까?」

「아니,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봐.」

그렇게 공격대와 고병갑은 하피가 고통에 버둥대는 모습을 직관했다.

‘애가 나오려는 건가?’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출산이 임박한 것이리라.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터다. 몬스터가 몬스터 낳는 게 뭐 좋은 구경거리겠는가? 하지만 흥미롭기로 따지면 점수가 높았다.

그렇게 3, 4분쯤 흘렀다. 하피의 불룩했던 배가 가라앉더니 엄청난 양수가 터져 나왔다. 이내 녀석의 다리 사이로 한 덩어리의 물체가 나왔다.

“하윽! 하윽! 헉! 하으으… 끅.”

그리고 어떻게 손쓸 틈도 없이 하피가 숨을 거두었다. 보스 몬스터가 죽자 이면 세계가 진동하며 붕괴가 시작됐다.

한편.

‘이… 이게 뭔!?’

고병갑의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 아니, 실제로 반쯤은 튀어나왔다.

「로, 로드시여. 저, 저건……?」

그건 고블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이 한곳에 모였다. 하피의 사타구니 밑이다. 그곳에 작디작은 ‘무엇’이 목이 쉬어라 울부짖고 있었다.

갓 태어난 새끼가 우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하피의 배에서 나온 게…….

‘저건 사람이잖아?’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람이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딜 봐도 인간 신생아였다.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 든다. 하피 속에서 사람 새끼가 나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은 아니잖은가?

「로드시여, 일단은 고기부터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어. 어어 키리얀. 그러자.」

그가 아스빌람의 문을 열었다. 이윽고 일꾼들이 튀어나와 몬스터 수급을 옮겼다.

그사이 고병갑은 아이에게 다가갔다. 선뜻 손대기가 망설여졌다. 솔직한 말로 꺼림칙했다.

「어쩌실 심산이십니까? 죽이실 겁니까?」

「…가만히 두면 알아서 죽지 않겠냐.」

「흐음, 듣고 보니 맞는 것 같습니다. 굳이 로드의 손을 더럽히실 필요는 없지요.」

균열에 가만 놔두기만 해도 살 가능성은 없으리라.

“으아앙! 으앙!”

그 와중에도 아이는 흙바닥에서 잘 버둥거렸다. 목청도 타고난 장사였다.

‘무슨 갓 태어난 놈이 저리 힘이 좋아?’

아이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어미의 시신으로 파고들었다.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다.

바로 그때. 하피의 시신이 훌쩍 끌려갔다. 어떤 쪼꼬미가 고기 수급을 위해 잡아당긴 것이다.

「엥? 이거. 뭐야?」

쪼꼬미가 눈에 물음표를 띄우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녀석의 손이 아기를 향해 뻗어 간다.

「야야! 잠깐만!」

고병갑이 얼른 아이를 가로챘다.

「로드. 저것도. 고기야?」

「하아…….」

그가 쓰게 탄식했다. 그는 품에 안아 든 아이를 빤히 쳐다보다가 못내 대답했다.

「이건 고기가 아니다.」

「아니야? 응. 알았어.」

쿨하게 지나쳐 가는 쪼꼬미.

「로드시여?」

「도르마, 이거 한 번 키워 볼까?」

「예에? 괴물의 배에서 나온 것을 거두시겠다는 말입니까?」

도르마가 당황 가득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아니, 거두겠다는 게 아니라… 넌 궁금하지 않냐? 이게 크면 뭐가 될지 궁금하지 않아?」

「스읍…….」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근데 그건 염려치 마. 만약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내가 나서서 죽일 테니까.」

「저야 로드의 판단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도르마가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고기 수거 작업이 끝나고, 고블린들은 발타드렌으로 돌아갔다. 그 무리엔 하피의 속에서 나온 아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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